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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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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발생했던 사건/사고
1864년 흥선대원군 집권, 고종 즉위
1865년 경복궁 중건
1866년 병인박해 · 명성황후 간택 · 제너럴 셔먼호 사건 · 당백전 발행 · 병인양요
1868년 일본 제국 선포 · 메이지 유신 · 오페르트 도굴사건
1871년 서원 철폐 · 신미양요 · 척화비 설립
1874년 흥선대원군 실각 · 순종 탄생
1875년 운요호 사건
1876년 강화도 조약 · 쇄국정책 종료 · 개항 · 제1차 수신사 파견(김기수)
1880년 제2차 수신사 파견(김홍집) · 통리기무아문 설치
1881년 조사 시찰단 파견 · 별기군 설치 · 영선사 파견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 태극기 제작 · 임오군란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흥선대원군 납치 · 제물포 조약
1883년 태극기 국기 지정 · 보빙사 파견 · 조일통상장정 · 서기 최초 소개
1884년 조로수호통상조약 · 갑신정변
1885년 한성조약 · 거문도 사건 · 배재학당 설립 · 이토 히로부미 취임
1886년 이화학당 설립 · 조불수호통상조약 · 가톨릭 허용 · 육영공원 설립
1887년 경복궁 전등 설치
1889년 조병식, 방곡령 시행
1892년 교조신원운동
1893년 보은집회 · 조병갑 취임
1894년 동학농민운동 · 일본군 경복궁 점령 · 청일전쟁 · 갑오개혁
1895년 을미사변 · 을미개혁 · 태양력 도입 · 춘생문 사건
1896년 건양 연호 개원 · 아관파천 · 독립협회 창설 · 덕수궁에 최초의 전화기 설치
1897년 고종 환궁 · 숭실학당 설립 · 광무개혁 · 대한제국 선포
1898년 황국협회 설립 · 관민공동회 · 만민공동회(헌의 6조) · 독립협회 강제해산
1899년 경인선 개통 · 대한국 국제 반포
1900년 만국우편연합 가입 · 서울-인천 전화 개통
1901년 신축민란
1902년 제1차 영일동맹 · 최초의 미국 이민
1904년 러일전쟁 · 한일의정서 · 제1차 한일 협약 · 일진회 설립
1905년 보성전문학교 개교 · 가쓰라 태프트 밀약 · 제2차 영일동맹 · 포츠머스 조약 · 경의선 개통 · 을사늑약
1906년 조선통감부 설치
1907년 국채보상운동 · 이완용 취임 · 헤이그 특사 · 고종 강제폐위 · 순종 즉위 · 정미조약(군대해산)
1908년 더럼 스티븐스 암살
1909년 기유각서 · 남한 대토벌 · 이토 히로부미 사살 · 이완용 암살미수
1910년 한일합방(경술국치) · 조선총독부 설치
머한국
大韓國 / Empire of Korea
기본 정보
수도 한성(서울)
국가 한국
대륙 동아시아
인구 약 1천3백만명 (1910년)[1]
인종 한민족
추가 정보
지도자 고종순종
언어 현대 한국어
한국사의 시대구분
청동기시대
단군조선 · 기자조선 · 위만조선
· 주호 · 우산
원삼국 시대
부여 · 옥저 · 동예 · 고구려 · 주호 · 우산· 낙랑군
마한 · 변한 · 진한
삼국시대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 · 탐라 · 우산
두막루
남북국시대
발해 · 신라 · 탐라 · 소고구려 · 소백제 · 보덕국

후삼국시대
신라 · 발해
태봉 · 후백제 (반란세력)
통일왕조 시대
고려 · 조선 ·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대한광복군 정부 ·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군정기
미군정 · 소련군정
분단시대
대한민국 · (자유조선)
북괴 (반란세력)
태극기의 계보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

개요[편집]

한국사 최초의 근대국가이자 역사상 마지막인 황제국[2]

1897년부터 1910년까지 한반도에 존재했던 제국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국사 역사상 두번째로 제국(帝國)을 표방한 나라이면서 최초의 근대국가라고 할 수 있다.[3]

일본 제국에게 먹힌 결과 때문에 생각보다 저평가 되있지만, 한국사 최초로 중국에 대한 사대,조공무역을 철폐한 독자왕조라는 점이 인상깊다. 생각보다 현대 한국 사회문화에 끼친 영향력도 많은데, 대표적으로 교육기관만 봐도 지금의 연세대학교대한제국 시기 미국 사업가 세브란스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을 모태로 하고 있으며, 또 다른 명문대인 이화여대는 1886년초 고종 황제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교육의 시작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메리 스크랜턴 여사가 경영하던 여학교에 하사한 이화학당에서 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태극기의 원형이 되는 국기를 처음으로 재정한 나라이면서 '대한'과 '한국'이란 국명이 전해져 내려온 첫 시기이기도 하다.

오늘날 대한민국대한제국의 법통을 계승하는 국가로서 헌법에 명시했으며[4] 대한민국 국군 역시 대한제국 군대를 계승했음을 명시하여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태조는 고종 광무제(1897~1907)이며 1910년에 일본 제국에 의해 멸망했다.

근대화[편집]

사회기반시설[편집]

대한제국 시기의 남대문 거리.

1대 황제 광무제 고종은 연호를 광무로 정하고 근대화 개혁에 돌입하여,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이 세운 에디슨전기조명회사와 계약해 동아시아 최초로 전기를 한양과 그 번화가에 공급하고[5] 1898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력회사이자 한국전력의 시초인 '한성전기'를 설립했다.

사회의 집권 주류층이 나름 책 좀 읽는다고 엣헴 하던 문화가 강하던 한반도국가 답게 대한제국이 금방 좆망해서 욕처먹는것에 비하면 생각보다 내실쌓기는 잘 했다. 방향성에서 무력증강보단 문치 위주였던게 당시 시대상황에 너무 직빵으로 안맞았던게 흠.

아예 서양화를 하자고 내전하고 정권이 뒤집히고 나서 설치던 일본보다도 전기설비같은 현대문명보급이 빨랐고, 당연히 서양 사치품 문화제품같은것도 수입이 빨랐으며 고종 또한 황제딸을 치기위해서라는 목적은 있었지만 서양식 코스요리를 궁중식사에 도입해서 먹을 만큼 이쪽으론 빨랐다.

집권층인 양반들은 소중화에 빠져서 조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닫혀서 딸딸이치다가 문화충격을 먹게 된 이 시기의 상황에서, 뭔가 문제의식을 느꼈는지 세계를 공부한다고 1900년전후 당시의 국제어(링구아프랑카)였던 영어(물론 영국식 영어)공부를 존나 단체로 열심히 해댔고 재상들도 외국 외교관과 영어로 문제없이 대화했다고 한다. 나중에 농사 잘 짓던 나라를 일본에 낼름 처먹히니까 열받아서 자살한 아자씨부터 그 유명한 이완용까지 성향을 떠나서 전부.

어찌보면 언어 쪽을 외교부로 선택집중을 한 지금 보다 핵심은 잘함.ㅋ

다만 이렇게 잘 농사지어서 한타 군국주의 딸딸이를 치던 옆동네 일본에게 낼름 다 처먹히고 공짜로 헌납해서 배만 불려 줘서 남 좋은 일만 한 건 정말 ㅄ짓이었지만.

화폐[편집]


한국 최초 지폐 호조태환권(10냥). 대한제국 당시 고종 황제가 경제 근대화를 위해 추진한 화폐 개혁 당시 발행했다.

고종 광무제는 근대화를 위해 교육, 의료, 사회 인프라, 언론 등 다방면에서 기초를 닦는데 힘썼고 실제로 그것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유일하게 화폐 경제를 정착시키는데는 사실상 실패했다. 이유는 조선시대 이어져 오던 사농공상 사상의 여파로 상공업이 부진했기 때문인데, 고종은 이를 타파하기 위해 상공업 부흥정책을 강화하여 서북지방(평양, 개경)을 중심으로 상업 유통을 더 강화하여 노력하였다. 1896년 아관망명부터 1904년까지 9년 동안 무려 205개의 회사가 창설됐다. 금융업 11개, 농림업 16개, 제조업 18개, 광업 9개, 상업 67개, 운수업 27개, 수산업 3개, 청부토건업 14개, 기타(인쇄·출판·제약·매약·유흥업·용역업 등) 분야에서 40개였다.(전우용, 『한국 회사의 탄생』 130~137쪽)

대한제국 정부는 호조태환권을 정상적으로 발행하지 못하였고 대체수단으로 백동화를 주조하여 국가의 화폐로 유통시켰으나, 이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고 여기에 일본이 조선 화폐정리사업까지 대차게 벌이면서 조선의 경제는 쭈욱 나락간다.

은행으로는, 대한천일은행이 있다.

교육[편집]

이화여대의 전신이 되는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모습.

고종은 근대적 국가로 가는 길에 방해가 됐던 신분제도와 보수파의 사상을 타파하고자 의제 개혁과 관립학교를 설립하고[6] 정동에는 각국의 공사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서양 선교사들에게 신식교육도 적극 허가했다. 또 국민들을 대상으로 만민공동회를 설립하여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근대사회 수준으로 높이는데 크게 힘썼다.


교통[편집]

당시 대한제국의 서대문역 모습.

한국 최초의 기차인 '모갈 1호'의 모습. [[2]]

고종은 근대화 확산산업에 있어 필수인 철도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여 기차를 보급했는데, 이가 바로 한국 최초의 기차인 '모갈 1호'다. 당시 이 기차의 이름인 "모갈 1호"에서 모갈(Mogul)은 ‘거물’ 또는 ‘거인’의 뜻이었지만 발음이 낯설어 사람들은 모갈이라고 부르기보다는 그냥 ‘불’을 때서 가는 기차라 하여 <화차> 혹은 <화륜거>라 했다고 한다 . 개통 다음날인 9월 19일 독립신문에 경인선 시승기가 실렸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 연기는 반공에 솟아오르더라, 수레를 각기 방 한 칸씩 되게 만들어 여러 수레를 철구로 연결하여 수미상접하게 이었는데, 수레 속은 상중하 3등으로 수장하여 그 안에 배포한 것과 그밖에 치장한 것은 이루다 형언할 수 없더라. 수레 속에 앉아 영창으로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닿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노량진을 떠난 모갈1호는 종점인 인천역까지 평균시속 20㎞/h로 33㎞를 달렸으며 소요시간은 1시간 40분정도 였다고 한다.


또한, 비슷한 시기인 1899년 서울 한성부에 노면전차가 개통하였고 이 시기에 인력거와 자전거도 수입되면서 교통이 크게 발달한다. 교통증가에 따라 정부에서 도로의 폭을 넓히는 도시개조 사업도 별도 추진한다.


대한제국 시기에, 해상교통도 발달한다. 사람들이 하와이 이민을 갈때는 증기선을 타고갔으며 이운사, 대한협동우선회사 같은 해운회사가 설립되었고 창룡호 현익호 조양호 등의 여러 기선을 들여와 여객과 화물수송은 물론, 무역을 할때에도 성능좋은 증기선으로 해외무역을 하였다.

의료시설[편집]

세브란스 병원


1880년대부터 조선에 여러 병원이 들어선다. 제중원은 서양의학을 도입한 대표적인 병원이었다. 한말~대한제국 시기에 일본을 비롯한, 외국의사들은 조선에 서양의술을 전파하였으며 대한제국 시기 들어서 서양의학이 크게 꽃피우게 된다. 이제 더이상 한의학 따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우리나라의 의학이 발전하고 수명이 점차 높아진다. 1900년대에는 세브란스병원, 대한의원이 개원한다. 이러한 서양의학의 유행은 서울 뿐만이 아닌, 지방에도 영향을 줬다.

언론[편집]

독립협회가 발행한 독립신문, 황성신문, 제국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의 여러 신문사가 있었다.

군대[편집]

약했다. 서양식 총포에 올인쳤던 옆 일본하고 비교해도 역량에서 군대에 투자한 비율이 확실히 적었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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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내 이빨 ㅠㅠ

  • 친위대
  • 시위대
  • 진위대

주체성[편집]

대한제국의 근대화 철학인 신구 절충의 구본신참론은 정궁이었던 경운궁(현재 덕수궁)에서도 확인된다. 중화전을 중심으로 왼쪽에 정관헌·구성헌·돈덕전·중명전·석조전 등 서양식 건물을 신설했다. 중화전 오른편에는 석어당·함녕전·준명당·즉조전 등 전통 건물이 배치됐다. 1897년 계획이 수립돼 1910년 완공된 대표적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 영국인 존 레지널드 하딩이 설계했다. [[3]]

석조전 실내 중 가장 화려하고 위엄 있게 조성된 접견실. 실내 의장의 설계와 시공은 영국 메이플사가 맡았다.

ㄴ 군밤대왕이 하라는 근대화는 안하고 경제 다 뒤져가는 시절에 한 뻘짓

당시 고종 광무제가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했던 환구단의 모습.

우리가 생각보다 모르고 있는 부분이지만, 대한제국은 한국 역사 상 유일하게 중국의 의한 조공과 사대질서를 철폐하고 외왕내제같은 내부합리화적인 정신승리가 아닌, 대외정치적으로 황제국을 선포한 나라이자 제국을 표방하고 독자연호를 사용한 형식상으로 한반도 역사상 유일한 독자국이자 주체성을 표방한 나라이다. 고구려의 경우 대왕(大王)같은 칭호를 쓰긴 했으나 이는 '큰 나라의 왕'이라는 뜻일 뿐 어디까지나 황제국보다는 아래 칭호에 속했으며 세간의 여론과는 달리 고구려는 연개소문 집권기 전까지 중국 왕조에 지속적으로 조공하며 속국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고종은 조선 시기 이어지던 사대주의를 타파하고 속국. 좋게 말해서 제후국의 상징이던 홍룡포를 버리고 황제로서 황룡포를 입기 시작했으며, 왕후(王后)의 명칭을 격상하여 황후(皇后)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대한제국의 첫 황제인 고종은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의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천자(天字)로서 하늘에 제사를 거행하여 일본 제국과 서구 열강들에 독자성을 어필하고 대등함을 위시했다.

물론 자기 혼자서 독자성을 어필한다고 해서 서양이 들어줄 리가 없지. 대한제국이 주체성을 자랑하든지 말든지 서양은 곧 대한을 두고 싸울 러시아와 (영국의 지원을 받는) 일본의 싸움이나 보며 팝콘이나 뜯고 있었다.

영토확장과 제국주의[편집]

파일:118171266782 20070614.JPG

대한제국 당시 지도에 명시되어 있는 간도.

1903년(광무 7년) 대한제국은 간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동시에 간도관리사 이범윤을 간도에 파견(1903년 10월 - 1905년 5월)하여 일시적으로 나마 식민통치를 시도하려 하기도 했다.. 당시 청나라는 의화단 사건의 여파로 만주 일대를 러시아 제국에 점령당하다시피 한 상태였다. 이러한 러시아 제국의 남진은 1904년에 발발한 러일 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향후 대한제국 당시 고착된 간도 영역은 현대 중국의 연변 자치주로서 이름만 바뀌게 되었다.

대한제국의 간도 영향력 행사과정에서 청나라와 잦은 국경분쟁이 발생한다.

외국평가[편집]

뭔가 무능해 보여서 외왕내제마냥 제국으로 인정을 못 받았던 것처럼 알고 있는데 하수아비 국가였던 건 맞지만 의외로 해외에서는 제국으로 인정해주며 황제 대접을 해줬다고 한다. 물론 황제 대접만 해주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 영국 데일리메일 기자인 캐나다인 프레더릭 매켄지 등은 광무개혁의 성과를 적극 인정했다.(Homer Hulbert, The Passing of Korea, 456쪽. Frederic McKenzie, Korea’s Fight for Freedom, 62~63쪽) 지한파 구미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대한제국을 어떻게든 깎아내리려 했던 일제 고위 관리의 발언도 주목된다. 1900년 2월 19일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가 아오키 슈조(靑木周藏) 외무대신에게 “무릇 상업상 당국(한국)의 지위는… 단순한 상업시대에서 공업시대로 들어서는 데 이르러 한두 동양 국가들과의 관계로부터 나아가 세계적 경쟁 영역에 임하고 있다”고 기밀보고를 했다.(『일본공사관기록』 1900.2.19) 1904년 10월 29일에는 “한국의 무역은 해마다 다소 소장(消長)이 있지만 발달의 추세가 현저하다”는 보고도 했다.(이태진, ‘일본도 광무 근대화 성과 예의 주시했다’ 150쪽)

대한제국의 경제 성장은 각종 통계 기록으로도 입증된다. 1897년부터 1905년까지 대한제국 정부의 세출예산을 보면 대한제국은 창건 9년 만에 예산이 약 4.6배나 늘었다. 경제 규모가 그만큼 늘어났음을 간접적으로 입증한다.(이윤상, 『1894~1910년 재정제도와 운영의 변화』, ‘표:1900년 전후의 세출예산 및 군사비 규모 증가 추세’)

1990년대 이후 러시아 문서가 처음으로 공개되면서 드러난 대한제국 수출의 증가 상황도 참고할 만하다. 대한제국의 무역 총량은 1901년 1800만 엔을 상회했고, 1904년에 곱절이 되었으며, 1910년엔 6000만 엔에 육박했다. 대한제국의 1910년도 수출액이 1901년에 비해 무려 5.4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한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은 일본·중국·러시아·미국·영국 등이었다.(박종효 편역, 『러시아국립문서보관소 소장 한국 관련 문서요약집』 513쪽)

오랜 세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통계의 책임을 맡았던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의 통계자료도 있다. 매디슨이 2012년 산출한 한·중·일 각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보면 한국 경제는 늦어도 개항 훨씬 전인 1869년 이전에 저점을 통과했고, 대한제국기 전반에 걸쳐 고도성장이 진행됐다.

매디슨 통계에 따르면 1911년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815달러로 아시아 4위에 올랐다. 1915년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1048달러에 달해 미국 치하의 필리핀(875달러)과 네덜란드 치하의 인도네시아(866달러)도 뛰어넘어 ‘아시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나타났다.(황태연,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 1060~1062쪽)

출처 : [[4]]

정치적 영향[편집]

일본 제국이 현대 일본 우익들이 내세우는 백그라운드. 즉 배경이자 정통성이라고 한다면, 대한제국은 현대 대한민국 좌익들의 역사적 정통성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실제 좌익계열 정당의 당선인 문재인 대통령이나 박원순 서울시장 등 진보 측도 대한제국을 기리고자 하는 발언과 행보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당선 전인 올해 초 "1897 정유년은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해였다"며 "고종의 이루지 못한 새로운 나라의 꿈"을 언급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대한제국의 역사를 재조명해 정동을 활성화하겠다"며 "대한제국의 역사를 돌아보고 국권회복과 국민권력시대를 향한 대한민국의 길을 찾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동, 그리고 대한제국 13' 계획의 일환으로 구 러시아공사관과 환구단, 덕수궁을 잇는 '대한제국의 길' 역사탐방로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출처 : [[5]]

역사[편집]

흥선대원군 실각이후 여흥민씨들이 정권을 거의 장악했는데 당연히 명성황후가 이쪽 보스였다

여흥민씨는 대대로 친러파 세력이라 어떻게 해서든 한반도를 손에 넣고 싶어했던 쪽발이들에겐 걸림돌이였다

그래서 친러파 세력을 몰아낼려고 일을 터뜨렸으니 그게 바로 명성황후 시해사건 을미사변이였다

그렇게 여흥민씨가 몰락하고 경복궁도 왜군에 의해 점령당하자

차근차근 쪽본제국의 강요로 을미개혁이 이루어진다.

이에 공포를 느낀 고종은 (당시)친러파 이완용 등에 의해 아관파천을 결정, 러시아 공사관으로 쪽본의 눈을 피해 ㅌㅌ 하는데 성공한다.

독립협회는 안그래도 지금 나라꼬라지가 병신인데 아관파천으로 더욱더 병신이 되고 체면마저 땅바닥에 널부러지자 고종보고 빨리 텨 나오라고 독촉한다.

그래서 일단 나오긴 했으나 아무래도 가오가 안살았다. 그래서 쪽팔림을 만회해 보고자 내친 김에 칭제를 하기로 하였다.

그래도 인두겁은 쓰고 있었는지 독립협회 등이 짜여진 각본대로 황제하라고 추대해도 욕심없는척 처음에는 물렸다가 마지못해 낼름 황제의 관을 받아썼다.

그리고 원구단을 세우고 황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에 즉위하여 연호를 광무라 했다.

참고로 대한제국을 밀어버리고 식민지 조선을 건설한 일제도 짜증났는지 내친김에 원구단도 밀어버렸다고 한다.

광무개혁[편집]

연호인 광무는 한나라의 황제였던 광무제 유수에게서 따왔다.

그리고 고종도 그덕에 광무제가 되었지만 그렇게 부를 경우 원조 광무제는 졸지에 고인드립을 당하게 되므로 아무도 고종을 광무제라고 안부른다.

청일전쟁 이후 3국간섭과 함께 세력균형이 이루어지는 짧은 평화의 시대에 이것저것 좌충우돌 한 것을 광무개혁이라 부른다.

국뽕들은 일제와 친일파에 의해 뭍혀진 위대한 력사로서 광무개혁을 찬양하려고 하지만

실상은 걍 다 부질없는 짓이다. 근머의 근자도 모르는 위인이 자기혼자 막무가내 좌충우돌식으로 추진한 개혁은

걍 사기나 당하고 돈이나 깨먹고 흐지부지로 끝났다. 참고로 이때 광무개혁의 결과물로 나온게 저 아래의 대한국 국제다

의회설립 운동[편집]

독립협회와 입헌주의자들은 근대식 의회를 만들어 달라고 징징거렸고 고종도 황제하라고 해주었던 으리를 생각해서 중추원이란 것을 만들었다.

하지만 독립협회는 영국식 입헌군주제, 즉 황제를 뒷방 늙은이로 만들어버리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고종은 황제권이 강고한 러시아나 독일식의 외형적 입헌군주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종의 외국인 고문들도 반란이 일어날거 같아서 전제군주제를 권할 정도로 대한제국은 좀 킹황짱인 나라 꼬라지를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고종의 의도대로 대신임명권을 고종이 가져가게 된것까지는 좋았으나...

문제는 첫 번째 의회에서 갑신정변으로 인해 당시 력적으로 지정되어 아직 사면 복권되지 않았던 박영효와 서재필을 대신으로 임명하자는 병크를 저질렀다.

덕택에 첫판부터 대놓고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과 역적을 도로 불러들이자는 것에 빡친 고종은 도저히 못참겠다면서 중추원과 독립협회를 쌍으로 밀어버렸다.

그렇게 한국 최초의 근대식 의회는 영영 해산되어 제헌국회가 열리는 1948년 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고종은 의회없이 헌법을 만드는데 그거시 아래의 대한국 국제로 만세를 이어가는 전제군주국을 호기롭게 선포했으나 결국 10년도 못되어

멸망하고 이후엔 쭈욱 총독과 대통령들이 집권하며 왕이나 황제 그딴거 없게 되었다. 안습

  • 대한제국을 완전한 근대국가라고 부를수 없는 이유.

몰락[편집]

친러로 기운 것은 좋았는데 아직 독립협회가 살아있을때는 다들 일본을 빨고 러시아는 미워했다. 아마 같은 동양놈이라 조선을 밀어주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었던듯.

정확히는 레알 일본이 한국을 자주독립국으로 지켜주겠다는 사탕발림이나 국가연합형태로 대등 합병되던가 하는걸 꿈꿨다는듯.

ㄴ 당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과 유사한 생각이 지식인들 사이에 팽배했었다고 함 동양인들이 힘을 합쳐서 서양의 야욕을 막아내자.

하여간 3국간섭의 주범이자 겨우 청나라를 조졌더니 조선이란 다된 밥에 수저를 들이미는 러시아가 짜증난 쪽본은 러시아와 맏붙는다.

이때 고종은 러시아가 승리하는 시나리오 쪽에 배팅한것까지는 좋았으나 딱히 러시아 편을 들지는 않고 중립을 선포하였다.

이에 짜증난 쪽본은 경복궁을 점령하고 고종은 별수없이 일본편에 붙었다. 그리고 쪽본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겨버렸다.

청과 러시아를 조져버린 쪽본제국은 영국과 미국의 보증과 승인을 얻어 이제 조선 합병에 거칠게 없게 되어버렸다.

멸망[편집]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승리 쪽에 배팅하였던 고종은 독박을 쓰게 되었고 그 결과는 판돈인 한반도 전체를 일본에게 털리는 것이었다.

1904년 1차 한일협정으로 고문관이 파견, 화폐정리 사업을 일본이 주도한다. 이를 고문정치라 부른다. 그리고 조선상인들은 망했다고 한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은 쪽본제국의 보호국으로 강등당했다.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재정권도 빼았기고 총독부의 전신인 통감부가 설치되고 사실상 외교권 뿐만 아니라 내정까지 일본제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초대 총감은 그 유명한 이토 히로부미.

이를 통감정치라 부른다.

이때 레알 나라가 망했다는 것을 민중들이 실감하게되어 자결하기도 하고 의병도 일으켜 봤지만 이미 게임은 끝났다. GG를 쳐야하는 상황인것.

이러한 현실의 변화를 도저히 받아들일수가 없었던 고종은, 헤이그에 밀사 3인방을 보냈지만 실패, 그덕에 이토한테 한소리 듣는다. (이토: 폐하 한방 먹이셨네염~하지만 담부턴 쪽본제국에게 대들려면 쫌 더 잘해보세염~^오^) 그리고 그 대가로 을사오적과 이토한테 갈굼당한다.(오적: 아 어차피 황태자 폐하 적장손 아님? 걍 천황폐하한테 사죄하는 겸사겸사 내려오셈?)

그리고 그토록 전제군주로서 마지막 까지 머물고자 했던 왕좌까지 빼앗겼다. 그리고 고종은 조선왕조(의 실질적) 최후의 임금이 되었다.

1907년 정미 7조약 (2차 한일협정)에 의거 대한제국은 군대마저 해산당한다. 그리고 국방권, 외교권, 내정권까지 모조리 일본이 가져갔다.

국방이 나가리 되자, 당근 군인들은 옷을 벗어야 했고 이렇게 이들은 의병이 되었다.고종도 뒤로 자금을 지원하기도 하는 등

은밀히 도왔다지만 결국 일제의 남한 대토벌 작전으로 완전히 진압당하고, 국내 무장독립투쟁론자들은 해외로 ㅌㅌ 했다.

슬슬 이 때쯤에 대한제국을 이대로 놔두는건 솔찍히 일제도 좀 너무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왜냐면 걍 껍데기만 남았거든?

고로 신중론자로서 당장 합방반대파인 이토가 제거되자 곧바로 합방하기로 일본 내각에서 곧바로 결정한다.

1910년 한일합방에 의해 알량한 껍데기 마저도 작살내 버린 일제는 조선 통감부를 조선 총독부로 승격시켰다. 그렇게 한반도의 마지막 통일왕조가 멸망했다.

헌법[편집]

대한국 국제라는 고종의 설정딸 목록이 헌법의 역할을 하였다. 헌법이 아니라 국제(國制)인 이유는 헌법이 보장해야 할 의회가 존재하지 않고 황제인 고종이 독단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아시아 3대 근대 헌법 체계 중에서 유일하게 입헌군주제가 아닌 전제군주제를 보장한다. 일본은 빨리, 청나라는 뒤늦게라도 제정신을 차렸으나 머한뎨국의 고종 광무제 폐하께서는 나라가 망해가는데도 전제군주제 못잃어!!!를 하고 계셨다. 참으로 위대하신 황제 폐하이시다.

내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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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주모 여기 국뽕 한 사발 더!

제1조 대한국은 세계만국의 공인되온바 자주독립하온 제국(帝國)이니라.

제2조 대한제국의 정치는 이전으로 보면 500년 전래하시고 이후로 보면 만세에 걸쳐 불변하오실 전제정치이니라.

제3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무한하온 군권(君權)을 향유하옵시나니 공법에 말한 바 자립정체이니라.

제4조 대한국 신민(臣民)이 대황제의 향유하옵신 군권을 침손할 행위가 있으면 그 이미 행한 것과 아직 행하지 않은 것을 물론하고 신민의 도리를 잃은 자로 인정할지라.

제5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국내 육해군을 통솔하옵셔 편제를 정하옵시고 계엄·해엄을 명하시나니라.

제6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법률을 제정하옵셔 그 반포와 집행을 명하옵시고 만국의 공공(公共)한 법률을 효방하사 국내법률도 개정하옵시고 대사(大赦)·특사·감형·복권을 명하옵시나니 공법에 말한 바 자정율례(自定律例)이니라.

제7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행정 각 부부(府部)의 관제와 봉급을 제정 혹은 개정하옵시고 행정상 필요한 각항 칙령을 발하옵시나니 공법에 말한 바 자치행리(自治行理)이니라.

제8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문무관의 출척(黜陟)·임면을 행하옵시고 작위·훈장 및 기타 영전(榮典)의 수여 혹은 체탈을 하옵시나니 공법에 말한 바 자선신공(自選臣工)이니라.

제9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각 유약국(有約國)에 사신을 파송, 주찰(駐紮)케 하옵시고 선전(宣戰)·강화 및 제반 조약을 체결하옵시나니 공법에 말한 바 자견사신(自遣使臣)이니라.

ㄴ참고로 원문은 대황제라는 단어 앞에서 강제개행한 상태로 되어있다.

기타[편집]

한국사에서 구한말이라고 부르는 시대가 이 시기이다.

일제시대때 쓰여진 글들을 보면 이 시대를 산 식자층도 그 병신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1929년 조선일보 기사에는 구멍뚫려서 외국에서 내다 버린 배를 사다가 양무호라 이름지은 나라가 대한제국 이었다고 깠다. 육군은 일단 좆만하지만 존재는 했고 해군은 정말 해군이라고 하기가 아까울정도로 병신이었다.

밀덕후인 고종은 이런저런 무기를 질렀지만, 문제는 다품종 소량도입을 실천하여 보급이고 뭐고 개판이 되었다. 그리고 일제한테 맨날 경복궁이 점령당했다.

고종은 일제가 올린 묘호이니 인정하면 안되고, 중국 황제처럼 연호+제를 따서 광무제로 부르자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자주 복원되거나 대체역사의 떡밥으로 사용되었다.

위에 혹해서 대한제국 황실을 복원(왕정복고, 제정복고)하자는 사람들도 나타났으나 대한민국 정부가 멸망하지 않는한 그런일은 있을수가 없다.

조선후기와 구한말의 조선왕조의 무능과 실정을 본다면, 설령 제정이 복고되어도 전주이씨가 다시 해먹긴 힘들것으로 보인다.

평가 (디시위키)[편집]

최후의 발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근대 국가를 꿈꾸며 너도나도 제국이라 칭하던 시대라 같이 제국이라 칭했지만 국력의 차이가 너무 심했고

ㄴ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제국은 타국의 종속국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뭐 아예 나라 자체가 먹혀 버렸지만.

정치 제도도 이미 특정 개인에게 정치권력이 몰빵하던 시대는 지났고 여럿이 나누는 의회라든지 민주주의가 대세였던 시대였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였다 예로 러시아 제국 오스만 제국 독일제국이 있다 그러나 이 나라들도 역시 대한제국이 망한지 10년도 못가 다 망했다 ^오^

ㄴ독일과 러시아 제국이 망했다고는 하지만 대한제국처럼 식민지는 되지는 않았다. 독일 제국은 망한뒤 나치 독일이 되서 강해져서 더 깽판 부리고 유럽 대륙의 상당 부분을 일시적으로 장악했다. 러시아 제국은 소련이 되서 군사 강국이 되었다. 그에 반해 대한제국이 망하고 나서는 그저 쌀셔틀, 자원셔틀 된 거랑 똑같다고 하기에는.

ㄴ물론 오스만은 위태했다...


한마디로 시대상을 거꾸로 읽은 개혁과 이미 다 쓰러져간 왕조가 마지막 발악이라 한 셈이다

사실 대한제국을 조선의 부록정도로 취급하는 경향도 강해서 그냥 연장선으로 보는게 대다수 (조선왕조라고 하면 1910년까지라 칭하는 경우가 다반사)


어떻게 보면 비운의 시대였다

대한제국의 권위를 인정해주는 나라도 없었으니... 예로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Korea는 고려에서 유래한거라 맘에 안들었던 대한제국 정부가

각 외국 대사관에 Dai Han으로 정정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쿨하게 씹혔다 ^오^


재평가 될 이렇다할 건덕지도 없고 그냥 망국의 마지막 불꽃 정도였던 시대다


이름 하나는 멋있다.

이름을 보면 마치 신성로마제국 같다. 신성하지도 제국 같지도 로마 같지도 않은 신성로마제국 같이, 대한제국은 대국도 아니고 제국 답지도 않고 현대적인 한국답지도 않다. 도대체 이름만 거창하게 대제국을 붙이는게 오그라든다. (중간에 한이 들어갔기는 하지만) 한자를 하나씩 직역하면 Great Han Empire이 되는데 국력에 비해 자뻑만 들어간 이름이다.

ㄴ대한의 '대'는 그딴게 아니라 '삼한이 하나를 이루었으니 '큰 한'이다'라는 의미라 대한이라고 좀

애초에 황제 뜻이 다른나라의 왕을 거느리는 왕인데 다른나라는 무슨 허구한날 주변국한테 털리는 개좆밥새끼가 있어보이는 척 나대는거 개웃김

역대 황제[편집]

초대 고종

2대 순종

대원군[편집]

ㄴ대한제국 선포하면서 대원군을 대원왕으로 승격시켰다.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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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인구
  2. 최초는 고려
  3. 한국사에서 독자연호를 재정한 나라는 고구려,발해,고려,대한제국이 있으며 황제국을 자처한 나라는 고려,대한제국이 유이하다.
  4.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알다시피 임시정부는 대한제국을 계승한 단체이다.
  5. [1]
  6.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0081602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