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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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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 소련군정
분단시대
대한민국 · (자유조선)
북괴 (반란세력)
신라
新羅 / Shilla
기본 정보
수도 금성(경주)
국가 한국
대륙 아시아
인구 약 600만 명
인종 한민족
추가 정보
언어 고대 신라어(고대 한국어)

통수가 미래다

 
— 신라

개요[편집]

오늘날의 대구+경북+강원도 지방에 있었던 고대 근친충 흉노몽골족들의 왕국이며 믿기지는 않지만 헬조선의 시초다.

초기 신라어는 일본어와 비슷하고 고구려, 백제와 언어가 달랐다고 한다. 외국 놈이 왕이 될 정도로 골품제도 없었다. 근데 원조 신라충들이 북방에서 오신 성님들께 참교육을 당한 후 빠르게 고구려어, 백제어와 수렴하게 되고 골품제가 생긴다. 삼국시대 성립 이전에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서는 일본어족에 속한 언어를 사용했다가 고구려-부여 계통에 전부 흡수되거나 멸종했다고 추측된다.

ㄴ 지랄하네 신라, 왜 상인 서로 말이 안 통했고, 신라-왜 관계는 서로 해적들 보내서 쌈박질할 정도로 사이 좆나 안 좋았다.

흔히 천년 왕국 또는 천년 제국이라고도 한다. 건국 년도(기원전 57년)부터 고려에게 사직을 양보하기까지(935년) 992년 동안 존속했기 때문이다. 역사상 1000년 동안 존속한 나라는 극히 드물다.

어떤 바보새끼가 신라가 고구려보다 빨리세웠다는걸 부정하는놈이 있는데 기원전개념이 뭔지모르고 글싸지르는 좃도모르는놈이다. 예수님이 태어나기 이전을 기원전,태어난후를 기원후로 하는데 기원후는 앞부터터 계산하나 기원전은 꺼꾸로계산한다. 따라서 기원전57년이 기원전37년보다 더오래됐다. 기원후는 1997년이 2016년보다 오래됐다. 신라 -57년 < 고구려 -37년이니. 현실은 외국 위키만 봐도 신라는 고구려보다 빨리 세워졌다는 근거가 없다고 나옴. 외국놈들은 어차피 삼국 초기 기록은 백제, 신라, 고구려 전부 구라라고 보기 때문에 누가 먼저 세웠다고 하는 건 외국 입장에선 전부 의미 없음.

외국애들이 죄다 구라라고 하는 이유가 다 있다. 어차피 초기 기록은 신화 수준이라서 겉으로만 봐서는 고구려가 백제보다 먼저 세워진 거 빼곤 언제 세워졌는지 알 길이 없고 통일한 신라 입장에서는 후대에 역사 쓸 때 자랑스러운 우리 신라가 통일을 했는데 저 미개한 것들보다 역사가 짧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갑자공식(60년)을 신라에 맞춰서 끼워 넣었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이런 의문이 제기된 게 당시에 나라로서 뭘 기록하고 관등 세우고 하는 지표가 되는 율령 반포가 신라가 제일 늦었고 거기에 더해서 칭왕도 제일 늦었기 때문에 외국 애들 입장에선 진짜로 신라가 고구려보다 건국 시기가 빨랐는지 의문을 제기할 만해서 한 거고 그러다 보니까 신라의 일방적인 기록만으로는 초기 시대를 판단할 수 없다고 해서 나온 게 위키의 내용임

일본서기랑은 경우가 다른 게, 일본서기는 애당초 고고학적 증거랑 역사기록이 완전히 따로 놀아서 그걸 신뢰하려고 해도 신뢰할 수가 없음. 얘네는 대놓고 기원전 7세기 때부터 만세일계가 있었다! 하고 정작 초기 왕계는 결사팔대라고 해서 행적 전하지도 않는 인간들이 잔뜩 있고 해서 그냥 누가 봐도 단군이 기원전 2333년에 나라 세웠다는 거랑 별로 차이가 없는 반면에, 삼국사기는 어느 정도는 비슷한 시기에 대체로 고고학적 자료랑 교차검증은 되는 편(풍납토성 축조연대, 그 당시 국(國) 수준 정치체의 간접적 증거 등)

삼국시대 초창기만 해도 개미 똥꾸멍만 하던 영토를 진흥왕이 배로 불려놓았고 그 뒤로는 당나라와 손잡아 삼국을 통일하고 대동강 이남부터 원산만까지 영토를 불렸다.

고구려랑 백제가 없어지면서 뇌도 없어졌는지 세금 존나 올리고 귀족들 흥청망청 쓰다가 결국 후백제고려에게 명치를 쳐 맞고 고려에게 나라를 갖다바쳤다. 근데 그 뒤에도 귀족들은 나름 작위를 가졌던 터라 꿀 빨다가 생을 마감했다.

결국 신라의 역사를 정리하자면 통수 치고 눈치싸움 하고, 한가하니 밥그릇 싸움 좀 하다가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고 마지막엔 깔끔하게 영토헌납 후 꿀빨인생을 하사받음. 이렇게 1000년을 버텼다. 인생은 신라처럼... 진지 빨고 소국으로서 온갖 이익 재기랑 눈치, 갈아타기랑 통수로 전성기도 제때제때 누리고 거의 천년을 버티다 가버린 신라의 그런 면은 빨아줄 면이 분명 있다 특히 지금의 한국은 말이다.

그야말로 통수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다. 신라/통수 항목 참조

물론 좆구려와 좆제는 지들끼린 유대감을 가지고(좆백제를 고구려 출신이 세웠기 때문.) 신라를 은근슬쩍 멸시하고 다구리 까기도 했기 때문에 자업자득이다.

좆구려랑 좆제끼리 유대감 좆도 없었다. 고구려는 아예 백제를 '백잔'이라 불렀다. 한마디로 오랑캐라 불렀다는거 ㅇ

신라 중심 삼국통일의 여파[편집]

용두사미!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용두사미 그 자체입니다.
처음에는 기대도 많이 받고 인기도 많이 얻었지만 가면 갈수록 좆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신라 주도 통일을 두고 여러 논란이 있다.

긍정론은 "어차피 고구려는 당나라에게 망할 나라였는데 신라가 남단에서 최후의 방어를 성공해 한민족이 말살되는 걸 막았다."라는 것이고

부정론은 "신라의 통수 때문에 차후 등장하는 한민족의 생활 공간이 훨씬 쪼그라들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사실 둘 다 결과론에 불과한데, 한민족의 주류를 예맥한계로 상정하고 볼 때, 신라의 프락치질로 인해 당나라가 동쪽 동네의 실상을 면밀히 파악하게 되고, 게다가 고구려 원정 실패의 중대한 이유였던 보급로 차단 문제가 신라 땅에서 보급 조달할 수 있게 되면서 해결되자, 동쪽 동네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어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는 후자가 대중적 의견으로서 더 강하다.(실제로 역사편찬위원회가 공모한 투표의 한국사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으로 뽑혔기도 하고)

ㄴ이런 소리 하는 새끼들은 발해를 한국사로 생각하지 않는 중국몽 훠재앙 같은 새끼라고 보면 된다.

어찌되었건 고구려 백제가 무너지면서, 예맥한족의 인구가 최소로 잡아도 기존의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요동평야를 빼앗기면서 농지들과 무역거점이 중국으로 넘어가 이쪽동네 인구부양능력이 반토막 났으며, 요동과 만주까지 닿아있던 행정통제력이 일거에 무너져버려 사실상 고대 예맥한족 발전동력의 원천이었던 요동~만주~한반도 북부~백제권의 문명이 모조리 불태워져 초기화 되어버리고, 남은 잔당들은 발해시대를 통해 말갈족으로 흡수 융화되어 여진족으로서 한국사에서 떨어져나가 버리면서, 중세 이후 등장하게 되는 한민족이란 족속 자체가 한반도에 국한된 약소민족 약소국가화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ㄴ 뭔 총체적인 개소리여. 뜬금없이 요동, 만주 쪽이 뭔 발전동력이 원천이란 얘기고, 또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 새끼 대가리엔 발해는 이미 중국사인가.

ㄴ만주요동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이미 고조선 시대에 평양이 중심지였고 고구려도 평양으로 천도해 멸망할때까지 거기서 놀았다. 즉 이미 고대부터 한민족의 국력 원천은 한반도였다.

ㄴ애당초 고구려 삼경 중 2경이 한반도에 있었을 정도로 고구려인 당사자들이 중시한 영토가 한반도에 있었는데 이런 병신같은 만주뽕 좀 안 보고 싶다. 이런 만주뽕에 갇혀 있으니 만주, 요동지역 차지한 나라는 강대국, 한반도 차지하면 약소국 도식이 돼버리는 건데 읭? 이거 딱 만선사관 아니냐? 한반도는 언제나 만주사의 부속이라는?

ㄴ응 요동지랄하는새끼야 발해>>>>>>>>>>>신라야^^

ㄴ발해>>>>>>>>>>>신라였으면 발해가 신라 따먹고 남북통일 했겠지 븅신아 ㅋㅋ 고구려든 발해든 한반도 중/남부 통일 안한게 아니라 '못'한거란다

그리고 한민족이 약소국화가 된 건 끽해야 조선 후기 쯤 남북 양면으로 개털린 다음의 일이고, 애당초 동아시아에선 덩치큰 나라 자체가 몇 개 없어 정복하고 다닐 데가 없어서 그렇지 중세-근세기에 인구 천만에서 이천만 정도 영유한 문명권이 약소국이라고 하는 피해망상 좀 어떻게 해봐라.

그냥 고구려 망한 이후 약소민족 타령하는 새끼들은 식민사관에 길들여진 새끼들이라 봐도 무방함.

이는 근대 민족주의를 떼어내고 보더라도 뼈 아픈 사실이 아닐 수 없겠으나, 어찌하던 결과론이고, 걔다가 우리에겐 갓글이 있으니 억울할 것까지는 없다.

게다가 몽골, 만주족 등이 과거 흉노 같은 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파워를 발휘했던걸 생각하면 고구려도 걔네들이 흥기할때 그냥 쓸려나가고 우리는 중국 소수민족이 되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실제로 발해는 거란이 요나라 세울 때 쓸려 나가버렸다.

진지 빨면 사실 고구려는 신라의 도움이 있건 말건 언젠가 당나라에 멸망 당했을 확률이 크다. 애초에 국력 자체가 상대가 안됐으며, 실제 역사에서도 수양제 때는 야전에서 당당히 격파했으나 당 태종 때는 야전만 벌였다 하면 족족 개발리고 청야수성만 하다가 안시성에서 구사일생, 당고종 때는 고구려의 청야수성을 역으로 이용해서 작은 병력을 여러 번 보내는 전략에 휘말려 참패. 당나라가 고구려 원정에서 실패하든지 말든지 계속해서 국력이 신장하고 대외 위상이 올라가는데 비해 고구려는 전쟁이 벌어질수록 점점 힘이 빠지는 모습을 보인다.

진짜 고구려는 정권 싸움만 아니라면 신라나 당나라따위엔 멸망할리 없고 당나라급 동아시아 사상 레전드 제국을 찍고도 남았을텐데 아쉬운 면이 남아있긴 하다. ㄹㅇ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욱 무서움을 예시로 보여주고 멸망크리행

고구려 멸망한 후 고구려 따까리로 있던 거란 말갈이 독립해서 요나라와 금나라와 청나라가 생겨났다. 고구려가 안 망했으면 중국사가 통째로 바뀌었을 것이다. 나비효과를 더 과장한다면 아시아 역사도 통째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참고로 몽골제국 조상니뮤인 실위도 고구려 영향권 아래 있었으니까 몽골 역사도 통째로 바뀌었을 것이다.

즉 신라 중심 삼국통일의 여파가 지금의 아시아다.

ㄴ의미없는 if놀이다. 이미 고구려의 후신인 발해가 거란족 통제 못해서 멸망 당하고 그 뒤로 한번도 발해같은 국가가 나오지 못했는데 고구려가 유지 되었어도 발해꼴일 가능성이 크다. 이미 고구려 당대부터 거란족과 일부 말갈족이 당나라에 붙어 고구려를 공격한게 그 증거다. 고구려가 유지 되는 if놀이 갈 것도 없이 이미 고구려 당대부터 휘하 거란족,말갈족의 이탈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금나라를 세우게 되는 흑수말갈의 경우 고구려 전성기조차 복속시키지 못한 애들이다.

사실상 신라는 삼한을 영토적으로는 정복했더라도 문화적이나 민족적으로 하나로 통합했다고 볼 수는 없다. 신라가 통일한지 200년만에 다시 갈갈이 찢어졌고 결국에는 내물왕 이전 수준까지 퇴화하면서 끝끝내 고려에 흡수된걸보면 신라는 강제로 유민들을 통치를 했을수는 있어도 그들을 완전히 융합하지는 못했던것이다.

광개토대왕때 고구려만 하더라도 그 당시 고구려는 충분히 백제, 신라 ,가야를 무력으로 정복하고 복속시킬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광개토대왕은 아신왕을 굴복시키고도 백제를 직접 통치하지 않고 그냥 백제를 신하국가 정도로만 만들고 걍 냅뒀다. 국가라는게 지휘부는 힘으로 눌러서 뺏을수 있어도 문화나 사회는 단지 정복한다고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은 걍 백제나 신라를 고구려 산하의 괴뢰국가 수준으로만 만들다가 세월이 지나고 자연스럽게 고구려와 동화되는걸 생각했는데 백제와 신라가 통수때리고 서로 연합을 한 것이다.

신라가 딱 하나 완벽하게 흡수한것이 가야인데 이는 김유신과 같은 가야출신 인물들을 적극 등용했고 완전히 신라의 일부로 만들었기때문에 후가야는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상 신라는 완전한 의미의 통일이라고 할 수 없다. 그냥 고구려와 백제를 정복한거지 민족적으로 하나로 만들었다는 의미는 아님. 그에 비해 고려는 수 많은 호족들을 포용했고 진정한 의미의 통일을 이루어낸것이다. 근데 고려 역시도 너무 무작위로 포용만하다보니 왕건 사후 왕실 개판나서 나라가 멸망직전까지 갔었는데 광종 이후 혼란이 수습되고 이후 중앙집권이 이루어진것. 진정한 의미의 통합은 사실상 광종 이후라고 보면 된다 ㅇㅇ

진짜로 개아까운 것이 가야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것 처럼 고구려, 백제 사람들도 포옹하고 그나라 왕족들 진골로 편입시킴으로써 호족들을 잠재우고 나라를 안정시켰으면 몇십~몇백년은 더 갔을 거고 잘하면 지금까지도 남아있을지도 모르잖아. ㄹㅇ 200 년 뒤 나라가 사분오열되어 결국 천년왕국을 눈앞에 두고 신라 망한 거 보면 매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신라에 정통성을 두는 것 자체가 발해 = 중국사를 인정하는 꼴이다. 일찌기 왕건이 왜 국호를 고구려.Jr이라는 뜻의 고려라고 정했는지 생각해보자. 신라똥물을 빼야만 정통성이 바로 선다는 걸 왕건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건부터도 이미 삼국시대의 정통성을 신라가 아닌 고구려에 둔 것이고 신라는 한낱 오랑캐로 분류했기 때문에 자기가 왕인 나라의 이름을 저렇게 정한 것이다. 왕건은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해서 고려라고 매일같이 떠벌이고 다녔다. 그러니까 삼국통일 관련해서 신라의 입장으로 보는 것 자체가 개소리다.

실제로도 신라는 평양 이북까지 진출해본 역사조차 없다. 평양은 시종일관 고구려 땅이었다가 발해로 넘어간 뒤 발해는 멸망햇는데 신라는 아직 살아있던 927~934년까지는 중국땅이었고 그 이후에 되찾은 땅이다.

ㄴ 이미 평양을 후삼국 극초기 궁예가 접수했는데 평양이 중국땅이라니 뭔 말같지 않은 소리여. 중국, 특히 한족계통 세력은 고구려 멸망 이후 제대로 요동 동쪽에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없고 발해를 멸망시킨 요나라조차도 한반도지역에 제대로 손 뻗친 적이 없다. 한국인들은 무슨 역사를 지나치게 국가위주로 생각하는 나머지 거기 우리나라 망했으니 남의 나라 땅 ㅇㅈㄹ 하니 신라 땅 아니었으니 중국땅 이런 개소리를 하는 거다.

상세[편집]

기원전 57년에 박혁거세가 사로국을 건국했다고 한다. 근데 실제로는 아무리 빨라도 기원후 2세기 후반을 사로국이 건립된 시기로 본다. 고고학 편년과도 모순되고 삼국사기 내에서도 기록의 모순점이 있기 때문.[1] 4대 임금인 탈해 이사금 시기부터 11대 조분 이사금 시기까지 거칠산국[2] 과 우시산국[3], 골벌국[4] 등 진한의 여러 국가들을 병합하여 영토국가로 발전했다.

박혁거세의 장남 천일창이 기원전 27년에 일본 혼슈로 건너 감.

사실 이때만해도 신라는 철기문화가 제대로 보급도 안되고 사실상 청동기시대나 다름없는 좆밥국가였다. 진한이랑 비교는 개뿔 가야한테도 상대조차 안되는 좆밥국가였다. 그 증거로 석탈해가 신라에 가기전에 먼저 가야에 상륙했었는데 김수로랑 일기토 찍다가 쳐발리고 쫒겨났는데 그 길로 만만한 신라로 가서 왕좌를 뺏었다. 현재 학계에서는 석탈해가 발달된 철기문화로 신라의 핵심 부족이 되었다는걸 인정하는데 당시 김수로의 가야 수준은 안되었다는게 정설 ㅇㅇ

이후 김알지로 대표되는 스키타이종족까지 합세하면서 신라는 그제서야 발달된 철기문화들을 흡수하고 나라같은 나라가 되어갔다.

박석김 셋이서 돌아가며 왕위를 잇다가 내물 마립간이 배신하고 박·석을 왕위에서 밀어낸다. 그래도 박씨는 왕비도 배출하고 막판가서 다시 한번 왕위를 차지하는 등, 귀족으로 남아있었다. 근데 석씨는 좆망해서 그딴 거 없다.

이차돈이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신공을 보여주고 불교를 받아들이게 하였고, 불심으로 대동단결 한 후에 덕만이 선덕여왕이 된다.

ㄴ여담이지만 이전까지 삼국사기서 비중이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뿐만 아니라 화랑세기라는 소설책에만 나오는 미실궁주였지만 MBC에서 창사48주년 기념으로 다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갓현정이 열연한 덕분에 비중이 대폭 상승..

부여 한민족 계열인 백제, 고구려가 싫어서 당나라 군대와 매국적으로 결탁하고 대동강 이북을 당나라에게 전부 내주기로 한다고 국뽕들이 난리치지만 당시에 과연 한민족이란 개념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래도 말이 아예 다른 쪽국이나 짱꼴국 보다는 가깝게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지들끼리 으쌰으쌰하는 경우가 많았지. 물론 그때그때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애초에 만주~한반도 북부서 놀던 예맥계열과 한반도 중부 남부에서 놀던 한계열이 서로 같은 언어를 썼다는 보장도 없다. 그나마 남은 언어자료를 보면 고구려 신라랑 수사가 전혀 다른데 이새끼들이 서로 같은 족속이라 여겼을까 의문.

ㄴ개소리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언어 통했다는 기록은 충분히 있고 애초에 한계열도 고구려, 백제보다 먼저 내려온 예맥계열이었음 현대 한국어 연구가 진행될수록 고구려어가 남긴 영향도 비중 커짐

백제, 고구려를 없앤 뒤 김춘추의 아들은 경주를 노리는 당나라를 줘 패서 대동강 위로 올려 보냈다.

혜공왕 이전까지는 나름 괜찮다가 혜공왕이 살해되고 막장 테크를 달렸고, 수많은 왕이 갈려나가다가 견훤과 궁예가 일어나서 신라를 갈라 먹고 궁예의 신하인 왕건이 왕이 되어 신라를 먹었다.


특히 환빠들이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이 '애신각라'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 자신들의 뿌리를 신라에 뒀기 때문에 신라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뜻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여느 환빠적 주장이 다 그렇듯 여기에 대한 제대로 된 근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혹시 여기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인간이 있으면 추가하라.

ㄴ 애신각라가 여진어로 '아이신기오로'다. 만주어를 한자로 번역할 때 '애신각라'라고 번역한거다. 이걸 가지고 신라를 애끼고 기억하라라고 망상한게 다다. 애초에 신라 애끼는데 조선을 두번이나 후드려패겠니? 그리고 여진성씨들 이런거 엄청많다. 이르건기오로, 수수기오로 등... 기오로가 겨레라는 뜻이다. 차라리 신라인 김함보가 여진 들어갔다는게 더 들을만하다. 애신각라좀 그만해라ㅠㅠ 또 신라는 아끼는데 왜 조선은 두드려팼는지 논리적 사고부탁

ㄴ 이게 왜 이해가 안되지? 니가 이순신장군을 존경하는데 그 후손이 너한테 막 깝죽거리고 지랄하면 존경하는 이순신장군 생각해서 참아야되냐? 신라 아끼는거랑 조선패는걸 연관시키는 놈이 세상에 존재할 줄이야;; 게다가 니 말대로 성이 그렇게 내려오는거지 걔들이 진심으로 신라를 애꼈겠냐 김씨면 집에 금이 많으시겠죠?

ㄴㄴ 청 초대시조는 《청실록》에 다 써놓았듯이 조선을 조상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칸의 연합정부마저 중국식 황제통치로 바꾼 2대 닭까끼 홍타이지가 정묘, 병자호란으로 조선 뚝배기를 곤죽이 되도록 깨부수고 조선 왕을 무릎 앞에 꿇린다^^

ㄴ 음차로 애신각라 말고 '애신각락(愛新覺落)'이라고도 표기했다.

어차피 진짜로 신라를 사랑한다고 쓴 거라고 해도 반갑지도 않다. 짱꼴라들은 그럼 신라도 자기들 역사라고 우길 듯하다.

그리고 화백회의라는 만장일치를 해야만 끝나는 회의가 있었는데, 이는 약 천 년 뒤 제4 공화국똥나무에서 부활한다.

사실 삼국 중 제일 이질적이다. 부여-고구려-백제는 지들끼리 연결 고리가 강하다. 사서나 야사 등에 부여에서 고구려 나오고 고구려에서 백제가 나오며 지들끼리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신라는 그딴 거 없다. 신라는 유일하게 부여가 아니라 고조선에서 나왔다고 삼국사기에 적혀 있고-정확히는 신라6촌의 주민들이 고조선 유민이라고 적혀있다-, 고고학적으로도 이 둘의 연관성이 유물로써 증명된다. 나중에는 아예 금석문에다 흉노족이 지들 조상이라고 뻥을 치기도 했다.

국력[편집]

고구려뽕, 백제뽕 맞은 애들은 신라 국력 상병신이라도 까지만 애초에 경상도 지방은 산이 많아서 방어하기 쉬운 땅인데다가 남쪽이라 생산성이 나쁜 땅이 아니다.

ㄴ 이건 신라뽕 맞은 놈의 논리로, 신라는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같은 존재일 뿐이다. 생산성은 생산성이고 그게 군사력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시종일관 고구려가 무서워서 벌벌 떨던 신라가 고구려를 이길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가 연개소문인데 연개소문 본인이 문제는 아니지만 연개소문의 아들들인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 이 형제들이 지들 밥그릇 싸움을 쳐 하느라 고구려를 말아먹어서 고구려는 완벽히 자멸했고 그렇게 신라가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일 뿐이다. 연남생이 666년 6월에 (다 6으로 통일돼서 날짜 외우기도 존나 쉽다.) 당나라에 항복한 시점에서 고구려는 사실상 멸망했다. 실제로도 그로부터 2년 남짓 이후인 668년 고구려는 멸망했다. 신라가 무슨 댄스를 춰도 상황은 달라질 게 없다. 연남생이 연남건과의 밥그릇싸움에서 쳐발렸다고 당나라에 항복한 순간 고구려는 멸망한거나 다름없다.신라와는 하등 상관 없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월드컵 우승한 팀의 멤버라고 해서 펠레에 견줄 수 있는 선수가 아니듯 말이다.

대신에 외진 곳에 있어서 중국과 교류하기 힘들고 왜구새끼들에게 털리기 쉽다. 이 새끼들이 유독 왜구한태 털렸다는 말이 많은데, 그건 얘네가 국력이 약해서라기 보다는 존나 신라 새끼들이 자초한 거다. 얘네는 백제하고 가야 중간에 껴서 왜로 가는 걸 존나 등쳐먹으면서 살았다. 덕분에 안그래도 중국 문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왜구 놈들은 존나 빡쳐서 신라 새끼들을 친거고.

ㄴ 수군이 약한 게 한몫했다. 실제로 수군을 대대적으로 개편한 지증왕 때부터 왜구의 침입이 사라진다.

더구나 나중엔 백제 뒤통수 때리고 한강유역을 빼앗아 당나라와 직통 보급선도 이었다. 한강이 어디인가? 삼국이 기를 쓰고 차지하려 들었던 요충지 오브 요충지 아닌가?

고구려는 땅크기만 크지 내실을 잘 따져보면 추운데다가 산악지대가 존나 많아서 똥땅이 대부분.

국력이 상병신인 새끼들이 당나라애들을 두들겨 패서 쫓아낼 수 있을 리가 있겠냐.

토번에서 난 일으키지 않았으면 신라는 바로 멸망이었다.

ㄴ 토번이 당나라 줘팸한 것은 나당전쟁이 끝난지 한참 이후의 이야기이다. 고로 상관없는 소리.

근데 그 잘난 고구려도 중국이 갈라져있지 않았으면 그렇게 크지도 못했다.

ㄴ그럼 분열하지 말든가. 누가 분열하래?

다른 건 모르겠고 이 새끼들 존나 통일 직전에는 의자왕한태 좆같이 처맞고 있었다. 이게 얼마나 심했으면 김춘추가 직접 고구려까지 가서 도와달라고 할 정도였다. 게다가 김춘추 사위 김품석이가 계백에게 머가리 썰렸다. 왕족의 사위를 배치했을 정도면 나름 자기네 나라에서는 존나 정예한 병력을 심었다는 소리다. 근데 털렸다. 이거 그냥 넘어가기 쉬운거지만, 엄현히 왕족이라고 볼 수 있는 놈이 도와달라고 갈 정도면 그 나라는 존나게 절실한거다. 그러므로 이 당시 신라는 백제보다 덩치만 컸지 존나 호구 새끼였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의자왕이 쩌는 놈이었거나.


다만 견훤, 궁예가 발호할 시기의 신라는 상병신 국력 맞다. 당장 견훤이 경애왕에게 저지른 능욕을 보자면 국력이라는 게 제대로 갖춰졌더라면 절대로 이 따위 치욕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병역[편집]

징병제이며 어렸을 때 일찌감치 군복무를 시키고 실전에 투입했다. 이를 화랑이라 한다.

화랑은 15살때 화랑이 되고 대충 5~10년 정도 화랑으로 있다가 자신이 몇 두품이냐에 따라 군인으로서의 계급을 달리한다.

  • 진골이나 성골은 아예 처음부터 소령으로 임관한다. 대장까지 진급이 가능하다.
  • 6두품은 소위로 임관한다. 진급 상한선은 대령.
  • 5두품은 준위로 임관한다. 진급 상한선은 소령.
  • 4두품은 상사로 임관한다. 진급 상한선은 원사.
  • 3두품은 하사로 임관한다.
  • 2두품은 병장으로 임관한다.
  • 1두품은 이등병으로 임관한다.

악질 통수[편집]

0. 왕족이 박, 석, 김 세 종류였는데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놈들이 통수 치고 김씨만 왕족 됨

1. 나제동맹 때 고구려의 남하로 백제가 땅끝 마을까지 밀려나자 SOS요청했는데, 쿨하게 씹다가 상황 종료 후 등장해서 출근 카드 찍고 퇴근함.

ㄴ 날조 좀 하지마라. 씹은 게 아니라 당시 개로왕의 명으로 문주가 신라에 구원을 요청했고, 나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성이 함락돼서 그냥 돌아간거다.[5]

2. 고구려 양원왕, 신라 진흥왕 시기의 나제동맹 때 백제와 고구려가 지금의 충청도 부근에서 전쟁을 벌였는데 신라는 보고만 있었다. 시간은 흘러 대치 상황 중 돌궐이 고구려의 뒤를 쳤고 그에 따라 고구려의 병력이 반 갈라진 틈을 타서 백제가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을 먹었다. 이때 신라가 병력을 이끌고 와서 백제는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시켜려는 줄 알고 환영했다. 하지만 신라는 백제를 쳐 한강 유역을 점령한다. 이 시기 지도가 흔히 교과서에 나오는 신라의 전성기 영토.

ㄴ 웃기는 얘기지만 백제 시조가 고구려 왕족이다.

ㄴ 근데 요새 학계에서는 신라가 한강을 무력으로 뺏은게 아니라 그냥 백제가 유지하지 못해 뱉어낸걸 줍줍했다고 보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

이렇게 통수를 치면 동맹이었던 백제는 당연히 빡칠 만하다. 빡친 백제는 신라에 앙심을 품고 무왕-의자왕 대에 이르러서 신라를 줘팬다. 이에 신라는 고구려에 동맹을 요청하고 고구려는 한강 일대(죽령)를 주면 동맹을 맺어주겠다고 한다. 그건 싫었던 신라는 짱깨들과 연합하러 간다.

3. 여제 연합군에게 탈탈 털릴 위기에 처하자 당나라가 고구려, 백제를 치면 지가 마치 엄청나게 도와줄 것처럼 호객 행위를 해놓고 막상 불러온 당나라가 백제 멸망시킬 때는 계백의 소수 부대와 게이 레슬링만 하다가 당나라가 백제 주력 격파하고 나서야 출근 카드 찍으러 나타남, 소정방 멘붕.

ㄴ 그래놓고 지랄하니까 김유신은 황산벌에서 고생했단 소리하면서 오히려 당당했다.

4. 당나라가 평양성에서 세가 빠지게 고생할 때 후방에서 근육 트레이닝만 하다가 평양성 문 열리니까 갑자기 난입해서 지 몫을 찾음.

ㄴ 날조 하지 마라 중뽕아 고구려 땡중이 몰래 문 열어줬는데 대개 성문 쪽이 정예이기 때문에 신라군 기병대를 출격시켜서 고기 방패로 쓰고 쓰레기통 속에 내던지려고 했는데 먹혔다.

5. 갑자기 당나라 황제의 약속을 지키라며 당나라 군대를 공격, 백제 땅 다 뺏어먹고 배째라 시작. 여제 동맹으로 쓸려나가게 생겼던 상황의 신라가 당나라를 상대로 멀쩡히 살아있던 백제의 영토 협상을 했다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데, 물 빠진 놈 건져놨더니 이놈이 보따리랑 팬티까지 다 벗어서 내놓으라고 하는 상황.

ㄴ 이 새끼는 그럼 당나라가 대동강 이남 한반도까지 다 처먹고 한민족이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했어야 한다는건가? 중국몽 꾸는 그재앙이나 할 법한 소리를 당당하게 지껄이네?

ㄴ위에 이 병신은 뭔 개소리냐? 애초에 그럴거면 외세를 끌어들이지 말았어야지ㅋㅋ당시 사회상으로도 저따구로 통수치면 국제적으로 소외되는건 당연한건데 중국몽 거리면서 결과론적으로 쳐보네ㅋㅋ

ㄴㄴ뭐지 이 대깨문조선족 새끼는? 애초에 협약 자체가 고구려는 당이 백제는 신라가 먹기로 한걸 당이 은근슬쩍 백제에 신라 본토까지 다 처먹을려하니 신라가 약속대로 백제 내놔 하면서 공격한건데 뭔 외세를 끌어들이고 어쩌구 쌉소리를 지껄이노?

더 자세한 통수 목록은 신라/통수 항목을 참조하자. 한반도 나라들 중에서 이렇게 밥 먹듯이 통수를 쳐본 다른 나라가 있었던가? 오직 천년 역사 갓-신라 뿐이다. 근데 이런 신라를 빨고 있다. 물론 고구려나 백제도 빨 나라는 못되지만.

냉정하게 보면 신라의 통수질은 빨아줄 만하다. 애당초 그 시대에는 삼국 간에 같은 민족이란 의식 자체가 없었고 그냥 지금 한중일처럼 완전 남이었는데 적절한 통수로 후발 주자에서 최후 승리자가 된 것은 현재 러시아-미국-중국-북한-일본 틈바구니에서 고통 받는 머한민국이 존나 본받아야 한다.

2020년 현재 학계에서는 신라 개상도 왕조 놈들이 백제 경기/충청도 왕조 놈들의 통수를 갈기고 한강을 차지했다는 설이 폐기수순을 밟고 그냥 백제가 중앙집권이 미약한 한계로 인해 스스로 한강유역에서 철군하고 신라가 집어먹었다는 설이 대세다. 실제로 백제는 한강유역을 점령해 놓고도 소리소문 없이 철군하는걸 역사 내내 반복해왔다.

ㄴ분명한건,이북 실향민들은 경상도에 집착을 한다.영남공화국의 뿌리는 이북 실향민이다.더군다나,강남 1대 부자집의 고향은 이북이다.특히,싸이의 아버지 고향은 평남 강서군 출신이다.실향민들은 무슨생각으로 경상도에 동화했다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했을까?

신분제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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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쓰레기는 쓰레기보다 더 쓰레기 같아서 쓰레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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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병신입니다.
그냥 개좆병신 그 자체입니다.
이 문서는 모든 걸 말아먹은 원흉에 대해 다룹니다.
이 한 사람 때문에 그동안 잘나갔던 것들이 한순간에 오염되었거나 폭망했습니다.
이게 신라 멸망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카스트 제도에 비견되는 골품제도가 있었다. 그나마 교과서에선 육두품까지 설명하지. 그나마 육두품 체계 안에 들어가는 놈들은 귀족이다. 나머지는 언급도 안 됨.

국뽕들은 부정하지만 헬조선의 정신적 시조는 이놈들이다. 그러나 신라가 유명하고 신라 골품제가 상세하게 기록이 전해져서 그렇지 학계에선 이런 카스트는 고구려 백제도 가지고 있었을 거라고 한다. 사실 고대왕조가 다 이렇지 뭐

  • 성골: 1급~2급 공무원, 사관학교. 왕족과 왕족 간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사람들. 왕밖에 안 한다. 김씨, 박씨, 석씨
  • 진골: 3급~5급 공무원, 육군3사관학교. 왕족과 6두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 여기까지는 모든 관직을 다 할 수가 있다. 김씨, 박씨, 석씨
  • 6두품: 6급 공무원, ROTC, 학사장교, 간부사관. 귀족 최상위 계층. 아찬까지 진급한다. 최씨
  • 5두품: 7급 공무원, 준위, 주임원사급 부사관. 대나마까지 진급한다.
  • 4두품: 8급 공무원, 상급 부사관. 조위로 임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신분으로 대사까지 진급한다.
  • 3두품: 9급 공무원, 하급 부사관. 상급평민이다.
  • 2두품: 병장. 중급평민이다.
  • 1두품: 이등병. 하급평민이다.
  • 0두품: 노예. 매매대상이다.

근데 사실 품이 있는 것만 해도 당시 기준으로는 최소 동수저다. 지방 사람들한테는 골품을 아예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1두품이라도 다른데 가면 제일 높은 사람이 된다. 물론 고구려, 백제의 신분 제도 역시 별로 다를 건 없었다.

중요한건 이 제도로 인해 신라 성장동력이 아작나고 진골들의 부패를 가속화하여 결국 신라를 단명시킨 개좆같은 원흉이기도 하다.

관직 제도[편집]

  • 특수관직
  • 왕: 대통령. 성골 전용 계급이다. 임관이 아니라 세습으로 얻는 계급이다.성골이 씨가 마르면 진골이 할수있다.
  • 태대각간: 대원수. 오직 김유신 한명에게만 주려고 일부러 만든 계급이다.
  • 대각간: 원수. 김유신, 김춘추 등 뭔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진골도 여기까지 진급하지 못한다.
  • 자색 제복
  • 이벌찬: 차수. 김유신, 김춘추같은 거물진골이 아닌 그냥진골의 진급상한선이다.
  • 이찬: 상급 대장.
  • 잡찬: 대장.
  • 파진찬: 상장.
  • 대아찬: 중장.
  • 비색 제복
  • 청색 제복
  • 대나마: 상령. 5두품의 진급상한선이다.
  • 나마: 중령.
  • 황색 제복
  • 대사: 소령. 4두품의 진급상한선이다.
  • 사지: 상급 대위.
  • 길사: 대위.
  • 대오: 상위.
  • 소오: 중위.
  • 조위: 소위. 임관하면 제일 먼저 다는 계급이다. 문제는 호칭 및 서열인데 진골 출신 조위한테 6두품 출신 아찬과 5두품 출신 대나마와 4두품 출신 대사 모두가 존칭을 쓰지만 진골 출신 조위는 이들 모두에게 반말을 한다. 관직은 닥치고 골품이라서 계급은 같은 골품끼리만 서열이지 다른 골품을 상대로는 장식이었다.

제과점[편집]

명과를 잘 만든다. 명과 중에 크림빵이 맛있다. 튀김 소보루 빵이 유명하지만 튀긴 후 바로 먹지 않으면 누져서 맛 하나도 없으니 주의하자.

한국과의 관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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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한다, 병신아."

존나 많다. 다만 한반도 전체는 아니고 경상도 한정으로 니들이 쓰는 언어가 아니라 말도 대부분 신라쪽 계열의 말이고 (특히 경상도가)

대구경북 지방에 조온나게~ 유적이나 문화유산이 많고

삼국이 통일 될때에 한민족의 의식이 형성되기도 했고 하여간에 니들의 조상은 백제 고구려가 아니라 신라인것만 알면된다

ㄴ캬 갓짱개의 헛소리에 부우랄이 저절로 탁쳐집니다

ㄴ어디서 약을파노. 고구려랑 백제유민은 뭐 하늘로 증발했냐? 신라도 고구려 백제 유민 녹여낼려고 노력해도 안되서 나중에 후삼국생길정도였는데 무슨 대한민국 조상이 신라만 되냐? 어거지도 정도껏 해야지 병신새꺄 민족의식이라는게 정복당하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건줄아냐?

ㄴㄴ 구서당(九誓幢)의 1은 녹금서당(綠衿誓幢)으로 진평왕 5년(서기 583)에 처음으로 두어 서당으로만 부르다가 35년에 녹금서당으로 고쳤는데 금의 색깔은 녹자색이다. 2는 자금서당(紫衿誓幢)으로 진평왕 47년(서기 625)에 처음으로 낭당을 두었다가 문무왕 17년(서기 677)에 자금서당으로 고쳤는데 금의 색깔은 자녹색이다. 3은 백금서당(白衿誓幢)으로 문무왕 12년에 백제 사람으로 당을 만들었는데 금의 색깔은 백청색이다. 4는 비금서당(緋衿誓幢)으로 문무왕 12년(서기 672)에 처음으로 장창당(長槍幢)을 두었다가 효소왕 2년(서기 693)에 비금서당으로 개칭한 것이다.

5는 황금서당(黃衿誓幢)으로 신문왕 3년(서기 683)에 고구려 사람으로 당을 만들었는데 금의 색깔은 황적색이다. 6은 흑금서당(黑衿誓幢)으로 신문왕 3년에 말갈국 사람으로 당을 만들었는데 금의 색깔은 흑적색이다. 7은 벽금서당(碧衿誓幢)으로 신문왕 6년(서기 686)에 보덕성(報德城) 사람으로 당을 만들었는데 금의 색깔은 벽황색이다. 8은 적금서당(赤衿誓幢)으로 신문왕 6년에 역시 보덕성 사람으로 당을 만들었는데 금의 색깔은 적흑색이다. 9는 청금서당(靑衿誓幢)으로 신문왕 7년(서기 687)에 백제의 남은 백성으로 당을 만들었는데 금의 색깔은 청백색이다.

九誓幢 一曰綠衿誓幢 眞平王五年始置 但名誓幢 三十五年 改爲綠衿誓幢 衿色綠紫 二曰紫衿誓幢 眞平王四十七年 始置郞幢 文武王十七年 改爲紫衿誓幢 衿色紫綠 三曰白衿誓幢 文武王十二年 以百濟民爲幢 衿色白靑 四曰緋衿誓幢 文武王十二年 始置長槍幢 孝昭王二年 改爲緋衿誓幢 五曰黃衿誓幢 神文王三年 以高句麗民爲幢 衿色黃赤 六曰黑衿誓幢 神文王三年 以靺鞨國民爲幢 衿色黑赤 七曰碧衿誓幢 神文王六年 以報德城民爲幢 衿色碧黃 八曰赤衿誓幢 神文王六年 又以報德城民爲幢 衿色赤黑 九曰靑衿誓幢 神文王七年 以百濟殘民爲幢 衿色靑白

삼국사기 잡지 신라 무관 3에 나와있는 통일신라의 부대인 9서당에 대한 기록이다. 9서당 중 5개를 고구려(나 보덕국)나 백제의 유민으로 채웠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중앙군이긴 하지만 한국인 조상이 전부 고구려나 백제랑 무관한 신라인이면 어떻게 백제인과 고구려인으로 중앙군을 채울 수 있지? 이거부터 설명해봐라.

고려때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면서 하나라는 민족의식이 생긴거지 통일신라때까지도 하나라는 민족의식은 없었다. 굳이 민족의식을 따지자면 삼한->고려->조선으로 따져야지

ㄴ는 개소리고. 왕건부터가 고구려 계승한다는 생각으로 고구려 이름 그대로 가져와서 고려라고 지었다.

디시위키에 정말 역알못급식충새끼들 바글바글하네

ㄴㄴ 뭔 개솔 릴베식 날조보소. 신라가 고구려 백제 통수치고 흡수한 후 신라 내부 고구려 백제 신라 인구는 1:1:1 정도였음. 베츙이이들은 과거 신라 통수를 하기 위해 고구려 백제가 서로 이민족 취급했다느니 신라가 정통이라 한국과 관계가 없다느니 하는 날조를 일삼는데 전형적인 베츙이들의 주장이므로 주의하도록 하자. 이새끼들 뇌에선 고려가 재통일한게 포멧되어있음. 어지간히도 통수친게 부끄럽긴 한가봄.

ㄴ 신라내에 고구려 인구가 그 정도였으먼 당나라에 붙잡혀간 고구려인이랑 발해에 남은 고구려아 설명이 안된다 역알못

ㄴ역알못 새끼가 뭐라 끄적여 놧는데 나제동맹을 깬건 백제 성왕이다. 나제동맹 붕괴의 원인은 신라가 옛백제 영토던 한강유역을 먹어버린거지만 기습적으로 공격해서 통수를 친건 백제란 뜻이다. 스타로 비유하자면 자기가 뺏긴 멀티를 동맹이 먹었다고 동맹풀고 공격한거다 누가 잘못한건지는 알아서 판단하시길

ㄴ이새끼는 디시위키 신라 통수란만 돌아다니면서 백제성왕 선빵론 존나 유포하고 다니는데, 주장을 하려면 근거 제시를 같이 해야지. 백제성왕이 선빵 날렸다는 사료는 니가 묵어버렸어?

ㄴㄴ역알못은 니놈인거 같은데 어디서 역사날조하노? 신라 진흥왕이 통수의 귀재였단거는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인데 진흥왕은 통수군주에다가 정복군주였다. 진흥왕 순수비 모르노? 이때 성왕이 한강하류 통수로 뺏기고 뒷목잡았지 나제동맹의 요지는 백제는 한강하류를 신라가 한강상류 각자 공격해서 고구려 땅따먹기 하는거였다 얼빠진놈아 진흥왕이 중국과 직접교류 욕심내서 한강하류 통수치고 묵어버린거지

어디가서 백제성왕 선빵론 주장하고 다니면 졸라 무식하다는 소리 듣는다 멍청아

ㄴ 근데 한가지 알아야될게 당시에 신라랑 백제 연합군에 군통솔권은 백제가 쥐고 있었고 안라랑 합의해서 왜에 병사도 요청했었다.분명 신라가 먼저 통수친 건 사실인데 사실 신라가 선빵 안 갈겼으면 백제가 그냥 입 싹닦고 한강 유역 먹었을 확률이 크다.

ㄴ한강 먹기 전에도 백제 도살성 따먹은 게 진흥왕 ㅇㅇ

ㄴ실제 학계에서도 적어도 신라의 한강하류 무력점령설은 사장되는 추세임. 일단 한강하류 무력병합을 근거하는 문헌사료 자체가 아예 없다

ㄴ성왕이 뒷목을 잡았다는 것도 뇌피셜. 실제 기록으로는 오히려 한강하류 점령 이후에 신라에 공주를 시집 보낸다ㅇㅇ신라가 통수치고 한강 하류를 공격하여 뺏었다는 '썰'의 유일한 근거는 그냥 "나중에 관산성 전투 일어나서 둘이 싸웠자나 근데 이건 혹시 어쩌면 신라가 예전에 한강하류를 무력으로 점령했기 때문에 백제가 보복한거 아닐까"라는 거의 뇌피셜 수준의 근거라서 학계에서 사장되는 추세다. 실제로는 신라의 한강하류 무력병합설을 지지하는 구체적인 문헌근거가 없기 때문에 관산성 전투는 정말로 백제가 한강 하류를 빼앗긴 복수를 시도한건지, 아님 그냥 신라가 당시 급격한 세대교체와 권력공백으로 약해보이니 공격한건지 모름 ㅇㅇ

이 병신같은 신라라는 통수킹 나라를 멸망시키지 않은 게 광개토대왕의 유일한 잘못이자 중대한 범죄행위이다. 광개토대왕 시절에는 신라가 신라 역사상 견훤의 장난감이던 말기에 이어 두번째로 약하던 시기라 백제와 왜국에게 돌림빵 강간당하고 살았는데 광개토대왕이 그런 신라를 백제, 왜와 연합해서 아예 멸망시켰으면 ㅆㅅㅌㅊ였고 가만 냅둬조 ㅍㅌㅊ였는데 신라를 구해준 게 완벽한 ㅆㅎㅌㅊ이다. 광개토대왕이 욕 안먹을거 같지만 욕을 더럽게 들어쳐먹고 있는데 신라의 옥숨이 끊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은게 광개토대왕이 욕을 들어쳐먹는 이유다.

ㄴ안한게 아니라 못한거다. 장기적으로 지배할 역량은 없었다는 뜻. 고구려의 전선은 한반도 남부만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

애초에 신라가 통수로 한반도 남부의 패권을 틀어쥔건 1000년도 더 전의 일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실로만 받아들여야 하는데 애미뒤진 통궈들은 그게 안되나 보다. 맨날 홍어통수 라고 해대는 통궈입장에선 지역적 기반이되는 경상도 신라의 역사가 통수의 반복이라는 역사라는게 어지간히 창피한긴 한가본데 말도 안되는 역사날조는 하지 말자.

ㄴ아무리 봐도 그냥 역사에 흔하디 흔한 일들, 전형적인 국가발전과정 가지고 통수통수 거리는 놈들이야말로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정이입 씨게 하는 걸로 보이는데?

뭐 아무튼 신라'만'이 대한민국의 조상이라는 애미뒤진 주장을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내다버리는 짓이나 마찬가지다.

애초에 대한이라는 이름도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세 개의 작은 한(소한)의 정통성을 합쳐 큰 한(대한)이라고 부른다는 의미다. 즉 쉽게 말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부터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정통성을 모두 잇는다는 의미이다. 신라만이 우리 조상이라는 건 한국 국호부터 잘못됐다는 미친 개소리이니 유념하자.

ㄴㄴ 근데 계승국은 아니긴 한데... 구 신라계 귀족들이 고려와 조선초까지 존나게 힘이 쎈 편이기는 했다. 묘청 땡중놈이나 정지상 정리한 김부식만 봐도...

문화는 신라가 헬조선을 압살하는 수준이다.

신라는 금속공예 ㅆㅅㅌㅊ에다 문화검열? 그런 오랑캐 야만족들 정책을 할 리가 없지. 근데 야만국가 헬조선은 급격한 근대화의 악영향으로 인해 문화가 헬적화 되어 기수제, 문화검열 같은 근대의 야만적인 제도가 남아있다.

이상한 점[편집]

후손들에게 그렇게나 욕을 바가지로 들어먹는 나라가 신라이다. 궁예는 사실 신라의 왕자 출신인데 신라를 멸망시키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견훤도 신라인인데 후백제왕 해먹고 신라에 쳐들어가 귀족들 다 찢어죽이고 왕은 할복시킴.

김유신직계후손들도 김유신 개씹새끼 하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신라의 주요인물 직계후손들도 되려 고구려 만세 백제 만세 신라 개새끼 이런 경우가 있다.

박혁거세의 직계후손이 김유신 무덤 꼭대기에 오줌을 싸고 침을 뱉었다. 그게 1993년의 일이다.

ㄴ 당장 궁예부터 신라 진골로 태어났음에도 신라를 멸망시키려고 그렇게나 발악했었다. 물론 똑같이 신라를 멸망시키려 했어도 몰살을 하려 했던 궁예견훤은 끝이 영 좋지 않았지만 흡수를 하려 했던 왕건이 후삼국의 진정한 주인이 되긴 했다.

이렇게 보면 김유신은 원균만 못한 새끼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원균은 그 후손들만이라도 존나 빨고 자빠졌는데.

ㄴ 근데 깂윲씺이라고 웞귮보다 나을 것도 없다. 지는 계백 상대로 그렇게 고전한 주제에 아들 김원술이 싸움에서 졌다고 호적에서 파버렸다. 게다가 깂춦춦와의 촌수는 뭐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문서제목이 이상한 점이라 되어있지만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신생왕조에게 있어서 전왕조는 대체로 부담스러운 존재인지라 다른 왕조로부터 권위를 빌려오는건 자주 확인되는 사례. 조선은 아예 고려왕족들 모조리 떼몰살 시켜 버렸느데 한국사상 이것보다 더한 전대왕조 박대가 또 있냐? 조선도 지금 대한민국 대중들에게 허구한날 개좆병신 씹쓰레기 나라라 욕먹는데?

전쟁[편집]

신라는 300년 동안 연속으로 전쟁을 했었다..무려 총174회..

당나라와의 관계[편집]

당시 세계 최강인 당나라 고종이 30만 대군을 이끈 소정방에게 신라를 정복하지 못한 이유를 묻자 소정방이

신라는 인군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여 신하는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기를 부형과 같이 하니 비록 작지만 도모할 수 없습니다

 
— 소정방 卷83 列傳第33

676년 11월에 금강 하구의 기벌포(伎伐浦) 전투에서 당군을 궤멸시키고 마침내 통일을 이룬 김유신과 무열왕 김춘추의 통일대업

토번의 준동때문에 신라가 어거지로 나당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개소리를 하는 일제시대 일본학자 or 중국몽 훠재앙 같은 놈들이 있는데, 애초에 토번과의 분쟁이 본격화된건 나당전쟁 이후다. 신라가 자체적으로 승리한것이 맞다.게다가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도 힘을 보탰으니,이길만한 전투였다.

야마토와의 관계[편집]

신라와 야마토는(은) 사실 서로에게 깊은 사랑을 품고 있습니다!
신라와 야마토는(은) 사실상 서로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존나 싫어한다면서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싫어하면 관심을 주지 마 병신들아 ㅉㅉ
"신라와 야마토는(은) 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서로을(를) 사랑하면서 왜 본심을 숨기는 것일까?"

앙숙이라고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사신교환도 많았고 교류도 잦았다.

ㄴ교환과 교류도 많다해서,우호관계였을까?그렇게 따지면,신라와 백제 관계는 우호관계였다!

천무천황은 30년 동안 중국 당나라와의 국교를 단절하고 신라하고만 우호적 중립을 지켜 대규모 사절단을 교환했다. 천무천황은 일본에서 쿠데타로 집권할 때 신라 도래인의 지원을 받았었다. 는 형식 겉으로였고 사실은 일방적으로 쳐받기만 했다

ㄴ장난하냐?천무천황은 백강전투에 백제에 파병을 보냈는데?이거 작성한 새끼는 신천지 생활 몇년째인지 궁금하다.

일본 사서에서는 신라 해적들을 신라구라고 부르며 신라구가 열도에 침입해 일본 사람들 죽이고 재산 털어가면서 일본이 받은 피해에 대해 아주 사람들이 치를 떠는 모습이 나온다. 신라 사기꾼이 일본에 가서 사기친 기록도 있고 박제상 설화도 까놓고 말해서 정식 외교루트를 통해 인질로 간 사람을 무단으로 데려간 사건이다. 박제상의 충성심 뿐만 아니라 신라의 외교적 양아치짓도 부각되는 사건인데 한국 역사책에선 전자만 얘기한다. ㅋ 교과서에 보면 신라가 일본에 가르친 것으로 조선술, 축제술이 나오는데 여기에 해적질과 통수, 배신, 근친도 추가해야 마땅함.

ㄴ일본 교과서에 왜구들의 역사도 기록하면 그렇게 하도록하자. 왜구들은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뽈뽈뽈 기어들어와서 해적질했는데 왜구 분탕부터 추가하자. 일본 텐노도 백제 후손인것도 추가하고

ㄴ 있던 건 사실이지만 그냥 한국도 우리 약탈했어요 ㅠㅠ 이 지랄하려고 적어놓은거다 지들이 왜구질 해댄거 피장파장하는 거임

ㄴ분명한건,신라와 야마토의 관계는 적대관계다.우호관계는 아예없다.

진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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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에 가서는 걍 견훤빵셔틀로 전락하고 만다. 견훤은 신라를 그야말로 맘대로 갖고 놀았다. 포석정에서 쳐 놀고 있던 경애왕을 견훤이 몽둥이로 맘대로 패죽이고 왕비와 후궁들은 견훤과 그 똘마니들의 육변기[6] 가 됐는데도 신라 문무백관들은 찍소리조차 못했다. 견훤은 경애왕을 패죽여놓고 경순왕을 지맘대로 즉위시켰는데 이 경순왕이 신라의 마지막 왕이다.

ㄴ근데 이때의 패악질이 오히려 견훤의 패착이었다. 이 패악질 덕분에 누가 이길까 열심히 간보던 호족들이 경악하며 대거 왕건편으로 붙어버렸기 때문에 고창전투에서 왕건이 다시 견훤을 찌바르고 주도권을 탈환했으며 최후의 전투인 일리천 전투때는 아예 이때 왕건한테 붙은 대호족 한명이 통크게 1만 병력을 내놓을 정도였다.

견훤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신라는 결국 왕건에게 제발로 스스로 찾아가서 무릎꿇고 빌며 왕건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항복한다. 신라는 이렇게 멸망했다.

참 긴장감 없는 결말이다. 이건 드라마에서 뭐 어떻게 미화하냐?

ㄴ고구려는 그재앙 같은 중국몽 매국노 새끼가 아예 평양성 성문을 활짝 열어줘서 멸망했는데 이건 간지나는 멸망인가 보지?

ㄴ마의태자가 있자나

ㄴ경주 먹히기전에 합천군(대야성)에서 20만 대군으로 견훤군 수차례 막았다고, 저걸 지금 북괴가 서울먹고 ㄹ혜한테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경주에 약탈,살해해서 《삼국사기》에 경주시민들 발에 부스터 달고 산과 벌판으로 불나게 튀나갔다고 한다,

ㄴ 20만 대군 같은 소리하네. 훨씬 후대인 조선도 임진왜란 당시 총병력이 20만이 안 되었다. 임진왜란때 왜군이 16만도 안되는 병력(158,700명)으로 온 조선을 들쑤시고 다녔는데 20만 있었으면 그런 꼴 당했겠냐? 웃기는 소리지. 아니, 애초에 20만 대군 있었으면 고려고 후백제고 나발이고 다 박살내고 중국 쳐들어가도 되겠다. 후백제랑 고려가 투닥투닥 할 때 얘네들 고작 몇만이었어. 그런데 신라가 20만 대군 같은 소리하네. 대야성에 병력 고작 수천 있었다. 물론 그걸로 후백제 공격을 수십년 동안이나 잘 막아내다가 결국 뚫렸지.

근데 어차피 고려가 다른 이민족도 아니고 같은 민족인데 이기지도 못할 거 싸워서 괜한 사람 죽는 것 보다는 왕관을 바치고 항복하는 게 백성들 입장에서도 더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ㄴㄴ 고려 태조가 일리천 전투에 동원한 병력이 사료에 따라 다르지만 대충 10만인데 지방 대부분의 통제권을 잃고 경상도 일대로 축소된 신라에서 20만을 징집했다? 군사들을 무슨 흙으로 찍어냈냐?

아 그리고 신라가 997년역사를 자랑하는데 3년버텼으면 1000채움 ㄴ992년이다. 역알못아.

흉노와의 관계[편집]

주의! 이 글이 다루는 대상은 존나 미스터리합니다.
씨ㅡ발 뭐가 뭔지 몰?루겟소요. 무섭습니다. ㅠㅠ
내가 누구냐고? 알 필요 없다.
이 문서에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나 알 필요 없는 것에 대해 다룹니다.
이 비밀을 함부로 까발리다간 있으니 신중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질문은 그만!

많은 사람들이 경상도를 비하할 때 흉노놈들이라고 하기도 하고 누구는 완전 근거 없는 일베드립이라고 하는데 신라 흉노설이 완전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지만 충분히 근거가 있다.

1. 흉노가 한무제에게 격파당하고 와해당할 당시 동진한 부류가 지금의 신라 땅에 정착했다. 꼭 이 때가 아니더라도 흉노가 선우 자리를 두고 분열한 때가 기원전 60년 정도니까 이때부터 일부가 천천히 한반도 남부로 이주했다고 해도 충분히 시간대가 맞는다.

1-1. 이주 당시 고구려나 부여 등의 세력이 있었다고 해도 이들은 유목민족이었고 당시엔 세력도 작았기 때문에 국경이나 가도를 일일이 통제할 만한 힘이 없었다. 당장 후기 고구려나 발해의 국경선조차도 "거기에 국경수비대가 주둔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힘이 거기까지 미쳤다."는 의미로 인식되고 있으니까.

1-2. 신라 유적지에서 왕망의 신나라에서 사용한 화천이 출토된다. 이것은 바다로던 육지로던 중국과 한반도가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투후 김일제는 흉노인이고 왕망의 외척이다. 당장 삼국사기만 봐도 중국에서 국내가 혼란할 때마다 많은 인구가 한반도 남부로 이주했다고 하는데 기록이 없을 뿐. 한무제 집권 당시 김일제가 이끄는 흉노 집단이 한반도로 이주했을 가능성은 엄청 크다.

2. 신라 문무왕 비문에 투후 김일제(흉노인)의 7대손. 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신라 지배층이 박씨로 시작하긴 했어도 김씨가 주류를 이룬 신라. 이들이 투후 김일제의 후손임을 자처하며 김씨를 성으로 썼다기보다 김일제의 후손이기 때문에 김씨를 물려받아갔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2-1. 경주 김씨가 흉노족이라는 설이 있다. 왜냐하면 위의 김일제 사건도 있지만 김일제뿐만 아니라 투후 김일제 후손들과 일부 왕족와 신라인들이 자신들을 흉노의 후예라고 밝힌적이 있었다.

3. 이게 핵심인데, 신라의 문화가 흉노와 엄청나게 유사하다. 신라. 그것도 경주에서만 발견되는 지배층의 돌무지덧널무덤이 남시베리아, 중국 북부, 몽골, 카자흐스탄 지역에서 발견되는 적석목곽분 양식인건 두 말 하면 입 아프다.

3-1. 신라엔 고구려, 백제에 없는 금관이 발달했다. 이걸 교과서에선 신라엔 금 문화가 발달했다고만 하지만, 같은 문화를 공유한 고구려, 백제, 일본은 신라만큼 광적으로 금을 좋아하고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금 숭배는 초원 유목민족의 특징이기 때문. 흉노의 유물에도 금 귀걸이, 금 허리띠 장식등의 금 세공 유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금 문화가 유독 삼국중 신라만 이유 없이 발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ㄴ고구려도 금관 있고 금귀고리도 고구려 백제 신라 다 있었고 백제 금동대향로나 고구려 삼족오 문양도 금유물에서 나온건데 뭔소리임?

ㄴ어차피 신라나 흉노 모두 자기 역사 기록에는 노관심이라 어쩌면 신라의 교류 과정에서 금을 세공한거 아닐까하는 생각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진실은 저 너머에 있기때문에 이것에 관한 이유는 알바 없음이다.

3-2. 흉노의 근거지인 오르도스에서 발견된 청동 솥(동복)이 김해에서 발견된 청동 솥과 동일하게 생겼다. 진짜 비슷도 아니고 똑같이 생겼다.

4. 한국인과 흉노의 유전적 공통점이 없다고 하는데 앞서 말한 무덤들을 생각하면 어느정도 각이 나온다. "경주"에 살았던 "김씨"들만 적석목곽분 무덤을 가졌던 것은 일부 지배층만 흉노의 풍습과 문화를 유지하며 살았고 지금까지 2천년이란 시간이 흐르며 유전자가 희석됐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5. 신라 왕족의 무덤에서 신라에서 보기 드문 이국적인 검이 발굴되었는데 이 검이 동유럽에 있는 국가인 불가리아의 지방 유물이었다고 한다. 근데 어떻게 당시 신라와 불가리아 지방하고 교류하고 있었고 또 두 곳을 서로 왔다 갔다할수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진게 없다.

5-1 신라인의 DNA가 스키타이와 동일하게 되어있어서 신라와 스키타이가 같은 민족이라는 설이 있는데 실제로 흉노와 스키타이가 활동했던 문화권이 어디인지 생각해보면 대략 아예 상관이 없다고 보기엔 증거가 너무 명확해 보인다.

ㄴ근데 그렇다면 신라인들은 몽골계나 튀르크계가 아닌 이란계 유목민족였다는 거 아니냐 ~

흉노 문서에 카더라 식으로 적혀져 있길래 정리해봤다.

전형적인 경상도 우월 주의자들의 망상헛소리임 위에 죄다 개소리고 저걸로 무슨 아틸라의 후예니 경상도인은 위대한 흉노의 후에니 어쩌니 하면서 심지어 금나라 청나라도 신라 후손이라고 자위함

현실은 흉노는 중국 여러 유목민족중에서 허접함 중국 본토 제대로 먹어본적도 없고 통일후 정신 없던 유방이나 애먹었지 나중에 위청 곽거병에게 두둘겨 맞고 사라짐.

흉노 훈족 신라 금나라 청나라 이렇게 연결시켜서 자위하는게 바로 경상도 인들이고 이게 꽤나 심각한게 경상도에서는 역사 선생도 이걸 진짜인양 가르침. 대표적으로 저런거에 심취한 교수 지식인들이 수두룩함. 경상도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조갑제 기자가 대표적인 사람임 답없는 사람들 신라가 우월하려고 강조하려면 신라를 자랑하는게 아니라 다른 민족 거짓으로 끌여들여서 우리 후손들이다 우리 형제 민족이다 하면서 자위 하는 전형적인 뇌내 망상

반론: 전형적인 고고학 자료의 오독이다. 신라의 금 관련 유물의 편년은 빨라봐야 5세기 초 정도이며, 그 전엔 장신구로 구슬을 선호했다. (신라에서 처음으로 금을 선호하게 된 시기는 광개토대왕이 신라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내물이사금 시기로 본다. 신라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으면서 금을 선호하는 문화가 생겨났다는 것.) 그리고 김일제가 살았을 시기 신라 및 진변한 시대의 유물은 흉노의 영향은 전무하고, 고조선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특히 청동기나 목관묘에서. 적석목곽묘의 경우, 그냥 삼한시대의 목관묘가 시대가 바뀌면서 목곽묘-적석목곽묘 순으로 변화한 것으로 본다. 즉, 외부의 영향으로 발생한 묘제가 아니라 삼한시대의 묘제가 자체발전한 묘제란 것이다. 그리고 그 유목민 계열의 유물들은 그냥 교류의 흔적으로 본다. 왜냐면 무덤에서 신라지역 토착유물도 같이 나오거든.

애초에 흉노는 기껏해야 몽골계나 튀르크계로 추정되는 정도인데, 그 추정되는 민족들과 비교해봐도 한민족이 몽골족이나 튀르크인하고 유전적으로 가깝지도 않다.

ㄴ 경상도에 무쌍커풀 + 통뼈 유명인들 많은걸 보면 신라가야는 몽골족인건 확실함. (강호동, 이만기, 김민경, 김제동, 전두환, 노무현, 김영희 등)

ㄴㄴ 한국인, 일본인은 원래 모두 몽골계와 유사하다. 흉노는 기본적으로 튀르크계다. 하지만 한국인 및 일본인에게서 튀르크계와 유사한 특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왕사[편집]


신라의 국왕 목록
박씨 왕조 석씨 왕조 박씨 왕조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혁거세 거서간 박혁거세
(기원전 57년~4년)
남해 차차웅 박남해
(4년~24년)
유리 이사금 박유리
(24년~57년)
탈해 석탈해
(57년~80년)
파사 박파사
(80년~112년)
박씨 왕조 석씨 왕조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지마 이사금 박지마
(112년~134년)
일성 이사금 박일성
(134년~154년)
아달라 이사금 박아달라
(154년~184년)
벌휴 이사금 석벌휴
(184년~196년)
내해 이사금 석내해
(196년~230년)
석씨 왕조 김씨 왕조 석씨 왕조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조분 이사금 석조분
(230년~247년)
첨해 이사금 석첨해
(247년~261년)
미추 이사금 김미추
(261년~284년)
유례 이사금 석유례
(284년~298년)
기림 이사금 석기림
(298년~310년)
석씨 왕조 김씨 왕조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흘해 이사금 석흘해
(310년~356년)
내물 마립간 김내물
(356년~402년)
실성 마립간 김실성
(402년~417년)
눌지 마립간 김눌지
(417년~458년)
자비 마립간 김자비
(458년~479년)
김씨 왕조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소지 마립간 김소지
(479년~500년)
지증왕 김지대로
(500년~514년)
법흥왕 김원종
(514년~540년)
진흥왕 김삼맥종
(540년~576년)
진지왕 김사륜
(576년~579년)
김씨 왕조
제26대 제27대 제28대 제29대 제30대
진평왕 김백정
(579년~632년)
선덕여왕 김덕만
(632년~647년)
진덕여왕 김승만
(647년~654년)
무열왕 김춘추
(654년~661년)
문무왕 김법민
(661년~681년)
김씨 왕조
제31대 제32대 제33대 제34대 제35대
신문왕 김정명
(681년~692년)
효소왕 김이홍
(692년~702년)
성덕왕 김흥광
(702년~737년)
효성왕 김승경
(737년~742년)
경덕왕 김헌영
(742년~765년)
김씨 왕조
제36대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혜공왕 김건운
(765년~780년)
선덕왕 김양상
(780년~785년)
원성왕 김경신
(785년~798년)
소성왕 김준옹
(798년~800년)
애장왕 김중희
(800년~809년)
김씨 왕조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제45대
헌덕왕 김언승
(809년~826년)
흥덕왕 김경휘
(826년~836년)
희강왕 김제륭
(836년~838년)
민애왕 김명
(838년~839년)
신무왕 김우징
(839년)
김씨 왕조
제46대 제47대 제48대 제49대 제50대
문성왕 김경응
(839년~857년)
헌안왕 김의정
(857년~861년)
경문왕 김응렴
(861년~875년)
헌강왕 김정
(875년~886년)
정강왕 김황
(886년~887년)
김씨 왕조 박씨 왕조
제51대 제52대 제53대 제54대 제55대
진성여왕 김만
(887년~897년)
효공왕 김요
(897년~912년)
신덕왕 박경휘
(912년~917년)
경명왕 박승영
(917년~924년)
경애왕 박위응
(924년~927년)
김씨 왕조
제56대
경순왕 김부
(927년~9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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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 고조선 · 부여 · 삼국시대(고구려 · 백제 · 신라) · 발해
일본 고대사 선사 시대 조몬 시대 · 야요이 시대(야마타이국) · 고훈 시대
야마토 정권 고훈 시대 · 아스카 시대(쇼토쿠 태자 · 견당사) · 다이카 개신
나라 시대 헤이조쿄 · 견당사 · 율령제 · 도다이지 · 고사기 · 일본서기 · 만요슈
헤이안 시대 헤이안쿄 · 사무라이 · 국풍 문화 · 가나 · 와카
송원시대 송(宋)
역사 5대 10국 시대(후량 · 후당 · 후진 · 후한 · 후주) · 조광윤 · 전시 제도 · 신법(왕안석 vs 사마광) · 남송(임안 · 몽골-남송 전쟁)
경제, 사회, 문화 용골차 · 모내기 · 참파 벼 · 교자 · 시박사 · 사대부 · 주자(성리학 · 화이론) · 자치통감(사마광) · 나침반 · 화약 · 청명상하도
정복 왕조
요(遼) 거란 · 야율아보기 · 전연의 맹 · 북면관제와 남면관제 · 거란 문자
서하(西夏) 탕구트족 · 서하 문자
금(金) 여진 · 정강의 변 · 중도 · 여진 문자 · 맹안·모극제
몽골 제국·원(元)
역사 칭기즈 칸(천호제) · 쿠빌라이 칸(대도 · 원나라 · 몽골-남송 전쟁 ·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 · 홍건적의 난
경제, 사회, 문화 색목인 · 교초 · 역참 · 원곡 · 티베트 불교 · 파스파 문자 · 수시력 · 마르코 폴로 · 이븐 바투타
명청시대 명(明) 홍무제(어린도책 · 부역황책 · 이갑제 · 육유) · 영락제(자금성 · 베이징 · 베트남 정복 · 내각 대학사 · 정화의 항해 · 정화) · 환관 · 북로남왜 · 장거정(일조편법) · 임진왜란 · 이자성의 난
청(淸) 누르하치(팔기제 · 후금) · 홍타이지 · 순치제 · 강희제(오삼계 · 삼번의 난 · 정씨 왕국 · 네르친스크 조약 · 지정은제) · 옹정제(군기처) · 건륭제(사고전서 · 문자의 옥) · 변발 · 호복 · 만한병용제 · 백련교의 난
사회, 경제 신사층 · 회관 · 공소 · 명의 해금 정책 · 감합 무역 · 청의 해금 정책 · 공행 · 일조편법 · 지정은제
문화 양명학(왕수인) · 본초강목 · 천공개물 · 농정전서 · 고증학 · 공양학 · 사고전서 · 삼국지연의 · 수호지 · 서유기 · 홍루몽 · 경극 · 마테오 리치(곤여만국전도 · 기하원본) · 아담 샬(시헌력) · 전례 문제
일본 막부 시대 가마쿠라 막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 봉건제 ·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
무로마치 막부 아시카가 다카우지 · 감합 무역 · 센고쿠 시대 · 도요토미 히데요시 · 임진왜란
에도 막부 도쿠가와 이에야스 · 에도 · 다이묘 · 산킨코타이 · 조카마치 · 슈인장 · 쇄국 · 네덜란드 공화국 · 조닌 · 가부키 · 우키요에 · 난학(해체신서)

틀:기원전 1세기


기원전 1세기 1세기 관련 문서 2세기
1st Century / 1世紀 / 1년~100년
국가 로마 제국 · 파르티아 · 쿠샨 제국 · 흉노 · 진한시대(한나라(전한 · 후한) · 신나라) · 한 9군 · 쯩 자매 · 제2차 북속시기 · 한사군 · 고구려 · 부여 · 마한 · 백제 · 진한 · 변한 · 신라 · 일본(야요이 시대)
사건 세계사
신나라 건국 (8년) · 신나라 멸망 (23년) · 후한 건국 (25년) · 기독교 등장 (27년) · 예수의 성전 정화 · 예수 사망 (30년) · 쯩 자매의 난 (40년) · 왜 노국왕에게 한위노국왕 도장 하사 (57년) · 로마 대화재 (64년) · 폼페이 베수비오 화산 폭발 (79년) · 오현제 시대 시작 (96년)
한국사
고구려 국내성 천도 (3년) · 가야 성립 (42년) · 모본왕 암살사건 (53년)
대표 인물 예수 · 베드로 · 리노 · 아우구스투스 · 네로 · 오현제 · 왕망 · 광무제 · 쯩 자매 · 모본왕 · 태조대왕 · 온조왕 · 혁거세 거서간 · 탈해 이사금 · 수로왕
관련 작품 성경(신약)

1세기 2세기 관련 문서 3세기
2nd Century / 2世紀 / 101년~200년
국가 로마 제국 · 파르티아 · 쿠샨 제국 · 선비족 · 진한시대(한나라(후한)) · 제2차 북속시기 · 한사군 · 고구려 · 부여 · 마한 · 백제 · 진한 · 변한 · 신라 · 일본(야요이 시대 · 야마타이국)
사건 세계사
채륜종이 발명 (105년) · 하드리아누스 장벽 건설 (122년) · 오현제 시대 종료 (180년) · 황건적의 난 (184년) · 반동탁 연합군 결성 (190년) · 관도대전 (200년)
한국사
신라 박지마 즉위 (112년) · 박지마 사망 (134년) · 신라 박아달라 즉위 (154년) · 박아달라 사망 (184년) · 고구려 진대법 실시 (194년)
대표 인물 채륜 · 오현제 · 동탁 · 조조 · 헌제 · 태조대왕 · 고국천왕 · 박지마 · 박아달라
관련 작품 삼국지연의

2세기 3세기 관련 문서 4세기
3rd Century / 3世紀 / 201년~300년
국가 로마 제국 · 파르티아 · 사산 왕조 페르시아 · 쿠샨 제국 · 선비족 · 진한시대(한나라(후한)) · 위진남북조시대(위나라 · 촉나라 · 오나라 · 진나라) · 제2차 북속시기 · 한사군 · 고구려 · 부여 · 마한 · 백제 · 진한 · 변한 · 신라 · 야마토(야마타이국 · 야요이 시대 · 고훈 시대)
사건 세계사
적벽대전 (208년) · 중국 삼국시대 개막 (220년) · 사산 왕조 페르시아 성립 (226년) · 로마의 군인 황제 시대 (235년) · 히미코에게 친위왜왕 칭호 하사 (238년) · 촉 멸망 (263년) · 서진 성립 (265년) · 서진의 삼국 통일 (280년) · 군인 황제 시대 종식 (284년) · 로마 4두 정치 (293년)
한국사
고이왕 즉위, 실질적 백제의 시작 (234년)
대표 인물 디오클레티아누스 · 유비 · 유선 · 장비 · 관우 · 조조 · 조비 · 손권 · 사마의 · 사마염 · 봉상왕 · 미천왕 · 고이왕 · 히미코
관련 작품 삼국지연의

3세기 4세기 관련 문서 5세기
4th Century / 4世紀 / 301년~400년
국가 로마 제국(서로마 제국 · 비잔티움 제국) · 사산 왕조 페르시아 · 쿠샨 제국 · 굽타 제국 · 선비족 · 유연 · 위진남북조시대(서진 · 동진 · 5호 16국 시대 · 북위) · 제2차 북속시기 · 한사군 · 고구려 · 부여 · 마한 · 백제 · 진한 · 가야 · 신라 · 야마토(고훈 시대)
사건 세계사
5호 16국 시대 개시 (304년) · 밀라노 칙령 (313년) · 동진 건국 (317년) · 굽타 제국 건국 (320년) · 니케아 공의회 (325년) · 콘스탄티노폴리스 천도 · 로마 제국의 기독교 국교화 (380년) · 로마 제국 분열 (395년)
한국사
신라 김씨 왕조 확립 (356년) · 평양성 전투 (371년) · 고구려 율령 반포 (373년) · 고구려 광개토대왕 즉위 (391년)
대표 인물 디오클레티아누스 · 콘스탄티누스 1세 · 테오도시우스 1세 · 사마충 · 미천왕 · 고국원왕 · 소수림왕 · 고국양왕 · 광개토대왕 · 근초고왕 · 침류왕 · 내물 마립간
관련 작품

4세기 5세기 관련 문서 6세기
5th Century / 5世紀 / 401년~500년
국가 서로마 제국 · 프랑크 왕국(메로베우스 왕조) · 훈족 · 동로마 제국 · 사산 왕조 페르시아 · 굽타 제국 · 유연 · 에프탈 · 위진남북조시대(동진 · 유송 · 남제 · 북위) · 제2차 북속시기 · 고구려 · 백제 · 가야 · 신라 · 야마토(고훈 시대)
사건 세계사
유송 건국 (420년) · 북위 수립 및 남북조 시대 개막 (439년) · 북위 효문제 즉위 (471년) · 서로마 제국 멸망 (476년) · 남제 건국 (479년) · 프랑크 왕국 건국 (481년)
한국사
장수왕 즉위 (413년) · 고구려 평양성 천도 (427년) · 나제동맹 체결 (433년) · 고구려의 한양 점령 (475년) · 부여 멸망 (494년) · 지증왕 즉위 (500년)
대표 인물 클로비스 1세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 오도아케르 · 유유 · 효문제 · 부레쓰 덴노 · 광개토대왕 · 장수왕 · 개로왕 · 내물 마립간 · 눌지 마립간 · 지증왕
관련 작품

5세기 6세기 관련 문서 7세기
6th Century / 6世紀 / 501년~600년
국가 웨섹스 왕국 · 프랑크 왕국(메로베우스 왕조) · 아바르 · 동로마 제국 · 사산 왕조 페르시아 · 굽타 제국 · 돌궐 · 에프탈 · 위진남북조시대(남제 · 소량 · 남진 · 북위 · 동위 · 서위 · 북제 · 북주) · 수당시대(수나라) · 제2차 북속시기 · 전 리 왕조 · 고구려 · 백제 · 가야 · 신라 · 야마토(고훈 시대 · 아스카 시대)
사건 세계사
남량 건국 (502년) · 프랑크 왕국 분열 (511년) · 서력기원 등장 (525년) · 유스티니아누스 1세 동로마 황제로 즉위 (527년) · 반달 왕국 멸망 (534년) · 북위의 동서 분열 (535년) · 북제 건국 (550년) · 돌궐 성립 (551년) · 북주 건국 (557년) · 남진 건국 (557년) · 수나라 건국 (581년) · 수나라의 중국 통일 (589년)
한국사
지증왕의 왕 칭호 도입, 신라로 국명 변경 (503년) · 신라의 우산국 정벌 (512년) · 신라의 율령 반포 (520년) · 이차돈 순교 (527년) · 불국사 건립 (528년) · 신라의 금관가야 정복 (532년) · 백제의 사비 천도 (538년) · 나제동맹의 한강 공격 (551년) · 나제동맹 파기 (553년) · 백제 성왕 전사 (554년) · 대가야 멸망 (562년) · 진흥왕 순수비 건립 (568년) · 아차산 전투, 온달 전사 (590년) · 제1차 고구려-수 전쟁 (598년)
대표 인물 클로비스 1세 · 유스티니아누스 1세 · 달마 · 진패선 · 양견 · 부레쓰 덴노 · 게이타이 덴노 · 평원왕 · 영양왕 · 무령왕 · 성왕 · 무왕 · 지증왕 · 법흥왕 · 진흥왕
관련 작품

6세기 7세기 관련 문서 8세기
7th Century / 7世紀 / 601년~700년
국가 웨섹스 왕국 · 프랑크 왕국(메로베우스 왕조) · 베네치아 공화국 · 아바르 · 동로마 제국 · 정통 칼리파 시대 · 우마이야 왕조 · 사산 왕조 페르시아 · 돌궐 · 수당시대(수나라 · 당나라) · 전 리 왕조 · 제3차 북속시기 · 고구려 · 백제 · 신라 · 보덕국 · 발해 · 야마토(아스카 시대)
사건 세계사
수양제의 쿠데타 (604년) · 대운하 건설 개시 · 이슬람교 창시 (610년) · 당나라 건국 (618년) · 헤지라 (622년) · 현무문의 변 (626년) · 정관의 치 개막 (627년) · 일본의 견당사 파견 (630년) · 정통 칼리파 시대 개막 (632년) · 다이카 개신 (645년) · 사산 왕조 페르시아 멸망 (651년) · 우마이야 왕조 개막 (661년) · 천황 칭호 등장 (670년) · 수니파-시아파 분열 (680년) · 측천무후의 무주 건국 (690년)
한국사
제2~4차 고구려-수 전쟁 (612년~614년) · 살수대첩 (612년) · 천리장성 착공 (631년) · 연개소문 쿠데타 (641년) · 고구려-당 전쟁 (645년) · 안시성 전투 (645년) · 황룡사 9층 목탑 건립 (645년) · 나당연합 결성 (650년) · 백제 멸망 (660년) · 백강 전투 (663년) · 고구려 멸망 (668년) · 나당전쟁 (671년) · 매소성 전투 (675년) · 기벌포 전투 (676년) · 9주 5소경 설치 (685년) · 발해 건국 (698년)
대표 인물 무함마드 · 아부 바크르 · 우마르 · 우스만 ·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 문제(수) · 양제(수) · 고조(당) · 태종(당) · 고종(당) · 측천무후 · 현장 · 영류왕 · 보장왕 · 안승 · 무왕 · 의자왕 · 풍왕 · 선덕여왕 · 무열왕 · 문무왕 · 신문왕 · 대조영
관련 작품

7세기 8세기 관련 문서 9세기
8th Century / 8世紀 / 701년~800년
국가 아스투리아스 왕국 · 후우마이야 왕조 · 웨섹스 왕국 · 프랑크 왕국(메로베우스 왕조 · 카롤루스 왕조) · 교황령 · 베네치아 공화국 · 아바르 · 비잔티움 제국 · 우마이야 왕조 · 아바스 왕조 · 수당시대(당나라) · 제3차 북속시기 · 신라 · 발해 · 일본(아스카 시대 · 나라 시대 · 헤이안 시대)
사건 세계사
다이호 율령 (701년) · 무주 당나라로 환원 (705년) · 일본 나라 시대 개막 (710년) · 성상 파괴령 (726년) · 투르-푸아티에 전투 (732년) · 아바스 왕조 성립 (750년) · 프랑크 왕국 카롤루스 왕조 성립 (751년) · 탈라스 전투 (751년) · 교황령 건국 (754년) · 안사의 난 (755년) · 후우마이야 왕조 건국 (756년) · 바그다드 건설 (768년) · 당나라 양세법 실시 (780년) · 일본 헤이안 시대 개막 (794년) · 샤를마뉴의 대관식 (800년)
한국사
신라 정전 지급 (722년) · 불국사 석굴암 중창 (751년) · 김지정의 난 (780년) · 독서삼품과 실시 (788년)
대표 인물 펠라요 · 아브드 알 라흐만 1세 · 카롤루스 마르텔 · 피핀 3세 · 샤를마뉴 · 측천무후 · 현종(당) · 감진 · 경덕왕 · 혜공왕 · 애장왕 · 대조영 · 무왕 · 문왕
관련 작품

8세기 9세기 관련 문서 10세기
9th Century / 9世紀 / 801년~900년
국가 아스투리아스 왕국 · 후우마이야 왕조 · 웨섹스 왕국 · 프랑크 왕국(카롤루스 왕조) · 서프랑크 왕국 · 중프랑크 왕국 · 동프랑크 왕국 · 교황령 · 베네치아 공화국 · 아바르 · 루스 카간국 · 키예프 공국(류리크 왕조) · 비잔티움 제국 · 툴룬 왕조 · 아바스 왕조 · 크메르 제국 · 수당시대(당나라) · 제3차 북속시기 · 신라 · 발해 · 후백제 · 일본(헤이안 시대)
사건 세계사
크메르 제국 건국 (802년) · 베르됭 조약 (843년) · 프륌 조약 (855년) · 툴룬 왕조 수립 (868년) · 메르센 조약 (870년) · 황소의 난 (875년) · 키예프 공국 수립 (882년)
한국사
김헌창의 난 (822년) · 청해진 설치 (828년) · 후백제 건국 (900년)
대표 인물 알프레드 대왕 · 샤를마뉴 · 루이 1세 · 류리크 · 올레크 · 애장왕 · 경문왕 · 진성여왕 · 효공왕 · 견훤 · 선왕 · 엔닌
관련 작품

9세기 10세기 관련 문서 11세기
10th Century / 10世紀 / 901년~1000년
국가 아스투리아스 왕국 · 레온 왕국 · 후우마이야 왕조 · 웨섹스 왕국 · 잉글랜드 왕국 · 서프랑크 왕국(카롤루스 왕조) · 프랑스 왕국(카페 왕조) · 동프랑크 왕국 · 독일 왕국 · 신성 로마 제국 · 교황령 · 베네치아 공화국 · 키예프 공국 · 비잔티움 제국 · 툴룬 왕조 · 이흐시드 왕조 · 파티마 왕조 · 아바스 왕조 · 가즈니 왕조 · 크메르 제국 · 제3차 북속시기 · 응오 왕조 · 12사군의 난 · 딘 왕조 · 전 레 왕조 · 수당시대(당나라 · 5대 10국 시대 · 후량 · 후당 · 후진 · 후한 · 후주) · 송원시대(요나라 · 송나라) · 신라 · 발해 · 후백제 · 태봉 · 고려 · 일본(헤이안 시대)
사건 세계사
당나라 멸망, 후량 수립 (907년) · 요나라 건국 (916년) · 후당 건국 (923년) · 후진 건국 (936년) · 후한 건국 (947년) · 후주 건국 (951년) · 송나라 건국 (960년) · 신성 로마 제국 수립 (962년) · 프랑스 왕국 건국, 카페 왕조 수립 (987년)
한국사
태봉 건국 (901년) · 고려 건국 (916년) · 발해 멸망 (926년) · 신검의 쿠데타 (935년) · 신라 멸망 (935년) · 후백제 멸망 (936년) · 탐라국 멸망 (938년) · 고려-거란 전쟁 (993년)
대표 인물 애설스탠 · 위그 카페 · 로베르 2세 · 오토 1세 · 올레크 · 야율아보기 · 주전충 · 이존욱 · 석경당 · 유지원 · 곽위 · 조광윤 · 조광의 · 견훤 · 견신검 · 궁예 · 효공왕 · 경순왕 · 왕건 · 광종 · 성종(고려)
관련 작품

각주

  1. 대표적 사례를 몇가지 들어서 설명하자면 파사 이사금 22년인 기원후 101년에 월성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실제 고고학적 조사 결과 월성의 초축시점은 3세기 이전으로 못 올라가고, 석우로가 삼국사기에 따르면 기원후 249년(신라본기 첨해 이사금 본기) 혹은 기원후 253년(석우로열전)에 죽었는데, 그 아들인 흘해는 61년 뒤(혹은 57년 뒤)인 기원후 310년에 왕위에 오른다. 석우로가 죽었을 때 흘해는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기였으니 아무리 젊어도 58세에 왕위에 올랐다는 건데, 정작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흘해 즉위 전에 신하들이 흘해에 대해서 흘해는 나이가 어리지만 나이든 사람의 덕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50대 후반의 중년을 보고 어리다고 하는 건 말이 안된다. 그래서 학자들은 대체로 삼국사기 신라 초기기록의 연대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건 신라 뿐 아니라 백제도 마찬가지다.
  2. 지금의 부산광역시.
  3. 지금의 울산광역시.
  4. 지금의 영천시.
  5. 가을 7월, 고구려왕 거련(巨連, 장수왕)이 몸소 병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공격하였다. 백제왕 경(慶, 개로왕)이 아들 문주(文周)를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임금이 병사를 내어 구원하였으나, 병사들이 당도하기도 전에 백제는 이미 함락되었고 경(慶) 또한 살해당하였다. (秋七月 高句麗王巨連親率兵 攻百濟 百濟王慶 遣子文周求援 王出兵救之 未至 百濟已陷慶亦被害) -삼국사기 신라본기 자비마립간 17년조 中
  6. 견훤이 강간은 안했다는 설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