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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조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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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러한 헬지구의 암울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지구인들에게 태양계가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이런 것들과 당신에게 탈지구를 권하지만, 현재 기술력으로는 달에서 사는 것도 안 되기에 그냥 계속 사십시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존나 불쌍합니다...ㅠㅠ
광광 우럭따 8ㅅ8

ㄴ중화민국과 이들을 지지하던 중궈의 애국보수들 및 일본군에 강제징집된 일본인들과 식민지인들

파일:Latest?cb=20120929182437.jpeg 중화인민공화국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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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일본군,중공,군벌,일부국민혁명군,한간 그리고 중화민국 평가절하 하는 병신TV유튜버들

중화민국의 승리!

아무튼 중화민국이 이겼습니다 쪽본의 띵복을 야무지게 빕니다


좆도 한거도 없는 중공이 본토처먹고 승전기념식까지 처하는 걸 보면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국공내전이랑 중일전쟁 보면 존나 신기한 게 쭝꿔 민중들이 생각보다 야매로 무기를 존나 만들어 잘 바치는 듯하다. 지금도 뭔 시발 잉여 같은 연놈들이 짭으로 별 걸 다 만들어서 혼돈의 카오스를 만드는 싹쑤가 이미 이때부터 보였던 것 같다.

태평양 전쟁이 조온나 유명해서 그렇지 일본에게 있어서는 중일전쟁이 더 좆같다면 좆같았다. 애초에 유사국가 중세 잽랜드답게 전비가 GDP 대비 23% 대였는데 중일전쟁 하면서 이게 50%를 뛰어넘어 부담이 좆되게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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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개요[편집]

1937년 7월 7일 - 1945년 9월 2일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
  • 1920년대 일본은 경제 대공황으로 어려움에 처하게되고 이를 극복하고자 식민지를 확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일본은 자원이 풍부한 만주지역을 점령하고자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다.
  • 만주사변에 성공하여 만주 대부분의 지역을 점렴하게되고 푸이황제를 앞세워 만주국(1932년 3월 1일~ 1945년 8월 18일)을 건국한다.
  • 일본은 중국이 국공내전으로 불안정하다는것을 알고 중국을 점렴하기 위해 루거우차오 사건(1937년 7월 7일)을 빌미로 하여 중국을 침략한다.
  • 미국, 소련은 국공군에 군수지원을 하였고, 쉽게 끝날꺼라 예상한 전쟁은 길어지고 고착화되었다.
  • 소련은 1945년 8월 일소중립조약을 깨고 만주 전략공세작전을 개시하여 만주, 한반도 이북을 점령하고 일본은 9월 9일 항복을 선언한다.

중일승전기념일[편집]

지금 대륙을 먹고있는 중공이 승전이니 뭐니 자위질해 대는데 사실 중공은 중일전쟁때 한거라곤 빤스런, 사보타주(국민당에게), 간첩질(국민당에게), 선동(국민당에게)이 거의 다이며 9할 9푼 9리는 중화민국과 미국이 했다. 오히려 일본을 환영한 건 칭챙총공산당 새끼들이랑 모택동이다. 그러므로 반일 정신이 강하다면 짱산당, 모택동도 같이 까자. 적어도 독립운동가 분들은 빨갱이, 수꼴 상관없이 반대 쪽이 일본에 탄압당하는 걸 싫어했다.

일본의 사정[편집]

메이지 유신 이후로 육성된 일본의 장교집단들은 죄다 1차 대전 초기에나 먹힐법한 유사 총력전 사상(황국 신민 1억이 옥쇄 지랄지랄 하던 병신 사상이었다)과 덴노헤이카 반자이 정신 그리고 제국주의적 팽창주의에 맛이 가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아편전쟁 이후로 골골대던 중국은 일본에게 주어진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희한하게 일본 장교 집단은 유독 병신 사이코들로 평가되나 사실 당시 패권주의적 사고를 가진 높으신 분들의 언행은 서로 꽤나 비슷비슷했다. 일본 장교 집단만 병신 같은 사상을 가졌던 것이 아니다.

각종 서적에서 나오는 병사의 뺨을 때리고 인격적으로 모독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거 범죄 등을 핑계로 제재한다면서 폭행하고 식량 부족하니까 장교들만 배불리 먹거나 주보(매점) 이용 같은 것까지도 차별하고 이런 건 나치에도 많아서 거기도 장교들을 매우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병사들이 많았다.

미군도 패튼 같은 새끼는 폭언과 폭행을 자주하고 다녔다. 그나마 미군은 장성이라도 바로바로 처벌은 할 정도로 확실히 민주화된 면모를 보여줬다. 심지어 작전의 유용성은 둘째치고(솔직히 아군을 미끼로 써도 상황이나 결과에 따라 평가가 다르다) 6·25 때 국군을 도구나 고기방패 정도로 생각하신 분들이나 쓰레기 대결의 끝을 달리는 인간들은 개막장이었다. 같이 튀지 않고 남아서 북한군 좀 지연시키는데 기여하라고 다리를 끊지 않나 아군을 미끼로 쓰질 않나 국민 방위군 같은 희대의 병신 짓을 했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먹은 중국 영토에서 기대와 달리 질까지 따졌을 때 쓸만한 게 그나마 석탄밖에 없어서 좆망했다. 자원 불균형 ㅆㅅㅌㅊ! 대표적인 예로 만주에서 철은 선철 1100여만t, 철강은 고작 580여t 정도 약탈했는데 석탄은 지 혼자 2억2300여만t이 나왔다. 일제가 먹은 중국 영토에서는 쓸만한 석탄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나오고 있었으나 너무 많이 나와서 별로였다. 고위 실세였던 아마카스 마사히코는 그꼴을 보더니 “큰 도박, 원금도 이자도 없이 빈털터리.”라고 말을 남기고 빡쳐서 청산가리 먹고 뒤졌다. 사실 중국 자원이 세계일짱이란 주장은 농경지만 넓으면 양은 그럭저럭 나오고 그걸 대충 처먹기만 하면 되는 식량이 존나 짱먹는 자원이고 주로 손으로 산업을 하던 시대에 나오던 말이라 엄격한 조사가 필요하긴 했는데, 일제는 딱히 조사를 하진 않고 도박을 했던 것이다.

http://www.shanghai1937.com/modern-war-by-medieval-means-the-chinese-sword/

헬중국(아직 섬 아님)의 사정[편집]

위안스카이 뒈짖하고서 꾸준히 국민당 정부는 중국 통일과 안정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문제는 내부의 부패와 능력 부족으로 상당수가 안먹히고 허공에 좆질 수준이었던 게 문제이다. 그래도 중일전쟁 일어날 즈음에는 거의 정리되가던 시점이라서 당시 장제스는 내부 정리하고서 힘을 기르고 좆본 씹쉐리들을 조져버리겠다는 나름의 빅픽처를 그리고 있었다. 근데 전쟁이 너무 빨리 나서 다 좆됐다.

중공의 사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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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할은 세력 확장, 2할은 반장, 1할은 항일

 

좆도 한게 없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국민당의 항일전을 방해했다. 국민당 통수치고 후방공작해대는게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다. 임진왜란때 실제 역사처럼 조용히 팝콘뜯는게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뒤통수를 맛깔나게 후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당시 중공군이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중일전쟁당시 중공군이 별 타격을 입지 않은 것은 중공군의 외진 포지셔닝도 있긴 하지만, 국부군이랑 중공군이 서로 갈아마시고 싶어 안달난 것을 알고 있던 좆본이 일부러 공격하지 않았던 것이 컸다. 심지어 이새끼들, 백단대전뒤에도 지들 나와바리만 신멸작전으로 철두철미하게 조졌지 옌안으로 쳐들어가지 않았다. 나름 위협적이었던 화중의 국민당계 유격대는 41년에 토벌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나마 대륙타통작전이후 중공군이 화북 곳곳에 해방구를 세우니까 조금씩 조지긴 했는데 좆도 무의미했고 되려 빨갱이들 힘만 벌크업시켜줬다.

국공합작, 특히 2차 국공합작은 섬짱이의 물리적 조상인 중화민국이 저지른 실수중 최악의 실수였다. 그러나 이 사태의 실질 원흉 장학량은 뒤지기 직전까지 자신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자랑스럽다고 떵떵거렸다고 한다. 개씨발새끼.

그런데 현실적으로 보자면 일본이 뭔 수를 쓰던 간에 중국을 먹는 것은 불가능하고 좆털릴게 뻔했다. 모텔똥도 이렇게 생각해서 지금 우리가 좆털릴 위기니까 이 기회에 세력 확장이나 할까? 해서 그지랄을 저질렀는데 사실 맞는 방법이긴 하다. 물론 그래놓고 국공내전이후 혁명사관이랍시고 지들이 다 싸웠다고 구라까는거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또 우리의 씨발새끼 쩌둥이는 겸사겸사 자기 세력도 키우는 겸, 정풍운동이라고 옌안에서 멀리 떨어진 만주동북항일연군같은 다른 지역 공산주의 유격대도 족쳐서 중국내 모든 공산주의 무장세력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간혹가다 중공군이 중일전쟁때 실전 경험을 쌓아 정예군이 되었다는 주장을 볼수 있다. 이게 맞는 말이긴 한데 문제는 그 실전 경험을 쌓은 상대가 일본이 아니었다는거다. 중공군의 스파링 상대는 주로 국민당, 그중에서도 산서성 머튽 염석산이었다.

소련의 사정[편집]

원래 신해혁명때 간간히 지원해주고 중공 지원해주는 김에 겸사로 국민당도 나름대로 조언 정도는 해줬다. 근데 장제스가 축출한 뒤로는 단절했었음. 근데 일본이 중국을 침공하자 국민당을 지원한다. 애초에 중공 단독으로 일본이랑 맞다이 까거나 시간을 벌 정도도 아니였고 소련의 대일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결국 중일 전쟁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건 극동전쟁에서 손 안대고 코풀어서 한반도 이북까지 세력권 확장한 쏘오련이었다. 다만 쏘오련도 당초엔 장제스가 이기리라 보고 걔가 전략대로 항일부터 하느라 만주에 소홀할 때 거기에서부터 차근차근 영향력 넓히려고 했는데, 실제로는 마오가 만주 및 중국 북부지대 빠르게 장악하고 국민당을 섬짱깨 만들어버리자 당황했다.

정확하게는 대륙타통작전 성공시켜놓은 조지프 스틸웰때문에 꿀을 많이 빨았다. 이새끼만 아니었으면 대륙타통작전 어째어째 잘막아내서 천조국과 함께 일본군 점령지 수복하면서 올라갔을 터이다. 실제로 미군의 원래 의도는 저랬다. 좆틸웰때문에 독자적으로 필리핀+괌쪽으로 돌린 것이다. 이렇게 북상했으면 중공이나 서북군도 세트로 토벌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선의 사정[편집]

숫자는 좆도 적지만 애국지사들이 팔로군에 속하여 항일전선에 참전한다. 나름 네임드들이 국민당편에 서서 참전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는 6.25전쟁 초반 암울한 국군을 캐리하신 김홍일 장군이 있다. 솔직히 애당초 숫자도 좆만하고 영향 미친거 좆도 없긴 하다. 당장 국민당이나 중공군도 존나 쳐맞던시기에 그 둘에 붙어 있어야 할정도였으니까 애당초 독립부터가 스스로의 힘도 아니었다.

초~중기[편집]

청나라가 붕괴되고 그 공백을 차지한 위안스카이가 희대의 자폭쇼를 거행한 뒤 중국 대륙 곳곳에서 세금 안내겠다는 불체자부터 시작해서 뭐 해보겠다고 나대는 야심가 거기다 방구석에 처박혀서 주판이나 쪼물딱대는 병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앙정부가 붕괴하자 장부에 미기록된 암거래부터 별의별 좆같은 게 성횡해서 공식 통계에는 안잡히는 지하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한다. 그리고 깡패나 조폭(삼합회) 등 별에 별 잡것들도 수두룩하게 생겼다.

일단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로 국민당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대륙 확보에는 군벌이나 애초에 관리할 관료 부족 등 여러 문제가 겹쳐서 인구 400만 벨기에한테도 공업 생산력이 발렸다. 덤으로 세금의 90%는 빚갚고 군대 유지하는데 쓰이는 병신같은 상황이었다. 공산당은 중국 장시성에서 코뮨인가 뭔가하는거 세웠다. 근데 당시 지도층이 걍 간잽이, 헛똑똑이들 수준인 주제에 설쳐대다가 국민당한테 좆쳐맞고 저 멀리 산시성으로 빤쓰런하는데 이걸 대장정이라고 미화한다. 참고로 대장정해서 옌안초기까지(물론 시중쉰을 비롯한 빨갱이들은 이를 당내 극좌세력과의 투쟁이라고 미화했다) 소련유학파나 친소파를 쩌둥이가 신나게 숙청해댄 바람에 소련하고 사이가 매우 안 좋아지게 되었다.

한편 일본은 1928년에 봉천군벌(만주를 지배하던 군벌 집단)의 수장인 장쭤린 폭사시키고, 1931년에 만주사변으로 만주를 따먹어 이것저것 구실로 삼아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아이신기오로 푸이(애신각라 부의)를 데려다가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설립하였다. 국민당은 일단 내부 정리가 먼저라 1932년에 상하이 협정 맺고 공산당이나 좆소군벌들 패죽이러 갔다.

한편 산시성으로 빤쓰런한 공산당은 당시만해도 카리스마있고, 빡대가리라 전략은 모르지만 전술은 꽤 하던 마오쩌둥의 지도하에 점점 세를 불려갔는데 암울한건 마찬가지였고, 국민당이 제대로 토벌에 나서면 순식간에 뒈짖할 운명이었다.

마찬가지로 장제스와 국민당은 본격적으로 공산당을 끝내버리고 군벌들도 싸그리 정리한 다음에 천천히 힘을 길러서 만주 탈환을 한다는 빅픽쳐를 그려갔다. 그리고 나름대로 먹혀서 경제도 살아나고 군대도 점점 구색을 갖춰져갔는데 봉천군벌의 수장이자 폭사한 장쭤린의 아들 장쉐량(장학량)이 본인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자 '공비 토벌은 나중에 하고 항일이 먼저!'라는 멋들어진 대의명분으로 장제스를 납치, 감금 및 협박한다.

그리고 이리저리해서 장제스(국민당)랑 모택동(공산당)이 힘을 합쳐서 일본에 맞섭시다 해서 2차 국공합작이 맺어졌다. 중국사람들은 와! 항일! 와! 국공합작! 이랬다. 근데 사실 장쉐량은 항일이고 뭐고 걍 지 나와바리였던 만주 되찾아달라고 그지랄 한거고 이 덕분에 공산당은 전멸 직전에서 기사회생했다.

이때 일본 빡대가리 장성들은 짱깨 같은 좆밥은 1년안에 털어버릴 수 있다! 라고 주장하며 덴노랑 정부 상대로 구라를 깠다. 이때 일본 내의 상식인들과 서구 문물과 정보에 능한 이들은 그게 뭔 개소리냐는 반응이었지만 (장쉐량 병신덕이지만) 만주 전역에서 짱깨군 개학살 하고 존나 쉽게 먹었던 것도 사실이었으므로 결국 짱깨를 쳐죽이자로 의견이 모인다.

그러다 1937년 7월노구교 사건이 터지고(어떤 일본인 병사 하나가 순찰인가 하다가 실종되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똥 싸다 늦음) 이로인해 국경간 국지전이 벌어지고 그게 점점 더 확대되면서(당시 일본 군부가 의도한대로) 처음인 베이핑 인근의 다리에서 시작된 전투가 일대를 둘러싼 전역으로 변하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개전 극초기인 베이핑 전역에서 덜 훈련받은 중국군이 거듭 참패를 당하고 일본군이 화북으로 진입해 그대로 중원을 정복한다.

그리고 일본은 "자 그럼 이제 화평 맺자"고 했다. 원래 31년의 만주와 마찬가지로 중국을 한번에 꿀꺽하는건 힘들어보이니까 일단 화북의 성 몇개 받아다가 괴뢰국 세우고 개꿀 할 생각이었다. 물론 나중에 다시 털어먹겠다는 야망은 감추지도 않은채로.

헌데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니 장제스는 협상 따윈 없다고 난징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근데 사실 이때 즈음에 반 장제스파나 온건파가 걍 평협하자고 존나 극딜하던 때였다) 내친김에 8월에 상하이 시가지에 ㅈ만하게 있는 일본 해군특별육전대 2500명(후에 5000명으로 증강)이 주둔한 일본 조계지를 치기로 결정한다. 장제스는 일본군이 증원을 보내기 전 빠르게 일본 조계지를 정리하고 병력들 빼서 해안방어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독일식 직계군 5만명을 빼서 공격을 감행했는데 그 직계군 마저도 중장비나 기갑부대 다루는 숙련도가 병신이라 결국 못 밀고 일본군의 증원을 허용한다. 그 이후 일본군에 맞서 상하이를 사수하기 위해 여기서 지난 몇년간 장제스가 아끼고 아껴놨던 독일식 훈련을 받은 직계군이 싸그리 투입되면서 상하이와 난징 그 근교를 둘러싼 애미없는 공방전이 벌어지게 된다.그동안 투닥거렸던 군벌군과는 클라스가 다른 이들은 일본군을 상대로 꽤나 선전하며 개겼다. 하지만 장제스는 좆본군의 우회 가능성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고 결국 11월이 일본군이 상하이 옆의 항저우에 상륙해 장제스 직계군이 포위섬멸당해서 결국 상하이는 함락된다.

허베이에서도 전쟁 시작하고 이틀만에 최전선에 있던 대도시인 베이핑, 톈진이 털리고 이를 되찾기 위한 탕언보, 웨이리황 부대의 반격도 격퇴되면서 털리기 시작한다. 일본군의 주 공격로는 당시 중국의 핵심 철로 중 하나였던 핑한 철로(베이핑-우한을 잇는 철로)였는데, 중국군도 애저녁에 이를 예측해 철로가 지나는 선상에 토치카를 깔아놨지만 결국 바오딩, 스자좡 등이 뚫렸다.

그 와중에 일본에서는 이타가키 세이시로라는 놈(이 놈은 만주사변의 발발에도 지대한 공을 세웠다)이 상부의 명령을 씹고 전공 세워보겠다고 멋대로 공격로에서 이탈해 산시성을 쳤다. 산시성은 당시 산시의 토황제라고 불리었던 바로 그 옌시산이 지키고 있었고, 옌시산은 팔로군과 협력해 평형관에서 일본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주는가 하면 성도인 타이위안 바로 북쪽인 신커우전이라는 곳에 단단한 방어선을 구축해 거기서 일본군을 1달 넘게 저지했다.

결국 빡친 일본군은 한참 떨어진 스자좡을 공격하는 부대에서 2개 사단을 빼서 산시성을 측면에서 치기로 한다. 장제스도 이를 막으려도 인근의 산둥성장 한푸쥐를 보내지만 한푸쥐는 장제스의 명령을 아예 씹고 튀어버리는 지대한 트롤짓을 저질렀고, 한푸쥐의 빤쓰런으로 인해 일본군은 타이위안 동쪽의 거점인 낭자관에 별 피해 없이 입성한다.

결국 측면이 털린 옌시산은 그때까지도 잘 막고 있던 신커우전 방어선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으며, 타이위안은 북쪽과 동쪽에서 협공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결국 옌시산은 11월 초 타이위안을 포기하고 린펀이라는 산시성 남부의 산악지대로 튀었다. 11월 12일 일본군은 타이위안을 점령했고 내년인 1938년 3월 6일에는 린펀까지 점령한다. 옌시산은 한 번 더 도망간 다음에 일본군과 비밀리에 협상을 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군과 큰 싸움을 벌이지 않았다. 대신 옆동네 옌안에서부터 세력을 키우던 팔로군이 옌시산의 영역을 침범하자 걔네랑 더 많이 싸웠다.

상하이 전역에서만 와해된 국민당 전력이 80만이고 전사자만 25만이다. 다만 일본군도 상당한 피해를 입어 30만명중 5만명이 뒤졌다. 시간상으로 이전에 일어났던 허베이 전역에서의 피해는 포함되지 않은 수치이다. 이제 앞으로 나오는 숫자들을 보며 대륙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보자.

상하이 전역 종료 후 난징으로 가는 길은 뻥 뚫렸고 국민당은 남은 전력인 20만의 수비대를 배치하고 난징 공방전을 벌였지만 수비대장 탕성즈의 빤쓰런과 아낌없는 독가스 뿌리기로 방어선이 무너지며 난징은 생각보다 쉽게 점령당한다.

이렇게 난징, 상하이를 함락시킨 일본군은 16세기 한성 레이드 이후로 처음 맞이한 적국 본진털기의 기쁨과 감히 자신들에게 저항하고 좆되게한 국민당과 중국에 대한 분노로 대규모 학살을 벌이는데 그게 바로 난징 대학살이다. 나름대로 병사 스트레스 해소 및 겁주기 용도였는데 정작 장제스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장제스"와" 국민정부'에서 '장제스=국민정부' 수준의 절대적 권위의 영도자로 등극한다.

이에 일본은 쉬저우, 우한, 광저우까지 함락시키면 장제스가 항복하지 않을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제스는 항복 안했고 여튼 그 뒤론 걍 씨발 인민의 파도가 몰려왔다. 보급도 안좋고, 현지 분위기도 나쁘고, 앞에서는 창, 칼, 총 무기로 쓸만한건 죄다 꼬불고 미친 파도처럼 사람이 밀려들고 "갸아아악 구와아악" 하니까 일본도 이쯤되면 어 씨벌 이게 아닌데... 하는 분위기였다.

쉬저우에서는 내전기간 중 장제스 병력도 관광시켜주며 날뛰던 계계군벌 리쭝런 휘하의 제5전구군 35만명이 처음으로 야전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포위섬멸을 시도하며 탈탈 털어먹었고 이에 고무된 중앙에서 지원군을 보내 쉬저우 일대에서만 60만의 중국군이 진을 친 가운데 이걸 잡겠다고 벌떼같이 20만의 일본군이 몰려들어서 도합 80만이 쉬저우로 몰려들었다. 정작 5전구군은 포위섬멸을 우려하여 퇴각을 한 관계로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고 애꿎은 쉬저우에서 또 강간, 학살이 일어났다.

또 허베이의 평형관에선 팔로군이 산시 군벌 옌시산과 손을 잡고 연대급 일본군을 격파하는 등 본격적인 판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다만 후에 밝혀진것에 따르면 이는 팔로군의 과장으로 실제 일본군 사상자는 30명밖에 안됐다고 한다. 어쨋건 일본군을 잠시 막긴 막았으니 뭐...

끝없는 초기 중국의 물량전설은 우한 전역에서 정점을 찍었는데, 상해 전역에서 25만이 사망하고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100만의 중국군이 임시수도로 선포된 우한의 수비를 위해 집결했다. 전술한 리쭝런의 5전구군은 우한 북쪽의 다볘산맥에 방어선을 치고 우주방어를 시작했고 나머지 군대가 장강을 끼고 똑같이 방어전에 돌입했다. 이에 일본군도 40만을 우한전역에 집결하여 공세를 가했지만 이 엄청난 방어선은 뚫리지 않았고 6만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그래서 상황을 타진하려고 독가스를 썼다(국제법상 금지되어 있음. 나치 독일도 소련이랑 싸울 때 안 쓴 것). 나치도 빨치산 등등을 사냥할 때는 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일본군이 비정규전도 아닌 정규전에 쓴 게 덮어지지는 않는다. 낙지도 쉬쉬하고 쓴 걸 쟤들은 대놓고 썼으니까 제재 처먹는 게 당연하다.

한편 공산당은 이렇게 둘이 몸비틀고 환상의 똥꼬쇼!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할 때 양 쪽 후방 돌아댕기면서 사보타주하고 테러하고 선동질하고 아주 그냥 좆같이 하고 다녔다. 이게 존나 웃긴 게 일본군이 국민당을 조지면 갑자기 공산당이 와서 낼름 집어삼키고 적당히 일본군 뒤통수 치고 도망갔다.

그래서 일본은 장제스에게 공비 먼저 조지고 일단 화해하자는 분위기를 풍기는데 그러면서도 몸은 솔직하게 점령지 굳히기에 들어가서 좆까는 소리 말라는 말만 듣는다. 이러자 돈은 돈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날리면서 좆같이 넓은 이 땅에다가 낭비만 좆되게 했다는 일본은 오기로라도 먹겠다며 국가 총동원법을 때리고 강제 징용까지 한다. 이때가 개전 1년이 되기 전 1938년 4월 즈음이었다. 현재까지 상황을 정리하자면 그 드넓은 중국을 반쯤 삼키기는 했는데 나머지 반이 목구멍으로 좀처럼 넘어가주지 않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배급도 나날이 좆같아지고 수혜를 보는건 정계와 유착한 일부 재벌뿐인 좆같은 상황을 목도한 일본인들은 헬일본! 탈일본 한다 쒸벌! 하면서 식민지로 튀거나 아님 유럽이나 미국 갔다.

이렇게 병역회피가 만연해지면서 도저히 일본인 만으로는 군인 수요를 못채우니까 한국인들도 강제징용하고 일본어 강요, 신사 참배 강요 등 악질적인 문화 말살행위를 자행한다. 나중에 태평양 후기에는 대만에도 문화 말살작업 시작하고 순혈주의가 심하던 해군조차도 식민지인을 받아들였다. 참고로 이건 43년도 즈음 이야기다. 전쟁 초기에도 식민지 자원은 입대를 허용하지 않았다. 점차 지원병에서 징병제로 변했다.

그래도 어쨋건 꾸준히 진격을 거듭하여 1938년 우한이 털리고 국민당은 충칭으로 또 한번 수도를 옮기며 빤쓰런 했고 이제 충칭으로 향하는 모든 길이 격전지로 변했다. 우한 함락과 비슷한 시기에 남부 해안가 최대 항구인 광저우까지 함락당하면서 무기수입에 차질이 생겼고 장제스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난닝에서 지금의 하노이인 통킹으로 이어지는 수입루트를 개설했다. 일본은 이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하이난을 점령하고 난닝까지 점령하여 수입로를 차단했고 장제스는 이번엔 쿤밍에서 버마까지 이어지는 버마로드를 뚫어 무기를 수입했다.

이제 일본군의 시선은 원활한 보급로 확보를 위해 우한 남쪽의 창사로 향했고 창사는 44년 까지 무려 4번의 공방전 끝에야 겨우 일본에게 함락당한다.

이제 명백히 총력전 상황에 돌입한 것을 직감한 쪽본은 충칭에 처음으로 민간인 통궈쇼를 선사해보이면서 이게 총력전이니 너희들도 할 수 있다면 나중에 똑같이 우리에게 하려무나.라는 가르침을 세계에 전파했다. 과연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쪽본의 후계를 잇는 아서 해리스와 커티스 르메이라는 제자들이 나타나 가르침을 실천하고 청출어람 정신으로 스승마저 구워버렸다.

1939년 말까지 충칭으로 이어지는 모든 길에 위치한 도시에서 공세와 방어, 반격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국민당군은 점점 경험치를 쌓고 진화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9월이 되면서 2차세계대전이 터졌고 장제스는 이제 때가 왔다고 판단. 중국 전선도 명백한 전선으로 인식될 수 있게끔 또다시 100만을 모아 동계대공세를 실시했다. 이 공세에서 장제스는 난닝 탈환을 시도했고 일본 수비군을 뒤지기 직전까지 몰아가 결국 일본 사령부에서 난닝을 포기하고 퇴각하라는 명령을 수비군에 내렸으나 그 수비군 대장이 명령을 씹고(...) 장판파마냥 오지게 존버해서 결국 중국군이 물러났다. 일본군 종특인 명령 불복이 도움이 된 몇 안되는 사례.

이 외에도 화북에서 공세를 가해 카이펑을 탈환했으며 쪽본 괴뢰인 몽강자치연합정부와도 접전을 벌여 선전하기도 했다. 이 공세는 2차 대전에서 연합군으로서 존재감을 늘리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다분한 공세였던만큼 다소 엉성한 작전능력이 관찰됐으며 결국 좆본에게 빼앗긴 영토를 탈환한다는 야심찬 계획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편 지난 20년 동안 애증의 관계였던 장제스의 경쟁자 왕징웨이는 저우포하이 등 몇몇 따까리들과 일본과의 타협을 주장하며 난징으로 튀었고 옳다구나한 일본은 그를 수장으로 하는 난징 국민정부를 세웠으나 중국인들은 여기에 호응하지 않았다. 되려 국민당의 청방, 남의사, СС단이 난징정부애 속한 요인들을 암살하며 공포감만 조성시켰다.

일본은 일본대로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은 소련이 극동으로 전력을 강화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했고 결국 몽골과의 국경선인 할힌골에서 소련군과 국지전에 돌입했으나 무참히 깨지고 패배한다.

1940년으로 가서 독일이 유럽에서 깽판치자 일본은 감명받아 독일과 동맹을 체결한다. 그리고 중국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비시 프랑스한테 헛소리하며 동남아 식민지를 삥뜯었다. 한편 미국은 중일전쟁때부터 영국과 편먹고 작작해라 섬숭이 새끼들아 하면서 제재를 걸기 시작했는데 나치랑 뜬금포로 편먹기 하니까 제재했다.

일본은 당시 자원이고 뭐고 좆도 없었고, 특히 석유를 미국에서 좆되게 수입하던 상황이라 '아이구 충성충성 왜그럼?' 했는데 미국은 '좆까고 중국에서 물러나'를 비롯한 몇가지 조건을 내걸음. 차피 중국 먹어서 좋을것도 없고 걍 물러나면 되는걸 자존심 때문에 우끼끼 풀발기한 일본은 난동 피우고 결국 협상은 나가리되었다.

이후 일본은 어쩔 수 없이 소련에 접근해 일소중립조약을 맺고 'ㅎㅎ 중국 고립 씹오지는 각'이라며 자화지찬했는데 물론 좆까고 지원은 그대로였다. 좀 더 암암리에 시행되고 양이 줄었을 뿐이지. 그러면서도 소련에대한 일종의 공포감(할힌골 전에도 1938년에 두만강에서 한번 싸웠다)과 뭔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관동군 창설해서 소련 밀리면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을까 했다.

한편 독소전이 한창 진행중일 때 미국은 슬슬 시동 걸어볼까 하면서 전쟁준비 하도 그러면서 일본 좆되보라고 제재를 잔뜩 강화했다. 그러자 일본은 중국 밀다가 뜬금포로 동남아 침공에 병력을 차출해내는데 당시 동남아에 있던 영국군은 잘 쳐줘봐야 2군 3군 수준의 방위군 정도여서 그래도 정규군인 일본이 다 발랐다.

그리고 점령지 사람들한테 '대동아연방'이라며 동아 민족이 힘을 모아다가 귀축 영미, 제국주의자들을 조져야한다고 선동했다. 몇몇 지식인들은 혹해가지고 협력했는데 얼마 안가서 학살, 착취해대니까 거의 다 좆까라고하고 반일 저항했고, 한편 시암 왕국(태국) 하고는 나름 사이가 좋아서 군부 쿠데타 지지해주고 씹지랄 하면서 동맹(속국)으로 편입했는데 아무짝에도 쓸모 없었다. 태국 이 새끼들이 ㄹㅇ 기회주의랄까 외교력이랄까 개쩌는게 초창기에 일본이 영국 동양함대 개처바르며 동남아를 석권할때는 훈도시를 핥아대더니 나중에 미드웨이 이후 일본이 미국한테 털리기 시작할때는 또 연합군 편으로 갔다. 전후 영국이 이 새끼들 박쥐라며 처벌해야 한다고 했지만 미국이 봐줬다.

후기[편집]

동남아의 아파트 경비 수준의 유사 군대, 헬짱깨의 유사 군대에게 여포짓을 하며 중국 북부와 동부, 동남아를 석권한 일본은 이렇게 처먹어도 자원이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석유가 후달려서 빌빌댔다. 그나마 여포짓도 동남아 경비대가 열전하면 탈탈 털리거나 비등한 결과를 냈고, 중국도 민족주의, 공산주의 버프로 때려도 때려도 완전히 KO되지 않고 게릴라와 인민 웨이브가 좆되게 밀려왔다.

그래서 점점 병력 밀도가 낮아지다 못해 전선도 이상해지고, 나중에는 화북의 도시 하나를 일개 중대한테 점령하고 명령을 내린다. 이러자 일본군도 피해, 부상이 좆되게 쌓이기 시작하고 빡친 일본군은 장기적 안목이고 뭐고 일단 이기고보자는 생각으로 도시, 인프라 등등 다 박살내고 학살을 숨쉬듯이 해댄다.

이게 나름대로 먹혀서 공산당의 수치상 인구가 4천에서 2천만으로 반토막나는데, 마오쩌둥은 여전히 2천만은 남아있으니까 괜춘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작 이 일을 직접 수행하는 알보병들은 여간 좆같은 게 아니었다고 한다. 시팔 시간이란 시간, 고생이란 고생, 캐바캐지만 죄책감 등 좆같음 그 자체인 이 짓을 하는데 보상 좆도 없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전쟁 끝나면 고향 가서 밭갈거나, 일해야 하는데 금방 이긴다는 전쟁은 끝나지가 않는다. 적은 죽여도 죽여도 내일이면 수 배는 되어가지고 쳐들어오는데 상부에서는 추가업무 시키는거다. 좆간 피로도가 심하다 못해 머리 끝가지 차오른 중국, 동남아의 좆본군 사정은 나몰라라 하고 잘나신 대본영의 장군 나리들은 '요오시! 남방 작전이다' 하면서 인도네시아도 가고, 버마로도 가고, 호주로도 가즈아아! 해댔다.

물론 이때쯤 중국군 보급사정은 일본군과 비교도 안되는 수준으로 더더욱 병신이되어 병사들이 북한군마냥 굶어 죽지 않으려고 민가에서 식량을 턴다던지 굶주림에 못 버티고 무단탈영으로 도망간다던지 하는일이 각지에서 빈발해 결국 몇몇부대에서는 못 도망가게 행군할때는 병사를 죄수후송하는 것마냥 포승줄로 1줄로 묶기도 했다.

차라리 이 때가 일본군 리즈시절이라면 몰라도 미드웨이에서 좆털리고 "미국이 너무 강한데" 하던 상황이라 대체 이새끼들은 뭔 생각인지 알 수 없다. 어쨋던 대본영의 해답은 '우덜식 총력전'이었다. 장애자, 정신지체 등 있어봐야 솔직히 마이너스 요소뿐이 안되는 사람들도 마구잡이로 끌고와서 총을 쥐어줬다.

물론 민간 수탈은 전과는 비교도 안되는 수준으로 탈탈탈 털어갔다. 참고로 식민지 아니고 본토인한테까지 이랬다는 거다. 애초에 식민지인은 옛저녁부터 걍 처죽이고 뺏어갔다. 근데 이젠 내지고 뭐고 군대 늘리고 총한정 더 만들고 전투기, 함선 하나 더 만드는게 중요하다고 웬만한 거 다 긁어다가 쪽쪽 빨아먹었다.

이에 지식인들은 '이러다가 나까지 좆되는 거 아니냐?'하는 생각에 빤스런 할 준비를 착착 해댔다. 실제로 나중에는 웬만하면 봐주고 서류작업 같은 거 시키든 인텔리든 지식인이던 뭐든 간에 걍 국가가 시키면 막노동이든 전선가든 뭐든 간에 해야했다.

결굴 육군을 시작으로 해군에까지 외지인(식민지인)들을 들이기 시작하고 한민족의 경우 인구 1할 정도가 강제로 끌려갔다고 한다. 당시 조선계 군인들은 나름 일본인들 시키는대로 잘 했다는데 이걸 뭐라 할 수 없는 게 일단 뒤에서 총구 겨누고 시키는 대로 안하면 뒤진다는 데 어쩔 거냐? 게다가 대부분의 반일, 민족주의자들은 남한 대토벌로 뒈지거나 만주, 중국으로 런한지 오래라서 조직적으로 저항하거나 뭘 할 인프라도 인재도 없었다.

반례로 중국은 중앙정부가 건재하고 그게 좆같아도 선택할 대안도 있었기에 현지 저항 좆됐다고 한다. 실제로 싱가포르에서 일본군이 학살을 벌이기도 했다. 근데 전에 서술에서는 '중국인들은 저항했는데 왜 조센징들은 저항 안하고 순응함?'이딴 병신같은 말이었는데 중국은 아예 친일파들이 일본 지원 받아서 괴뢰 정부 세우고 반일 중앙정부랑 맞다이 뜨던 동네다. 특히 전쟁 말기에는 군비가 GDP의 6할 정도에 달할 정도라 일본 국민들도 엄청나게 궁핍했기에 그런 전쟁을 더 길게 만드는 짓거리들에 일본 국민들도 졸라 빡쳤다고 한다. 배신자니 뭐니 그랬다.

1944년에는 중국군의 고문관이자 명예 일본군으로 유명한 좆틸웰이 장제스가 일본군 공세 대비하자는거 씹고 정예 예비대인 X군과 Y군을 지 전선인 버마로 빼버렸다가 대륙타통작전 얻어맞고 빡친 장제스에게 잘리고 유능한 웨드마이어가 새로 들어왔다.

웨드마이어는 그동안 좆틸웰이 싸지른 똥을 치우고 미국이 좆만하게 주던(수백만 병력으로 일본과 맞짱까던 중국군에게 가던 지원이 땅도 없던 자유프랑스군에게 가던 지원보다 5배넘게 적었다) 지원도 제대로 늘려주는 등 중국군의 현대화를 가속화시키고, 그 결과 1945년 4월에는 일본군이 즈장, 랴오허커우를 공격하자 미군 무기를 받은 중국군이 쉽사리 막아내고, 이에 고무된 중국은 곧바로 작년 대륙타통작전때 상실한 영토를 모두 되찾는등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

일본군은 점점 더 상태가 병신되는 반면 중국군은 빵빵해진 미군 지원으로 갈 수록 무장이 좋아지고 있었으니 어찌보면 예견된 결과다. 다만 그 와중에도 중국의 몇몇 지방군들이 ㄴㄷ인건 여전해서 1개 사단으로 일본군 4개 대대를 못 밀거나 군단 2개 가지고 일본군 1개 사단+2개 여단의 공세에 털리기까지 하는 일도 있었다.

하여튼 위의 선전에 중국군은 마침내 카보네이드 작전이라는 대반격 작전을 입안하기에 이르는데, 이 작전의 골자는 쓰촨, 구이저우쪽의 중국 정예군을 동원래 광저우등 화남지방의 항구를 되찾고 동시에 화북에는 무려 패튼을 파견해 만주방향으로 공세를 가하는 한편 산둥에 미 해병대 5만명을 상륙시키는 엄청난 규모의 작전이었다.

이 작전의 실행일자는 1946년으로 되어있는데, 1945년 8월 옥쇄를 부르짖던 일본이 미국한테 원폭 2발 쳐맞고 GG침으로써 실제로 이뤄지지는 못했다.

이런 와중에도 일본군 내부에서는 신이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기고 있다는 광신도 + 정신병자들의 설침 때문에 슬슬 주작질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주작하고 그걸 진짜 사실로 믿었다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일본이 항복할 때, 중국 현지에선 "우리가 이기고 있는데 왜 항복해야 함? 항전하자!!" 하는 병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한다. 물론 히로히토 새기가 "닥치고 꿇어 새꺄" 하니까 아닥했다. 어찌 됐건 미국한테 항복하는 그 순간까지도 중국 상대로는 계속 공세주도권을 쥐고 있었고, 그런데 본토가 불바다가 되는건 몰랐고, 그래서 왜 항복하냐 이런 반응이 나왔다.

적 군함 2척 격침한 걸 적 항공모함 11대 전함 2척 포함 28척 격침 등으로 주작하는 덕분에 적 해군력이 운지했다고 믿고 있다가 레이테 해전에서 개박살났다. 중국 전선에서도 그런 개소리들을 믿고 적의 전력이 완전 개박살났다고 여기고 병참 부대에게 죽창을 줘서 보내서 당연히 적의 습격에 두려움 때문에 보급에 차질을 겪었다(중국 공산당 멀쩡히 살아있고 오히려 세력이 증가하고 있는데 서류상으로는 갑자기 거의 죽었다). 무려 1년 동안 보급이 끊겨서 사실상 전력을 엄청나게 상실한 부대도 있었다.

전사자 70만 명 중 절반이 사실상 굶어서 죽었는데, 당시 일본군 식인 썰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중국 지역에서도 일본군에 의한 대규모 식인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와중에 원자폭탄으로 미군이 본토를 강간했고 소련도 100만 대군을 움직이자 좆본은 결국은 무조건 항복했다.

결과[편집]

일본황군 고위부의 현실성 없는 모험주의에 기반하여 지나치게 넓어진 전선을 지탱하지 못하여 중국전선은 점점 광기에 치닫기 시작한다. 난징대학살이나 기타등등의 사람의 소행이라 생각되지 않을 악행은 이때 벌어진 것이다. 중일전쟁 때 쪽바리 따위한테 많이 처발렸다고 짱깨 까는 헬조선새끼들이 있는데 조선은 아예 1차대전 이전에 식민지 따위 상태였고 짱깨는 존나 처맞기는 했어도 어쨌건 끝까지 항복 안하고 뻐겨서 승전국이 되고 상임이사국까지 된 거다.

ㄴ 솔직히 상임이사국은 대만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때 중국정부는 지금 대만의 주요 정당 중 한 곳인데

ㄴ 실제로 첨에는 대만이 받았던 거 맞다. 70년대때 짱깨가 하나의 중국 내세우면서 외교적으로 고립되자 상임이사국이 짱깨로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쪽바리 정도면 미국 소련 나치독일 대영제국 다음으로 가장 강한 편이었다. 프랑스는 아예 나치 식민지였고 영국은 식민지 따위 국가들이 존나 많았으며, 이태리도 병신으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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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1939년: 폴란드 침공 · 영국 프랑스의 선전포고)
1940년: 노르웨이 침공 · 프랑스 침공(샤를 드 골 · 자유 프랑스 · 비시 프랑스 · 프랑스 군정청 · 레지스탕스) · 그리스 침공
1941년: 소련 침공->독소전쟁 · 진주만 공습->태평양 전쟁
1942년: 미드웨이 해전 · 스탈린그라드 전투
1943년: 카이로 회담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
1945년: 얄타 회담 · 독일 항복 · 포츠담 회담 · 일본의 무조건 항복
전후 처리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 극동국제군사재판 · 독일 분할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 유엔(대서양 헌장 · 샌프란시스코 회의 · 안전 보장 이사회 · 상임이사국 · 유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