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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 long as there is a life, there is hope-
  (살아 있는한, 희망은 있다)

위의 글은 부평성모병원에서 채택한 글귀로도 유명하다.

대머리 고대 로마인

글만 잘 썼지 실상은 기회주의자 정치인.

이빨만 잘 까는 아가리 파이터란 점 때문인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선 똑같은 포지션인 데모스테네스[1]와 함께 나온다.

젊어서는 이빨을 잘 까서 변호사로 크게 성공했고, 그 기반으로 정계에 진출한다.

처음엔 베레스라는 작자가 시칠리아에서 쩔게 가렴주구한 걸 맛깔나게 탄핵해서 명성을 얻었고[2] 명예로운 경력을 밟아나간다. 이후 관직을 두 번 정도 더 거친 후 로마 정치의 꽃인 집정관 선거를 염두해 두게 되는데, 이 때 신참자라는 자신의 신분을 보완하기 위해 파트리키(고명한 귀족 출신)인 카틸리나에게 접근하지만, 오만했던 카틸리나의 태도 때문에 실패하자 선거 전략을 수정한다.

카틸리나는 집정관 자리를 계속 노리고 출마했으나 연속으로 물을 먹은 탓에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궁지에 몰린 상태였고(이는 당시 로마의 선거가 돈지랄로 승부를 보는 경향이 컸기 때문이었다. 집정관 정도의 거물급 자리에 당선되려면 원로원 내의 유력 파벌과 연계하는 것 외에도 유권자들에게 돈을 뿌리고, 각종 공공행사에 투자를 해 이름을 알려야 했다. 근데 이런 돈은 전부 후보자 본인의 부담이었다. 카틸리나는 고명한 귀족 가문 출신이긴 했지만 그의 대에는 가세가 이미 크게 기울었고, 이런 상황의 그에겐 연속 낙선은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이에 채무를 전액 탕감하겠다는 과격한 공략을 내걸었는데, 이에 위협을 느낀 원로원 내 보수파들이 카틸리나 대신 신참자지만 자신들의 뜻을 대변하는 키케로를 밀어준 것이다.

카틸리나가 국가 전복을 꾀한다는 소문을 퍼지는데, 당시 수석 법무관이었던 카이사르는 확실한 증거도 없고 로마법상 로마 시민을 재판없이 사형에 처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그 대신 국가 전복 혐의를 받는 이들을 이탈리아 도시로 종신 추방하고, 그 비용은 압수한 그들의 재산으로 충당하자는 안건을 제출했다. 이는 서양 역사상 최초로 사형을 종신형으로 대신하자는 기록이다. 그리고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더라도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선의였다.'고 곱씹어볼 말도 남겼다. 하지만 공을 세우고 싶었던 키케로와 소 카토의 주장이 너무 강해서 결국 '원로원 최종 권고'가 선포되어 핵심 인물 5명이 체포, 처형되었고 카틸리나와 그 지지자들은 갈리아로 도망치다가 추격해 온 군에 포위되어 전부 몰살당했다. 카틸리나가 채무 전액 탕감이라는 과격한 공략을 내걸고, 유권자들이 그에 호응한데에는 공화정 말기 당시 로마에서는 경제적인 문제가 굉장히 컸는데(병사로 징집된 자영농들이 오랜 전쟁으로 인해 농사를 지을수가 없어 본인 소유의 땅을 헐값에 상류층에게 매각->상류층은 노예들을 동원해 라티푼디움이라는 대규모 농장을 경영+자영농들은 전부 땅을 잃고 도시 빈민으로 전락)정작 원로원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해결에는 손을 놓았기에, 비록 조국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수여받았으나 키케로는 집정관 은퇴식을 할 때 폼페이우스 파 호민관 네포스의 거부권 행사에 시큰둥한 일반 대중들의 태도로 관례적인 은퇴 연설도 못하고 떠나야 했다.

그리고 이 때 즈음 한 때 키케로의 무리였다가 사이가 크게 틀어진 귀족 푸블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로마의 귀족 가문중에서 명문인 클라우디우스 가문에서도 명문이다)가 재판없이 로마 시민을 처형한 자를 추방시키자는 안건을 제출하기 위해(즉, 키케로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호민관 자리를 노리고 평민의 양자로 들어가려고 했다. 키케로는 자신이 권한을 주어 카틸리나 일파를 일소한 동료 집정관 히브리다가 권한 남용으로 고발을 당하자 파급력을 염두에 두고 변호에 나섰으나 패소했다. 그런데 상황의 압박에 견디지 못했던 탓인지 카이사르를 위시한 삼두(이때 이미 삼두정치가 구성된 상태였다)를 거론하며 공격하자 최고 제사장이었던 카이사르는 키케로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푸블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란 귀족이 평민의 양자로 입적되는 걸 최고 제사장의 권한으로 승인했다. 푸블리우스는 이후 평면의 2작명법으로 이름을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로 바꾸었고, 바라고 바라던 호민관 자리에 선출되자마자 바로 재판 없이 로마 시민을 처형한 자를 국외추방시킨다는 법안을 제출하여 통과시킨다. 이에 키케로는 정치적 몰락을 피하기 위해 이 판결 전에 로마를 떠났으나, 반대파들은 궐석으로 유죄 판결을 내려 키케로의 정치 생명에 사형선고를 내렸다.(이후 키케로는 두 번 다시 지위를 회복하지 못했다)

이후 정세의 변화로 귀국하게 되지만 갈리아 총독 임기가 끝나가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를 끌어들인 원로원 내 보수파들의 대립이 격화되면서(삼두 중 완충지대였던 크라수스가 카르헤 전투로 전사했고, 폼페이우스에게 시집간 카이사르의 친딸 율리아가 세사상을 떠난 것도 큰 이유였다) 어느 편에 설지 간을 보다가 히스파니아에서 카이사르가 고전한다는 소식을 듣자 폼페이우스 쪽에 붙는다. 하지만 폼페이우스 파 원로원 의원들은 신참자인 키케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가시방석 나날을 보내던 중 파르살루스 전투로 폼페이우스가 대패하면서 궁지에 몰렸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관용을 베풀어 반대파들을 전부 사면해줬고 원로원 의원직도 유지시켜줬기에 키케로도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기원전 44년에 카이사르가 자신의 지지자 300여명을 원로원 의원으로 만들고(여기엔 속주 출신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때만 해도 속주민들은 멸시를 받았고 키케로도 이런 시선에선 예외가 아니어서 원로원이 더럽혀졌다고 비난했다) 이들의 지지를 발판 삼아 종신 독재관에 취임하자 카이사르 암살파들이 그를 찾아왔고 이들은 암살을 거행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소위 '공화파' 인사들은 명분도, 재력도, 힘도 없었다. 카이사르 암살 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곧바로 최고 자리를 차지해버렸던 데다가 거물급 반 카이사르파 인사들은 이전 탑수스 전투 때 대거 전사하거나 항복해버린 후라 암살자들 중 고위급 인사는 하나도 없었다.(공화정 시기의 로마에선 집정관 취임여부로 군 지휘권의 순서가 달라질 정도로 매우 중요한 직책인데, 암살파들 중에서 집정관 경험이 있던 자는 트레보니우스뿐이었고 그나마도 보결 집정관이었다.) 키케로가 암살자들 중 한 명인 카시우스와 함께 안토니우스를 안 죽였다는 데에 한탄했다지만 그나마 안토니우스가 있었기에 죽음을 면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로마로 군대를 끌고 온 레피두스에 의해 전부 죽은 목숨 확정이었다.

정국이 안토니우스를 중심으로 아슬아슬한 상태를 유지하는 이 시점에 카이사르의 양자였던 옥타비아누스가 정계에 입문한다. 키케로는 애송이 옥타비아누스를 이용해 군대를 이끌어 안토니우스를 제거한 후 옥타비아누스도 제거할 생각을 품고 그를 지원하게 되는데 옥타비아누스는 나중에 그가 보여준 행보를 생각하면 알 수 있듯이 정치 능력으로는 이미 만렙을 찍은 상태였다. 옥타비아누스는 이런 키케로의 노림수를 꿰뚫어보고 카이사르파의 대표자가 되겠다는 자신의 목적에 그대로 이용했으며, 예전의 지위를 되찾고 싶어하는 키케로의 속마음까지도 간파하여 키케로와의 연합에 공을 들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모든 원로원 의원들이 키케로의 방식에 동의하진 않았다) 키케로 자신의 평가와는 달리 그다지 정치력이 뛰어난 인물은 아니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애송이라고 무시한 옥타비아누스의 손바닥에서 놀아난 격이었다. 최고 지휘권을 받은 옥타비아누스는 무티나 전투에서 안토니우스와 회전을 벌여 그를 패배시켰는데, 이걸 자신의 계책이 성공한 것이라고 여긴 키케로는 데키무스 브루투스에게 지휘권을 넘기라고 옥타비아누스에게 요구했으나 눈엣가시 같은 자신을 원로원파가 봐주는 게 자신에게 군 지휘권이 있기 때문인데, 그 군대를 해산하면 정말로 위험해진다는 걸 이미 알고 있던 옥타비아누스는 병사들이 따르지 않는다는 핑계로 거부하고 당대 집정관인 히르티우스와 판사가 전사한 틈을 타서 군을 완전히 장악해버린다. 그리고 대놓고 카이사르파를 멸절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키케로 및 원로원파를 제압하기 위해 아직 힘과 지위가 남아있던 안토니우스와 화해하는 것으로 뒤통수를 거하게 갈겼다. 여기에 가까운 스페인 총독으로 있던 레피두스가 합류하여 카이사르파는 하나로 뭉치게 된다. (데키무스 브루투스는 안토니우스를 추격하다 휘하 장병들에게 거부당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동료인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총독으로 있는 그리스로 도망치려했지만 안토니우스의 사주를 받은 한 갈리아 족장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다)

2차 삼두정을 구성한 삼두는 동방에서 세력을 모으는 암살자 세력을 격파하기 위한 군자금을 확보할 겸 이 동맹이 소중한 동맹이라는 약속의 징표로 가장 가까운 대상을 '제물'로 바치기로 했다. 이에 안토니우스는 무티나 전투에 패배해서 궁지에 몰렸을 때 자신을 국가의 적으로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외삼촌 루키우스 안토니우스를, 레피두스는 형인 레피두스 파울루스를 제물로 내놓았고 옥타비아누스는 키케로를 제물로 내놓았다. 안토니우스나 레피두스는 모두 자기 집안 사람들이라 나중에 사면을 받거나 은퇴하는 것으로 목숨을 보전했지만, 신랄한 인신공격에 시달렸던 안토니우스는 키케로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제의했고 레피두스는 그 의견에 동의하고 옥타비아누스는 못 이기는 척 하면서 이를 승인(플루타르코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틀간 안 된다고 우기다가 3일째 되는 날에 묵인했다고 하는데, 자신에게 반기를 든 자는 무조건 숙청으로 답해준 훗날 아우구스투스의 행적을 생각하면 쇼나 다를 게 없었다)하여 유일하게 죽었다. 머리 뿐만 아니라 오른손도 잘려서 같이 길거리에 내걸렸다.

원로원 후빨해서 성공했다 보니 로마 사회 개혁에 대해 냉담했다. 대귀족 따까리 주제에 애국자니뮤 그라쿠스 형제한테도 함부로 씨부리던 틀딱.

시오노 나나미 할망구 말 중에 옳은 게 가끔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키케로에 대한 평이다.

그래도 글은 졸라게 잘 써서 서양인들의 후빨을 많이 받는다. 라틴어 문장의 기본을 닦은사람이라고 하는데 우리가보기엔 그냥 꼬부랑글씨니 신경쓸거없다.


  1. 필리포스(알렉산드로스의 부친)가 다스리는 마케도니아의 패권을 인정 못해서 그리스 전역을 선동하다 역으로 그리스 전체를 조트망시킨 뒤, 결국 독 먹고 뒈진 선동가.
  2. 키케로의 선동연설과는 별개로, 이 새기가 시칠리아에서 해쳐먹어도 너무 해쳐먹어서 똑같이 가렴주구하던 대귀족들조차 얘를 실드치길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