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양요
조무위키
이 문서는 벌집핏자가 된 대상 또는 벌집핏자와 관련된 대상에 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대국적이지 못한 행동으로 인한 총알세례를 듬뿍 받은 대상 또는 정의구현을 실현한 대상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으따 바람이 구멍을 통해 솔솔 들어오구마잉~ |
“ |
미리견이란 나라에는 작은 부락만 있으며, 화성돈이란 촌장이 나와서 영길리와 교섭하면서 만든 촌락 정도의 나라 |
” |
— 미국이 어떤 나라냐고 묻는 고종의 질문에 대한 신하의 대답
|
조선군 500명 vs 미군 군함 5척 + 대포 90문 + 800명
조선군은 포로 20명 제외하고 전멸, 미군은 3명 사망에 10명 부상에 그쳤다. 이 정도면 그냥 학살이다.
ㄴ 한 명은 낙사, 한 명은 팀킬, 한 명은 눈먼 대포 맞고 죽음. 결론 350킬 1뎃
ㄴ 죽은 3명 모두 어이없게 죽은 거 아니었냐?
ㄴㄴ원래 전투에선 사고사나 오인사격으로 인한 사상자도 많이 나온다. 현대의 정밀타격 체계로도 뻑하면 아군오사가 일어나는 판국에
국사 교과서의 왜곡을 비판할 때 꼭 나오는 전쟁이기도 한데, 아래에서도 언급하듯이 미군의 피해는 경미한 반면 조선군의 피해는 극심했기 때문이다.
1871년 6월 1일부터 11일까지 조선과 미국이 사상 최초로 만난 사건이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싸웠던 사건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쭉 신미양요가 마지막 전투여야 한다.
헬조선의 역사왜곡 중 대표적인 사건으로, 무장 전투에 집착하는 국뽕 역사관의 특성답게 만보산 사건처럼 아예 언급을 회피하지는 않고 용감히 맞서 싸우고 결국 몰아냈다면서 구체적 통계는 빼놓는다. 용감하게 싸운 건 맞는 말이다. 누굴 위해 싸우다 죽는지도 모르고 미군에게 엄청 저항했으니까...
병인양요와 달리, 당시 첨단 기술이었던 사진자료를 많이 남긴 전쟁인데, 국뽕 한 사발 마시고 취한 나무위키에서는 "일본어 위키백과가 전멸한 조선군 사진을 올려놓아 의도적으로 조선을 비하했다! 빼애애액!"라고 써놓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조선군 전멸한 사진이 찍혀있다는 사실부터 조선의 대참패를 인증하는 것이다.
모든 교과서와 국뽕들은 "발리긴 했지만 지지는 않았습니다!"라고 부르짖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 입으로 떠들기는 민망하다.
내가 보기엔 미국의 승리인 거 같다.
ㄴ 일단 조선의 승리기는 하다. 미국이 당초의 목적인 조선 개항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도 마찬가지로 미군이 베트콩을 사실상 발랐지만 결국 미국이 최종적으로 목적을 이루지 못했으므로 베트남의 승리다. 즉, 전쟁의 승패 여부는 교전비로 가리지 않는다. 상대국이 목적을 달성했느냐로 본다. 가령 중일전쟁이나 독소전쟁 때 피해는 중국이나 소련이 더 컸지만 그렇다고 누가 이 두 전쟁을 일본과 독일의 승리로 보나? 임진왜란은 조선 피해가 더 컸으니까 일본의 승리인가? 미국이 스스로 물러났느냐, 다른 상황이 생겨서 물러났느냐는 전쟁의 승패를 논할 때 따질 것이 아니다. 누차 언급하지만 베트남 전쟁 때도 베트콩은 사실상 미군에게 털렸다.
ㄴ 솔직히 베트남과 비비는 건 좀... 남베트남을 미국이 사력을 다해서 지원했는데도 정작 전쟁 당사자가 답 없는 개좆병신들이라서 패배한 거지, 신미양요는 그냥 과장 보태서 미군이 강화도에서 산책이나 하고 온 거나 다름 없어서
ㄴ 일단 전과로 따지면 미군이 우월했다는 공통점은 있음.
결론은 수비하던 조선인은 거의 다 죽었지만 앞으로 이어질 반자이 어택의 연속이 연상된 미국은 조선을 개항하기에는 군비를 더 쓰는 게 아까워서 귀국했다. 결국 조선이 승리했다. 존나 아깝다. 좆본한테 먹힐거 차라리 미국한테 먹히지. 뭐 나중에 2차 대전 일어나서 일제와 싸울 때 한반도를 최전방 군사 요새로 쓰긴 했겠지만 위안부나 가미가제같은 짓은 안 했을텐데.
그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미군 曰, 일방적인 학살 수준의 전쟁을 보고 "도대체 우리가 여기서 왜 이 노예를 학살하고 있는가? 우린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 아닌가!"라고 얘기하면서 진심으로 회의감을 느꼈다고 한다. 한마디로 조선군은 대등한 상대조차 아닌, 싸울 가치도 없다고 본 거다. 그럴 만도 한 게, 무기 수준부터 차원이 달랐다. 미국은 레밍턴 소총, 조선은 화승총. 게임이 되는가?
하다 못해서 거의 비슷한 년도에 일어난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에서도 머스킷으로 무장한 오스트리아 군들이 드라이제 소총을 쓴 프로이센군에게 거의 학살당하다 시피했는데. 그리고 미국은 남북전쟁을 통해 숙련된 병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결론은 개방을 통한 근대화가 답이었다는 거.
ㄴ개방한다고 근대화 되는거 아니다. 베트남은 조선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나라재정도 좋았는데 결국 먹혔다.
중국, 일본보다 시장이 작아서 장사하기에는 수익이 적고, 피해는 매우 많은데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적을걸로 예상되어서 빨리 계산기 두들겨보고 빠지기로 결정했던 듯하다. 개척할 시장으로서의 가치가 있었다면 한양은 어떻게 되었을지 열강들이 베이징 털어먹는 걸 보면 안 봐도 비디오다. 그 당시 조선은 세계적으로 존재감이 없었던 모양이다. 진정한 헬-조선이었던 당시 상황 때문에 천조국의 영역으로 편입되지 않은 것인데 이때 조선에 뭔가 털어먹을 자원이 많았다면 한반도는 일찌기 필리핀과 비슷한 테크를 밟았을 것이지만 미국은 "스캇 안 먹어요 안 먹어!"하고 돌아갔다.
이후 이 패배는 버지니아대첩과 천조국 내 가물치 유입으로 씻어낼 수 있게 된다.
열강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먼 곳에 원정 다니면서 식민지 만들기에는 국력이 후달리고 또 열강들이 대륙에서 인육파티 벌이는 걸 보고 중국에 어떻게든 발을 들이밀고 싶었던 일본은 가깝고 중국에 언제든지 시비 틀 수 있는 만만한 조선을 식민지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군함 열한 척과 육전대 삼천 명을 이끌고 강화도로 왔으며 대원군 치하에서 학살 당할망정 치열히 저항했던 조선군은 5년 후 일본의 강제개항 요구에 반격다운 반격 한 번을 못 하고 식민지가 되는 망국 크리를 타기 시작한다
여담으로 당시 조선군은 팔도에서 스나질 좀 한다는 포수들 불러 모아서 만든 드림팀이었는데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하였음에도 구식무기로 분전했지만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말았다. 당시 미군의 기록에서는 조선군들이 돌멩이를 집어 던져가며 최후까지 맹렬히 저항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사자 350명 중 100명이 넘게 강물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는데 이유가 서양 오랑캐에게 잡히면 산 채로 뜯어먹힌다는 정훈교육을 믿었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면서 집단 자살을 하였다. 2차대전 중 귀축영미에게 잡히면 처참하게 죽는다면서 포로가 되느니 자살하라고 강요한 대일본제국과 똑같은 클라스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도 너 새끼가 최소한 양심이라도 있다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돌아가신 선조님들을 위해 묵념이라도 하자.
조선군 또한 방탄복이라고, 솜을 몇십 겹 겹쳐 만든 조끼를 입고 싸웠는데 한여름 뙤약볕에서 그거 입고 있으니까 싸우기도 전에 탈진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뜨거운 총탄 때문에 솜에 불이 붙어서 끔살...
강화도에서 어재연과 조선군이 이렇게 털려가면서 시간을 벌어주었지만 대원군 새끼는 반격 생각도 안 하고 딱딱대기만 하다가 전쟁이 끝났다.
ㄴ반격할 힘이 있기는 하냐 ㅋㅋ
이후 조선이 세계 열강과 외교 관계를 맺을 때 미국을 구원자로 의지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이때 영혼까지 탈탈 털린 트라우마 때문이며 한참 후 뛰어난 안목으로 제3대 주인니뮤로 모시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근데 영어/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미국 승리라고 나온다. 사실 베트남 전쟁과 비교하는 건 약간 아닌 게, 베트남 사례의 경우는 공산 정권 자체를 무너뜨리는 게 목적이었지만 이 전쟁은 미국이 조선을 무너뜨리려는 전쟁이 아니었으며, 서구가 원했던 조선에 대한 통상개방이라는 것도 사실 해내지 못하면 좆되기 때문에 반드시 이뤄내야 할 간절했던 것이 아니라, 하면 좋다는 정도였고 제너럴 셔먼 호에 대한 복수 명분도 있었기에 참...
결국엔 미국의 승리라는 게 미뽕 처맞은 건지, 한국의 승리라는 게 국뽕 맞은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워낙 한국 사학계가 민족주의적이긴 하지만 미국이라고 하더라도 자국의 역사 문제에 중립적으로만 접근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베트남 전쟁과 달리 군사적 승리(victory), 외교적 실패(failure)[1] 라고 표기하는 게 맞는 거 같다. 그렇다면 종합적으로 봐도 미국 승리다. 미뽕이 아니라.
조선 군인은 없고 불쌍한 백성들이 병신같은 나라를 지키는 모습을 보니 눈에 습기 차서 미국군이 철수했다고 한다.
피로스의 승리의 아주 훌륭한 예시.
그런데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의 승리나 다름없다. 10년 뒤에 천조국성님들의 읶머함을 깨닫고 1882년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이 맺어졌으니까 외교적 실패도 신미양요 후 10년 한정이다.
- ↑ 외교적 패배(Defeat)라고 표기하기에는 양국의 입장 차이가 있음. 실패는 전쟁에서 졌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