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주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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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 세계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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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조의 정변 (1009년) · 제2차 고려-거란 전쟁 (1010년) · 제3차 고려-거란 전쟁 (1018년) · 귀주대첩 (1019년) | |||||||||||
대표 인물 | 윌리엄 1세 · 우르바노 2세 · 토그릴 베그 · 이원호 · 왕안석 · 사마광 · 진종(송) · 인종(송) · 강감찬 · 현종(고려) · 시라카와 덴노 | ||||||||||
관련 작품 |
발발[편집]
이 당시 송나라를 격렬하게 따먹고 싶었던 거란에게, 여진족을 끌어들여 툭하면 슴만튀를 시전하는 고려는 상당한 씹새끼였다.
이에 거란제국의 최전성기 황제 요 성종이 40만대군을 동원해 친정했던 2차 침략이 고려왕의 최고컨디션 런닝맨 촬영으로 인해 물건너 가버리자
특별히 거란제국 황군 최정예중 하나인 우피실군을 위시로 하는 10만 기마군단을 황제의 인척 소배압에게 맡겨 고려를 침공케 한 사건이다.
청나라가 조선을 턴것처럼 냅다 수도로 달려서 왕 따먹고 체크메이트를 시도했다
시도는 비슷했지만 결과는 정반대
결과[편집]
전투 중반까진 거란군의 기마사격 아웃레인지 전법과 고려군의 대기병전술이 팽팽하게 맞서 양군 병사들끼리 난교 파티를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거란군 뒤쪽에서 길 헤메느라 처 늦게온 고려군 기마대가 등장한다. 당연히 그대로 전장으로 돌진해 거란군을 3p 플레이로 앞뒤로 따먹고, 앞구멍 뒷구멍에 정액을 탁탁 싸놓자 소배압이 통솔하는 거란의 10만 기병대가 관악구의 자랑 강감찬의 20만에게 임신플레이 당한다.
고려군 : 등짝, 등짝을 보자!
거란군: 야, 야메떼... 하윽! 기못찌이~~
워털루에서 똑같이 뻘짓하던 그루시는 나폴레옹 패배를 못 막았는데 귀주의 고려 기병대는 오히려 히트친 걸 보면 인생은 역시 타이밍.
거란군의 주력 우피실군이 궤멸에 가까운 대타격을 받았고, 이로 인해 거란제국의 군사력 전체에 타격이 가 송나라 따먹기의 원대한 계획이 무기한 연기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요 성종은 최정예군 다죽이고 지혼자 돌아온 소배압에게 저새끼 얼굴가죽을 벗겨버리겠다고 발발 뛰었다
신하들의 만류로 다행히 소배압은 얼굴가죽은 지키고 폐서인된다
왜 이렇게 이 시기의 고려군이 강했느냐 하면, 일본통일 직후의 실전으로 단련된 도요토미의 강군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갈것이다.
ㄴ 근데 고려 정규군의 질은 소배압의 거란군에 비하면 한참 못미쳤다. 당시 고려군은 김종현이 이끈 1만 기병을 제외하면 일반 백성들까지 박박 긁어모은 예비군사단이었고, 기병, 그것도 거란의 정예병으로만 차출한 기병대에게 이길 확률은 낮았다. 당장 예비보병사단과 기계화사단이 맞다이 뜨면 어디가 이길지 생각해봐라.
ㄴ 귀주대첩은 딱히 고려 병종이 뛰어난 것보단 철저한 대비와 정확한 전술,전략에 있다. 거란이 개경으로 올인할껄 알고 청야전술로 보급이 힘들게 만들며 유격전을 계속 펼쳐 성가시게 만들고 겨우 개경 앞까지 왔는데 척봐도 함락이 안될정도로 성이 탄탄하게 준비되어있으니(2차 침공 때 개경이 함락되고 불타서 준비를 단단히했다) 결국 거란군은 회군. 거란이 돌아가려면 반드시 귀주를 지나야 한다는걸 알고 회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근데 귀주에서 한판 붙을껄 거란도 알고 있었던듯.
ㄴ 당초 2차 때 강조가 날려먹은 것만 생각해도 예비군사단으로 우실피군 깨트린게 더 대단한거지.
이 충격적인 전투결과는 송나라에게도 큰 놀라움을 앉겨주었으며(참고로 소배압의 우피실군이 송나라와 거란의 '전연의 맹'이란 굴욕화친을 이루게 만든 거란 최정예였다.), 아편전쟁 이전의 중국에서 기마제국 제외한 자국보다 체급이 한참 작은 정착국가인 고려를 상대로 '평등외교'와 비슷한 것이 일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기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어느정도였냐면 송나라 황제가 준 하사품을 사신들이 지들 멋대로 팔고 물건도 슬쩍하고 세금에도 손대고 별 패악질을 다 부렸다 명목상 사대긴했지만 공식 외교문서에도 연호를 지 멋대로 써서 송나라에서 안받는다고 개지랄발광을 하자 그래 그럼 써줄게하고 던져줬다 근데 송 십새끼들이 요 침공때 요나라 눈치보면서 안도와줘서 할 말 없기도 했다
고려를 뒤에 두고는 똥꼬가 간질간질했던 요나라와 고려가 요나라랑 합심해서 쳐들어올까 무서웠던 송 사이에서 꿀빨았던 한반도 최대 전성기중 하나다 크 주모 여기 막걸리 한사발 주쏘!
요동지역에 있던 발해유민들도 이걸보고 '개꿀! 고려 행님 응디만 믿고 갑니다' 하면서 숙여진들 모으고 발해유민들 민심 모아서 10년뒤에 요양에서 흥요국을 세우고 발해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실제로 고려도 지원해준다고 요동으로 출동했지만 강감찬 장군니뮤가 없었던 덕인지 거란에게 개털리고 흥요국도 같이 망했다.
근데 미개한 왜놈들은 이거 끝나고 요하고 화친한 걸 가지고 고려가 이긴 건 쏙 빼놓고 요나라한테도 사대햇으니까 조선놈들은 평생 남의 종놈이라면서 자기네 식민통치 정당화하려고 우긴다.
만일 졌다면?[편집]
고려인들은 옛 만주의 발해 형제들과 함께 인공기 밑에서 짜장면 먹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최대 수혜자[편집]
단연 여진족이다.
거란의 고려침공군의 태반이 여진족을 견재하고 있던 요동주둔군이었는데 이게 3차 고려침공의 패전으로 완전히 무너져내리면서 여진족의 통합이 급격히 일어나게 되어 한세대도 안가 아골타의 완안부족 하에 '금'이라는 새로운 여진족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 그나마 이 쪽도 척준경 덕에 사대관계 치고는 꽤 온건한 관계가 됐지만. (조위총이 금나라 등에 업으려고 난리치다가 오히려 금나라가 통수치고는 고려한테 우리 잘햇지? 하고 으스대는 거 소오름.)
관악구 강감찬 축제[편집]
원래는 동단위로 벗꽃축제 뭐시기 축제 저시기 축제등으로 나뉘어있던걸 '우리 난잡하게 그러지 말고 장군님 존함을 붙여 강감찬 축제로 단일화하면 어떻겠느냐' 하는 의견에
봉천동도 신림동도 사당동도 숙연해져서 두말없이 '강감찬 축제'로 단일화 합의 봤다고 한다.
10월말은 장군님을 기리며 서울대입구에서 낙성대까지 고려 포졸복에 단독군장 차림으로 퍼레이드를 하고 있사오니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_^v
ㄴ 그러고 보니 올해(2019년) 귀주대첩 1000주년이라던데 뭐 특별한 거 안 한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