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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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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좆퇴물입니다!!

오래 전 퇴물이 됐거나 진행 중인 대상에 대해 다룹니다.
이딴 새끼들은 고민하지 말고 한시라도 빨리 갖다 버립시다!!
다만 대상이 각성하여 예토전생 할 수도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폴리스 중 한 곳이다.

현대 그리스의 수도이기도 하다. 인구는 70만명 정도이다.

그리스의 정치는 아테네의 중심으로 흘러갔다 해도 무방하다.

상징은 올리브 나무, 이름의 유래는 당연히 아테나에게서 따왔다

정치/역사[편집]

고대 그리스 시절[편집]

처음에 왕정이었다가 소수 지배층이 다스리는 귀족정으로 바꾼다.

시간이 흐르고 군머 중 일종인 중장 보병이 등장하는데 폴리스에 사는 국민들이 사비로 지불했다고 한다.

소수 지배층 정권인 귀족정에 반발하여 평민들이 장치적 요구를 하는데 솔론이란 사람이 재산에 따라 참정권을 분배하는 금권정치를 내세운다.

뭔소리냐 돈이 많을수록 표수를 준다는 말이다. 당연히 평민들은 더욱 반발하였고 귀족들 역시 평민에게 정치적 참여권을 주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그러다가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책(독재)을 실시했는데 이게 아니꼬왔던 반대파들이 어떻게해야 이 패거리를 몰아낼지 고민하던 중 그 당시 스파르타가 신탁을 하러 델포이로 간다는 소리를 듣고는 델포이의 신녀에게 달려가 스파르타가 신탁을 묻는다면 아테네를 해방 시키라는 답을 주라고 구워삶았다. 존나 순수했던 스파르타인들은 이 신탁을 듣곤 그런갑다하고 득달같이 아테네로 달려가 페이시스트라토스 일가를 몰아냈다. 이 당시 이미 페이시스트라토스는 뒤지고 그의 아들 히피아스는 재빨리 페르시아로 튀었다.

이렇게 해방된 아테네는 여기저기 찝적거리다가 지금의 터키 지방에 사는 같은 민족인 이오니스 족이 페르시아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켰단 소리를 듣곤 페르시아가 뭐지 시발? 엥? 히피아스 도망간 데 아니냐라는 논리로 득달같이 달려가서 숟가락을 올려놓으려 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돌아온 페르시아의 군대가 반란을 진압하게 되면서 제대로 찍히고 다음 타겟으로 선정됐다. 당시 페르시아 왕이던 다리우스는 그 유명한 흙과 물 사절단을 그리스에 쫙 돌리고 테베 등의 도시는 여기에 응했지만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사절단을 우물 속에 던져버리며 그 안에 둘 다 있으니 알아서 가져가라고 말한다. 이에 다리우스는 1차 정벌을 시작했는데 마라톤에서 깨지고 뒤진다.

세월이 흘러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2차 정벌을 시작했는데 테르모필레 전투 살라미스 전투 에서 Burn Burn 히 말리면서 리타이어 했다. 근데 전쟁 중에 페르시아 군이 아테네 시를 박살냄 ㅋ 전쟁 이기고 시민들이 도시로 돌아왔을 때 남은 거라고는 부서진 잔해 쪼가리 ㅋ 였는데 이 쪼가리가 역사를 뒤바꾼다.

전후에 스파르타는 아테네에게 겐세이를 넣었는데 테미스토클레스는 지도자인 자신이 스파르타에 가서 시간을 끌테니 남아있는 시민들은 씨발 스파르타가 쳐들어와도 버틸수 있게 아테네를 둘러 성벽을 쌓으라고 지시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출발하자마자 시민들은 예의 잔해 쪼가리를 주워와서 닥치는 대로 쌓기 시작했고 불과 세달만에 아테네를 두르는 성벽을 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성벽이 지어졌다는 소식을 듣곤 테미스토클레스에게 뭐냐고 따졌는데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럴리엄따 나랑 같이 가서 확인해보자 하면서 아테네로 데리고 간다. 물론 아테네에 가자마자 테미스토클레스는 통수를 치고 쨌다. 시간이 지나니 아테네 시민들이 생각하기에 적들이 성벽을 포위해버리면 좆될거 같다는 걸 깨닫고 아테네의 외항인 페이라이에우스 까지도 앞뒤로 성벽을 올린다 ㅋ 이 성벽은 침략자 입장에선 존나 암덩어리가 됐고 이후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이 30년이나 이어지는 원인이 된다.

아테네가 전쟁에서 승리하자 평민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승리한 것이니 참정권을 달라 요구한다.

그러자 페리클레스가 민회기능강화와 관직추천제를 실시하게 되는데 알다시피 여성, 노예 외국인 등은 안됐다.

그러다 중우정책으로 흘러가며 점점 민주정책이 쇠퇴하고 그리스 내 아테네 중심 세력인 델로스와 스파르타 중심 세력인 펠로폰네소스의 갈등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터지는데 스파르타가 이겼다.

ㄴ 아 시발 펠레폰네소스 전쟁 문서 없어서 이어서 쓴다. 페르시아 전쟁 끝나고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으로 대표되는 해상 세력으로 부상하고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일대를 통합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이라는 군국주의 국가로 나아간다. 아테네가 확장을 시도하면서 지근거리에 있는 코린토스와 티격태격 거렸는데 이 코린토스는 옆의 테베와 같이 스파르타에게 중재를 청하였고 스파르타가 엣헴엣헴 거리자 아테네는 좋게좋게 쇼부치고 갈길을 갔다. 그러나 때마침 스파르타의 국가소유 노예들인 헬롯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처음엔 파워후 주인니뮤들이 짓밟아버릴거라 예상했지만 씹정예병략만 키우는 스파르타가 인력이 부족하여 질질 끌게되자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해방시켜줬던걸 상기시키며 아테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아테네는 상당한 규모를 파병했는데 스파르타에게 이는 엄청난 숫자였기에 이거 이 새끼들이 우릴 도와준게 아니라 통수를 치려온거다 라고 짐작해서 싹 다 꺼지라고 했고 이때부터 두 국가 사이의 불신은 싹트게 된다.

이렇게 양대 강국간의 불신이 전쟁으로 비화하는 기폭제가 된 사건은 케르퀴라 분쟁이었다. 케르퀴라는 아테네의 경쟁자인 코린트의 식민도시 였는데 이 곳 시민들은 모국인 코린트에 불만을 품고 독립모의를 했고 이 과정에서 아테네에게 도움을 청했다. 민회에서 갑론을박이 오간 가운데 결국 파병이 결정됐고 아테네가 여기에 파병하자 코린트는 스파르타에게 가서 도움을 청했다.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맹주로서 스파르타는 집합을 때렸고 여기서 코린트는 이웃국가인 테베와 함께 이번에는 말로할 때가 아니다. 이번에 스파르타가 뭔가 보여주지 않는다면 탈퇴하겠다라고 선언하자 스파르타는 전쟁을 결심하고 아테네로 진공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성벽이 무너지질 않고 장기전으로 가면서 전쟁은 늘어지게 된다. 양국은 각자의 수도를 따먹기보다는 팔다리를 잘라놓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그렇기에 전선은 그리스 곳곳으로 퍼지게 된다. 스파르타 앞바다와 보이오티아 일대 마케도니아 일대 그리고 지중해의 섬들까지 망라된 이 전쟁에서 그리스 세계는 좆망을 향해 달려나간다. 한편 아테네는 좁은 성벽 안에 사람을 밀어넣으니 역병이 돌게되어 국내적으로도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꿋꿋이 전쟁을 수행했다.

스파르타는 스팍테리아 섬에서 자신들이 최강이라 자부하던 육군이 무너지는 걸 보고 위기감에 휩싸여 동족인 도리에이스 족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급기야 페르시아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한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아테네는 사전예방을 위해 자신들이 벌인 이때까지의 어느 원정보다도 거대한 규모의 원정군을 도리에이스 족들이 살고있는 시칠리아로 보낸다. 물론 원정 명분은 시칠리아 내부에서의 도움 요청이라고 둘러댔다.

ㄴ 아테네와 델로스 동맹의 모든 병력을 끌어모아 수만 규모의 대군이었다.

로마 시절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를 싸잡아 마그나 그라이키아 지방이라 불렀는데 대 그리스 지역이란 의미인만큼 꿀땅이었던 곳이었다. 처음에아테네를 불러들였던 세력들이 아테네의 본심을 간파하고 시칠리아 제 세력들이 동맹을 맺고 대항하기 시작하였고 아테네는 분전하였으나 여기서 짐으로써 아테네의 육군은 사실상 와해되고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게 된다.

이 원정의 실패는 살아돌아간 자가 없었기에 아테네에 한 동안 알려지지 못하였는데 한 이방인이 아테네에 와서 이발을 하며 혼잣말로 아테네는 시칠리아에서 망하고 나서도 멀쩡하구나 라고 뇌까리는 걸 듣고 이발사가 이 사실을 아고라에 가서 소리를 지름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처음에 시민들은 말도 안된다며 이발사를 유언비어 유포죄로 모가지를 땄으나 이내 그것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도시가 패닉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 더해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의문의 1승을 거둔 스파르타가 설상가상으로 페르시아로부터 자금지원을 통한 해군 창설을 시작하며 아테네 함선에서 노를 젓던 노꾼들을 더 나은 임금을 제시하며 빼가기 까지하자 아테네는 즉시 민회를 소집하여 군 재건에 박차를 가했다 신전에 입힌 금을 녹여 군자금으로 쓰는가 하면 노예들이 노꾼에 지원하면 해방시켜줌을 대가로 새 노꾼들을 모집했다.

어찌해서 아테네 해군은 재건에 성공하여 숙련된 지휘관 아래 스파르타의 해군을 꺾는데 성공했으나 전투 직후 폭풍으로 인해 물에 빠진 생존자들을 구조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전사자의 가족들이 민회에서 지휘관을 처형할 것을 의결하여 숙련된 지휘관들이 죄다 사망하게 된다.

이와 별개로 나머지 아테네의 육군은 간을 보다가 아테네가 불리해지자 슬슬 발을 빼려하는 델로스 동맹국들을 조지고 있는 중 이었는데 이 육군이 빠져나간 틈을 타 아테네 내부의 과두정파들이 역모를 기도하여 이것이 성공하게 된다. 아테네의 새 과두정은 원정군들에게 돌아올 것을 명령하지만 이들은 거부하고 아테네에서 과두정은 군을 통제하지 못하여 무너지게 된다. 하지만 이미 아테네의 국력이 너무나 소모된 뒤였고 몇번의 발악 끝에 결국 스파르타의 뤼산드로스가 이끄는 함대가 외항인 페이라이에우스를 봉쇄하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게 된다.

스파르타는 전쟁에서 승리하여 그리스 전체의 패권국으로 등극하지만 이미 그리스 전역은 전쟁으로 인해 쑥밭이 됐고 스파르타 자신들도 막대한 피해를 입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스파르타의 국가구조 자체도 넓은 지역을 정복하고 유지하는데에 있어서 전혀 도움이 안되었기에 전후 몇달도 지나지 않아 스파르타가 세운 아테네의 괴뢰 정권이 무너지고 이후 보이오티아 연맹을 주도하는 테베가 스파르타를 거역하여 전쟁이 발발한다.

당시 테베군의 수장 에파미논다스는 팔랑크스 종대의 병사들이 왼손에 들고있는 방패에 의지하고 밀착하려 하는 경향으로 인해 종대가 진격하면서 좌측이 앞서 나가고 우측이 뒤쳐지는 현상을 응용하여 모든 종대를 같은 인원으로 구성하지 않고 적의 전열과 가장 마지막에 접촉하는 우익에 속한 종대의 인원들을 빼서 좌측에 투입하고 일반적인 16x16 으로 구성되는 좌측종대에 16x50으로 편성하는 올인도박러쉬를 감행한다. 그의 계산상으로 50겹의 보병이 존내강한 스파르타 보병을 질량으로 짜부라트리고 그대로 돌파하여 포위기동에 들어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였고 이는 정확히 아다리가 맞게되어 스파르타는 좆발리게 된다.

패전 후 스파르타 왕은 심한 부상을 입고 돌아왔지만 여기서도 스파르타 인들은 왕에게 그니까 병신아 맨날 싸우던 방식으로 싸우니까 적이 간파하고 날빌을 가지 어휴 ㅂㅅ ㅉㅉ를 외쳤다. 그리고 왕은 부상이 도져서 그만 뒈져버린다.

ㄴ 스파르타는 왕정국가 였지만 실질적으로 군국주의이며 왕이 2명 이었고 별 권한이 없었다. '에포로스' 라고 불리는 감독관들이 더 권한이 많았다. 일종의 1차대전기 독일제국이랑 비슷하다. 카이저는 얼굴마담이고 실권은 군부 수장이 가지는 그런 모냥새 ㅇㅇ. 그리고 그걸 떠나서 전투에서 졌으면 죽는게 스파르타식 명예지 왕이라고 살아돌아와봤자 반겨주는 거 없었다.

이후 테베는 보이오티아 연맹의 맹주로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이내 알렉산더가 다스리는 북쪽의 마케도니아가 남하하여 전 그리스를 점령하게 된다.

중세와 근대[편집]

이전의 명성은 없었지만 동로마 제국오스만 제국 치하에서도 그리스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였다. 이후 그리스 독립전쟁이 발발했을 당시에 독립군들의 정치적인 본진이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