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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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 세계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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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
태봉 건국 (901년) · 고려 건국 (916년) · 발해 멸망 (926년) · 신검의 쿠데타 (935년) · 신라 멸망 (935년) · 후백제 멸망 (936년) · 탐라국 멸망 (938년) · 고려-거란 전쟁 (993년) | |||||||||||
대표 인물 | 애설스탠 · 위그 카페 · 로베르 2세 · 오토 1세 · 올레크 · 야율아보기 · 주전충 · 이존욱 · 석경당 · 유지원 · 곽위 · 조광윤 · 조광의 · 견훤 · 견신검 · 궁예 · 효공왕 · 경순왕 · 왕건 · 광종 · 성종(고려) | ||||||||||
관련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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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의 고조 석경당(石敬瑭)
오대십국시대에 후진을 세운 사람.
사타족 출신이다. 아버지 석소옹은 중앙아시아의 설연타를 다스리던 이극용을 정벌해 명주자사(명주는 현재의 허베이성)로 임명되었다.
어린 시절에 이사원(후당 명종)에 인정받아 사위가 되었다. 926년의 위주 방위를 맡았고, 석경당은 이사원과 함께 변주로 이동하였고, 그 후 낙양을 공격했다.
이사원이 즉위한 후, 석경당은 보의, 선무, 하동 지방의 절도사를 역임하였는데, 일 잘해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종가가 이종후를 폐위하고 황제로 즉위하면서, 석경당의 세력을 경계하게 되어, 천평군 절도사로 좌천되었다.
그 후, 국내의 반란에 틈을 타서 거란족을 이용하여 황제를 자칭한 후에, 거란족의 군사를 이용해 936년에 후당을 멸망시키고, 후진(後晉)을 건국했다.
즉위 후에 연운16주를 요나라에 바치고 매년 30만필의 비단을 조공하는 조약을 맺어, 석경당보다 10세 연하의 야율덕광을 "아버지 황제"라고 칭하고, 스스로를 "아들 황제"라고 칭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방식에 불만을 가진 안중영과 경연광등의 세력과 굴욕적이지만 현 상태를 유지하여 그 동안 국력을 안정시켜 이어가자는 상유한의 세력이 격렬하게 대립했다.
후에 하동절도사인 유지원이 토욕혼에게 투항을 하였기 때문에, 자주 거란으로부터 문책을 받아 942년 50살의 나이에 분사하였다.
매국노라면서 한족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다.
혹시나 이런생각을 할수있는 사람이 있을것이다. 중국 땅덩어리가 얼마나 넓은데 연운 16주 그까짓 조그만 땅이 중요하냐?
이리저리 설명할 필요 없이 중궈놈들 역사기록만 보면 중요성이 바로 나온다.
오대십국시대때 나온 최고의 명군중 하나였던 후주 세종도 연운16주를 어떻게든 회복한다고 요나라를 공격하였으며,
송태종도 연운 16주 회복한답시고 출정해서 남경(베이징)에서 죽치다가 야율휴가한테 고량하에서 뒤지게 쳐맞고
후유증으로 본인역시 부상당하여 사망한다.
더 나중가서, 송나라가 강남으로 쫓겨난 사건인 정강의 변이 일어난 원인인 금나라 통수도 연운16주를 회복하고싶은 욕심때문이었다.
이새끼가 한번 대가리 잘못굴려서 넘겨간 이 연운16주는 결국 누가 회복하느냐. 바로 주원장이 회복했다.
판단 하나 잘못해서 400년동안 트라이하다 간신히 회복하였으니 씨발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이상 말안해도 알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