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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평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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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중근선생님이 구상한 동아시아의 유토피아에 대해 적어놨다.

東洋平和論


내용[편집]

서문

대저 합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는 것은 만고에 분명히 정해져 있는 이치이다. 지금 세계는 동서(東西)로 나뉘어져 있고 인종도 각각 달라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실용기계연구에 농업이나 상업보다 더욱 열중하고 있다. 그러나, 새 발명인 전기포(電氣砲: 기관총), 비행선(飛行船), 침수정(浸水艇:잠수함)은 모두 사람을 상하게 하고 사물을 해치는 기계이다.


청년들을 훈련시켜 전쟁터로 몰아넣어 수많은 귀중한 생명들을 희생물(犧生物: 하늘과 땅이나 사당의 신에게 제사 지낼 때 쓰는 짐승, 소, 돼지, 양 따위)처럼 버려, 피가 냇물을 이루고, 고기가 질펀히 널려짐이 날마다 그치질 않는다.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마음이거늘 밝은 세계에 이 무슨 광경이란 말인가. 말과 생각이 이에 미치면 뼈가 시리고 마음이 서늘해진다.

그 근본을 따져보면 예로부터 동양민족은 다만 문학에만 힘쓰고 제 나라만 조심해 지켰을 뿐이지 도무지 한치의 유럽 땅도 침입해 뺏지 않았다는, 오대주(5大洲)위의 사람이나 짐승, 초목까지 다 알고 있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런데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가까이 수백 년 이래로 도덕을 까맣게 잊고 날로 무력을 일삼으며 경쟁하는 마음을 양성해서 조금도 꺼리는 기색이 없다.


악이 차고 죄가 넘쳐 신(神)과 사람이 다같이 성낸 까닭에 하늘이 한 매듭을 짓기 위해 동해 가운데 조그만 섬나라인 일본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강대국인 러시아를 만주대륙에서 한주먹에 때려눕히게 하였다. 누가 능히 이런 일을 헤아렸겠는가. 이것은 하늘에 순응하고 땅의 배려를 얻은 것이며 사람의 정에 응하는 이치이다.


당시 만일 한·청 두나라 국민이 상하가 일치해서 전날의 원수를 갚고자 해서 일본을 배척하고 러시아를 도왔다면 큰 승리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나 어찌 그것을 예상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한·청 두 나라 국민은 이와 같이 행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일본군대를 환영하고 그들을 위해 물건을 운반하고, 도로를 닦고, 정탐하는 등의 일의 수고로움을 잊고 힘을 기울였다. 이것은 무슨 이유인가.


거기에는 두가지 큰 사유가 있었다.

일본과 러시아가 개전할 때, 일본덴노('천황'으로 되어 있는 것을 필자가 고쳤음--필자)가 선전포고하는 글에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대한 독립을 공고히 한다'라고 했다. 이와 같은 대의(大義)가 청천백일(靑天白日)의 빛보다 더 밝았기 때문에 한·청 인사는 지혜로운 이나 어리석은 이를 막론하고 일치동심해서 복종했음이 그 하나이다.

또한 일본과 러시아의 다툼이 황백인종(黃白人種)의 경쟁이라 할 수 있으므로 지난날의 원수졌던 심정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고 도리어 큰 하나의 인종사랑 무리[애종당(愛種黨)]를 이루었으니 이도 또한 인정의 순리라 가히 합리적인 이유의 다른 하나이다.


통쾌하도다! 장하도다! 수백 년 동안 행악하던 백인종의 선봉을 북소리 한번에 크게 부수었다. 가히 천고의 희한한 일이며 만방이 기념할 자취이다. 당시 한국과 청국 두 나라의

뜻있는 이들이 기약없이 함께 기뻐해 마지않은 것은 일본의 정략이나 일 헤쳐나감이 동서양 천지가 개벽한 뒤로 가장 뛰어난 대사업이며 시원스런 일로 스스로 헤아렸기 때문이었다.


슬프다! 천만 번 의외로 승리하고 개선한 후로 가장 가깝고 가장 친하며 어질고 약한 같은 인종인 한국을 억압하여 조약을 맺고, 만주의 장춘(長春)이남인 한국을 조차(租借: 땅세를 주고 땅을 빌림)를 빙자하여 점거하였다. 세계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의심이 홀연히 일어나서 일본의 위대한 명성과 정대한 공훈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만행을 일삼는 러시아보다 더 못된 나라로 보이게 되었다. 슬프다. 용과 호랑이의 위세로서 어찌 뱀이나 고양이 같은 행동을 한단 말인가. 그와 같이 좋은 기회를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안타깝고 통탄할 일이로다.

동양 평화와 한국 독립에 대한 문제는 이미 세계 모든 나라의 사람들 이목에 드러나 금석(金石)처럼 믿게 되었고 한·청 두 나라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음에랴! 이와 같은 사상은 비록 천신의 능력으로도 소멸시키기 어려울 것이거늘 하물며 한두 사람의 지모(智謀)로 어찌 말살할 수 있겠는가.


지금 서양세력이 동양으로 뻗쳐오는 [서세동점(西勢東漸)]환난을 동양 사람이 일치 단결해서 극력 방어함이 최상책이라는 것은 비록 어린 아이일지라도 익히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무슨 이유로 일본은 이러한 순리의 형세를 돌아보지 않고 같은 인종인 이웃나라를 치고 우의(友誼)를 끊어 스스로 방휼의 형세[방휼지세(蚌鷸之勢): 조개와 도요새가 서로 물고 물리며 다투는 형세. 이때 어부가 나타나면 힘 안들이고 둘 다 잡아가게 된다고 해서 어부지리(漁夫之利)라는 말이 생겼다--필자]를 만들어 어부를 기다리는 듯 하는가. 한·청 양국인의 소망은 크게 깨져 버리고 말았다.


만약 일본이 정략을 고치지 않고 핍박이 날로 심해진다면 부득이 차라리 다른 인종에게 욕을 당하지 않겠다는 소리가 한·청 두나라 사람의 폐부(肺腑: 체내의 모든 기관, 부아, 깊은 마음 속--필자)에서 용솟음쳐서 상하 일체가 되어 스스로 백인의 앞잡이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형세이다. 그렇게 되면 동양의 수억 황인종 가운데 수많은 뜻있는 인사와 정의로운 사나이가 어찌 수수방관(袖手傍觀:팔짱을 끼고 앉아 남의 일 바라보듯 함--필자)하고 앉아서 동양 전체가 까맣게 타죽는 참상을 기다리기만 할 것이며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

그래서 동양 평화를 위한 의전(義戰)을 하르빈에서 개전하고, 담판(談判)하는 자리를 여순(旅順口)로 정했으며, 이어 동양평화 문제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는 바이다. 여러분의 눈으로 깊이 살펴보아 주기 바란다.

1910년 경술 2월

대한국인 안중근

여순옥중에서 쓰다.

전감(前鑑)

(전감: 앞사람이 한 일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경계한다. 여기서는 지난 역사를 되새겨 일본 군국주의의 무모함을 경계하는 뜻--옮긴이)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동서남북의 어느 주(洲)를 막론하고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대세(大勢)의 번복(飜覆)이고, 알 수 없는 것은 인심의 변천이다.

지난날(갑오년:1894년) 청일전쟁을 보더라도 그때 조선국의 좀도둑[서절배(鼠竊輩)] 동학당(東學黨)이 소요를 일으킴으로 인해서 청·일 양국이 함께 병력을 동원해서 건너왔고 무단히 개전(開戰)해서 서로 충돌하였다. 일본이 청국을 이기고 승승장구, 요동의 반을 점령하였다. 군사요지인 여순을 함락시키고 황해함대를 격파한 후 마관(馬關)에서 담판을 벌여 조약을 체결하여 타이완(대만)을 할양받고 2억원을 배상금으로 받기로 하였다. 이는 일본의 유신(維新)후 하나의 커다란 기념사이다.


청국은 물자가 풍부하고 땅이 넓어 일본에 비하면 수십배는 되는데 어떻게 이와 같이 패했는가.

예로부터 청국인은 스스로를 중화대국(中華大國)이라 일컫고 다른 나라를 오랑캐[이적(夷狄)]이라 일러 교만이 극심하였다. 더구나 권신척족(權臣戚族)이 국권을 멋대로 희롱하고 신하와 백성이 원수를 삼고 위아래가 불화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욕을 당한 것이다.


한편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로 민족이 화목하지 못하고 다툼이 끊임이 없었으나, 외교상의 전쟁이 생겨난 후로는 집안싸움[동실조과지변(同室操戈之變)]이 하루아침에 화해가 되고 연합하여, 한 덩어리 애국당을 이루었으므로 이와 같이 개가를 올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친근한 남이 다투는 형제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이때의 러시아의 행동을 기억해야 한다. 당일에 동양함대가 조직되고 프랑스, 독일 양국이 연합하여 요코하마(橫濱)해상에서 크게 항의를 제출하니 요동반도가 청국에 돌려지고 배상금은 감액되었다. 그 외면적인 행동을 보면 가히 천하의 공법(公法)이고 정의라 할 수 있으나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호랑이와 이리의 심술보다 더 사납다.

불과 수년 동안에 러시아는 민첩하고 교활한 수단으로 여순을 조차(租借)한 후에 군항(軍港)을 확장하고 철도를 부설하였다. 이런 일의 근본을 생각해 보면 러시아 사람이 수십년 이래로 봉천(奉天)이남 대련, 여순, 우장(牛莊)등지에 부동항(不凍港)한 곳을 억지로라도 가지고 싶은 욕심이 불같고 밀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국이 한번 영·불 양국의 천진(天津)침략을 받은 이후로 관동(關東)의 각 진영에 신식 병마(兵馬)를 많이 설비했기 때문에 감히 손을 쓸 마음을 먹지 못하고 단지 끊임없이 침만 흘리면서 오랫동안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에 이르러 셈이 들어맞은 것이다.

이런 일을 당해서 일본인 중에도 식견이 있고 뜻이 있는 자는 누구라도 창자가 갈기갈기 찢어지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 이유를 따져 보면 이 모두가 일본의 과실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구멍이 있으면 바람이 들어오는 법이요 자기가 치니까 남도 친다는 격이다. 만일 일본이 먼저 청국을 치지 않았다면 러시아가 어찌 감히 이와 같이 행동했겠는가. 가히 제 도끼에 제발등이 찍힌 격이다.


이로부터 중국 전체의 모든 사회 언론이 들끓었으므로 무술개변[(戊戌改變):강유위(康有爲), 양계초(梁啓超)등 변법파(變法派)에 의한 변법자강운동(變法自彊運動). 1898년 이른바 백일유신(百日維新)은 겨우 100일만에 실패로 끝났지만 그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이 자연히 양성되고 의화단[(義和團): 중국 백련교계(白蓮敎系) 등의 비밀결사. 청일 전쟁후 제국주의 열강의 압력에 항거해서 1900년대에 산동성(山東省) 여러 주현(州縣)에서 표면화하여 북경, 천진 등지에 확대되었다. 반제반만배척운동(反帝反滿排斥運動)의 주체였다]이 들고 일어났으며 일본과 서양을 배척하는 난리가 치열해졌다.

그래서 8개국 연합군이 발해 해상에 운집하여 천진이 함락되고 북경이 침입을 받았다. 청국황제가 서안(西安)으로 파천하는가 하면 군민(軍民) 할 것 없이 상해를 입은 자가 수백만명에 이르고 금은재화의 손해는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참화는 세계 역사상 드문 일이고 동양의 일대 수치일 뿐만 아니라 장래 황인종과 백인종 사이의 분열경쟁이 그치지 않을 징조를 나타낸 것이다. 어찌 경계하고 탄식하지 않을 것인가.

이때 러시아 군대 11만이 철도 보호를 핑계로 만주 경계지역에 주둔해 있으면서 끝내 철수하지 않으므로 러시아 주재 일본공사 구리노(栗野)가 혀가 닳고 입술이 부르트도록 폐단을 주장하였지만 러시아 정부는 들은 체도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군사를 증원하였다.

슬프다! 러·일 양국간의 대참화는 끝내 모면하지 못하였다. 그 원인을 논하자면 필경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동양의 일대전철(一大前轍)이다.

당시 러·일 양국이 각각 만주에 출병할 때 러시아는 단지 시베리아 철도로 80만 군비(軍備)를 실어 내었으나 일본은 바다를 건너고 남의 나라를 지나 4,5군단과 중장비, 군량을 육지와 바다 양편으로 요하(遼河)일대에 수송했다. 비록 예정된 계산이었다고는 하지만 어찌 위험하지 않았겠는가. 결코 만전지책(萬全之策)이 아니요 참으로 무모한 전쟁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그 육군이 잡은 길을 보면 한국의 각 항구와 성경(盛京), 전주만(全州灣) 등지로, 육지에 내릴 때는 4,5천리를 지나 왔으니, 수륙(水陸)의 괴로움을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가 있다.

이때 일본군이 다행히 연전연승은 했지만 함경도를 아직 벗어나지 못했고 여순을 격파하지 못했으며 봉천에서 채 이기지 못했을 즈음이다.

만약 한국의 관민(官民)이 다같이 한 목소리로 을미년(1895년)에 일본인이 한국의 명성황후 민씨를 무고히 시해한 원수를 이때 갚아야 한다고 사방에 격문을 띄우고 일어나서, 함경·평안 양도사이에 있던 러시아 군대가 생각지 못했던 곳을 찌르고 나와 전후좌우로 충돌하며, 청국도 또한 상하가 협동해서 지난날 의화단 때처럼 들고일어나 갑오년(1894년 청일전쟁때)의 묵은 원수를 갚겠다고 하면서 북청(北淸)일대의 국민이 폭동을 일으키고 허실(虛實)을 살펴 방비없는 곳을 공격하며 개평(盖平), 요양(遼陽)방면으로 유격기습을 벌여 나가 싸우고 물러가 지켰다면, 일본군은 남북이 분열되고 배후에 적을 맞아 사면으로 포위당하는 비탄함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일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면 여순, 봉천 등지의 러시아 장병들의 예기(銳氣)가 드높아 지고 기세가 배가(倍加)되어 앞뒤로 가로막고 좌충우돌 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본군의 세력이 머리와 꼬리가 맞아 떨어지지 못하고 중장비와 군량미를 이어댈 방도가 아득해졌을 것이다. 그러하면 야마가타[산현유붕(山縣有朋): 러일전쟁 당시 2군사령관]와 노기[내목희전(乃木希典): 러일전쟁 당시 3군사령관]대장의 경략은 틀림없이 헛된 일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청국정부와 주권자도 야심이 폭발해서 묵은 원한을 갚게 되었을 것이고, 때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이른바 만국공법(萬國公法:국제법)이라느니 엄정중립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모두 근래 외교가의 교활하고 왜곡된 술수이니 말할 것조차 되지 못한다. 병불염사(兵不厭詐: 군사행동에서 적을 속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출기불의(出其不意: 의외의 허점을 찌르고 나간다), 병가묘산(兵家妙算:군사가의 교묘한 셈) 운운 하면서 관민(官民)이 일체가 되어 명분없는 군사를 출동시키고 일본을 배척하는 정도가 극렬 참독(慘毒)해 졌다면 동양 전체를 휩쓸 백년 풍운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이와 같은 지경이 되었다면 구미 열강이 아주 좋은 기회를 얻었다 해서 각기 앞을 다투어 군사를 출동시켰을 것이다.

그때 영국은 인도, 홍콩 등지에 주둔하고 있는 육해군을 한꺼번에 출동시켜 위해위(威海衛: 산동반도에 위치한 군항)방면에 집결시켜 놓고 필시 강경수단으로 청국정부와 교섭하고 추궁했을 것이다. 또 프랑스는 사이공, 마다가스카르 섬에 있는 육군과 군함을 일시에 지휘해서 아모이 등지로 모여들게 했을 것이고, 미국, 독일, 벨기에,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그리스 등의 동양 순양함대는 발해 해상에서 연합하여 합동조약을 예비하고 이익을 같이 나누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별 수없이 밤새워 전국의 군사비와 국가재정을 통틀어 짠 뒤에 만주와 한국으로 곧바로 수송했을 것이다. 한편, 청국은 격문을 사방으로 띄우고 만주, 산동, 하남(河南), 형낭(荊囊) 등지의 군대와 의용병을 매우 급히 소집해서 용전호투(龍戰虎鬪)하는 형세로 일대 풍운을 자아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형세가 벌어졌다면 동양의 참사는 말하지 않아도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때 한·청 두 나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약장(約章)을 준수하고 털끝 만큼도 움직이지 않아 일본으로 하여금 위대한 공훈을 만주땅 위에 세우게 했다.

이로 보면 한·청 두 나라 인사의 개명(開明)정도와 동양평화를 희망하는 정신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하니 동양의 뜻있는 인사들의 깊이 생각한 헤아림은 가히 뒷날의 경계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때 러일전쟁이 끝날 무렵 강화조약성립을 전후해서 한·청 두 나라 뜻있는 인사들의 허다한 소망이 다 부서지고 말았다.

당시 러·일 두 나라의 전세를 논한다면 한번 개전한 이후로 크고 작은 교전이 수백 차례였으나 러시아군대는 연전연패(連戰連敗)로 상심낙담하여 멀리서 모습만 바라보고서도 달아났다. 한편 일본 군대는 백전 백승, 승승장구하여 동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 가까이 이르고 북으로는 하르빈에 육박하였다. 사세가 여기까지 이른 바에야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왕 벌인 일이니 비록 전 국력을 기울여서라도 한두 달 동안 사력을 다해 진취하면 동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뽑고 북으로 하르빈을 격파할 수 있었음은 명약관화한 형세였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러시아의 백년대계는 하루아침에 필시 토붕와해(土崩瓦解)의 형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고 도리어 은밀히 구구하게 먼저 강화를 청해, (화근을)뿌리째 뽑아버리는 방도를 추구하지 않았는지, 가히 애석한 일이다.

더구나 러·일 강화 담판을 보더라도 천하에 어떻게 워싱턴을 담판할 곳으로 정하였단 말인가. 당시 형세로 말한다면 미국이 비록 중립으로 편파적인 마음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짐승들이 다투어도 오히려 주객이 있고 텃세가 있는 법인데 하물며 인종의 다툼에 있어서랴.

일본은 전승국이고 러시아는 패전국인데 일본이 어찌 제 본 뜻대로 정하지 못했는가. 동양에는 마땅히 알맞은 곳이 없어서 그랬단 말인가.

고무라 쥬타로(小村壽太郞) 외상이 구차스레 수만리 워싱턴까지 가서 (포츠머스)강화조약을 체결할 때에 사할린 절반을 벌칙조항에 넣은 일은 혹 그럴 수도 있어 이상하지 않지만, 한국을 그 가운데 첨가해 넣어 우월권을 갖겠다고 한 것은 근거도 없는 일이고 합당하지도 않은 처사이다. 지난날 마관(馬關)조약(청일전쟁 후 이등박문과 이홍장이 체결한 시모노세키 조약)때는 본시 한국은 청국의 속방(屬邦)이었으므로 그 조약 중에 간섭이 있게 마련이었지만 한·러 두 나라 사이는 처음부터 관계가 없는 터인데 무슨 이유로 그 조약 가운데 들어가야 했단 말인가.


유럽 백인종과의 조약 가운데 삽입하여 영원히 문제가 되게 만들었단 말인가. 도무지 어이가 없는 처사이다. 또한 미국 대통령이 이미 중재하는 주인이 되었는지라 곧 한국이 유럽과 미국사이에 끼어 있는 것처럼 되었으니 중재자도 필시 크게 놀라서 조금은 기이하게 여겼을 것이다. 같은 인종을 사랑하는 의리로서는 만에 하나라도 승복할 수 없는 이치이다.


또한 (미국 대통령이) 노련하고 교활한 수단으로 고무라상을 농락하여 바다 위 섬의 약간의 조각 땅과 파선(破船), 철도 등 잔물(殘物)을 배상으로 나열하고서 거액의 벌금을 전부 파기시켜 버렸다. 만일 이때 일본이 패하고 러시아가 승리해서 담판하는 자리를 워싱턴에서 개최했다면 일본에 대한 배상요구가 어찌 이처럼 약소했겠는가. 그러하니 세상일의 공평되고 공평되지 않음을 이를 미루어 가히 알 수 있을 뿐이다.


이미 이처럼 황인종에게 패전을 당한 뒤이고 사태가 결판이 난 마당에서야 어찌 같은 인종으로서의 우의가 없었겠는가. 이것은 인정 세태의 자연스런 모습이다.


슬프다. 그러므로 자연의 형세를 돌아보지 않고 같은 인종 이웃나라를 해치는 자는 마침내 독부(獨夫: 인심을 잃어서 남의 도움을 받을 곳이 없게 된 외로운 사람)의 판단을 기필코 면하지 못할 것이다.

현실성[편집]

솔직히 있는 그대로 얘기하자면 현실성은 낮다. 안중근 의사가 간과한 점이 있는데, 국제정치에서는 그 어떤 나라도 자국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타국을 도우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도덕성이라는 것을 완전히 배제하고 보아야 하는데, 서양은 도덕적이지 못하므로 동양이 도덕적으로 가야 한다는 논지는 국제정치의 현실과 맞지 않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도와 아시아를 건전하게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취지는 좋으나 일본이 그럴 이유가 뭐가 있냐는 것이다.

국제정치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던 구한말인 만큼 나라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던 마음은 알겠으나 국제정치의 현실을 잘 몰랐던 주장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