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공책봉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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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동아시아의 전근대사에서, 중국 주변의 국가들이 중국에 조공이라는 일종의 귀중품을 바치면 중국은 그 국가를 인정하면서 직위를 '책봉'하는 특수한 외교 관계.
역사[편집]
조공책봉관계의 초기 형태는 기원전 770년 중국 주나라가 호경에서 낙양으로 런하면서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나타났다. 제후국들은 주나라 조정에 조공을 바치고, 조정은 제후들을 책봉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 시대에 등장한 것이 바로 공자의 유교였고, 유교는 위와 아래의 질서를 중요시하는 만큼 '위의 국가'인 주나라와 '아래의 국가'인 제후국들의 질서를 바로잡는 조공책봉관계를 중시했다.
춘추전국시대가 끝나고 진한시대가 찾아오면서 조공책봉관계는 중국과 주변국의 질서로 확대되었다. 고구려와 일본의 노국이 한나라와 조공책봉관계를 맺었고, 위진남북조시대에는 백제, 신라, 일본의 히미코 등과 조공책봉관계를 맺었다.
수당시대에는 조공책봉관계를 바탕으로 한국과 일본에 선진 문물을 퍼뜨렸다.
그러나 당나라가 붕괴한 이후 송원시대에 일본은 중국과의 공식적 관계를 중단하고 조공책봉 질서에서 떨어져나갔다. 명나라 때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건문제에게 책봉받으며 잠시 조공책봉 관계를 회복하기도 했으나 100년 정도 가고 조공책봉관계가 다시 깨졌다.
고려는 송나라와 조공책봉관계를 맺다가 금나라가 강성해지자 금과 조공책봉관계를 맺었다. 이후 몽골에게 정복당해 지배를 받다가 명나라가 생기자 명과 조공책봉관계를 맺고, 조선이 수립된 이후 병자호란을 계기로 청과 조공책봉관계를 맺었다.
19세기 유럽의 제국주의 시대가 열리며 조공책봉관계는 무너졌다. 우선 1840년 아편전쟁을 계기로 청나라가 서양 열강들과 대등한 관계로 불평등 조약을 맺으면서 더 이상 조공을 바치는 것을 요구할 수 없었다.
1885년에는 청프전쟁에서 청나라가 발리면서 베트남이 떨어져나갔고, 이제 조공책봉관계를 유지하는 지역은 조선이 유일하게 되었으나, 그마저도 1895년 청일전쟁 패배로 조선을 독립국으로 승인하게 되면서 조공책봉관계는 1895년을 기점으로 세계사에서 영원히 소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