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 무역
조무위키
16~18세기 대서양의 삼각무역[편집]
- 유럽----무기---->아프리카
- 아프리카----노예---->아메리카
- 아메리카---->설탕 담배 은---->유럽
대충 이런 식으로 전개됐던 삼각무역을 말한다.
아프리카는 무기를 얻어 콩고 같은 나라들이 이때 유럽의 무기를 사용해 급성장했다.
아메리카의 경우 전염병으로 다 뒤진 원주민을 대신해 니거들이 노가다를 뛰면서 엄청난 플랜테이션 작물들과 은을 캐냈고
유럽은 그런 아메리카에서 갖고 온 작물들과 은을 사용해서 떼돈을 벌었다.
화폐로서 신용도가 매우 높은 금속인 은이 대량 유입되자 유럽에서는 화폐 경제가 엄청나게 발전했고 경제가 급속도로 활성화되어 훗날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
반면 아프리카 니거들은 유럽이 남기고 간 무기로 계속 싸워대다가 19세기에 압도적인 화력으로 밀고들어온 유럽 제국주의 세력에게 다 밟혔다.
19세기 영국 주도의 삼각무역[편집]
19세기 영국이 인도, 청나라 쪽에서 벌인 무역.
1757년 청나라의 건륭제가 갑자기 공행 무역이라는 걸 실시하면서 무역을 규제하자 영국은 씹손해를 보게 되었다.
마침 그 때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개 씹 떡상 중이었다. 원래는 인도의 면직물 산업이 우위에 있었으나, 영국이 방적기와 방직기 등을 만들어내면서 영국의 면직물 산업이 우위에 서게 되었다. 그래서 영국은 면직물을 인도에 팔고 인도는 그 대가로 은을 지불하는 형식의 무역이 성립되었다.
하지만 인도에서 많은 은을 쓸 수 있게 하려면 당시 은 보유량이 제일 많았던 청나라와 인도 간의 교역을 하게 만들어야 했다. 즉 인도가 모종의 제품을 팔고 청나라가 그 제품을 은으로 사면 인도에 은이 많아지게 되고, 그 은으로 영국의 면직물을 사서 영국에 은이 많아지게 된다 이 말씀.
그래서 인도에서 그 '모종의 제품'을 재배해서 청나라에 팔았는데 그것이 하필 아편이었다. 청나라에서는 이미 1685년부터 아편이 퍼지기 시작했고 18세기 강건성세 때도 아편 중독자가 많아서 아편 수요는 항상 많았다.
이제 영국<->인도<->청나라 무역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웃긴 건 영국은 그렇게 마약을 팔아서 번 은으로 또 청나라의 차, 비단, 도자기 같은 제품들을 샀다. 결국 청나라에 다시 은이 돌아오고, 다시 청나라의 은이 많아지면서 이 모든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 셈
영국은 중국 사치품을 실컷 누리고, 인도의 면직물 산업도 짓밟고 청나라도 아편으로 짓밟는 일석 삼조를 이루었다.
하지만 아편 문제가 심해지자 임칙서가 아편을 싸그리 모아 폐기했고, 삼각 무역을 건드린 임칙서를 본 대영제국은 혐성질을 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