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두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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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장~ 3대장장~ 3(분)이면 된다. 모든 골든타임은 3으로 통합한다. 지나친 드립은 노잼이 되니 3번만 씁니다. 어? 왜 3번 써져요? 어? 왜 3번 써져요? 어? 왜 3번 써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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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는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단, 1차 삼두정치는 어디까지나 저 3사람의 야합이었고 공식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반면 2차 삼두정치는 레피두스의 주선 아래 모여 '국가 재건을 위한 3인 위원회'를 출범시켜 탄생했기에 공식적인 모임이었다.
구도가 비슷하다고 여겨지기 쉽지만 (실무담당자였던 카이사르/옥타비아누스, 함대를 거느렸던 폼페이우스/안토니우스, 빠르게 몰락한 크라수스/레피두스) 뜯어보면 크라수스와 레피두스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기사계급을 통제하고 있었고 로마의 최고 거부로 유명했던 크라수스는 당시 사람들의 평가에서 폼페이우스와 함께 중요인물로 여겨졌지만, 군사적인 능력이나 업적이 카이사르, 폼페이우스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라 점차 위치가 낮아지면서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이 거의 끝날 즈음에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간의 완충지대 정도로 지위가 내려간 상태였다. 이걸 만회하겠다고 벌인 게 파르티아 원정인데....결과는 카르헤 전투에서 평균적인 로마 장군의 지휘력에도 못 미치는 개삽질을 해서 본인은 목숨을 잃고 4만명 중 2만명이 전사하고 1만명은 포로로 잡혔으며 군단기를 빼앗기는 대참패를 당했다.
반면, 레피두스는 처음에 2차 삼두정치를 주선했다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초반에는 세력이 가장 강성했다. 레피두스의 임지였던 스페인과 갈리아 지역에 있는 현역/퇴역병 군단이 7개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삼두정치 초반 옥타비아누스는 사재를 탈탈 털어 긁어모은 퇴역병 2개 군단에 역시 돈으로 낚은 안토니우스 쪽 2개 군단이 있었을 뿐이고 안토니우스는 친위부대인 종달새 군단을 옥타비아누스에게 뺏길 뻔 했다 겨우 지켜냈고 그나마도 무티나 전투 때 패하는 바람에 세가 줄어들어 차이가 많이났다.
하지만 필리피 전투 이후로 정치 만렙의 고단수인 옥타비아누스에게 레피두스의 세력은 줄어들어 삼두라곤 해도 사실상 옥타비아누스 대 안토니우스의 2강 구도가 형성되었다. 레피두스는 이걸 만회하기 위해 시칠리아 전쟁에 2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참전해 옥타비아누스가 고전하는 사이에 섹스투스 최후의 거점인 메사나를 함락시키고 8개 군단의 항복을 받아내는 공을 세웠지만, 옥타비아누스가 대담하게 레피두스의 캠프에 들어와 군단병들에게 배반을 권유하자 전부 옥타비아누스에게 붙는 사태가 발생해 은퇴하게 되면서 삼두는 붕괴된다.
지금 디시위키도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