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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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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이 다른 땅따먹기색칠놀이에 얼룩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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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광 우럭따 8ㅅ8

ㄴ 이중제국 내에 있는 수많은 민족들에게 자유와 자치를 누리게 해줬지만 어떤 세르브인 빨갱이새끼 때문에 졸지에 전범국 신세가 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Österreich-Ungarn
기본 정보
수도 오스트리아, 부다페스트헝가리
국가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폴란드,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이탈리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대륙 유럽
면적 676,615km²
인구 52,800,000명1914년 기준
추가 정보
지도자 황제
건국 1863년
언어 독일어, 헝가리어, 체코어, 폴란드어, 우크라이나어, 루마니아어, 이탈리아어, 세르보-크로아트어, 슬로베니아어
민족 오스트리아인, 헝가리인, 체코인,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루마니아인, 이탈리아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보스니아인, 슬로베니아인, 몬테네그로인, 그 외 민족
종교 카톨릭

개요[편집]

중부유럽을 차지하던 대제국, 이나라가 망하면서 쪼개져 나온 나라만해도 대충 9,10개국이다.

표어는 분리되지도 나누어지지도 않는다지만 훗날을 보면 현실은 시궁창이다.

일명 이중제국이라고도 불린다. 오스트리아인과 헝가리인이 주축이 된 국가였다. 전신은 오스트리아 제국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해체되었다.

독일 제국의 전신이던 프로이센에게 아구창 얻어 터지고 제국이 와장창날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합스부르크쪽에서 오스트리아 다음으로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던 헝가리인들에게 공동의 제국을 제안했었고, 헝가리측은 이를 받아들여 대타협의 결과로 성립 되었다.

약칭은 K.u.K.이며, 내각이 헝가리 내각, 오스트리아 내각 이렇게 둘로 딲딲 나뉘어져 있다. 제국내에서는 여러 소수민족이 하도 오질라게 많은데, 오스트리아쪽에선 이들을 존중해주는 반면 헝가리쪽은 민족적 탄압을 더 세게 하는 바람에 많은 동유럽 민족들의 죽창질을 유도했다.

역사[편집]

이 나라의 건국과정과 이런 해괴한 이중국가 구조는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중부유럽을 호령하며 신성로마제국을 대대로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합스부르크 군주국[편집]

중부유럽에 존재했던 오스트리아 제국, 오헝제국의 전신이다. 그러나 정식명칭이나 국가체제는 아니었다.

합스부르크는 여기저기에 크킹질로 수많은 씨를 뿌려놓았는데 그 결과로 완성된것이 합스부르크 제국이다. 상속을 통해서 동군연합이라 하여 여러나라의 군주들을 한 명의 임금이 겸임하는 것이다. 즉 단일국가도 아니며 그렇다고 국가연합체도 아니다. 단지 한명의 임금을 모시는 개별 주권국들의 묶음일 뿐이었다. 이덕분에 내가 왜 딴나라 전쟁하는데 우리가 세금을 내야하냐? 며 반란을 일으킬수도 있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제국의 전성기였던 신롬+스페인왕국 동군연합은 카를 5세 사후 해체되어 각각 스페인은 아들에게 신롬쪽은 동생에게 물려주어 제 갈길을 가게되었고(거기다가 근친 폐해로 합스부르크 왕조마저도 끊기고 부르봉왕조로 교체된다) 이때부터를 독자적인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시작으로 본다. 훗날 신롬쪽 합스부르크 가문 즉 합스부르크 군주국도 똥양종법에 따르면 일단 대가끊긴다.(오스트리아 대공국의 왕자들이 모두 죽었다.)

대신 공주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여황제 즉위가 불가능한 신롬빼고 나머질 모두 물려받았다. 그리고 당시 신롬국력 투톱급인 프로이센과 바이에른에게 시비걸려 털릴뻔할 위기에 봉착하는데 그게 바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겨우 신롬황제를 비롯한 왕위를 지켜냈으나 세입의 22퍼를 담당핟던 슐레지엔을 날려먹었다.(나중에 폴란드 1차분할 참가로 벌충)

여기서 마리아테레지아의 작위는 대충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여대공, 헝가리 여왕, 보헤미아왕국 여왕, 로도마리아-갈라치아 왕국 여왕 겸 신롬황후겸 독일왕국 왕후였다. 즉 오스트리아는 왕국도 되지 않았다. 이윤 오스트리아가 짐도 그렇지만 그때도 땅도작고 인구도 적어서. 그래도 별로 신경안썻는데 당시엔 아직 민족주의 의식도 미약했고 동군연합도 남의 나라에서 왕 꿔오기도 서양에선 그닥 낯선개념도 아니어서였고 조그만 오스트리아보단 신롬황제 작위에 집착해서다.

오스트리아 제국[편집]

이렇게 나라가 4단 5단 6단 분리합체 변신로봇 같은 꼬라지로 있었지만 별로 불편함을 못느끼고 살았으나[1] 유럽을 순식간에 갈아마시고 다닌 나폴레옹이 혜성처럼 나타난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를 패배시켰고 퇴물 오스트리아 말고 우리편해라는 나폴레옹의 꼬드김을 가장한 반협박에 신롬내 소국들이 프랑스 응디에 모조리 붙어서 형님형님을 외쳤고 선거후국들도 나폴레옹의 그런 따까리 국가들로 교체당했다.

즉 이제 신롬황제유지는 커녕 여태것 자기 따까리로 여기던 듣보 신롬국가 왕한테 황제폐하ㅠㅠ 라면서 머릴 조아리거나 최악의 경우는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신롬황제로 출마해서 당선되는 사태가 벌어질수도 있는것이었다.(실제로 왕정시절 프랑스 국왕들이 신롬황제선거 출마에 도전했다)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이 곧 프랑스 황제를 (참)칭하게 된다.

이에 위기를 느낀 합스부르크 황실은 그간 중부유럽에 흩어진 여러나라의 동군연합 군주국들 묶음이었던 합스부르크 제국을 통합해 대공국에 불과했던 오스트리아를 제국으로 격상시켜 보험에들었으며 영국왕에게도 같이 나폴레옹 엿먹이게 제국 선포하고 황제하자고 권하기도 했다고 한다. 영국쪽에선 무시했다는듯. 이렇게 합스부르크는 제관을 스트레오로 쓰게 되었으나 곧 잠시뿐이었다.

나폴레옹에게 또다시 털린 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의 협박으로 울며 겨자먹기로 신성로마제국을 해체시켰다. 샤를마뉴가 서로마 황제의관을 받은지 900여년 만이었다.그래도 황제칭호와 그 막대한 중부유럽의 영토는 유지할수 있었다.

오헝제국의 성립[편집]

독일혁명[편집]

안그래도 7년 전쟁,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제국 내에서도 ㅅㅌㅊ였던 땅들을 날려먹고 점점 약해지던 합스부르크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간다.

빈체제 이후 두가지 이념이 프랑스로 부터 독일을 넘어 중부유럽을 강타하는데 하나는 자유주의고 하나는 민족주의였다. 예전까진 임금님이 까라면 까야지 라거나 합스부르크가 우리나라 임금님이지 누가 임금을 한단거요? 라고 당연시 해왔지만 이젠 도저히 못참는다라고 엠생흙수저들이 들고 일어났다고 보면 된다.

사실 당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는 최신이념인지라 금수저 부루좌지 인텔리들이나 향유하는 소수취향이었다. 그덕에 애들만 가지고 혁명했다간 백전 백패였는데 때마침 전유럽에 기근이 들었고 아직 농업이 경제의 중추였던 시절이었던지라 거의 모두가 망하게 되자 좆같은 외국왕 쫓아내고 우리끼리 잘먹고 잘살자는 선동이 머중에게 먹혔다.

그나마도 영국은 산업화로 잘먹고 잘살아서 혁명없었고 프랑스만 성공했고 프로이센은 임금이 폭도들이 주는 독일황제 왕관따윈 안쓴다고 진압했고 러시아는 걍 중세라 혁명 그딴거 있을수가 없었고 오스트리아는 겨우 러시아 지원으로 진압했다.

이로서 슬라브와 헝가리 민족주의자들은 일단은 실패했지만 오스트리아제국이 예전같지 않다는걸 눈치까게 된다. 헝가리 독립을 주도하던 코수트는 '합스부르크는 좆도 아니고 헝가리 독립의 진정한 적은 러시아'라는 말까지 했다.[2]

여담으로 크림전쟁때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서 헝가리 반란군을 진압했는데도 불구하고 오스만 편을 든 여력이 있다. 이로 인해서 오스트리아랑 러시아는 한동안 멀어지게 된다.

보오전쟁[편집]

프로이센은 독일통일과정중 다민족 국가 오헝제국을 배제시키고 소독일주의에 입각한 독일단일민족 국가를 건설하기로 하여 이를 위해 오스트리아를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내어 독일에서 강퇴시킨다. 오스트리아계 독일인들의 외교 목표였던 오스트리아 위주 통일이 가상이 되자 독일인들의 정치 참여 비율이 조금씩 딸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제국의 안보의 큰 악영향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거듭된 망신살에 몸져누워있던 제국을 헝가리 민족주의자들이 또다시 갈궈됐다. 이에 오스트리아 제국은 이들을 진압할 힘이 없었으므로 대타협을 들고오기에 이른다.

대타협과 오-헝제국의 건국[편집]

본디 오스트리아 제국이 성립되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작위들을 모조리 합쳐서 오스트리아 제국 작위에 합쳤는데 다시 헝가리왕국 작위만 풀어내어 동군연합 군주로 앉는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헝가리는 제국내에 잔류하는 대가로 의회와 내각과 총리를 따로 가지는 별개의 국가로 존재하게 되었다. 외교와 재정, 국방문제는 두나라가 합의해서 처리한다. 라이히스라트,헝가리 의회 같은 경우엔 외교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권리가 없었고 정확히 외교 예산의 승인 등의 문제는 1년에 한번 소집되는 대표부 권 한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외교 관련 문제는 황제가 주재하는 공동 내각에 의해 결정되었다. 여기서 황제는 절대적인 권한을 발휘할 수 있었다.

본디 지도를 펴서보면 헝가리왕국 영토가 좀 컸단걸 알수 있다. 그덕에 헝가리 귀족들은 불만있으면 들고일어나 황제를 갈궜고 이에 황젠 윽박지르거나 살살 달래거나 둘중 하나였다. 이번에도 그 연장선이었고 오헝제국안에 의해 피지배 민족에서 지배민족으로 격상되자 이에 만족하며 헝가리계 기득권 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것. 당시 타협시기쯤에 체코인들도 황가쪽에 권리를 증진 해달라고 부탁하였지만, 독일계 귀족들,헝가리 귀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오스트리아 대공국은 영토가 비교적 작고 독일계 인구는 언제나 과반을 못넘겼다.(이것이 대러시아 민족이 과반수인 러시아와는 다른 민족정책,확장정책 을 보여주었다.) 근데 그건 2위의 인구를 차지하는 헝가리도 마찬가지였다.[3] 반면 오스트리아는 전통적으로 금융업이 발달했고 독일계 다수지역인 수테텐은 공업이 발달했으며 이지역들은 자유주의적이었으나 헝가리는 그러지 못했다. 오스트리아는 민족유화책(이는 구상으로만 끝났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대오스트리아 합중국 안으로 이어진다)을 사용한 반면 헝가리는 휘하 슬라브족들에게 강경책을 사용했다. 오스트리아계 독일인들은 정치적으로 제국에 영향을 받기보단 현실로 존재하는 '독일'과 자신들을 동일시하면서 합병(Anshluss) 을 가치로 내걸었다. 이후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와같은 제국의 무관심은 커져만 갔고, 분리주의 성향을 점점 제국의 존재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커졌다. 이와 반대로 헝가리 민족주의는 타협 이후의 제국의 외교 정책에 활기를 불어주는 새로운 요소였다.


헝가리 민족은 1848 사태를 보고선 제국 밖으로의 생존은 힘들다 판단하고 자신들의 정책을 제국 외교에 반영하랴고 노력하였다. 러시아 민족의 발칸 개입 을 막기위해 적극적인 반 러시아와 정책을 펼치도록 노력했고 갈리치아 지역에 요새 현대화를 요청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에 유럽의 안정을 보곤 제국의 공동군대는 헝가리 시점에선 자신들의 국력을 저하시키는 요소중에 하나로 보여졌다. 외교또한 주권울 침해하는 요소를 보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제국의 정치 활기는 다시금 줄어들었다. 이와 반대로 체코는 자신들의 불행한 일들이 있음에도 친오스트리아 정책을 유지했고 폴란드는 독일,러시아 지역보다 자치권이 낫다는 것을 보며 안심하였고, 나머지 민족 세력들도 친오스트리아 기조를 유지하며 자신들의 욕구를 제국을 통해 반영 시키랴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와같은 노력은 제국에서 받아드리지 못하였고, 자신들의 주제 이외에 외교 문제는 받아드리지도 않았다.

몰락[편집]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좆퇴물입니다!!

오래 전 퇴물이 됐거나 진행 중인 대상에 대해 다룹니다.
이딴 새끼들은 고민하지 말고 한시라도 빨리 갖다 버립시다!!
다만 대상이 각성하여 예토전생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나라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아내 조피와 함께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기브릴로의 총에 저격되어 사망하면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군사적 능력이 워낙 개븅신이었던지라 개판 오분전이던 러시아 제국군에게 브루실로프 공세에서 다 갈려나갔고 졸전의 신 이태리군에게도 갈려나갔으며 당연한 결과로 제국은 해체되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소국으로 전락하고 중부유럽에 흩어져 살던 독일계와 헝가리계는 하루아침에 지배민족에서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고 만다.

ㄴ중과부적으로 패했다라...세르비아 하나 제압도 제대로 못하고 개탈리아에게 빌빌댔었는 걸로 아는데? 독일 없었으면 빨리 패망했을 나라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다른 유럽열강들보다 근대화 속도와 경제력이 크게 뒤쳐진 것 역시 군사력이 좆병신이었던 원인 중 하나이다. 오스트리아 본토랑 체코지역 외에는 딱히 산업화랑 근대화가 이루어진 곳이 없었고 경제력 역시 다른 서양열강들에 비해 낮았다.

재건시도[편집]

폐위된 카를 황제는 헝가리왕국 왕관이라도 유지하려 했지만 전범이자 이 모든 파국의 원인인 합스부르크 왕실과 엮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황제는 몇번 헝가리에 입국했으나 바다없는 나라의 해군제독이자 왕없는 나라의 섭정공 호르티 미클로시 제독에게 딱 걸려서 추방당했다.

2차대전 이후 구 오헝제국 구성국들이 대부분 추축국이 되었는데 미국은 이때문에 전후 처리과정에서 이들 패전국을 묶어서 중부유럽에 오헝제국(정확히는 다뉴브{도나우}강 기준으로 남독일 동유럽 일부를 합친 합스부르크 왕가)을 재건시키자는 안건을 제시 했고 실행에 옴길려 했으나 강력

한 경쟁자가 하나 더생기는걸 싫어한 영국의 반대와 무엇보다 이지역을 모조리 점령하고 있던 쏘오련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ㄴ 미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제안하였다. 소련의 동유럽 개입을 줄이려고 거대한 국가를 만들려 했지만. 독일을 분할시키려 하던 미국과 소련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카를황제의 아들이자 마지막 황태자 오토대공에게 60년대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스페인 왕국 왕위를 제안했으나 거절했고 대신 추천한게 전 국왕 후안 카를로스였다고 한다.


그 이후[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체 이후 오스트리아는 열강에서 쫒겨났고, 헝가리 또한 트리아농 조약으로 325,441km2 에 달하던 헝가리의 영토는 93,073km2 축소 됐다

거기다 오스트리아는 한때 자기 빵셔틀 이었던 국가들한테 경제재재 까지 당한다(헝가리도 당했지만 축소된 헝가리 영토는 곡창지대여서 별 피해는 없었지만, 오스트리아는 산간지대가 많았다, 애초부터 오스트리아는 체코슬라비카 지역, 트란스라이타니아 지역에서 식량사서 먹었는데 이게 문제가 생기니), 결국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이러한 현실을 인정 못했고 훗날 2차대전에서 오스트리아는 진작에 독일에 안슐루스 당하고 헝가리는 참전했다가 1944년 후반에 낙지가 쏘오련에 밀려나자 편 갈아타려다가 그 병신같은 1944년 12월의 독일군에게 정부 전복을 당하고 만다. 웃기는 건 오스트리아는 게르만족이랍시고 안슐루스를 했는데 정작 독일한테는 잡종 게르만이라고 차별받았다. 븅신들

잡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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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아??? 응?? 사실인가??? 시발 모르겠다."

많이 알고 있지 않는 사실이지만 사실 위대한 아웃풋을 배출한 국가이기도 하다. 바로 아돌프 히틀러 퓌러가 당시 오헝 제국의 영토였던 린츠 출신이었다.

근데 히틀러는 고향에 머무르지 않고 바로 윗동네인 독일 제국으로 올라가 독일군으로서 복무했는데 이때 복무를 기반으로 퓌러가 되는 기반을 닦게 된다.

히틀러의 자국민(독일인) 우월주의와 외국인 배척과 나치즘의 사상의 기반은 고향땅과 합스부르크 가문에게서 배워왔을 확률이 높다.

ㄴ 합스부르크는 게르만 민족주의 안좋아했다.(그러면 비게르만계는 다 떼고 가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걍 프로이센 꼬붕되는거였다) 다만 합스부르크 제국의 사상 통제가 워낙 느슨했어서 별에별 미친놈들이 설치고 다녔었는데,의원이란 놈이 당당하게 제국의회에서 이태리 지역 독립 주장을 하는 등 온갖 또라이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게르만 민족주의자도 있었고 히틀러도 거기서 감명받았다고 말함

ㄴ 물론 안좋아하긴 했지만 정책상 비 게르만 정책 중심으로도 하지 않았다. 헝가리 타협 이후 체코 민족주의자들이 체코 민족의 자치도도 같이 올려달라고 계속 안건이 들어오길레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OK 할려다가 오스트리아 독일계 귀족이나 권위자들이 오스트리아 영토를 프로이센쪽으로 합치려는 시도를 비추자 바로 취소해 버리는 등 제국의 (좆같은) 현실에 맞춘 정책을 썼다. 헝가리계가 의회를 장악한 계기도 합스부르크가 계속 애메하게 정책 펼치니까 1890년 말쯤부터 게르만권 정치인들이 정치 참여 의욕 그러니까 관심의 비중이 떨어져서 그런거였다.

무슨 시발 민족 반란 일어나고 타협하거나 진압해서 해결하면 반란자들 다수가 오스트리아 군에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또 반란나면 군인 일부가 반란에 가담 주동자가 아닌 이상 심하게 안 족친다.

리즈시절에는 수많은 민족이 있었던 국가이며 중부유럽 다 해먹었지만 오히려 민족문제가 복잡한 점 때문에 결국은 분열될 수밖에 없었던 국가..

ㄴ 근데 또 프란츠 페르디난트 구상대로 합중국화하고 1차 대전 안터졌으면 어찌됐을지는 모른다. 세계대전에서 깨지기 전까지는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갈리치아, 보스니아 중 어떤 곳에서도 독립론은 주류가 아니었다. 독립해봤자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나중에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 꿀꺽한걸 생각해보자),헝가리같은 경우는 오스트리아와 같은 지배자층이였고 영토또한 지금과 달리 상당하였다. 현재도 헝가리에서 오헝에 대한 이미지는 좋은 편이다.

헝가리는 딱히 독립 시도할 이유가 크지 않으니 설명 생략한다. 체코[4]랑 슬로바키아랑 갈리치아는 군국주의+민족뽕 독일, 제정 원탑 러시아[5]보단 합스부르크가 낫다고 여겨서 자치론이 대세였고 슬로베니아는 이탈리아[6],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보단 합스부르크가 낫다고 여겼으며 보스니아도 종교 꼴통 세르비아보단 합스부르크가 낫다고 생각했다.

단, 크로아티아에서는 일리리아주의인가 뭐시기가 유행했다. 옛 일리리아 땅의 제민족은 (당연히 크로아티아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말같지도 않은 개소리였기 때문에 슬로베니아가 경계했던 것. 추가로 조국이 좆망한 폴란드인이나 조국이 존재하던 루마니아인도 합스부르크 안좋아했다.

데챨에선 1차대전 모드로 오헝 잡으면 현실보다 개쉽다 세르비아 간기간으로 조지고(그래야 그리스 노참전함) 러시아쪽 ㅈㄹ 빨리 밀고 루마니아 쪽이랑 러시아 영토 연결 안되게 하삼 그럼 룸아니야도

참전안한다 이태리 참전 대비해서 근처 몇사단 놓으면 독일 사단 지원으로 금방 미니깐 밀고 프랑스 전선 공지로 도와주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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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1939년: 폴란드 침공 · 영국 프랑스의 선전포고)
1940년: 노르웨이 침공 · 프랑스 침공(샤를 드 골 · 자유 프랑스 · 비시 프랑스 · 프랑스 군정청 · 레지스탕스) · 그리스 침공
1941년: 소련 침공->독소전쟁 · 진주만 공습->태평양 전쟁
1942년: 미드웨이 해전 · 스탈린그라드 전투
1943년: 카이로 회담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
1945년: 얄타 회담 · 독일 항복 · 포츠담 회담 · 일본의 무조건 항복
전후 처리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 극동국제군사재판 · 독일 분할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 유엔(대서양 헌장 · 샌프란시스코 회의 · 안전 보장 이사회 · 상임이사국 · 유엔군)
  1. 중세에는 최적화된 체제였고 종교전쟁때도 그럭저럭 굴러갔다
  2. 진짜 그렇게 되었다.
  3. 대충 오스트리아 23~24, 헝가리 22~23 정도였고 나머지는 슬라브계였다.(물론 슬라브도 체코인, 폴란드인, 슬로베니아인 등등으로 나뉨
  4. 비슷한 논리로 대독일주의부터 쭉 반대했다. (체코의 국부인 팔라츠키 당시 슬라브 통합을 외치던 러시아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합스부르크 제국 내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야 된다 말하였다. 이걸 친 오스트리아슬라브주의 라고 한다. 하지만 대타협 이후엔 조금씩 바뀌었고 1차대전 말기에는 독립론이 대세였다. 어차피 합스부르크가 좆망예정이기도했고)독일인만 존나 많은 통합독일보다는 짬뽕인 합스부르크가 낫다고함
  5. 한때는 체코 민족주의자들이 대안으로 여기기도 했었다. 근데 체코애들이 '체코인의 주권도 존중해줄래?'라고 물어봤을때 '슬라브인은 모두 하나인데 무슨 소리냐?'라고 우겼기 때문에 체코의 친러시아주의는 폐기 처분된다.
  6. 슬로베니아에 이탈리아계가 많아서 이탈리아가 늘 눈독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