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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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金元鳳 | |
생년월일 | 1898년 9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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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일 | 1958년 11월 |
국적 | 대한제국 → 일본 제국 → 중화민국 → 미군정 조선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출생지 | 경상남도 밀양 |
직업 | 군인, 정치인 |
표방이념 | 중도좌파 ~ 좌익 (독립운동가 시절) 좌익 ~ 극좌 (월북 이후) |
“ |
조선의용대는 조선민족해방의 선봉대로서 천백만 자기의 동포를 환기해서 조선민족해방을 쟁취하려는 것이오. |
” |
극우 세력에게는 빨갱이라고 까이지만 그가 왜 북으로 갔는지 생각해보자. (노덕술)
ㄴ 남한이 싫으면 유자명처럼 중화민국으로 이민이라도 가든지. 월북해서 간첩 양성하고 김일성한테 훈장 받은 게 그걸로 용서할 수 있냐?
ㄴㄴ 기껏 해방된 조국인데 다시 중국으로 가고 싶겠냐, 게다가 이 양반 사상으로는 당시 북한으로 가는게 나름 이해는 됨
ㄴ 김일성에게 숙청 당한 건 뭔데?
ㄴㄴ 빨갱이는 아니더라도 임정 요인들이 다 까대던 인물이다. 의열단 이후로는 딱히 뚜렷한 업적도 없고 본인의 정치적 능력도 형편없는 편이었다.
ㄴ 조선의용대 있잖아.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가 연기했다.
본래 일본 원숭이 토벌꾼이었다. 당시 백범 김구의 목에 현상금이 60만 원(지금으로 치면 300~400억)인데 김원봉은 무려 100만 원이었다. ㅎㄷㄷ
ㄴ 김원봉은 정확히 320억임. 60만원에 3~400억이면 김원봉이 오사마 빈 라덴보다 높은 거임.
오사마 빈 라덴 이전까지 세계에서 최고의 현상금을 가진 현상범이었다고 한다.
KBS에서 드라마로 만든다고 한다.
8월 종파 사건을 계기로 숙청되고서 탈북을 시도하다가 걸리는 바람에 정치범수용소에 들어갔고 거기에서 생을 마감했다 카더라. 그래도 북한(8월 종파 이후)이 병신인 건 아는 모양.
그래도 ㅈㄴ 불쌍한건 맞다 해방하고 귀국하니까 왠 안경잡이 친일파 새끼한테 빨갱이라며 ㅈㄴ까이고 거기서 다른 안경잡이 빨갱이한테 꼴려 이북으로 가니까 왠 돼지새끼가 전쟁하자면서 설처대고 거기서 나마 조선로동당 일을 했지만 권력에 눈깔이 돌아간 돼지새끼가 숙청하면서 망했다
생애[편집]
밀양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엔 서당을 다니다가 초등학교를 일본 순사가 가르치는 곳으로 가게 된다.
어릴 적에 3.1운동이 일어났는데 김원봉은 항의의 뜻으로 일장기를 모두 변소에 처박아버렸고 이 사건으로 퇴학 당했다. 더불어 3.1운동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하는 것을 보고 무장 투쟁의 노선으로 방향 잡았다.
성인이 되어서 만주와 중국에서 독립군, 신흥무관학교 생활 등을 거치며 무장 투쟁 노선을 걸었고, 길림성에서 1919년 11월에 의열단을 창단하여 수많은 일본 군인, 외교관, 충일파들을 처단했다.
조선총독부, 종로경찰서, 부산경찰서, 조선식산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파 사건은 전부 의열단의 작전이었다. 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는 폭탄이 불발되어서 실패로 끝났다.
창단 초기 13명은 광복 때까지 단 한 명도 배신하지 않았다고 한다.
의열단 이후로 조선의용대를 조직했는데 문제는 조선의용대 부하들이 전부 배신 때리고 몇백 명도 안 되는 본대만 홀랑 남아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흑화를 했는지 원래 그랬는지는 몰라도 임시정부 폐지 운동을 하거나, 임시정부에 가담한 뒤에도 지휘권을 달라고 고집을 부려서 임정 네임드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당장 지청천, 조소앙, 김구, 장준하 등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찬양하는 인사들도 김원봉을 까지 않은 인물이 거의 없다.
미군의 핵폭탄 두 방으로 꼬리 내린 원숭이들 때문에 광복을 맞이하면서 조국으로 돌아오지만 일제의 감시 때문에 너무 조용히 살았던 탓인지 금의환향은 못했다.
「원봉은 이후 임시정부와 결별하고 민주주의 민족전선 의장이 돼 반탁(反託)에서 찬탁(贊託)으로 입장을 바꾼다. 그 과정에서 전평이라는 공산당어용노동조직이 일으킨 총파업을 배후에서 지도했다는 혐의로 1947년 3월 22일 경찰에 체포됐는데 참을 수 없는 수모를 당했다. 일제 때 악명 높았던 노덕술이라는 형사에게 사흘간 갖은 고문을 당하고 풀려난 것이다. 김원봉은 “내가 조국 해방을 위해 중국에서 일본놈과 싸울 때도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았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악질 친일파 경찰 손에 수갑을 차다니 이럴 수가 있느냐.”라며 사흘을 광광 우럭따. 김원봉은 결국 남한을 떠나서 1948년 4월 9일 가족과 함께 월북했다. 그는 북행(北行)을 염려하는 이들에게 “북한이 그리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남한의 정세가 매우 나쁘고 나를 위협해 살 수가 없다.”라는 말을 하셨다. 이때 월북의 계기가 따르던 여운형 선생의 암살 당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월간조선 2016년 10월호 / 글=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3&nNewsNumb=20161021751&nidx=21752
이것 때문에 북으로 넘어갔다. 정치적 감각이 꽤 낮은지 임정과 결별하고도 한민당은 물론, 이승만 라인에도 붙지 않고 독자 노선(이라고 할 게 있는지도 애매하지만)을 걸었던 것이 패착이라면 패착이었다. 친일파 때문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애당초 당시 임정 라인이든 좌익 라인이든, 심지어 북한이든 친일파를 쓰지 않은 곳이 없었다.
1956년 8월 종파사건 이전만 해도 북한은 여러 파벌이 권력을 나눠가진 형태였고 김일성의 독재 체제가 절대 아니었다. 아나키스트 김원봉 입장에선 자유당이나 한민당 라인보다는 사상 방면도 경제적으로는 비슷하고 권력 독재도 덜한 북한으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워낙 전설적인 인물이라서 고위직에 앉아 북측에서 편하게 사는가 했더니 김일성이 자기 자리 뺏기기 싫어서 김원봉과 그의 먼 친척이었던 김두봉을 함께 숙청해버렸다. 열 받은 나머지 옥 중에서 자살했다고 하는데 북한 이야기라서 진위는 알 수 없다.
썰전 129회 중 강용석 왈
“ |
김원봉 선생의 여동생이 우리나라에 있는데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는데 김원봉 선생의 월북 경력 때문에 안 됐어요. |
” |
“ |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의 독립유공자 신청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 체제 경쟁이 이미 끝난 상황에서 독립유공자를 이념에 따라 구분하는 것은 의미 없고 철 지난 행동이다. |
” |
뭐 이런 개소리가 다 있노. 북한이 망했냐? 하다못해 북한하고 평화롭게 민간 교류라도 하고 있나? 아니면 정반대로 대한민국이 헌법을 뜯어 고쳐서 북한을 국가로 인정했냐? 뭔 체제 경쟁이 끝나? 대한민국이 포용 가능한 범위는 북한 정권에 참여하지 않은 좌익 독립운동가까지다. 이런 나이브한 생각이나 가지고 있으니 북한이 미국까지 가는 미사일 개발할 때까지 헛소리나 하고 앉았지 ㅉㅉ
사실 월북 경력 + 한국전쟁 참여 때문에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통일 후의 분위기가 훈훈해진다면 받을 가능성이 가장 크긴 하다. 먼 훗날에 북괴가 망하면 인식이 변할 거라는 기대는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렇다고 하더라도 일단 한국전쟁 참전논란 때문에 정치적 충돌이 여러번 있을것이 확실하며 한국전 참전을 제외하더라도 임시정부를 적대하던 인물인 것도 있다.
좌빨들의 망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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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모두 보배드림에게 적용되는 틀들
좌배드림에서는 김원봉을 백선엽 장군과 비교하며 친일을 하면 영웅 대접을 받고, 독립운동을 하면 인간 말종으로 취급당한다며 말도 안 되는 개논리로 선동질을 하고 있다.
물론 북에서 김혹부리 씹새끼 때문에 숙청당한 건 맞다. 게다가 탈북 시도하다가 요덕으로 끌려갔으니 북한이 병신같은 수준이 아닌 아예 병신인 것 자체는 아는 모양이다.
그와중에 제일 중요한 6.25 전쟁때 김원봉은 가장 앞장서서 남침하고 남한에 빨치산 남파작전 직접 주도한거랑 김일성한테 6.25 전쟁 공로로 로력훈장을 제일 첫빠따로 받은 내용은 쏙 뺀거봐라 ㅋㅋㅋㅋ
그리고 빨치산 토벌이 어떻게 민간인 학살이냐 ㅋㅋㅋ 그때 김원봉이 보낸 빨치산놈들이 하던 짓이 바로 민간인 학살이었는데 ㅋㅋㅋㅋ 주작이 없으면 좌좀을 못해요~
솔직히 백선엽의 친일활동은 명백히 잘못된 것은 맞지만 김원봉의 북괴 참천도 명백히 잘못된 행위이다. 따지고보면 한명은 친일했는데 6.25에서 국군으로 참전했고 한명은 독립운동 했는데 6.25에서 인민군으로 참전했는 지라 여기서 보면 극과 극이지만 둘다 평생 까임권과 까방권이 있는건 명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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