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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律令制
개요[편집]
전근대 동아시아의 법률 체계.
풀네임은 율령격식(律令格式)이다.
내용[편집]
- 율: 형법에 해당하는 것. 진한시대부터 시작되었다.
- 영: 행정법에 해당하는 것. 국가의 행정을 담당한다.
- 격: 기존의 율령을 개정, 추가, 보완한다.
- 식: 법령 시행의 세부 규칙을 정해놓은 것. 현대 법률 체계의 명령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민법은 없었다.
중국의 율령[편집]
진나라와 한나라의 율법에서 시작되어 당나라 때 당률소의를 편찬했다.
송나라 때는 격, 식, 판례 등이 더 중요해졌다. 명나라 때는 대명률이라는 법전이 나와서 율령의 중요성이 재부각되었다.
청나라 때는 영, 격, 식을 전부 없애고 칙령과 율을 가지고 국가를 운영했다.
한국의 율령[편집]
고구려에서는 부족 시대의 법을 토대로 중국 율령제의 색채를 끼얹어 소수림왕 때 첫 실행했다. 백제는 불확실한 것이 많으나 일반적으로 고이왕 때 반포했다고 알려져 있다. 신라는 고구려, 백제보다 더 늦게 법흥왕 때 율령을 반포했다.
통일신라에서는 율령박사를 6명 두었고, 발해는 3성 6부제를 실시하는 등 율령이 존재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고려의 율령은 송나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조선의 율령은 명나라의 대명률, 대명회전의 영향을 받은 경국대전이 편찬되면서 집대성되었다. 이후에는 속대전, 대전회통 등을 편찬했다.
일본의 율령[편집]
일본은 7세기부터 율령의 초기 토대를 갖췄는데 초기에는 령만 있고 율이 없었다.
그러다가 701년 다이호 율령을 반포하면서 율과 영을 모두 갖게 되었으나, 757년 요로 령을 반포했을 때 율이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헤이안 시대에 셋칸 정치, 상황의 인세이, 막부 정권 등이 들어서면서 율령제는 붕괴되었다.
베트남의 율령[편집]
리 왕조의 태종이 당률의 영향을 받아 1042년 형서를 반포하면서 시작되었다. 율과 영을 모두 갖춘 법전은 1157년 리 왕조 영종이 반포했다.
또한 베트남 특유의 전통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여성의 재산권과 상속권, 이혼청구권 등이 보장되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유교화되며 여성 권리가 약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