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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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1883년 우리나라가 최초로 서양국가에 파견한 사절단.
배경[편집]
1880년 수신사로 간 김홍집이 <조선책략>이라는 라노벨을 조선으로 가져오게 되고 이걸 읽은 고종이 미국과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근데 이 과정에서 미국은 외교 대사로 루시어스 푸트를 파견했고 조선도 이에 응대해서 주미조선공사를 미국에 보내야 했으나 조선에게 미국은 듣도보도 못한 나라였고 사정상 외교 대사고 뭐고 미국에 대해 뭘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한다.
일정[편집]
당연히 조선에서 미국으로 가는 직항은 없던 시절이라 1883년 7월 15일 출항하여 일본에 들렀는데 여기서 듣도보도 못한 나라에 얘들만 보냈다간 무조건 길을 잃을 것 같았는지 당시 주일미국공사의 주선으로 퍼시벌 로웰이라는 미국 천문학자와 그의 통역관인 미야오카 츠네지로를 같이 보낸다. 이에 고마웠는지 조선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퍼시벌 로웰에게 보빙사 서기관 겸 고문이라는 관직을 내렸다.
그렇게 8월 15일 일본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향했고 태평양을 건너 9월 2일 드디어 최초로 조선인이 미국땅에 발을 밟는 역사적 순간이 일어났다!
근데 좆빠지게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와싱톤에 도착하니까 정작 미국 대통령은 뉴욕에 가 있었다... 결국 사절단은 도로 거꾸로 돌아가서 뉴욕을 향했다.
아무튼 그렇게 다시 9월 18일 뉴욕에 도착해서 천조국 황제가 머무르는 호텔에서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사실 보빙사 일행은 서양식 예법에서는 절을 하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서양의 황제에게는 어떻게 예법을 표해야 하는지 몰라서 의논하던 중에 천조국 머통령이 생각보다 빨리 들어와서 너무 놀라 조건반사적으로 청나라 황제에게 하듯 절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후 서양식으로 악수도 하긴 했다. 그래도 절을 한건 사실이다.
그래도 이 사절단 멤버들은 미국에서 국빈대접을 받았고 나름 중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면서 신문물을 많이 접해보던 사람들이라 서양식 예법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기에 윾교탈레반처럼 난동을 피우거나 하진 않았다. 그래도 당시 끽해야 자금성이 세상에서 제일 큰 건물인줄 알았던 조선인들이 천조국의 빌딩과 마천루를 보고 자동차와 기차를 보자 질질 싸버린다. 당시 제대로 된 포장도로 하나 없던 조선에게 천조국의 도시는 마치 외계인들이 사는 별천지와도 같은 엄청난 충격이었따.
아무튼 이렇게 보빙사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백악관도 구경하고 박람회도 가보고 기술도 배우고 차관도 요청하고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러던 중 천조국 머통령이 돌아갈때 타고가라고 군함 한척을 내줬는데 유길준은 남아서 미국 유학을 하기로 하고 홍영식은 태평양을 가로질러 돌아가서 그대로 조선으로 귀국하기로 하고 민영익, 서광범 등등은 이 군함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 유럽을 거쳐 귀국하기로 한다.
홍영식은 퍼시벌 로웰과 함께 조선으로 귀국했는데 이때 로웰은 조선에서 국빈대접을 받는다. 한편 유럽으로 간 민영익 일행은 조선인 최초로 세계일주를 하며 포르투갈, 프랑스, 이탈리아를 둘러보고 이집트와 수에즈 운하를 거치면서 인도, 싱가포르, 일본을 통해 조선으로 돌아온다. 참고로 이집트에서는 조선인 최초로 피라미드를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유학자 출신이기에 민영익에게 피라미드는 신성한 왕릉이었고 피라미드에 들어가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여담[편집]
- 참고로 보빙사 일행들의 기록은 조선에서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 이유는 여기 갔다온놈들이 이후 폭동을 일으켜 역적으로 몰려 기록말살형을 당했기 때문. 그래도 미국 신문에 보빙사 일행들의 일정이 대서특필되어서 미국 측에는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 민영익은 온건 개화파를 고수했으나 급진개화파들이 폭동을 일으켜 자신이 죽을뻔한 이후 친청파가 된 동시에 왕당파가 되었다. 근데 이후 친청파로 흑화해서 고종이 친러거청 정책을 밀고있다는걸 위안스카이한테 꼰질렀고 이걸 또 고종한테 들켜서 홍콩으로 망명했다. 이후 대한제국이 되자 다시 귀국하였으나 을사늑약이 맺어져서 친일내각이 세워지자 다시 상하이로 망명했고 거기서 사망한다.
- 홍영식은 미국의 미국의 우체국 제도에 큰 감명을 받았고 조선에도 이 우체국을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조선에 귀국하자마자 우정국을 세운다. 근데 잘 알다시피 이 우정국 연회때 폭동이 일어나서... 홍영식도 여기에 가담했다가 역적으로 낙인찍히고 이후 광화문에 효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