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 셔먼호 사건
조무위키
이 문서는 참교육에 관련된 것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참교육의 은혜를 다룹니다. 만일 참교육을 거부할 시 성적은 개좆망행이니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헤이, 영쑤!! 돈 두 댓!" |
대한민국의 승리!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펄럭-
|
파일:T92.gif | 🔥 실례합니다만, 지금 불타고 계십니다. 🔥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 또는 이 문서의 작성자는 괜히 혼자 불타고 있습니다. |
파일:Latest?cb=20120929182437.jpeg | 주의. 이 문서는 중증 나이키 마니아충에 대해 다룹니다. 지금 당장 반미 선동하는 프락치를 잡아 111에 전화해 코렁탕을 처먹이러 갑시다. |
개요[편집]
1866년 7월 25일 천조국의 무장 상선이던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타고 평양으로 거슬러 올라가 통상수교를 요구하며 대포를 쏴대며 민간인들을 학살하자 1866년 9월 5일 평안 감사 박규수 휘하의 조선군이 배를 불태우고 선원들을 살해한 사건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편집]
사실 이 시절 서구 열강들이 이런 식으로 전세계 약소국들에게 수교를 요구하다가 거부하면 깽판치는건 일종의 유행이었다. 그나마 아시아는 청나라가 대빵먹고 관할구역으로 쥐고있었는데 그 청나라가 어느 섬나라에게 후장까지 털리면서 맛탱이가 가버려서 본격적으로 아시아 약소국들을 쑤셔대던 시절이었다.
근데 그렇다 쳐도 제너럴 셔먼호는 군함도 아닌데다가 안에는 일반 상인들 주제에 대포를 쏴대며 민간인들을 학살했다는건 말이 상인이지 사실상 해적놈들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해적이기 때문에 진압하지 않을수가 없잖아?
게다가 당시 이미 흥선대원군이 병인박해로 서양 선교사들을 학살한 상태라서 프랑스가 보복하러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 자체가 양놈들한테 잔뜩 긴장한 상태였는데 이지랄을 했으니 당연히 바로 군대가 나서게 된 것
결과[편집]
이 사건과 더불어 바로 연이어 같은해에 병인양요까지 발생해서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조선인들의 양놈들에 대한 반감은 더더욱 확고해졌다.
물론 이 사건 이후 신미양요로 개처맞듯이 처맞게 되었다.
제너럴 셔먼 그 이후 5년[편집]
병인박해가 일어난 당해에 병인양요가 일어난 것에 비해 신미양요는 대응이 어마어마하게 느린 편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 당시 1866년은 남북전쟁이 끝난지 고작 1년밖에 안된데다가 천조국 머통령이 암살당한지 1년밖에 안되는 천조국 입장에서도 혼란스러운 시대라 동양의 좆만한 동네에서 일어난 해적질에 대해 대응할 처지가 못되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이었다.
- 웬 듣보 상선이 조선에 와서 깽판
- 침몰
- 남북전쟁 뒷처리하던 미국은 이걸 알지도 못함
- 우연히 이 사건을 주워들은 미국
- 조선에게 물어본다(1867년에)
- 조선: 아 미국 ㅎ 니네가 보낸 애새끼들 다 뒤짐 ㅎ
- 미국: 아니 청나라야 니네 따까리 관리 제대로 안해????
- 청: 아 걔네 우리 나와바리 아님 ㅎ 걔네 독립국임 걔네한테 따지셈(벌써 1869년)
- 조선을 존나 공부하는 미국(2년 동안)
- 자 드가자~(1871년에 드디어)
여담[편집]
- 사실 이 지랄은 천조국 국가차원에서 계획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민간상선 제너럴 셔먼호 단독적으로 해적질하다가 참교육당한거였다. 그러니 반미충들은 이걸로 선동질 ㄴㄴ 실제로 당시 대통령도 이 사건 후 이틀 후에야 이 사건의 존재를 보고받았다고 한다.
- 당시 천조국은 조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청나라에 붙어있는 청나라의 속국정도로 인식해서 청나라에게 이 사건을 항의했는데 청나라가 "걔들 우리 관할 아닌데? 직접 가서 따지셈 ㅅㄱ링~"이라는 답변이 돌아와서 조선이 당시 서구 열강들에게 아시아 초강대국으로 인식되던 청나라조차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초강대국으로 오해받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먼저 조선에 대해 염탐하며 정보수집하는데만 3년이 걸렸고 첩보 결과 초강대국은 무슨 개좆밥 약소국임을 알게되고 바로 쳐들어오게 된다.
- 사건이후 하응이는 침몰한 제너럴 셔먼호를 인양해서 복제를 시도했고 머부분 성공했었다고 한다. 다만 조선은 증기기관 따위 다뤄본적이 없는지라 석탄이 아니라 숯을 사용해서 가동해서 제대로 돌아가질 않았고 결국 상용화 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외외로 하응이가 외국과 통상은 맺기 싫었는데 서양기술에는 관심이 많았나 보다. 더불어 망상 좀 하자면 운요호 사건 때 까지 이 배들을 잘 다뤄서 전투에 투입했다면 아마 이때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 북조선에서는 김일성의 증조할아버지인 김응우옌이 제너럴 셔먼호의 미제승냥이들을 쓸어버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하지만 당연히 구라이고 박규수와 백낙연이 총책임자였다.
- 박규수가 이 사건을 지켜보았다. 마치 일본에서 쿠로후네 사건을 유신지사들이 직접 지켜봤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