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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해 이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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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신라 제 4대 왕 탈해이사금 키가 207~223cm였고 머리 둘레가 74cm였다.

경주 김씨와 경주 박씨는 자손들이 엄청나게 씨를 뿌린 반면 좆퇴물 몰락왕족이 되어서 상대적으로 듣도보도못한 월성 석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게 대부분의 석탈해 후손들은 김씨와 박씨에게 밀린 후 보트피플이 되어 여러 섬을 떠돌다가 현재 일본 시마네 현의 이즈모라는 곳에 망명하여 거기에 정착해서 세력을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세력을 키우고 다시 신라 왕위를 찬탈하기위해 수없이 신라를 침략했는데 광개토대왕에게 개털렸다는 설도 있다. 다만 눌지 마립간에 의해 개털렸다는 설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리고 신라에 남아서 겨우 연명하던 석씨 집안도 문무왕이 중앙집권화를 위해 숙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월성 석씨가 ㄹㅇ 존나 드문거다.

삼국사기 기록상 경주 외부로 최초로 확장을 한 군주이기도 했다. 울산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우시산국과 부산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거칠산국을 당시 신라 변경에서 관리로 있었던 거도라는 장군이 합병했다. 이 때 군사들에게 말을 타고 놀게 했는데, 이 놀이가 몇 해 동안 계속되니 양국사람들이 의심을 하지 않았고, 이때를 절호의 기회라 여긴 거도가 두 나라를 침범해 멸망시켰다.

석탈해 신화와 해석[편집]

《삼국사기》권1 신라본기 탈해왕 편

탈해는 본래 다파나 국(多婆那國)에서 태어났는데, 그 나라는 왜국(倭國)에서 동북쪽 1천 리 되는 곳에 있었다. 앞서 그 나라 왕이 여국(女國) 왕의 딸을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는데, 임신한 지 7년이 되어 큰 알을 낳았다. 그 왕이 말하기를 “사람으로서 알을 낳은 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마땅히 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그 여자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비단으로 알을 싸서 보물과 함께 궤짝 속에 넣고는 바다에 띄워 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처음에 금관국(金官國)의 바닷가에 이르렀으나 금관국 사람들이 그것을 괴이하게 여겨 거두지 않았다. 다시 진한의 아진포(阿珍浦) 어구에 다다랐다. 이때는 시조 혁거세가 왕위에 오른 지 39년 되는 해이다. 그때 바닷가에 있던 할멈이 줄로 끌어당겨서 해안에 매어 놓고 궤짝을 열어 보니 작은 아기가 하나 있어 그 할멈이 거두어 길렀다. 장성하자 신장이 아홉 자나 되고 풍채가 빼어나 환했으며 지식이 남보다 뛰어났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이 아이의 성씨를 모르니, 처음 궤짝이 왔을 때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울면서 그것을 따랐으므로 마땅히 작(鵲)에서 생략하여 석(昔)으로써 성을 삼고, 또 궤짝에 넣어 둔 것을 열고 나왔으므로 마땅히 탈해(脫解)라 해야 한다.”

탈해는 처음에 고기잡이를 업(業)으로 하여 그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한 번도 게으른 기색이 없었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골상(骨相)이 특이하니 마땅히 학문을 하여 공명을 세워라.”라고 하였다. 이에 오로지 학문에만 힘쓰니 지리(地理)까지도 겸하여 알았다.

양산 아래 호공(瓠公)의 집을 바라보고는 길지(吉地)라고 여겨 속임수를 써서 그곳을 빼앗아 살았는데, 그 땅은 후에 월성(月城)이 되었다.

출신이 어디인가[편집]

석탈해 세력이 외부에서 온 도래집단이라는 데에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을 한다. 하지만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것은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있듯이 기존 토착세력인 박혁거세를 밀어낼 정도로 발전된 철기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가야 수준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기록도 그렇고 <가락국기>라는 역사서에서도 석탈해가 김수로랑 일기토 찍다가 개털리고 쫒겨났다고 한다.

삼국 사기에 따르면 석탈해의 고향은 다파라국이라고 한다. 다파라국 왕비가 알을 낳으니 불길하게 생각한 왕이 알을 궤짝에 태워 바다에 던졌다고 한다.

근데 삼국 사기에서 다파라국의 위치는 왜국 북동쪽 1천리길 정도 떨어졌다고 하는데 일본을 기준으로 북동쪽으로 쭉 가다보면 캄차카 반도가 나온다.

실제로 캄차카 반도의 카멘스코예라는 마을의 신화에 미티라는 여인이 까치합법을 해서 까치알을 두개 낳자 남편인 까마커가 자기는 보꾸기 당할수 없다며 바다에 던져버렸다고 하는 설화가 있다.

삼국사기에도 석탈해가 처음 발견되었을때 타고 온 금궤짝 주변에 까치가 계속 멤돌았다고 한다. 이 두 신화는 놀라울정도로 유사성을 가졌다. 환뽕들은 다파라국이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개소리도 하는데 당시 조선술 및 항해술로는 말도안되는 개소리고 허황후 전설처럼 당시 한반도는 인도에서 오호츠크해까지 해로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 해로를 통해 수많은 외부 민족들이 몰려들어왔다는 추정은 할 수 있다.

호공은 누구인가[편집]

호공(瓠公)은 삼국사기에 따르면 본래 왜인인데 허리에 표주박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서 스스로 호씨라고 자칭했다고 한다.

학계에서 호공은 박혁거세가 세운 사로국을 상징한다고 보고있으며 석탈해가 호공의 집을 빼앗았다는것은 박혁거세의 사로국의 본진인 경주까지 진출했다는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나 석탈해는 호공을 죽이지 않고 신하로 삼았다고 한다. 이는 석씨신라가 박씨들을 왕씨학살처럼 처리하지않고 협조하면서 공동으로 나라를 다스렸다는것을 의미한다.

또한 삼국유사에서는 석탈해가 숯과 숫돌을 숨겨놨다고 하는데 이들은 전부 대장간을 상징하는 물건들로서 발달된 철기문화를 상징한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석탈해가 발전된 철기문화로 박씨의 사로국을 강탈해서 주류가 되었으나 박씨들을 쫒아내지않고 함께 융화되어 사로국을 통치했다는 의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