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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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이 새낄 두고 선견지명을 가졌다고 입 터는 머갈통 빈 새끼가 있는데 그 새낀 이 새끼가 친일파였던거뿐만 아니라 골수 반미였다는건 모르는 좆병신이 분명하다. 심지어 이 새낀 전쟁 중에 일본이 미국에게 강냉이 탈탈 털리는 와중에도 귀축영미를 부르짖고 일본을 빨아댄 새끼다. 친일은 했을지언정 세계 주도권 자체는 미국이 쥘거라고 내다봤던 이완용보다도 보는 안목이 없다. 대체 이 새낄 왜 빠는거냐?
ㄴ 동양 엘리트면서 서구 유학파인데, 그 당시 양놈들 인종차별 존나 쩔었고 인종차별 실제로 당하니 양놈들한테 이를 갈고 있었던거지. 백인 선민사상에 빠져 타인종 인간취급도 안하고 서구 제국주의에 침탈 당할바엔 같은 황인인 일본편 드는게 낫다는 판단임. 당시 환경 생각해보면 합리주의적인 판단이지. 아프리카에서 흑인들 착취 당하는 꼴 보고 일본도 아시아 연맹체제 구축해서 서구 제국주의 침탈에 같이 막아야한다고 주장하던 파당들 있었는데, 중국 조선 왕조가 너무 노답이라 동등하게 안본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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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생존하기에 적합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 한국이 적자로서 살아남게 하는 것이다. 한국이 공정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한국이 적자로서 생존할 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1892년 4월 7일 윤치호 일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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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지금의 야만적 상태에 머무느니 차라리 문명국의 식민지가 되는 게 낫겠다. 1890년 5월 18일 윤치호 일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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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편견과 차별이 극심한 미국, 지독한 냄새가 나는 중국, 그리고 악마 같은 정부가 있는 조선이 아니라, 동양의 낙원이자 세계의 정원인 축복 받은 일본에서 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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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경술국치 이전 발언이니 역센징들은 괜한 일뽕빨지마라
- 윤치호는 미국 유학시절 실제로 지독한 인종차별에 시달렸고 일종의 트라우마가 남았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은 다 썩고 허물어져가는 누각 꼴이었고, 조선은 그보다 더욱 심했다. 지금이야 현대시각에서 보면 좆같은 소리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면 조선과 중국은 희망따윈 찾아볼 수 없는 썩은 쓰레기통 꼬라지임에도 그에 반면 일본은 똑같은 꼴에서 강대국으로 변했다는것에 일종의 경외감을 갖고 있었고 이건 당시 조선과 중국 지식인들에게 만연한 일본에 대한 열등감과 패배주의와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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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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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한국 사람들은 민도가 낮아 대의 국민회의(代議 國民會議)나 하의원의 실시는 불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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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10%의 이성과 90%의 감성으로 살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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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열하고 무능한 조선의 민족성으로는 자치를 손에 쥐어준다고 해도 독립적인 국가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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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스러운 한국 역사에 대하여 더 알면 알수록 현 정부 하에서는 개혁의 희망이 없음을 확신케 된다. 정부는 500여년 간 국가의 향상을 위하여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
” |
간단히 말해 구한말의 썩어빠진 무능한 나라꼴에 절망과 혐오감을 가지고서 조선이란 나라에 희망을 거의 버린 인물.
ㄴ아예 버린 사람은 박중양임. 얘도 아주 작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기는 했었다.
그나마 민중들을 깨이게 만들어 민중을 토대로 나라 꼴을 바꿔보자는 희망을 가졌었으나 민중 계몽 운동이 그 민중들의 외면으로 처절한 실패로 끝나고 자신이 그토록 타파하고자 했던 유교 탈레반 정신이 굳건히 뿌리박혀있단걸 깨달은후 조선의 모든것에 환멸했다.
그런데 환멸하고난 뒤에 빨게된게 전쟁광에 무뇌아 투성이인 좆본이었다는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ㄴ전쟁광에 무뇌아 투성이가 됐단건 2차대전 무렵이고, 그 전만 해도 일본은 떠오르는 아시아의 선진국이자 강대국으로 크게 발전해가며 잘 나갔다. 그냥 2차대전, 그 전까지 하면 중일전쟁 전까진 강력한 열강 중 하나일 뿐이었지 처음부터 힘만 센 독보적인 병신이었던게 아니다. 애초에 당시의 조선은 전근대적인 사상과 전근대적인 법이 난무하던 시절이었고 그에 반면 일본은 철저히 근대화하여 조선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진 나라였다. 사상 면에서도, 국력 면에서도. 일단 선거제도도 애저녁부터 실시하고 있었고 나중엔 다이쇼 데모크라시라 칭할 정도로 유해졌던 적도 있었고 하니깐. 말로가 병신이라고 처음부터 병신은 아니다.
ㄴ 유언이 "모든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는 삼가라"였다. 좆본 지지한거에 나중에라도 후회한거다.
윤치호는 친일파이자 계몽운동가이다.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며 초기 한국 YMCA수장이다.
ㄴ반미일뽕이면 씨발새끼아니냐?
유학이후 귀국하여 독립협회 창설과 활동에 열의를 다해 행하며 민권, 평등, 민주주의를 외치며 대중들의 계몽에 힘썼다.
그러나 고종에게 독립협회의 민권, 평등, 민주주의 계몽은 황권강화에 해가 된다고 판단되어 강제로 해체당하고 당시의 일부 지식인들을 제외한 일반 민중들은 윤치호의 민권, 평등, 민주주의 계몽은 외면받으면 다행이고, 불충한 놈, 서양 오랑캐와 내통하는 놈, 우리의 전통을 폄하하는 놈 등등등으로 불리며 실패했다.
이 일 이후로 윤치호는 조선 조정은 물론, 민중(민족)들한테까지도 깊은 혐오감과 좌절감을 가지게 된다.
고종이야 어쨌건 민중들이 그의 말을 이해못한건 어찌보면 당연한게 당시 민중들의 절대다수는 그러한 사상을 받아들일만한 지식이 없었단 거였다.
간단히 말해 현대의 초중고 교육받은 놈들도 민주주의나 평등 등을 잘못 이해하는 놈들 많은판에 하물며 당시 공자맹자 유교사상이 뿌리박혀있고 그게 일상이며 평생 받은 교육이었단 사람들 앞에서 평등과, 민주주의, 민권, 참정권 등을 말해본대봐야 이해 자체를 하지도 못하고 거부감만 사기 십상이었던 것.
낙후된 조선인민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을 꽤 기울였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의 이니셔티브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행했다.
그래도 진지하게 노력을 기울였기에 해방 후에도 좆본과 좆선 사이의 양다리 컨셉종자라 욕 먹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마치 독립이전 영국 치하의 아메리카 식민주 대표처럼 행동했다는 것이다.
총독부의 역대 총독들과도 친해서 그의 일기를 보면 수시로 총독부에 초빙되어 자문을 하기도 하고, 어폐류 선물셋트도 자주 받아먹었다.
조선 민족주의자들과도 친했다. 친한걸 넘어서 개헬본좆국한테 코우동먹일려다가 이양반이 신원보증해줘서 살린 독립운동가들이 아주 많다. 특히 수양동우회쪽과 흥업구락부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이 얘가 신원보증해준덕에 석방됬을정도.
즉 식민본국과 식민지민들 사이의 중재자였다.
좋게 말하면 냉철한 식민지 민족지도자이나, 나쁘게 말하면 오체불만족 무사안일주의자이다.
일기 전반이 자학과 현실혐오로 도배되있는거 보면 염세주의적 면모도 강해보인다.
조선인은 태생이 글러먹은 민족이라 보고 조선의 미래를 대단히 비관적으로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말이 대부분 맞았다는거. 헬잘알 지못미.
조선인을 비판하면서도 학교 설립 부지를 기부하거나, 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거나 독립운동단체를 후원하거나 비밀을 지키는 등 나름 애정을 보인 인물...이 아니라 개인적인 자비에 가까웠다. 이 인간의 생애가 워낙 뒤틀려있기도 하지만... 물론 윤치호 집안의 막대한 재산은 그의 할아버지 윤취동이 마련한 것이다.
이완용을 아주 싫어했다고 한다.
윤치호의 증조부 윤득실은 통덕랑이라는 말단 벼슬을 지냈지만 술을 좋아하다가 38살에 요절했다.
여담으로 이완용은 앞으로 미국의 시대가 될것이니 자식들에게 영어를 익혀두라고 유언했다지만
ㄴ 영어를 익혀두라고 한게 아니라 미국 편에 서라고 유언했다.
윤치호는 일본이 이길줄 알았다가 광복을 맞고 말년에 데꿀멍을 하게되었다.
웃기게도 이 인간은 19세기 말에 미국 유학을 다녀왔던 사람이다. 당시라면 미국이 세계 최강은 아니어도 손가락 안에 꼽을만한 열강이었는데도 그 발전상을 나이 들어서 다 까드셨는지 아니면 일뽕을 치사량만큼 쳐드셨는지 전쟁이 시작된 이후 친일활동이 급증한다.
ㄴ 윤치호는 미국 유학갔을때 당한 인종차별으로 일뽕에 심취하게 되었다
조선총독부가 조선인 참정권을 주겠다고 하고 1940년부터 계속 일본정부에 참정권을 달라고 하니까 거기에 마음이 약해졌는지 모른다.
백낙준, 소설가 김동성 등은 윤치호가 명의를 도용당한 것이라고 했다. 김을한이 쓴 윤치호 평전에는 윤치호가 한번은 징병 독려 연설에서 내가 와서 뭔 말이라도 하려고 온 줄 알지만 나는 할말은 없다. 다만 총독부가 올라와서 연설하라 해서 올라왔을 뿐이다. 라고 짧게 말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하와이를 기습한 것을 보면서 일본이 망할 지도 모른다며 몸을 조심하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윤치호 슨상의 인생[편집]
윤치호/일생 으로.
윤치호 슨상 어록[편집]
- "한국인은 10%의 이성과 90%의 감성으로 살아간다[1]"
- "일본의 입장에서,조선은 생사가 걸린 문제인 만큼 다른 열강의 군사력에 제압되지 않는 한 조선이 독립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이 하찮은 조선을 독립시킬 요량으로 일본과 전쟁을 불사할까?[2]"
- "우리 조선 민족으로서는 어디까지나 일본을 믿고 피아의 구별이 없어질 때까지 힘쓸 필요가 있는 줄로 생각하고……이후부터는 일본 여러 유지 신사와 교제하여서 일선(日鮮) 민족의 행복되는 일이든지 일선 양 민족의 동화에 대한 계획에는 어디까지 참여하여 힘이 미치는 대로 몸을 아끼지 않고 힘써 볼 생각이다"(《매일신보》, 1915. 3. 14).
- 105인 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되었다가 친일 전향을 조건으로 1915년 2월 13일 특사로 출감하면서 매일신보사 기자와 가진 인터뷰의 한 대목이다.
- "황제(고종)가 말했기 때문에 박영효를 반역자로 생각하는 인민이라면, 그런 인민은 지금 보위에 앉아 있는 허수아비보다 더 나은 통치자를 가질 자격이 없다"
- "나는 거짓, 사치, 음란, 방탕한 생활을 누려도 되지만 다른 사람들은 특히 내 가족과 친구들 만큼은 절대 깨끗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런 괴팍하고 고약한 심리를 버리지 않는다면 독립은 꿈속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영원히."
- "다산 정약용이야말로 이조가 배출한, 아니 박해한 위대한 학자다. 그는 천주교로 개종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의 정적들은 그를 비참하게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 학자의 진가를 알고 있었던 정조(正祖)가 그를 어여삐 보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 처형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16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매우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 70여 권의 귀중한 원고를 남겼다. 그런데 요즘에도 노론계에 속하는 인사들은 그가 남인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책을 읽지도, 사지도 않는다.[4]"
- "아직 한국 사람들은 민도가 낮아 대의 국민회의(代議 國民會議)나 하의원의 실시는 불가능하다.[5]
- "세상이 약육강식의 냉엄한 법칙으로 창조되었다면 절대자는 약자의 권익을 고려했는지 의심스럽다.[6]"
- "법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법에 대한 국민의 발언권은 반드시 필요하다."
- "내정을 닦지 않으면 외교는 무익한 것[7]"
-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일은 마땅히 정부 조직을 고치는 것[7]"
- "나는 황제에게서도 또는 비굴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에게서도 또는 완전히 죽은 대중에게서도 한국의 장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가 없다.[8]"
- "무엇보다도 가장 슬픈 것은 황제나 비굴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이나 완전히 죽은 대중에게서도 한국의 장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9]"
- "절도들에 의한, 절도들을 위한, 절도들의 그런 가혹한 정부는 하늘 아래 어느 국가라도 멸망시킬 수 있을 것이다.[10]"
- "현재와 같은 정부라면 독립은 국가에 구원을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한편 더 좋은 정부, 즉 인민의 복지에 애국적이고, 공감이 가는 이익을 가져다줄 정부를 가진다면 종속도 진정한 불행은 아니다. 더욱이 건실하고 번영한 민족은 어느 때엔가는 독립을 회복할 것이다. 그런데 빈약하고 무식하며 잔인할 정도로 이기적인 정부에 의하여 가난하고 무식하며 연약하게 된 국민, 그러한 국민에게 독립이 뭐 나을 것이 있겠는가?[11]"
- "천만의 생령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나라, 능력이 발휘되지 못하고 사장되며 포부가 실현되지 못하며 애국심이 표현되지 못하는 나라, 지옥같은 전제정치가 수세대의 굴종과 빈곤과 무지를 낳는 나라, 삶 속에서 죽어가고 죽음 속에서 살아가는 나라, 도덕적 물질적 부패와 더러움이 해마다 수천의 생명을 앗아가는 나라,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같은 정치적 지옥이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12]"
- "수치스러운 한국 역사에 대하여 더 알면 알수록 현 정부 하에서는 개혁의 희망이 없음을 확신케 된다. 정부는 500여년 간 국가의 향상을 위하여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13]"
- "결국 부패한 그리고 부패하고 있는 소수의 독재정치로부터 한국 국민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현 정부와 낡은 체제를 완전히 철폐하는 것이다. 철저히 썩은 정부를 미봉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14]"
- "강력하고 철저한 혁명은 이 나라 전체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외세의 간섭은 그러한 혁명을 방해하거나 이것을 이 반도의 폴란드화를 위한 적절한 기회로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고려할 때, 그러한 폴란드화도 온 국가가 지금 서있는, 아니 잠자고 있는 악취 풍기는 침체보다 더 나을 것이며 적어도 더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15]"
- "외국 교육을 받고 썩어진 인간은 썩은 달걀보다 더 나쁘다.[16]"
- "한국인에게 필요한 것은 ABCD가 아니고 그의 힘을 북돋우고 그의 애국적 행동을 고무할 수 있는 강한 영향력이다."
- "우리는 인민 속에 강한 애국적 의견을 창출하고 선도하기를 원한다.[17]"
- "한국에 있어서 가장 깊게 자리잡고, 동시에 가장 널리 퍼진 악은 거짓이다[18]"
- "한국인에게 정직한 노동이 수치가 아님을 가르치는 것은 종교의 의무의 하나이다.[19]"
- "진실과 정의의 원리에 기초한 평화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지배자의 압제와 피지배자의 노예상태에 의하여 유지되는 평화는..... 한국을 진정한 지옥으로 만든 악덕이다.[20]"
- "일본의 괴로운 노예제도 하에서 한국인들은 동족 지배자에 의한 폭정이 결국 이민족 지배자에 의한 폭정의 디딤돌이 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21]"
- "정부 재정은 일국의 제일 중요한 일로, 차관(借款)과 광산 채굴권을 통합하여 호조에 소속시키고 왕명 외에 차관을 금지시키면 재정이 통일되고 왕명이 일도가 될 것이다.[22]"
- "야만인은 자연의 노예이고 반문명인은 자연의 겁많은 구걸자이며, 문명인은 자연의 주인이다.[23]"
- "외국인을 초청해서 한식을 대접할 때면 창피해서 낯을 붉히게 된다. 버젓한 음식점 하나 운영할 수 없는 사람들이 독립국가를 경영하길 원하니,나 원 참 기가 막혀서.[24]
- "만약에 거리를 누비며 만세를 외쳐서 독립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남에게 종속된 국가나 민족은 하나도 없을 것[25]"
- "학생들과 시민들이 만세를 외치며 종로 광장 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창문을 통해 눈에 들어왔다. 소년들은 모자와 손수건을 흔들었다. 이 순진한 젊은이들이 애국심이라는 미명하에 불을 보듯 뻔한 위험 속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25]"
- "만일 우리가 반드시 외부의 영향으로 개혁되어야 한다면 일본인보다는 유럽인이 낫겠다.[26]"
-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2]"
- "우리는 더 강한자가 더 약한 자보다 도덕, 종교 그리고 정치에 있어서 거의 항상 더 우월하거나, 덜 부패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의에 대한 힘의 승리처럼보이는 것은, 비록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불의에 대한 비교적 정의의 승리임을 알게 된다.[27]"
- "펜과 칼은 각기 정당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배제할 정도로 지나치게 강조되어서는 안된다. 양자는 인간의 봉사자가 되어야 하며, 결코 인간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하나의 민족이 하나, 단 하나만을 숭상해야 한다면 그것은 칼이어야 한다. 왜냐면 칼은 투쟁정신 또는 저항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28]"
- "세계에는 영국의 입헌군주제로부터 한국의 지독한 독재정치에 이르는 여러 형태의 정치체제가 존재한다.[29]"
- "어느 누구도 미국의 민주주의가 그 결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가장 좋은 정부 형태임을 부인치는 않을 것이다.[29]"
- "네시빌(테네시 주)은 백년 전에는 인디언의 사냥터였고 미개한 종족의 거주지였는데, 기독교와 민주적 정부와 개화된 국민이 천연의 숲을 '남부의 아테네'로 변화시켰다.[29]"
- "들어줄 준비가 되지 않은 자에게 말하느니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편이 낫다. 벽은 나의 험담을 하지는 않으므로"
- "(이왕직장관을 지낸) 민병석과 (이왕직찬시를 지낸) 윤덕영이 덕수궁 즉 고종황제의 궁궐과 영성문 안쪽의 인근 부지를 일본인들에게 팔았다고 하여, 이 비열한 매국노들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웹스터 사전에도 나오지 않을 거다.[30]"
- "남이 그렇다고 해서 그런 줄 아는 사람은 허수아비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다."
- "고도의 저항력을 가진 민족은 결코 열등한 채로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성령은 가장 고상하고 가장 순수하고 가장 높은 의미의 투쟁정신이다.[31]"
- "어떤 한국인도 나보다 더 미국인에게 감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한국인도 미국인의 거만한 태도를 나보다 더 변명하고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나에게도 미국적 오만함의 알약은 삼키기가 어렵고 그것을 소화하기는 더욱 어렵다.[32]"
- "황제가 반역자라고 말했기 때문에 박영효를 반역자로 생각하는 민중은 지금 왕좌에 있는 허수아비보다 더 나은 통치자를 가질 자격이 없다.[5]"
- "독립협회는 조선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 "한국인들은 머리가 비었는데도 잘난척하고 싶어서 몸이 달아오른다."
- "오후에 집에 있었다. 3시20분쯤 예쁘장하게 생긴 여학생이 찾아왔다. 조선인민협회 명의의 서한을 내밀며 조선 독립을 위해 자금을 대달라고 요구했다. 난 나 자신과 가족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만큼 돈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독립운동가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조선에 잠입하지 못하면서, 내게는 생명을 담보로 자기들에게 돈을 대라고 요구하는 게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녀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한을 챙겨 가버렸다.[33]"
- "조선인의 특징은 한 사람이 멍석말이를 당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려고는 하지 않고 다 함께 달려들어 무조건 몰매를 때리고 보는 것입니다. 내가 만약 그런 성명서를 발표하면 시위가 진정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자극을 받아 역효과를 낼 것이오."
- "대중목욕탕 하나 운영하지 못하는 우리가 현대 국가를 다스리겠다고?[1]"
- "한국인들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고집부리고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그래야만이 자신의 체면, 자존심이 선다고 착각하기까지 한다"
- "조선문제는 파리강화회의에서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을 것이며, 열강중 어느 나라도 바보처럼 조선문제를 거론해서 일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을 것[34]"
- "내나라 자랑할 일은 하나도 없고, 다만 흉 잡힐 일만 많으매 일변 한심하며, 일변 일본이 부러워 못견디겠도다."
- "나와 다른 것을 인정 못하는 자들이 민주주의 국가를 경영하겠다고?"
- "무능하고 가렴주구를 행하는 조선인 정부와 유능하고 착취하지 않는 일본인 정부 중에서 택하라면 나는 일본인 정부를 택할 것이다"
- "약자는 과연 선량한가?"
- "우리는 더 강한 자가 더 약한 자보다 도덕과 종교와 저치에 있어 거의 항상 더 낫거나, 덜 부패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35]"
- "우리들이 어떠한 학교의 설립을 원한다면, 그것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노동이 수치가 아니라는 것과, 한국의 장래는 노동에 달려있다는 것, 그리고 기독교가 일하는 종교라는 것을 산 진라로 배울 수 있는 실업학교여야 한다.[36]"
- "일본인들은 그들의 나라와 영국 그리고 미국에서는 기모노를 입은 천사들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에서는 독사들이다.[37]"
- "우리 동양제국(東洋諸國)이 지금 필요한 것은 공허한 말이 아니고 일이며, 철학이 아니고 힘이다.[38]"
- "도덕은 무능한 자, 부패한 자가 자기의 무능력, 부패함을 감추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요 도구다."
- "황제가 역적이라 하니 제손으로 뽑았던 의원을 역적이라고 믿는다. 그런 바보 국민이라면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
- "듣자니 조선 사람들이 민주정부 출범에 관해 거론한다는 데 내겐 마치 6세 어린이가 자동차 운전이나 비행기 조종을 거론한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영국과 미국 두 나라만이 세계에서 민주주의로 성공한 유일한 나라들입니다."
- "지역감정 하나로만 봐도 조선은 독립할 자격이 없다.[39]"
-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 내가 하기싫은 일은 다른사람도 하기 싫다."
- "(이완용의) 자기보다 열등한 사람들에게는 고집스럽고 권세 있는 사람들에게는 굴욕적일 만큼 복종하는 태도, 이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그에게 편견을 갖게 한다. 이완용은 철저한 기회주의자이고 아부에 능하다.[41]"
- "한국정부에 지혜와 애국심이 있다면 (그때는) 반도를 개혁하고 극동에서 스위스의 역할을 담당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42]"
- "수세기 동안 유색인종에게 복속과 치욕을 준 너희들의 뽐내던 과학과 발견, 그리고 발명을 가지고 지옥으로 가라![43]"
- "유교는 구걸하는 것을 용서할 만한 '약점'으로 만들지만, 조선 버전의 볼셰비즘은 강도짓을 '무산자의 영광'으로 만든다"
- "유교의 교훈은 꽤 아름답다. 그러나 유교가 우리 사회에 무슨 소용이 있는가? 신봉자로 하여금 그 교훈을 실천케끔 하지 못하는 유교라는 종교 체계는 어차피 실천하려고 하지도 않는 미사여구에 가득 찬 중국 조정의 칙령처럼 똑같이 나쁜 것이다. 실천하려는 자들이 없으면 교훈이 무용지물이 된다. 유교의 기초가 효도 이상으로 되지 않은 고로 유교가 무력하고 쓸모없는 것이다.[44]"
- "유교의 남존여비, 왕명에의 절대 복종 강요, 그리고 그 영원한 복고주의는 유교 부패의 씨앗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 유교의 현실주의는 사람을 속물로 만든다. ...(이하 중략)... 유교에서는 젊은이들이 효도의 규율만 잘 지키면 도덕군자가 된다고 생각들 한다. 극히 진부한 효도의 원칙을 최고의 도덕으로 만들어놓고 (효도에 따르는) 모든 죄악 즉 방종, 복수심, 거짓말, 증오심, 대단한 위선 등을 덮어둔다.[44]"
- "조선이 이런 야만의 상태로 사느니 차라리 문명국의 식민지가 되는 게 낫다[45]"
- "유교는 국가 안에서 국왕을 압제자로, 가족 안에서 아버지를 압제자로, 며느리에 대하여 시어머니를 압제자로, 아내에 대하여 남편을 압제자로, 노예에 대하여 주인을 압제자로 만들어 가정과 국가에서 모든 자유 정신과 기쁨을 말살시켰다. 따라서 유교는 압제적 계서체계(階序體系)라 할 만 하다.[46]"
- "그 도덕에 신이 존재하지 않고, 그 정치체제가 민중을 외면하는 유교는 어느 민족이든지 자만스럽고 이기적이며 노예근성에 빠지게 할 만큼 충분히 야비하다.[46]"
- "예수께서는 그 제자들에게 가서 가로되 가서 가르치라고 명하며 반면에 유생들은 와서 배우라고 말한다. 이것은 커다란 차이를 의미한다. 왜냐면 기독교인은 그가 소유하거나 알고 있는 뭔가 좋은 것을 공유하는 것을 의무로 여긴다.[47]"
- "반면 유생들은 자만과 사리를 위해 지식을 자기 혼자 소유한다. 유교사회에 있어서 공공심의 전적인 결핍은 나의 견해를 입증할 것이다.[48]"
- "일국의 흥망성쇠는 국민의 지각과 기상에 달린 것이며 우리나라 교육을 도와주고 국민의기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기계는 예수교밖에 없다.[49]"
- "나의 사명은 국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과 교육을 제공하는 것[50]"
- "결국 일본은 조선의 개혁을 지원하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 그 잘못은 일본의 잘못이 아니고 조선 정부의 잘못이다.[51]"
- "황금의 알을 얻기 위해 암탉을 잡으려는 것은 무분별한 일이며 우리가 이제 누리기 시작한 언론의 자유를 결코 남용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52]"
- "개선의 가능성이 없을 정도로 법이 남용되지 않도록 국민은 입법에 발언권을 가져야 된다.[53]"
- "다양성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양념 같은 것이다."
- "산에 있는 나무를 아무 생각 없이 싹둑 베어버리는 이 민족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54]"
- "아! 나는 일본이 앵글로색슨의 백인종적 편견과 불공평과 오만함의 풍선에 구멍을 잔뜩 뚧을 뿐만 아니라 그 풍선을 갈갈이 찢는데 성공하여, 백인들에게 "수세기 동안 유색인종에게 복속과 치욕을 준 너희 백인들이 뽐내던 과학의 발견과 발명품을 가지고 지옥으로 꺼져라."하고 말하게 되기를 기원한다.[55]"
-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하고 있고 앞으로 감당해야 할 국가적 수치와 굴욕을 생각할 때, 그리고 나의 모든 인생 행로에서 국적 때문에 괴로움을 당할 모습과 언행을 생각할 때, 인생이 지겹게 느껴진다. 나는 지금이나 앞으로도 죽음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죽음이 당장 내앞에 자연스럽게 찾아온다면 강한 자 이외에는 누구에게나 냉담한 이 세상과 하직하는 것을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56]"
- "이 세계를 실제로 현실적으로 지배하는 원리는 정의가 아니고 힘이다. 힘은 정의라는 것이 이 세계의 신이다.[56]"
- "나는 황인종의 일원으로서는 일본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는 한국의 모든 것, 독립까지도 앗아가고 있는 일본을 증오한다.[57]"
- "스파이의 스파이에 의한, 스파이를 위한 정부[58]"
- 조선총독부의 한국인 직원 채용계획에 대한 조롱
- "세상만사가 돈 없이 되는 일이 없다.[59]"
- "흑인이 사회적 평등을 주장하기에 앞서 경제적 평등을 이루어야 했듯이, 한국인도 정치적 평등을 주장하기에 앞서 경제적 평등에 도달해야 한다.[59]"
- "조선인들 중 최고의 지식인들은 히틀러와 스탈린의 저주를 받은 이 세상에서 조선이 자기 보존과 미래의 발전을 도모할 길은 오직 하나임을 잘 알고 있다."
- "이 시계를 실제로, 현실적으로 지배하는 원리는 정의가 아니고 힘이다. '힘이 정의'라는 것이 이 세계의 신이다.
- "무엇보다도 상공업을 발달시켜야 하겠습니다. 세상마사가 돈 없이 되는 일이 없고, 먼저 육체의 생활을 유지 못하면 도덕도 지킬 수 없으니 상공업을 진흥시켜 실력을 길러야 하겠습니다.[59]"
- 1922년의 강연에서
- "교육 없이는 국가가 존립할 수 없으며, 더 많은 교육은 더 많은 독립을 가져온다.[59]"
- "우리는 더 강한 자가 더 약한 자보다 도덕 및 종교와 정치에서 거의 항상 더 낫거나 덜 부패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다소의 예외는 있겠지만 정의는 인종간에 있어서도 힘이다."
- "일본이 한국 합병을 가볍게 승인했던 미국이 무슨 명목으로 일본의 만주 점유를 반대하는가[60]"
- 미국과 백인 국가들이 일본의 한국지배에 대한 방조자라는 것에 대한 분노감
- "저열하고 무능한 조선의 민족성으로는 자치를 손에 쥐어준다고 해도 독립적인 국가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 "약자가 항상 순종해야만 강자에게 애호심을 불러 일으켜 평화의 기틀이 마련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조선이 일본에게 덮어놓고 불온한 언동을 부리는 것은 이로운 일이 못 된다.[61]"
백인에 대한 증오[편집]
당시대 대부분의 한중일 미국유학 출신자들의 공통점이지만
윤치호도 미국 유학파 출신인 이토히로부미나 무츠무네미츠와 마찬가지로 영미 앵글로섹슨을 깊이 증오했다.
당연히 유학과정에 받은 수많은 황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이 근원이다.
윤치호 일기에는 그가 상하이의 공원 입구에서 봤던 푯말 '중국인(황인종)과 개는 출입금지'말의 기억이 자주 거론되며, 유학와중 겪은 백인의 발차기 등 신체적 폭력의 경험이 암시된다. 전반에서 백인종에 대한 깊은 분노가 자주 표출된다.
그리고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때 기뻐한다.
일본에 대한 증오와 멸시, 그리고 일본에 대한 동경, 마지막으로 일본이 내세운 대동아공영권과 앵글로섹슨족의 동아시아 추방에 대한 주장에 깊이 동조가 일기 전후반에서 교차된다.
이처럼 그의 의식에 모순이 많은 이유는 순전히 그의 백인들에 대한 원한에서 기인한다.
총독부의 감정 대립[편집]
그는 1910년 한일합방 직후 형식적으로 남작 작위 받은 것 외에는 일본 정부나 총독부의 이런저런 감투를 모두 거절했다.
친목단체 수준의 단체들로 공직이 아닌 자리는 마지못해 수용했는데, 대정친목회에 대해서는 오고 가는 사람 환영만 하는게 목적인 단체라며 디스하기도 했다.
1936년 중일전쟁 때까지만 해도 중추원 참의나 중추원 고문직을 계속 거절했는데 그 이유로 내가 그런 단체에 있는 것보다는 재야에 있는게 더 영향력을 발휘하는게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1938년 1월에 도쿄에 갔다가 그의 일본인 친구가 여태 총독부나 일본정부가 윤치호 당신을 미행하고 있다고 알려준뒤 자신을 미행하는 헌병을 보고 충격받고 며칠 동안 호텔 밖을 못나서기도 했다. 창씨개명 때는 총독이 자기 성과 올리려고 하는 짓이라고 디스하면서도, 조선인들의 반발이 심할테니 6개월만 유예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객관주의[편집]
윤치호는 자신의 일기에 자기 부모를 OO씨라고 쓰기도 했다. 아버지가 개혁한다 해놓고 아무것도 안 한다고 디스할 때는 mon pere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건 프랑스 어로 우리 아빠라는 뜻이다. 71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 단어를 다른 영어로 착각하기도 했다.
이복동생이 자기 부인에게 잡혀사는 것 같다는 내용, 자기 딸들이 대드는 것도 일기에 담대하게 적어내려갔고, 세번째 부인이 하녀들을 때리고 구박하고 꼬집는 것까지 썼다.
윤치호는 나혜석이 이혼한 것과 박인덕이 이혼한 것까지 쉴드쳤다.
남자들은 첩을 들이거나, 첩을 안 들여도 칠거지악 말하면서 부인이 마음에 안들면 내쫓거나 하는데 왜 여자는 당당하게 이혼신청하면 어디 덧나냐는 것이다. 하지만 박인덕은 기독교 교회를 자기가 장악하려던 신흥우에게 협조하자, 윤치호는 이때부터 박인덕을 안좋게 봤다. 물론 이혼한 것이나 다른 남자 만나는 것 때문은 아니다.
윤치호는 한국의 장례식이 슬픔 없는 행렬, 비싼 돈, 허례 허식으로 꽉 찼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혼식에 사람들 많이 부르는 것도 사치에 허세라고 꼬집었는데, 사촌동생 윤치소의 셋째아들 결혼식에 사촌동생 치오, 치소 등이 초대장에 공동 발송자로 박영효를 쓴 것 등을 언급하면서 같이 지적했다.
관련 저작[편집]
- 윤치호 일기
- 애국가(작사)
윤치호가 21세기에 태어났으면[편집]
반에서 공부잘하는 오타쿠 정도 되었거나
사회 문제를 지적하면서 호응을 잘 받는 인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중일전쟁 시점인 1937년 이전까지의 일제는 강압적이긴 했어도 동양에서는 나름 잘 알려진 강국이였기 때문에 대놓고 폐급짓 저지르는 북괴, 짱깨, 러시아 같은 병신들까지 빨아대는 외교알못은 아니였을 것이다.
비슷한 인물[편집]
- 서재필 : 조선을 혐오해서 탈조선, 미국정착했지만 조선에 대한 미련을 못버린 인물.
- 안창호 : 조선을 혐오했지만 조선에 대한 미련을 못버렸음.
- 유길준 : 조선을 혐오했지만 탈조선하지 못하고 조선에 대한 미련을 못버렸음.
- 이규완 : 조선을 혐오했지만 끝내 일본에 조선인 참정권을 달라고 여러번 설득할만큼 미련을 못버렸음.
- 박중양 : 조선에 대한 애정 자체를 버린 인물이다.
- 리섭 : 21세기의 윤치호호소인.
각주
- ↑ 1.0 1.1 윤치호일기 문화일보 2001.02.21
- ↑ 2.0 2.1 2.2 개화기 친일파 지식인 윤치호 `합방이후 쓴 영문일기 번역출간` 한국일보 2001.02.17
- ↑ 윤치호와 유길준 프레시안 2003년2월 17일자
- ↑ 윤치호, 《윤치호일기:1916~1943》 (김상태 편역, 역사비평사, 2001) 613페이지
- ↑ 5.0 5.1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139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154페이지
- ↑ 7.0 7.1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44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159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242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158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197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184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186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214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213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234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235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237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238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90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160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45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76페이지
- ↑ 윤치호일기 한국일보 2001년 2월 16일자
- ↑ 25.0 25.1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 元老의 誤判 조선일보 2004.03.05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227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259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261페이지
- ↑ 29.0 29.1 29.2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78페이지
- ↑ 고종 승하하니 덕수궁이 찢어지도다 오마이뉴스 2003.03.05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261~262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266페이지
- ↑ 작은 것들이 더 절실하다 동아일보 2003.09.17
- ↑ 위기 앞에 선 언론 미디어오늘 2002년 10월 17일자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81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167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169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82페이지
- ↑ “비열한 서북, 신사적 기호” 지역을 선악구도로 본 윤치호 한겨레 2004.04.12
- ↑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31120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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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17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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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88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100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113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122페이지
- ↑ [출판] 나는 나무처럼 살고싶다 등 한국일보 2001.03.22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274페이지
- ↑ 56.0 56.1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80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267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268페이지
- ↑ 59.0 59.1 59.2 59.3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269페이지
- ↑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279페이지
- ↑ 3.1 운동 이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