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동인도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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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회사다. 현재 기준으로 환산하면 히그 매출액이 애플의 10배에 달한다고 한다.
매출액 이딴걸 넘어서 얘네는 사실상 기업을 넘어선 그 무언가였다. 인도 정복과 식민화도 영국 정부보다는 동인도회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캐리했다고 봐야하며 1차 아편전쟁 때 중국의 후장을 턴 함대와 군대도 대부분 동인도 회사에서 보낸 병력이다. 그러니까 일개 회사 주제에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고 중국을 발라버렸다는 것이다.
한편 네덜란드의 경쟁국인 잉글랜드 또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VOC)를 파쿠리하여 잉글랜드 동인도회사(EIC)를 설립하였다. 이들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운영방식을 모방하여 동부 아시아 무역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원조 동인도회사의 막강한 저력 때문에 Me-too전략은 먹히지 않았고 결국 인도의 동쪽에 있는 아시아 지역들에서부터 완전철수하는 대신 B플랜으로 인도에 집중하게 된다.
잉글랜드 동인도회사는 1606년에 허킨슨 대위를 인도에 사절로 파견하였다. 허킨슨은 인도로 향하던 도중 포르투갈 해적을 만나서 배와 선원을 모조리 잃고 구사일생으로 인도에 도착하여 무굴 제국의 황제를 접견하는데 성공한다.
무굴 제국 황제는 이방에서 온 코쟁이 영국놈이 말하는 무역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대신 이 백형을 연회의 흥을 돋구는 게스트로 받아들여 허킨슨 대위는 무굴 제국 황제와 술친구가 되었다. 결국 황제의 허가를 받아낸 허킨슨에 의해 잉글랜드와 인도 간 정식무역관계가 시작되었다.
잉글랜드는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 등의 집중 겐세이를 받았으나 꾸준히 그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18세기부터 무굴제국 상태가 맛이 가버려서 광활한 국토를 거진 잃고 소규모 국가로 전락해 버리자 인도는 다시 하나의 제국 대신 여러 왕국이 통치하는 지역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영국 동인도회사는 인도의 정치에 개입하게 된다.
시발점이 된 곳은 벵골 왕국이었다. 벵골은 갠지스 강 하류에 위치한 지역으로 당시 영국 동인도회사의 주요 무역거래처였다. 동인도회사는 벵골의 수도인 콜카타에 성채를 건설한 바 있는데, 새로이 벵골의 왕이 된 시라지는 동인도회사가 자신의 허락없이 성채를 건설한 것을 참지 못하고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호구잡을 절호의 찬스를 얻은 동인도회사는 역강간을 시도하여 대성공을 거두고 시라지를 폐위시키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새로 벵골의 왕으로 임명하는데, 이가 바로 플라시 전투로 현대 인도인들에게 영국의 인도침략 제1라운드로 기억되고 있다.
벵골을 정복한 동인도회사는 당시 전국(戰國)상태에 있던 인도 영주들에게 보호를 제안하며 그들에게 접근하는 한편, 이를 이용하여 영역확장을 지속해 나갔다. 보호란 인도의 각 지방 왕국들에게 영국의 군대를 주둔시키는 대신, 그 지방 왕국의 외교권과 군사권의 대행권을 얻고 보호비를 삥뜯는 방식이다. 이는 매우 불합리한 제안으로 보이지만, 당시 인도 왕들에게 있어서는 영국보다는 당장 옆나라 왕국과의 치열한 경쟁이 더 치명적이었기 때문에 많은 인도의 왕국들이 영국 동인도회사의 '보호'를 받았고, 동인도회사는 자사의 세력을 확장하면서도 보호비를 뜯어내 회사의 손실보전을 하는 두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그러나 인도 세력들이 거진 정리되고 보호비를 뜯을 대상이 없어지자 동인도회사는 파산압력을 받을 규모의 막대한 손실에 처하게 된다. 동인도회사는 인도 지역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손실을 메꾸기 위해 아시아의 다른 거대시장인 중국 시장에 접근하였으나 중국인들은 영국 상인들이 들고 온 상품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상품들이 팔리지 않자, 영국 동인도회사는 중국시장에서의 부진 타개책으로 아편이라는 중독성 물질을 사업 아이템으로 밀기 시작하였고, 이는 중국 시장에서 대히트를 쳤다. 그러나 중국 국내의 은이 대규모로 유출되는 것과 일해야 할 노오오오예들이 일은 안하고 아편이나 빨고 앉아있는걸 문제시한 청나라 정부가 아편을 금수하자 동인도회사는 인도에서 그랬던것처럼 또다시 호구를 잡아보고자 영국 의회에 로비를 하여 대중국 선전포고권을 얻어내 청나라를 두번이나 줘팸하고 아편수출 권리를 청나라로부터 얻어낸다.
그러나 동인도회사의 속셈과는 달리 호구는 잘 잡혀지지 않았는데, 청나라에서 아편이 합법화되자 중국 국내의 아편생산이 급증한 것은 물론 인도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의 아편 수입도 전례없이 활발하게 늘어나 중국 아편시장에서 동인도회사의 입지는 되려 축소되었다. 결국 동인도회사는 자금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1870년에 파산하였으며, 동인도회사가 소유하고 있던 모든 재산(인도 및 기타 식민지를 포함한)은 영국 본국 소유로 넘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