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소피아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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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나가 맙소사! 누가 이렇게 끔찍한 혼종을 만들었단 말인가! 갸아악 구와아악!! 이 문서는 끔찍한 혼종에 대해 다룹니다. 마! 붓싼 사람들은 일케 맛난거 있음 다 스까서 같이 노나 묵는다 아이가 |
“ |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도다!! |
” |
—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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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판 감염된 사령부. 원래 동방 정교회의 극치이자 비잔틴 양식의 정수였으나
신흥 사막잡신교를 믿는 저그들에게 강간당한 후 모스크로 전락했다.
주변을 둘러싼 첨탑이 없고 대저택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는게 오리지날인데 오스만 새끼들이 꼴에 예술적이라면서 첨탑을 세우고 자기들의 종교 사원으로 만들어버리는 끔찍한 혼종의 결과물이 되어버렸다. 대저택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이때 파괴되었다.
원래 안에 크리스트교 성화라던지 예술품들이 많았는데 이슬람놈들이 성화에 공구리를 발라놔서 훼손됐다. 그리고 현재 그들의 후손들이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오스만 제국이 망하고 터키 공화국이 들어서자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는 여길 모스크에서 박물관으로 개장하고 횟칠 제거작업에 들어갔다. 근데 횟칠 위에 쿠란 경전을 적어놓은 것도 있어서 그것들도 나름 500년이 넘은 문화재이기에 이슬람권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결국 둘 다 공존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이후 그리스에서는 다시 성당으로 원상복구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터키에서는 다시 모스크로 원상복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 전쟁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 됐다.
이 건물을 Ctrl C Ctrl V 한게 술레이마니예 사원이다. 근데 사실 술레이마니예 사원은 성 소피아 대성당에 비하면 쨉도안된다. 술레이마니예 사원을 지은 시난도 술레이마니예 사원은 자신의 습작에 불과하며 자신의 걸작은 셀리미예 사원 뿐이라고 유언을 했다. 왜냐하면 시난은 평생 성 소피아 대성당의 돔 크기보다 큰 돔을 만드는게 소원이었는데 셀리미예 사원의 돔은 성 소피아 성당의 돔 크기랑 똑같거든.
아무튼 오스만 제국의 대다수의 건축물에 영감을 준게 바로 이 건물이고 셀리미예 사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 돔의 기술을 따라하지 못했다.
훗날 1616년 오스만 제국 술탄 아흐메트 1세가 건축가 자개기술공(세데프캬르) 메흐메트 아아(Sedefkâr Mehmet Ağa 1540~1617)에게 명령하여 맞은 편에 블루 모스크라고 불리는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를 짓게한다. 그리하여 드디어 소피아 성당에 견줄만한 돔 건축물을 완성하였으나 그렇게 되기까지 1079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물론 블루 모스크 자체도 역사적으로 훌륭한 건축물이라는 것에는 누구도 이의가 없다.
근데 터키 술탄인 에르도안 씹새끼가 아나튀르크가 박물관으로 두기로 결정한 걸 취소 때리고 다시 좆슬람 사원으로 바꿔버렸다. 평소에는 이전처럼 개방하다가 하루 세 번 기도시간에는 기독교 성화를 가려놓고 한다고 한다.
트라페준타 제국이 있었던 트라브존의 경우도 동명의 성당이 있는데 여기도 몇 년 전에 모스크로 되돌리려고 하다가 법원 가처분 받고 중지된 바 있는데 이 기세를 봐서는 에르도안 새끼가 조만간 좆슬람 사원으로 바꿀 것 같다.
얼마 안 가서 에르도안 씹새끼는 근처의 박물관으로 쓰던 성 코라 성당도 모스크로 되돌려버렸다. 경제도 못하고 코로나도 병신같이 대응해서 정의개발당 지지율이 딸리니까 종교적으로 카운터 쳐보려고 발악하는 모양이다. 조만간 다른 성당들도 전부 다 바꿀 기세다.
걍 좆 병신 같은 포퓰리즘이다. 에르도안은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라는, 터키에서 대립 관계에 있는 두 사상을 모두 정치 기반으로 두고 있는데 얘네 똥꾸녕 긁어서 시원하게 해주려면 소피아 대성당을 모스크로 바꾸는 것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세속주의 애들은 무스타파 케말의 민족주의 정신을 계승했다며 좋아하고 이슬람주의 애들은 이슬람이 기독교를 이겼다며 정신승리할 것이니까
그리스 테살로니키에도 동명의 성당이 있는데 여기도 오스만 제국 당시에는 모스크로 개조되었지만, 그리스가 차지하면서 다시 성당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