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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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새끼! 건방져! - 숱한 무신정권 집정자들이 상대방의 통수 노리고 발터를 겨누며
군바리 새끼들이 좆도 모르고 나대면 나라가 어떤 꼬라지가 나는지 알려준 시대. 좆반도 역사상 가장 많이 발터와 죽창이 난무했던 시기였다. 쫌만 수틀리면 여지없이 발터와 죽창을 꺼내들었다
정중부를 위시한 군바리들이 의종한테 황상 폐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쇼! 라며 발터를 들이댄 무신정변 부터 임유무가 모가지 짤린 시기까지 딱 100년이다.
이 100년 덕분에 고려는 개병신 국가가 되어버렸다.
사실상 이 똥을 못치워서 망한 나라가 고려다.
집권 순서는 이고🔶️ -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 최우 🔷️- 최항🔷️ - 최의🔷️ - 김준🔶️ - 임연🔶️ - 임유무🔷️
(탈취🔶️,이양🔷️)
ㄴ 근데 근현대사에서 박정희는 군사독재 인권침해 민주파괴 이런거 감안해도 나라 운영에 있어서 최소 평타 그 이상은 했는데 고려 무신정권 이새끼들은 무관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웰케 무능했던건지 모르겠음.
전기 무신정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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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정권 삼두인 이고, 이의방, 정중부가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지 못하고 놀러만 다니던 의종과 무신들을 좆밥으로 보던 문신들에게 발터를 들이대며 일으킨 무신정변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실상은 정중부는 어디까지나 무신정변의 얼굴마담이었고 초기 무신정권의 실세는 이고, 이의방으로 대표되는 영관급 장교들이었다. 의종을 폐위하고 명종을 옹립한 무신정권 삼두중 이고는 세력이 가장 강하긴 했으나 실제로는 무신집정이 아니었고 그냥 이고, 이의방, 정중부 세명이서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다는게 정확하다. 그리고 중방의 장성들까지 서로 간을 보고 있던 상황. 그러다 이고는 이의방을 타겟으로 하여 죽창을 꺼내들다가 오히려 이의방에게 발터를 맞고 말았고 이의방이 무신집정이 되었다.
이의방이 집권하면서 본격적으로 무신정권의 일인독재가 시작되었다고 할수 있는데 이의방은 무신정변 당시 서리 (10급 공무원)이라도 문관들은 다 잡아 죽여라!고 외친 강경파 장교였다. 이의방이 집권 하면서 의종 복위를 노린 지방관리들의 반란이 줄을 이었는데 이의방은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개경에 남아있던 의종에게 호의적인 문신 관료들 또한 죽였다. 그리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경주에 있던 의종 또한 이의민을 시켜 살해했다. 레알 자비란 없는 무자비의 극치인 독재정치를 펼치면서 조금씩 이의방 정권에 균열과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마침 기회를 노리던 정중부의 아들인 정균이 꺼내든 발터를 맞고 죽었다.
정중부는 무신정변의 얼굴마담이었으나 실질적인 정변은 이고와 이의방이 주도한 덕분에 무신정권의 삼두중 가장 힘이 약했으며 이고가 이의방에게 살해 당한 후엔 그냥 땅바닥에 엎드려서 죽은 척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의방 정권의 분열 기미가 보이자 정중부의 아들인 정균이 이의방을 암살했고 마침내 정중부 정권이 출범했다. 꽤나 권력욕이 있었던 모양으로 나이 70이 넘어서 뒤지기 직전 나이가 되었음에도 출근해 일했다고 한다. 당연한 수순으로 정중부 정권 또한 부패하기는 마찬가지였고 특히나 아들인 정균과 사위인 송유인의 부정부패가 심했는데 이를 보던 경대승이 죽창을 꺼내들어 모조리 살해했다.
경대승은 본인이 무신집정이었으면서 무신정변 이전으로 고려를 돌리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는데 이는 무신정권의 옹호로 왕위에 오른 명종에게 딥빡을 선사했으며 전의 무신집정들과는 달리 경대승과 명종과의 관계는 존나게 험악했다. 명종 입장에서는 대놓고 자신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경대승이 당연히 좆같이 보였을것이다. 당황한 경대승은 모든 관직을 내려놓고 가끔씩 입궐하여 정부의 정책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말하곤 하였고 공직으로는 자신의 호위부대인 도방의 수장직만 맡았는데 오히려 이게 더 역효과를 낳아 명종은 경대승이 아무 관직도 없으면서 궁에 들어와 국가의 정책에 완장질로 보았고 도방 또한 경대승의 신변보호를 핑계로 사병을 모아 자신을 칠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경대승도 경대승 나름대로 슬슬 딥빡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갑자기 경대승이 급사해 버린다.
경대승이 집권하기 얼마 전 무신정변에 참여했던 고위 무장들 또한 죄다 늙어 죽어 버린 바람에 바로 권력의 공백이 발생했고 이는 명종 자신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실권을 행사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으나 명종은 문벌귀족들과 같은 관료들 보단 자신을 옹립한 군부가 자기를 지켜줄 것이라는 판단을 하여 당시 무신정변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무장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있었고 경대승을 피해 경주로 도망가 있던 이의민을 불러 올린다.
정치력이 뛰어난 건지 아님 이의민을 견제할 세력 자체가 없었던건지 이의민은 빠른 속도로 조정을 장악해나갔고 10여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장기집권했다. 꽤나 정치적 능력이 있었던 모양으로 흔히들 말하는 것 처럼 존나 포악하기만 미친놈이었다면 절대 10년간 집권 할 수가 없다. 중간에 역적으로 낙인 찍히고 다구리 맞아서 죽었겠지. 최충헌이 이의민에게 발터를 꺼내든 것도 마타산에 놀러간 이의민을 기습적으로 통수를 친것이다 바꿔 말하면 기습적인 통수 말고는 방법이 없을 정도로 이의민 정권이 나름 탄탄했다는 말.
이의민의 모가지를 짜른 최충헌의 집권기 부터 60년 최씨 무신 정권이 시작되는데 이를 중기 무신정권이라고도 한다.
중기 무신정권, 최씨정권[편집]
최씨들이 다해쳐먹은 시기. 그리고 이 최씨정권은
21세기 헬반도에 최순실 게이트 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재림했다.
응 택배안와
이의민을 살해한 최충헌은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명종도 폐위시켜 버렸다.
최충헌은 그야말로 무신정권의 정점에 오른 사람으로서 좆반도 역사상 가장 냉혈한인 정치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자신의 권력에 조금이라도 도전할 낌새가 있는 인물이라면 친구, 친척 할것 없이 전부 죽이거나 귀양 보내버렸고 심지어 자기 아들들도 서로 데스매치를 벌이게 하여 승자인 최우에게 정권을 물려줄 정도로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 최충헌이다.
집권 초기의 최충헌은 나름 이런저런 개혁정책을 펼친다고 했지만 퍽이나...당연히 철저하게 부패했으며 오직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데 열심이었다. 심지어 거란의 잔당이 고려를 공격했을때도 고려 최정예군인 자신의 사병들은 끝까지 놔두었고 심지어 이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장수들은 오히려 전공을 짜게 주거나 아니면 누명을 씌워서 귀양 보내버렸다.
ㄴ이는 왕이 되지 못한 군사 독재 권력자의 어쩔 수 없는 모순점으로 보면 되는데 자신이 일단 군부의 수장으로 있는 상황에서 군부의 명성을 바탕으로 집권하고 있는데 다른 장수가 전공을 세워 이를 뛰어넘어 버린다면 바로 자신의 정통성은 똥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이긴 하지만 조조가 늙어서까지도 그렇게 스스로 군대를 많이 이끌고 다니며 친정을 한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최충헌이 죽자 아들인 최우가 집권했는데 정권을 세습했다는 점에서 이미 고려왕은 그냥 자리 보전만 하는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실질적인 권력은 최씨 무신정권에게 있었다고 보면된다. 최우는 글을 잘 짓는 편이었는데 덕분에 글잘알, 시잘알이라는 후빨을 들으며 문신들에게 호감을 받았고 군사 독재자인 애비와는 다르다고 선언해 문신들을 적절히 기용하는 일종의 유화책을 펼친다. 문제는 이사람 집권기에 여몽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건데 몇차례의 야전에서 몽고군한테 좆털린 후 야전에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자 장기전을 계획하고 고려 조정 전부가 강화도로 들어가버린다. 이는 당연히 역효과를 낳아 침공의 명분을 얻은 몽고군은 심심하면 고려 털어먹을려고 공격했고 졸지에 미아가 된 고려 백성들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몽고군한테 뒤지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도 세금은 착실히, 전쟁중이라는 이유로 보너스까지 부쳐서 뜯어 가는 상황이었다.
최우 자신에게도 아무런 대책이 없었으며 그저 고려가 초토화 되는 걸 보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걸 지켜볼 뿐이었다. 자신도 좀 상황이 앰창이라는 걸 느꼈는지 뜬금없게도 종교의 힘으로 몽고군을 무찌르자며 엄청난 돈을 들여서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뻘짓을 하기도 했다. 차라리 그 돈으로 군대 양성이나 하지 병신새끼ㅉㅉㅉㅉ 강화도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고 거기서 죽었으며 서자인 최항이 뒤를 이었다.
애미가 노근본인 최항이 집권하면서 당연히 온 사방에서 들고 일어났는데 신분제의 질서가 꽤나 엄격했던 고려에서 애미가 천한 신분인 최항의 집권은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최항은 이를 무자비하게 때려 진압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다졌는데 아이러니하게 이 때려잡은 사람들이 애비인 최우의 신하들이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최항의 권력이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애비인 최우와 마찬가지로 몽고에 대해서 강경책으로 일관 했으며 집권 8년만에 아들인 최의에게 세습하고는 죽었다.
60년 최씨 무신정권의 마지막 집권자인 최의는 파오후라고 하는데 집권한지 1년만에 김준에게 살해당하면서 최씨 무신정권이 종식되었다.
말기 무신정권[편집]
최의를 살해하고 집권한 김준의 권력은 앞서의 무신집정들과 비교했을때 좆밥이나 다름없었는데 이는 일단 김준의 거병 명분이 왕정복고여서 원종이 표면적으로나마 실권을 차지하였고 김준정권의 성격 또한 김준 1인 독재체제가 아니라 공신들의 연합체 성격이 짙은 집단지도체제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게 좆같았던 김준은 자기 친인척에게 권세를 주면서 일인 독재 체제를 시도했는데 당연히 다른 공신들이 게거품을 물었으며 김준정권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한편 김준 동생에게 좆같이 보인 이유로 김준에게 찍혀서 저세상 가기 일보직전이었던 임연에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원종은 왕명으로 김준을 살해할 것을 명했고 왕명이라는 명분을 얻은 임연은 기습적으로 김준에게 발터를 겨눠 죽여버리고 자신이 집권했다.
비록 김준이라는 공동의 적을 상대로 일시적으로 연합한 임연과 원종이었지만 이 둘은 그야말고 상극으로서 전혀 맞지가 않은 사람들이었다. 원종은 몽고의 요구를 들어주어 전쟁을 종식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임연은 당연히 말도 안된다며 원종과 대립했다. 결국 핀치에 몰린 임연은 원종을 폐위시키는 극단적인 수까지 쓰며 저항했으나 당장 몽고가 지랄병을 하자 어쩔 수 없이 다시 원종을 복위시켰고 몽고가 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청하며 임연의 몽고 입조를 요구하자 이를 걱정하다가 죽었다.
100년 무신정권의 마지막 집정자인 임유무는 임연의 아들로서 임연이 죽자 무신집정이 되었는데 이시기의 무신정권은 이미 그 수명이 다한 상태로 모든 명분과 권한이 이미 원종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더군다나 원종의 뒤에는 몽고라는 엄청난 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고작 몇천명에 불과한 고려 칼잡이 군바리들로는 도저히 상대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미 원종은 강화도를 나와서 개경으로 들어간 상태였고 정부 관리들 또한 전원 강화도에서 나와 개경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린 상황이었으나 임유무는 마지막까지 발악을 하다가 결국 원종을 왕명을 받은 군인들에 의해 살해되었고 무신정권은 종식되었다.
이성계의 경우[편집]
무신정권이 좆망하고 오랜 세월이 흘러서 조선 왕조를 개창한 이성계의 집권과정도 무신정권이랑 비슷하다. 사실상 무신정권의 끝판왕이라 할만하다.
오죽하면 공양왕이 국가 대 국가에서나 맺을 법한 동맹을 일개 지 신하랑 맺으려고 했겠냐?
이 시기 이성계 권세는 최충헌때 최씨정권 못지 않게 강력한 권력을 휘두를 정도였으며 결국 새왕조를 개창했다.
이성계의 권력이 최충헌과 그렇게까지 차이가 안난걸 보면 시대의 흐름을 잘타야한다는걸 알 수 있다.
이성계와 다른 무신집권자의 차이로는
- 중앙에 관직을 기반으로 군권을 행사하는거 빼면 암것도 없었던 무신집권자와 달리 성계는 자기 기반 땅은 물론이고 사병도 빵빵하게 보유하고 있었다.
- 군공이 별로 없거나 안전한 곳에 짱박힌 다른 무신집권자와 달리 성계는 온갖 전투에서 승리한 전쟁영웅이다.
- 문신들을 닥치는대로 처죽여 보좌해줄 똑똑이들이 없는 무신집권자와는 달리 성계 옆에는 정도전같은 똑똑이들이 즐비했다.
- 시대도 따라준 것이 무신집권자들은 고려 왕조의 균열이 시작된 시대다. 그에 비해서 이성계 때는 저 균열이 절정에 치달아서 민심이 아주 그냥 씹창난 때였다.
... 정도 되겠다.
참고로 이의방에게는 형 이준의랑 동생 이린, 이거가 있었는데 이성계는 이의방의 방계 후손이다. 이의방 동생이 이성계의 조상 이린이다.
기타[편집]
고려 체제를 완전히 뒤집어 버린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연구가 잘 안된 시기이다.
단적인 예로 이의민의 경우 10여년 간 장기집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그냥 기록대로 자기 꼴리는대로 저질러댔으면 그 살벌한 시기에 절대 10년간 장기집권 못했다. 몇년 안에 통수 맞고 대가리 짤렸지...쉽게 말해 정치력이 꽤나 뛰어났다는 사람이라는 건데 이 사람이 뭘 했는지 전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으니...
-> 고려에 대한 기록물들이 많이 유실돼서 그럼.
그나마 최씨정권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편이긴 한데 이조차도 단편적인 것만 확인된 사항이지 세부적인 사항은 연구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 그냥 교정도감을 만들어서 교정별감에 취임했다가 전부이지 이 교정도감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운영되었는지는 아직 확인된 사항이 없다.
사실 무신정권 집정자들의 기관 중 중방을 제외하고는 교정도감이나 진양부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최씨정권 붕괴 후 머가리가 짤렸다고 기록에 나오는 최의를 제외하고 당연히 반역자의 집안으로 부관참시를 당했어야 하는 최충헌, 최우, 최항의 무덤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조차도 모르는 실정이다.
씹덕위키 새끼들은 지네 수용소에 부관참시 되었다고 똥을 뿌직 싸질렀지만 당연히 아무 근거도 없는 개소리다.
군사독재 시기에는 무신정권 시절을 좀 빨아줬다. 그래야 지들도 가오살고 정통성 드립도 칠 수 있거든.
부록으로 무신정권이 종식된 후 삼별초의 난이 발생했다.
최씨정권의 최충헌이 진주에 진강부라는 부를 개설한것은 확실한데 이것이 좆본 막부체제 처럼 고려국왕은 개경에 처박아 두고 최고 권력자인 최충헌 본인과 나머지 관료들은 진주로 내려가서 거기서 통치를 한건지 아니면 형식적으로만 부를 만들어 놓고 최충헌 본인은 계속 개경에 있었는지 확실치가 않다.
사실 최충헌이 진주에 부를 개설한 것 자체가 의외의 행동인데 이 사람의 가문은 우봉 최씨로서 우봉은 지금의 황해도 있는 곳으로 최충헌과 진주와는 어떠한 정치적 연관도 없는데 거기다가 부를 개설했다;;;;;그 이유는 무신정권의 연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확인되지 않고 있다.
-> 진주가 최충헌의 외가라고 하더라. 관직생활도 사실 진주에 여러번 부임했다는 얘기도 있음. 외가 빽으로. 자세한 사항이나 반론은 누가 추가좀 해주소.
사대부들이 정치일선에 등장한 시기이도 하다. 무신정변으로 문벌귀족들이 줘 털리자 이를 보충하기 위해 유교를 정치철학으로 삼고 있던 유학자들을 대거 정치판에 등용시켰는데 무신정권의 집정자들, 특히 최씨정권하에 이들은 크게 성장한다. 대표적인게 이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