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당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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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1차 고당전쟁[편집]
645년에 일어났다.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쳐내고 대막리지 지위에 올라서 독재를 시작했다. 당 태종 입장에서 연개소문은 위협적인 세력이었으므로 제압해야 했고, 결국 고구려를 침공하게 되었다.
당나라 병력에 대해서는 30만 이상이라는 다수설과 그 이하라는 소수설이 나뉜다.
고구려는 주필산 전투 등에서 패배했으나 안시성 전투에서 승리했다. 흔히 성주로 양만춘이라는 인물이 유명하지만 이 이름은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실제 이름은 알려진 바가 없다.
여하튼 당나라는 목적 달성에 실패하고 돌아갔다. 심지어 세계사 전체를 둘러봐도 최고의 명군으로 손꼽히는 당태종의 침입을 막아냈다는 것은 엄청난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이후 당나라와 고구려 사이에서는 소규모 전투만 계속 이어지다가, 649년 태종이 죽고 당 고종이 황제로 즉위했다. 650년대에는 각축전이 계속 진행되었다.
2차 고당전쟁[편집]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의 침입으로 드디어 멸망했다. 이제 나당연합의 다음 목표는 고구려를 포위해서 무너뜨리는 것이 되었다.
이번에는 당나라가 바다를 통해서 해상 공격을 감행했다. 당나라 해군은 대동강을 따라 평양으로 진입했으나, 철륵이라는 소수민족의 방해로 요동 쪽에 있는 육군이 빠꾸를 치면서 당나라 해군만 대동강에 남은 상황이 되었다. 결국 고구려의 맹공으로 당 해군은 박살났다.
3차 고당전쟁[편집]
연개소문이 드디어 죽었다. 남생, 남산, 남건이 권력 다툼을 시작했고, 남생이 여행을 떠난 사이 남산과 남건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남생은 남산과 남건을 몰아내기 위해 당나라의 힘을 빌리려고 했다.
남생은 당나라에게 항복했고, 수많은 고구려의 군사 기밀을 당나라가 꽁으로 얻은 셈이었다. 그리고 남생의 도움으로 보급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이세적의 당나라 군대가 바로 고구려로 들어왔고, 신라군이 평양 남쪽을, 당군이 평양 북쪽을 포위하면서 평양성 포위가 시작되었다.
이때 신성이라는 땡중놈이 당나라와 내통해서 평양성 문을 열었고, 당군은 바로 평양으로 들어가서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이후 고구려에는 안동도호부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