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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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배계층[편집]
원래는 중국에서 쓰던 용어로 사(士, 아직 벼슬 없는 금수저)와 대부(大夫, 벼슬하는 금수저)를 지칭하던 말.
송나라 때 절도사 새끼들을 다 때려잡고 문치주의를 하면서 과거 시험을 통해 출세한 사람들을 사대부라고 했다.
그 후 유교 이념에 흡수되어 유교를 정치이론으로 삼고 있던 정치가들을 지칭하게 된다.
조선의 지배계층[편집]
이들의 기원은 고려 중기 안향의 유학으로 부터 시작된다고들 하는데 이건 전관예우 식으로 하는 소리고 실질적인 사대부들의 등장은 바로 최씨정권의 최우에 의해서였다.
무신정변과 무신정권으로 인해 몰락한 문벌귀족들의 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최우는 이규보와 같은 유학자들을 등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더 이상 군부의 지원 없이도 국정 운영이 가능하다는 최우정권의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들의 학문적 토대는 성리학이 아닌 훈고학이었고 사회 변혁에 대한 의지는 이들도 가지고 있었으나 신진사대부들 처럼 역성혁명 까지는 생각하지 않은 고려라는 틀 안에서의 변화를 꾀하는 세력이었다. 이는 최충헌이나 최우가 왕이 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한데 자신들의 정치 파트너 세력이 역성혁명을 원치 않는데 왕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최씨정권과 말기 무신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정치적으로 성장해 갔으나 몽고와의 전쟁을 통해 몰락했는데 이들의 정치적 자산이기도 했던 토지가 몽고군에 의해 홀라당 다 타버렸고 이들의 보호막이기도 했던 무신정권이 붕괴되면서 새로이 등장한 친원 권문세족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차츰 몰락하게 되는데 이들을 신진사대부와 구별하여 사대부들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