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밀로 벤소 카보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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注意. 是 文書는 國父에 對해 扱니다. 諸 默念부터 爲시다... 族와 國를 爲해 命을 納리... 最小限 是 文書만은 國丰(彼가 捧지는 國의 國丰)을 쳐 吸시길 望니다. 萬若 國父를 侮辱하는 言을 行爲면 汝는 四肢가 切斷되고 屍體는 廢棄物 燒却場에서 廢棄 處分될 物입니다. |
카보우르 백작 카밀로 벤소 Camilo Venso Conte di Cavour | |
국적 | 이탈리아 왕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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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이탈리아의 초대 내각수상 다음 수상→ (1861년 3월 23일~1861년 6월 6일) |
정당 | 민족사회당 |
표방이념 | 민족주의 |
이탈리아의 건국 국부 중 한명이다.
이탈리아 북서부에 찌그러져 있던 소국인 사르데냐 왕국을 이탈리아 왕국으로 키워낸 1등 공신이다.
프랑스를 끌어들여 롬바르디아를 오스트리아로부터 빼앗았고, 토스카나와 에밀리아로마냐 지역에 혁명을 사주해서 합병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에게 사보이와 니스를 할양했다. 따라서 니스 출신이었던 가리발디의 격한 항의를 받았다. 여담으로, 같이 할양한 사보이는 사르데냐 왕국 왕가인 사보이 가문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왕가 땅 팔아서 외세 개입을 무마시킨 솜씨는 어지간한 깡 없으면 힘들었을텐데...
가리발디가 의용군을 조직해서 니스를 공격하려 하자 카보우르는 주변 인물들에게 잘 얘기해서 가리발디를 니스가 아닌 시칠리아로 가게 했으며, 주세페 가리발디는 남부 이탈리아를 통째로 점령해서 사르데냐 국왕 빅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바쳤다.
어찌어찌 통일은 되었지만 이탈리아 전역의 통일은 카보우르도 미처 계획한 건 아니었다고 한다.
로마와 베네치아를 뺀 전 지역을 병합하여 1861년 통일 이탈리아가 선포되었는데 카보우르는 초대 총리로 선출되었다. 허나 온갖 업무에서 쌓인 스트레스 때문인지 얼마 안가 돌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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