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거우차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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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7월 연합군 최고의 명장이 주작한 인류역사 희대의 사기극.
중국 공산당에게는 시안 사건 못지 않은 신의 한수다.
노구교[편집]
중국 북경 풍태구와 북경 시가지근처에 영정하(永定河)라는 강이 있는데, 이 영정하 위에 있어 두 지역을 연결하는 다리를 노구교라고 한다. 이 다리는 금나라때 만들어졌는데, 당시 풍태구지역은 내몽골의 일부인 차하르성관할지였고 동쪽은 북경시가지답게 하북성관할이었다. 때문에 노구교 서쪽은 만주사변이후 내몽골지역을 점령한 좆본군이, 동쪽은 국민혁명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사건 전개[편집]
1937년 7월 7일, 좆본군은 야간훈련을 진행중이었는데, 거기서 알수없는 총소리가 들리고 한 병사가 종범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양반은 20분간 똥싸느라 종범하고 바로 부대로 돌아왔지만 좆본군은 중국군에게 좆본군을 보내 실종된 병사를 수색하겠다 빼애애액으로 반응했다. 이 요청을 거부한 중국군은 다음날 7월 8일부터 좆본군의 포격에 들어갔고 노구교도 털리게 되었다. 양측의 포격전이 한창이던 7월 11일, 현지에서 정전협상이 진행되었는데, 좆본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요구했다.
국민당은 북경내 모든 반일단체들을 뚜까패고 반일활동을 금지시킬것.
국민당은 7월 7일 사건의 모든 책임을 질 것
송철원[1]등 29군의 고위장교들은 반드시 사과할 것
그리고 좆본본진의 1차 고노에 후미마로내각은 요오시 하고 이걸 짱꼴라들이 계획적으로 무력을 사용했다고 빼애애액거리면서 언론플레이를 했고 중국대륙에 대한 전면적인 무력침공을 선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