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강의 변
조무위키
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1단원→ II. 동아시아 세계의 성립과 변화 →3단원 |
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 1단원→ II.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 →3단원 |
11세기→ 12세기 관련 문서 →13세기 12th Century / 12世紀 / 1101년~1200년 |
![]() |
주의. 이 문서는 두 개 이상으로 갈라진 것에 대해 다룹니다. 그러니 그만 싸우고 다시 붙기 바랍니다. |
개요[편집]
[https://www.youtube.com/watch?v=
이 영상은 유승준이 완안종필로 나온 중공드라마 <정충악비>에서 나온 장면이다.
靖康之變
영가의 난이후 중국 한족왕조가 다시한번 남중국으로 쫓겨난 대사건이자 이후 동아시아에 다방면으로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킨 중세 동북아의 빅뱅.
금나라가 송나라 수도 개봉을 함락하고 황제와 황족들을 끌고가 곤욕을 치르게 해주고 만주 오국성으로 압송한 1126년을 기준으로 친다.
여진족의 급부상[편집]
발해멸망이후 등장한 여진족은 크게 혼동강일대와 이북의 생여진, 그 이남 다른 수계의 숙여진으로 나뉘었다. 둘다 요나라의 과도한 물리치료와 이이제이목적으로 시행된 발해유민과의 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찐따와도 같았다.
하지만 귀주대첩으로 인한 요나라 군사력 약화 + 황제조무사와 불교뽕에 빠져 하라는 일은 안하고 염불이나 외우는 요나라 공무원새끼들 + 고려에서 들어오는 선진체제와 철기제조방식등으로 조금씩 힘을 기르기 시작했다.
여기에 1100년부터 완안 아골타라는 사기캐의 등장 + 동북9성막고라를 통한 사기캐의 권력강화를 거치면서 진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무너지는 송나라[편집]
요나라와 서하의 ATM기와 같았던 송나라는 어떻게든 ATM신세에서 벗어나고 연운십육주를 되찾기 위해 피터지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송 휘종이라는 씹덕새끼가 지 덕질에 모든것을 갖다바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동안 모아둔 국고가 휘종의 덕질로 증발함에 따라 군인들 월급도 못주고 민생챙겨줄 돈도 없는 거지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특히 휘종새끼가 좋아하던 보석, 신기한 돌이 가득한 강남지방은 이새끼의 씹덕질을 위해 엄청난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요의 멸망[편집]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존재가 된 여진족. 이들은 출하점, 호보답강, 영강주에서 요나라 정예 수십만을 1만도 안되는 철기의 괴자마로 밀어버리면서 삭제해버렸다.
안그래도 앰창인 요나라는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지내 앞가림도 못하는 앰창스러운 상황에 이르렀다. 이렇게 잭팟이 터진 금나라는 요동, 요서, 임황부를 깔끔하게 쓸어버렸고 천조제를 필두로한 요나라 조정은 남경으로 수도를 옮기고 연운십육주로 버티는 상황에 도달했다.
송나라의 병크[편집]
요나라가 금나라한테 복날 개패듯이 쳐맞는 모습을 본 송나라는 질수없뜸!하고 금나라와 쇼부쳐서(해상의 맹약) 그나마 남은 정예군들을 모아 연운십육주를 수복하고자 했다. 하지만 타이빙이 좆씨발인게 이시기에 항주일대에서 방랍의 난이 터지고 말았다. 물론 난이 일어난 원인이 휘종 개새끼의 토색질 때문이니 자업자득. 심지어 화북또한 송강의 난[1] 으로 개판이 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안 끝나고 시발 휘종새끼가 군대를 내지로 옮긹거면 다 옮기든가, 근데 정예병과 지휘관만 내지로 내보내는 이해가 안되는 짓을 저질렀다.
그래서 연운십육주로 올라간 송나라군중에는 좆밥쓰레기쫄병들만 남았고 결국 거란군 게릴라에게 심심하면 기습당하고 금나라가 실제로 할 건 다하는 병신같은 꼬라지가 되었다. 근데 송휘종 이 씹쌔끼는 연운십육주를 내놓으라고 빼애액을 시전했다. 하지만 금나라는 거기 살던 한족 및 주민들을 자기네 영토로 끌고 가는 조건으로 정말로 땅을 돌려준다. 근데 16주중 6주만 돌려주고 그나마도 주민하고 돈하고 다 끌고가서 아이고 의미없다. 그리고 이 때 아골타가 사망하고 오걸매가 금나라의 차기 황제로 등극했다.
하지만 송나라 안쪽으로는 연운 16주를 재건시키기 위해 이름도 석진부에서 연산부(燕山府)로 바꾸고 노오력을 했지만 재건비용때문에 세금이 떡상 + 최전방인 하북, 산동에서 반란[2], 경사, 하동, 섬서에선 지진이 일어나서 수백만의 유랑민이 발생하는등 송나라는 안쪽으로 더더욱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여기까진 그래도 좋았다. 그러나....
무너지는 개봉성[편집]
요나라만 작살낼 생각이었던 금태조 아골타가 사망하고 대륙정복론을 주장하던 오걸매가 등장하면서 또 상황이 송나라에게 좆같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대륙을 점령하고 싶어 이골이 난 금나라는 송나라를 족칠 건수를 잡기 위해 눈에 쌍라이트를 키고 있었다.
그런데 올 ㅋ 송나라가 요나라 잔당들을 은근슬쩍 밀어주면서 금에 대항하려고 하고 송나라가 경제문제로 금나라에게 공물을 바치려 하지 않았음이 뽀록나자 금나라는 이를 명분으로 삼아 송나라를 후드려패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하북방어를 위해 임명된 동관[3] 이 12월 8일 지 직장인 태원 버리고 개봉으로 빤쓰런을 하자 4일이 지난 1125년 12월 12일, 하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뭔가 날짜가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곽약사 개새끼가 연산부를 비롯하여 옛 연운 16주를 들고 금나라로 빤쓰런한 것을 시작으로 12월 12일 흔주, 대주(現 흔주시 대현) → 12월 19일 중산부공격 → 12월 27일 알리부가 신덕부함락, 점한이 태원포위 → 1126년 1월 1일 상주함락, 양방평 뚝배기 깨지고 하관이 활주(現 안양시 활현)로 탈주하여 결국, 20일만에 하북의 전지역과 평양이북의 하동지역을 금나라에게 털리고 수도바로앞까지 금군이 남하한다.
하지만 개봉성에 좆병신만 남은게 아니고 하동도 금나라 미점령지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하동, 섬서, 개봉일대에서 금군에 대한 대대적인 항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후[편집]
휘종과 흠종은 금나라 포로가 되었고 각각 혼덕공(나라를 씹창낸 공작), 중혼후(나라를 더 씹창낸 후작)로 봉해 평생 놀림거리로 써먹었다.
휘종은 이후 가난하게 지내다가 자기 딸들이 금 종실의 부인이 되자 외척 대접은 받으면서 나름대로 잘 먹고 잘 살며 죽었는데 흠종은 그조차도 없었고 존나 힘들게 살다가 죽었다.
나라 씹창낸 놈은 휘종인데 대우는 흠종 쪽이 나빴던 셈. 심지어 남송의 고종이 휘종 사후 그의 유해는 갖고왔으나 흠종의 송환 문제에 대해서는 고종의 정통성이 무너지고 왕위를 뺏길 수 있겠다 싶어서 아예 남송에서 손절을 때려버렸다.
그리고 진회도 같이 끌려갔었는데 아가리를 잘 털어서 남송으로 빠져나오고 거기서 간신질을 하며 애꿎은 악비를 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