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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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1894년~1895년 (청일전쟁) 동안 얼렁뚱땅 이루어진 개혁. 1895년에 이뤄진 개혁은 을미개혁이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칭하기도 한다.
추진 기관은 군국기무처이고 책임자는 최후의 영의정이자 최초의 총리대신이었던 김홍집으로, 최초로 성공한 조선의 근대화 개혁이다.
생각보다 자주적인 개혁[편집]
일본이 시킨 거라서 자주성이라곤 좆도 없어 보이지만 초기에 일본은 청일전쟁 하느라 바빠서 김홍집 내각의 자율적인 개혁이 가능했다. 물론 일본인 고문과 군사교관을 초빙하고 조선에서 일본 화폐의 유통을 허용하고 방곡령도 금지하는 등 타율적인 면도 분명히 있고 간섭도 있었지만(애초에 없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일본이 시킨다고 죄다 수용한 건 아니었다.
애초에 씨발 당시 좆본이 조선 내에서 끼치는 마수가 어느 수준이었는데 누가 개혁했어도 좆본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지. 한계? 무슨 답정너냐? 검머외랑 박영효가 일으킨 갑신정변 같은 건 미화하고 왜 조선의 병폐를 대부분 쓸어버린 갑오개혁은 한계냐?
김홍집이 잘못한 일은 운이 아주 나빠 구한말 조선에서 태어난 것뿐이다. 그리고 단발령이 민족 혼을 조진다고 국뽕 심하게 빠는 주장이 통용되는데 좆달린 놈이 장발하면 위생적으로 나쁜 건 사실이다.
사실 일본 주도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일본은 김홍집의 집권을 도왔을 뿐, 생각보다 자주적인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김홍집 스스로도 조선을 일본식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일본의 도움을 받은 것 뿐,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일본에게 빌붙은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김홍집은 온건개화파에 속하는 인물로 일본에 친화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누가 해도 좆본의 간섭 받았을 거 그나마 자주적으로 해낸 것만 해도 업적이다.
내용[편집]
1차(1894년 7월)[편집]
- 신분제 폐지
- 한국의 전근대 면모를 보여주던 조선 최악의 악법을 이때 비로소 없앴다. 이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
- 의정부 6부를 8아문으로 개편
- 청나라 연호 광서(光緖)를 폐기하고 개국 기년 도입
- 개국 기년은 조선이 건국된 1392년을 원년으로 하는 기년법으로 거의 1000년 만에 중국 연호를 철폐했다.
- 연좌제 폐지
- 누군가의 잘못으로 그 일가와 친척들까지 처벌받는 연좌제를 금지했다. 하지만 행정력이 거의 닿지 않는 곳에서는 암암리에 이루어졌고 일제강점기에 부활했다가 1980년대에 다시 폐기되었다.
- 조세 제도를 금납제로 통일
- 기존에는 무명, 쌀, 베 등 작물을 세금으로 냈으나 개혁 이후 화폐로 지불하게 했다.
- 과거제 폐지
- 썩어 문드러진 과거제를 폐지하고 시험으로 공무원을 선출하기 시작했다.
- 도량형 통일
- 기존의 난립하던 도량형을 통합했다.
- 은본위제 실시
- 경무청 설치 - 근대식 경찰기관이다.
- 조혼 금지
- 문벌 폐지
- 과부 재가 허용
2차(1894년 12월)[편집]
- 23부제 도입
- 기존의 팔도를 23부라는 행정구역으로 개편했으나 탁상행정으로 불편한 점이 많아지자 1896년 23부는 폐기되고 13도제가 실시되었다.
- 존칭 변경
- 청의 간섭이 종료됨되면서 '전하'는 '폐하'로, '저하'는 '전하'로 승격시켰다.
- 의정부를 내각으로 바꾸고 8아문을 7부로 개편
- 내각이 들어섬에 따라 근대적 정치 체제가 조선에 자리잡았다.
- 재판소 설치
- 지방 수령들의 재판권을 박탈하고 재판소에서 재판하도록 하였다.
- 훈련대·시위대 설치
- 한성 사범 학교 설치, 교육 입국 조서 반포
중요성[편집]
한국사에서 근대와 전근대(혹은 근세)를 나누는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다.
역사 공부하면 그냥 지나가다 나오는 하나의 정책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사건은 구한말에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이다. 막말로 한일합병보다 더 큰 사건이라 해도 무방하다. 어차피 한일합병은 당시 이미 90% 식민지 상태라서 의미 없었다.
실제로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신분제와 수백 년 동안 내려온 과거제, 유교 사회를 이 사건 한 번으로 타파하는 등 모든 분야에서 전면적이고 파격적인 개혁이 진행되어 기존의 지배 질서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너뜨렸다.
이후[편집]
그러나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으로 김홍집을 비롯한 친일 내각이 붕괴하였고 고좆은 러시아를 끌어들인다는 병신짓으로 개혁이 후지부지 되어버린다. 이 시점에서 이미 조선의 운명은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다. 고좆의 병신짓으로 러시아 아니면 일본 둘 중 하나에게 먹힐 운명이 되어버린 것이고 러일전쟁 때 일본이 이기면서 일본에게 먹힌 것이다. 그래도 김홍집 내각이 이미 이루어놓았던 신분제, 과거제 폐지 등의 광범위한 정책은 되돌릴 수 없게 된다.
문학계에서도 이 이전 문학을 고전 문학, 이후 문학을 현대문학이라고 칭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일제강점기 이전을 고전문학, 이후를 현대 문학이라고 나누는 사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