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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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에 있는 운하로 지중해와 홍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총 길이는 192km로, 운하 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손꼽힐 정도로 해운업에 큰 영향을 미친 운하이다.
효과[편집]
이전까지는 바다를 통해 유럽에서 아시아로 갈려면 아프리카 서부 해안을 쭉 따라서 희망봉을 지나 인도양을 한참 지나가야 했다. 하지만 이 운하 덕분에 더이상 기나긴 아프리카 해안을 통과해야 하는 뺑뺑이를 할 필요가 없어져서 통행시간이 매우 단축되었다.
지구 온난화로 수에즈 운하보다도 더 길이가 짧은 북극항로가 주목받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북극항로는 아무 배나 지나갈 수 있는 바다가 아니므로 한동안은 수에즈 운하가 자신의 존재의의를 위협받지 않을 것이다. 당장 수에즈 운하 길막 사고가 터지니까 난리가 벌어진 걸 봐라.
건설 과정[편집]
지금 쓰고 있는 운하는 프랑스의 외교관 페르디낭 드 마리 레셉스의 주도로 1869년에 만든 것이지만, 그 전에도 운하의 필요성은 계속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 때부터 지속적으로 건설 시도가 있었다. 처음으로 수에즈 운하를 건설 시도한 파라오는 세누스레트 3세였다.
이집트 파라오들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후일 이집트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가 마침내 완공시켰다. 하지만 이 운하는 지속적인 침니(沈泥) 현상으로 막히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일어나 그때마다 다시 물길을 파야 했다. 그러다가 767년 아바스 왕조 시절에 일어난 반란을 막는 과정에서 완전히 막혀버렸다.
그러다가 오스만 제국령 이집트 총독인 메흐메트 알리와 친분이 있던 레셉스가 총대를 매고 운하 건설을 시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영국의 집요한 방해 때문에 운하 개통은 공사를 시작한 지 10년 후인 1869년 11월 17일에야 이뤄지게 된다.
운하 소유권[편집]
원래는 프랑스 주도로 만든 것이니만큼 프랑스가 99년간 운영권을 갖고 이후 이집트에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2년 후 프랑스는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에게 쳐발리면서 프랑스가 더이상 이집트를 지원해 줄 여력이 없어져 버리자 이 운하는 영국에 매각된다. 프랑스가 죽 쒀서 영국 준 꼴이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한 이유가 영국이 당시 동맹국이었던 일본을 위해 러시아 발트 함대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서라는 말이 있는데 그건 잘못 알려진 사실이고 실제로는 러시아 함대가 당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기에는 너무 체급이 컸기 때문에 못 지나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에르빈 롬멜이 이끄는 독일군이 수에즈 운하의 차단을 시도했으나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실패했다.
종전 후 1956년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한다. 운하를 순순히 넘겨줄 생각이 없었던 영국은 프랑스, 이스라엘과 함께 수에즈를 침공했으나(2차 중동전쟁), 이집트를 지원하던 소련의 핵폭격 협박과 더불어 감히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전쟁을 일으켰다며 소련이 뭔짓을 하듯 안 도와주겠다는 미국의 압박이 함께 들어오자 깨갱하고 수에즈 운하를 포기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