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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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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선덕대왕

(善德大王)

김덕만(金德曼)
부왕∙모비 아버지: 진평왕 어머니: 마야부인
왕가 경주 김씨
왕조 신라


재위기간
632년 1월 ~ 647년 2월 17일(음력 1월 8일)

생몰년: 580년대 ~ 647년 2월 17일(음력 1월 8일)

개요[편집]

드라마빨하고 야사빨 받아서 미디어에서는 성군으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암군 그 자체였다.

밖으로는 백제하고 고구려한테 강간당하고 안으로는 백성들과 진골들에게 씹힘.

드라마빨로 젊은 여왕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즉위 당시에 중년의 여왕이었다. 이는 진덕여왕도 마찬가지다.

문명 6에서 한국의 지도자로 등장하나, 정치를 드럽게 못했는데도 남녀 비율을 맞추기 위해 지도자로 선발되었다는점 때문에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차라리 신사임당을 넣었으면 이해라도 했을텐데...

"암" 군[편집]

단군조선이래 한국의 최초의 여왕. 이걸 보고 신라시대엔 여성인권이 어쩌니 하는데 그런거 없고 그냥 계급사회가 남존여비 사회보다 존나 쎄서 그렇다.

왜 계급사회가 빡셌느냐, 성골과 진골을 구분했거든. 사실 따지고 보면 성골이나 진골이나 다 똑같은 김씨 새끼들이다. 예전엔 성골끼리 결혼하면 성골! 이렇게 해석했지만 김춘추(얘는 증조부가 진흥왕이고 애미가 진평왕 딸년이다. 앞에 말한 논리대로면 김춘추는 성골끼리 결혼해서 태어난 자식이다.)는 진골 이런 거 보면 그냥 왕과 존나게 가까운 놈년들, 그러니까 마누라, 아들, 딸년들만 성골인거다.

그럼 다시 왜 성골이라고 했느냐? 당시 신라 왕실은 불교를 이용해서 자기 권위와 입지를 강화하려 했다. 고구려, 백제가 율령이니 뭐니, 22담로니 뭐니 하며 제도적, 행정적 차원에서 왕권을 강화시켰는데 신라놈들은 종교빨로 이걸 커버친거다. 물론 법흥왕 때 병부 뭐니 했지만 두 나라에 비하면 한참 늦었던 셈.

그래서 불교를 이용해 "으따 내가 곧 부처랑께!" 이러며 자기 가족을 부처님 집안으로 구라를 치고 성골이라 구분시킨거지. 결국 성골 아니면 왕 못하는데 성골이 여자 밖에 없으니 그중에 첫째인 덕만이가 왕함.

그리고 앞서 말한 불교빨로 버틴 증거로서 선덕이란 이름은 석가모니의 적통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지어진 명칭이다.

애비가 나서서 지 자식이 석가모니라고 보빨해야할 정도로 입지가 개씹창이었다.

요약하자면 선덕여왕년이 왕위에 오를 수 있던 건 성골이었기 때문이고 그 성골일 수 있는 기준은 종교인 불교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덕여왕의 존재는 신라의 여성인권 이딴 개소리가 아니라 그만큼 신라라는 사회가 후진적인 사회였다는 증거밖에 안된다. 남들은 왕이 제도적 차원에서 그 권위가 인정받는데 혼자만 종교라는 신이한 힘으로 권위를 내세우니...

선덕여왕(덕만공주)이 즉위했을 당시 중국의 당태종은 신라는 여자가 왕노릇을 해서 남들이 우습게 본다며, 당나라 황실 종친을 보내서 왕위를 잇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선덕여왕을 깠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당태종이 사망한지 51년 후 당태종의 후궁이었던 인물이 여제가 됐다.

그나마 애비인 진평왕이 왕노릇 50년이나 해먹으면서 왕권강화를 존나게 해놓은 터라 진평왕 시절에 후계자로 밀어붙일 수 있었지만 왕 시절엔 정치도 못하고 전쟁도 못하고 외교도 못하고 아주 막장이었다.

일단 결혼도 몇번 하고 자식 낳을라고 했는데 후임왕이 자기 사촌인 진덕여왕인걸 보면 난임이었던듯. (아마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자 씹창이 원인 아니었을까...)

이 시대 쯔음 김유신 김춘추등등 삼국통일을 이룬 애들이 나온다. 통유신 통춘추등은 선덕여왕이나 진덕여왕 죽으면 이제 진골중에서 왕이 나올 테니 그 왕자리 먹을라고 슬슬 정권 장악한다.

김춘추는 일단 선덕여왕 조카로 정확히는 김춘추의 이모가 선덕여왕이다. 물론 신라시대 개막장 족보 때문에 선덕여왕이랑 김춘추 아빠인 김용춘은 5촌이라 아빠쪽으로는 6촌이다. 뭐야 이게.

여튼 통유신은 선덕여왕 이 후 진골 중에 왕이 나올 것 같아 그 중 유력한 후보인 김춘추를 집으로 초대해서 술맥이고 꽐라로 만들어 씨름으로 옷을 찢어 버려 자기 집에서 머물게 한 다음에,

그 와중에 자기 여동생이랑도 알몸씨름을하게 해 임신공격 준비 함. 김춘추는 씨발 내가 왕 조카라 진골 탑인데 원나잇 한방에 가야계랑 사돈 맺어 커리어 망칠 수 없다고 싸튀하고 버티고 있었는데

김유신이 선덕여왕 앞에서 여동생 화형 퍼포먼스를 해서 억지로 결혼한다. 근데 이게 나중에 산에 올라가 오줌싼 꿈 팔아서 자매가 왕비 될 운명이 바뀐 전설로 남는다. 캬~

지금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과 아주 비교가 많이 되시는 분이다. 드라마로도 각색되어 나왔는데 비담과 존나 썸타다가 비담이 뒤졌다 씨발.

비담한테 사랑해주는 니가 좋다느니 뭐냐느니 어장관리멘트로 김유신과 비담 둘을 어장관리하다가 결국 비담은 뒤짐 씨발 존나간지났는데.

사실 비담이랑은 그딴거 없고 비담도 존나 진골 왕족이고 김춘추도 진골 왕족이라 선덕여왕 죽으면 왕 해볼라고 내란 벌인건데, 결국 김유신이 이김


드라마로 몇번 나와서 존나 성군으로 유명한데 걍 병신이다.

예로 기록에 따르면 신라가 연이어 패배하고 주요 거점은 물론 성을 한두개도 아니라 여러개로 고구려랑 백제가 나눠 먹으며 서라벌 코앞까지 와있는데도

불심으로 대동단결 하면 만사가 형통할것 이라는 짜장(慈藏)율사라는 땡중의 말대로 탑을 짓는 병크를 저지르는데 그 유-명한 황룡사 9층 목탑 되시겠다.

아니 씨발 나라가 망하게 생겼으면 그 돈으로 징병하고 훈련하고 군대나 확충 할 것이지 황룡사9층 목탑 짓는건 김정은이 핵쏘니까 막을라고 120층 롯데월드를 짓는거랑 뭐가 다르냐?

ㄴ황룡사탑 쌓는거는 국민들을 단결시키는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지닌 거다. 쉽게 말해 2차대전 때 미국이나 영국이 왜놈들이랑 나치 까부수자고 프로파간다 한 거랑 비슷한 성격이라고 보면 된다. 오늘날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당대인 입장에서 생각 못하는 미개한 디키위키 수준;;

ㄴ지랄 프로파간다랑 바벨9층목탑 세우는거랑 비슷하다생각하는 병신은 또 뭐지;; 그리고 팔만대장경마냥 승려들위주로 만든것도 아니고 또 당시에도 징용은 민심하락의 원인 중 하나였고. 불교 중심 사회고 뭐고 돈지랄+공사로인한 징병인원감소 등등 최악의 판단인데.

ㄴ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라는 것도 결국 현실에서 성과를 못 거두면 다 나가리된다. 선덕여왕이 했던 절탑 건립은 분명 당대 신라인들이 믿던 불교 진흥의 일환은 맞지만 그걸 하는 와중에 본인은 부처라고 자뻑질하고 근데 그 부처가 다스리는 신라라는 나라는 허구한날 털리고 다니고...이러면 당대 모두가 불교신자였던 신라라고 해도 선덕여왕 = 지 혼자 부처라고 깝치는 사이비년으로나 보이는 거다.

ㄴ 프로파간다도 적당히 해야 프로파간다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에서 승리한 대다수 지도자, 장수들은 타이쿤겜 마냥 건물 짓기보다 군사훈련 좆빠지개 시키고 전쟁전 하늘에 승리기원제사나 간단하게 치르고 행동과 결과로만 보여줬다. 형대에도 건물 짓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인력이 장난아닌데 고대에 나라 줘터져나가는데 이걸 당대 오버테크롤러지 방식으로 신축하겠다고 타이쿤개임이나 돌리고 있으면 나라 잘만 살아나겠다? 건물짓는건 스타크래프트같은 RTS처럼 일꾼1 + 미네랄/가스먹듯 일꾼 하나가 쌀/나무/쇠 소비한다고 몇칠만애 지어지는 개 아니다 등신아.

초한지애도 나오지만 항우가 진나라 박살내고 다닐 때 그나마 정신박힌 신하들이 황제한테 가장 먼저 건의한 것 중 하나가 노역과 궁궐신축 중지 후 역군들을 군인으로 재편시키자는거였다. 그만큼 당대 냉병기시대앤 군인머릿수가 곧 전략이자 전술이자 전투력이었다. 오죽하면 호왈백만이라는 소리가 있겠냐? 지금처럼 미사일 폭탄 수류탄 총같이 한 명이 원거리에서 쿼드라킬이 쉬운 시대도 아니었기에 그때는 상대 진지나 성곽에 깃발만 많이 꽂혀 있으면 숫적애서 밀려 보인다 판단해 우회하거나 퇴각하거나 전쟁의지가 꺾이던 시대다. 더군다나 손자병법에도 나오듯 공성전은 공성하는 입장에서 수성군보다 최소2배가필요하다 쓸정도로 매우 불리한 전투다. 달리 공성 한번 띄고 점령하면 아군 피해 보고 다음 성으로 고스톱할지 정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근데 수성이라는 유리한 입장에서 당기간에 성을 존나게 잃었으면 문제 있는거다. 모든 역사에서 이정도로 땅을 잃을 때는 국가폐망엔딩뿐이었다. 근데 그런 시기에 건물올리기나 쳐하고 있었으면 까여도 싸다.

그런데 다 떠나서 황룡사 9층 목탑 자체는 상당한 오버테크놀로지가 맞다. 1238년 몽골군에 의해 불탄 이후로는 1969년 한진빌딩이 세워질 때까지 황룡사 9층 목탑의 높이를 따라잡은 건물이 없었다.

오죽하면 신라가 사신보내면서 당나라 형에게 아 형 우리 좀 살려주삼ㅠㅠ 거릴 때 황제가 대놓고 우리 황족 보낼테니 니들이 그냥 왕으로 모시면 안됨? 하며 개무시 당했다고....

ㄴ 그렇게 지 아들래미 당고종이 마조히스트라는걸 몰랐던 당태종은 쳐쪼개며 신라에게 인성질을 시전하였으나 뒤진 후 관속에서 사디즘마스터 측천무후라는 기원전부터 현재까지 중국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성지도자가 황제로 군림하는 것을 보개 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몰론 측천무후는 현 중국 사학계에선 여성지도자라는 특이성으로 인한 당대 남성사회 고위공직자들이 평가를 안좋게 했다와 나르시시즘과 문자를 만들정도로 자존감이 강했다정도지 선덕이 비빌 클라스가 아니라는 개 중론이다.

최후는 뭐 드라마와 달리 허무한게 비담이 난을 일으키자 왕궁인 반월성 문을 걸어 잠구고 항전하다가 8일 만에 사망했는데 다음과 같은 기록이 존재한다.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중 선덕여왕 16년(647) 봄 정월, 비담.

???: 아, 잠깐만! 뭐... 뭐라구요?

대왕이 이 말을 듣고 두려워 어쩔 줄을 몰랐다. 삼국사기 김유신 상 중 선덕여왕 16년(647).

왕 된것도 걍 성골이 없어서 혈통빨로 된거고 당태종이 보내준 그림에 나비가 없어서 향기없는 꽃이라는걸 알아냈다고 자랑이라고 기록해놓는데 원래 모란꽃이랑 나비는 같이 안그리는게 그시대 룰이었다.

오우 시발 생각만해도 쪽팔린다. 쿼터갓급 전설. 게다가 씨발 이딴게 업적이라고 나온 이유가 실제 정치는 의자왕한테 줫털리고 고구려한테 줫털리고 실제 하는게 없으니까 일화라고 적어놓은거다.

광개토대왕이 무슨 꽃그림이나 보고 있었냐? 걍 만주 쓸어버리고 다녔지.

더군다나 군사적 업적은 연못에 개구리가 운다고 백제군이 쳐들어왔다는 비선실세급 소리를 하는 분이시다.

사실 삼국유사 쓴 일연이 땡중인데 선덕여왕 시대엔 신라 전체가 불심으로 대동단결급으로 불교가 잘나갔고, 목탑도 지어 줘서 존나 좋게 써준듯.

나중에 가면 뭘 해도 안되는지 선덕여왕도 의자왕한테 줫털리는 와중에 정치적으로 뭘 해볼생각없던 모양

의자왕한테 맨날 털리던 호구새끼다. 이딴년이 왜 성군소리를 듣는지는 의문

ㄴ이게 다 드라마빨이다.

김춘추와 김유신이 실세고 선덕여왕은 얼굴마담이 아니였을까 라는 학계의 주장도 있다.

ㄴ 위에서도 나오지만, 진평왕이 얘 입지 세우려고 별 짓을 다 한 걸 생각하면 비선실세는 아니고, 걍 병신년인 거 알아채고 하나 둘 실권을 빼앗아 간 거라고 보는 게 맞다.

이런 것도 모르던 503번 동생이 지 언니를 선덕여왕 이래 최고의 여성 지도자 운운하며 멋모르고 실드치다가 역으로 비웃음당하며 털렸다.

ㄴ 사실 503은 선덕 진덕 진성 셋을 융합한 것이니 틀린막은 아닐지 모른다.

선덕 - 바지사장 헛소리

진덕- 쪽팔림을 모르는 외교

진성 - ㅅㅅ

물론 국가가 풍전등화에 놓인 상황이니 진덕은 참작 여지라도 있지. 다른 둘은 503과 뭐 ㅋㅋ

비선실세설[편집]

이년은 그냥 허수아비였을뿐 성군도 암군도 아니다.

실권을 쥐고있던건 김춘추와 김유신이였던 상황이라 굳이 얘를 깔 필요는 없다.

암군이라고 까려면 고구려, 백제에 신나게 털릴때 암것도 못하던 김유신과 김춘추를 욕하는게 맞다.

ㄴ김유신하고 김춘추가 싸고돈건 맞는데 신라를 좌지우지했다는 건 그냥 가설아님? 김유신하고 김춘추는 이 시기에 자기 할일 한걸로 아는데

ㄴㄴ 김유신 이맘때 기록은 싸움마다 이겼다고 써있지만 막상 백제나 고구려기록은 다 진걸로 나오고 성만 오질라게 뺏겼으니 진실은 모른다.

ㄴ비선실세한테 실권 다 내주고 아무것도 안 한 것도 암군 아닌가? 결론은 지가 뭘 했건 안 했건 암군임.

ㄴ 엄밀히 말하면 김유신과 김춘추가 비선실세 역할(아니 사실 비선실세도 아니다. 둘다 가야계, 진지왕계 나가리 진골이긴 했어도 진골이기 때문에 관직에 있었으니까)을 하게 된거는 선덕이 아닌 진덕여왕때다.

비담의 난을 진압하면서 그동안 성골 왕실에 반감이 있던 진골들이 싸그리 갈려나가고 그동안 아싸 나가리 진골이었던 김춘추, 김유신이 다 헤처먹을 수 있었거든.

결론[편집]

영토 강역은 존나게 따이고 비담과 염종의 난으로보아 반대파 또한 조정 내에 확실하게 있었다.

게다가 비담이란 새끼는 반란 당시에 무려 상대등이였고 관등은 김춘추와 같은 이찬이였음

내부 알력싸움에 끼여살았니 어쩌니 그런건 추론에 근거한 가설이고 일단 기록만 따져보자면 그렇다.

내부적으로도 아무리 봐줘도 병신같은게 당, 고구려한테 비웃음이나 당하고 백제가 하루가 멀다하고 침입해오는 판에 절이나 쳐짓는건 미친 짓이다.

거기다 귀족들은 아무리 지들도 불교신자라지만 현실에선 좆도 없는 년이 "어맛 저 부처님이라구욧!! 알아서들 기세욧!!" 이딴 소리하면서 세속정치도 못하고 불교만 내세우니

귀족들 지지도 못얻었다. 당대 신라 귀족들 눈에 선덕년은 왠 사이비 교주년이 지가 부처라면서 절을 짓는 꼴인 셈이다.


일단 병신인건 확실함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