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맹회
조무위키
1894년 만들었던 흥중회와 기타 세력을 통합해서 1905년 7월 도쿄에서 쑨원 및 여러 인물이 만들었다.
1907년 일본이 청나라의 압력으로 쑨원을 쫓아냈고, 광동성에서 봉기를 일으켰으나 망했다. 그래서 혁명을 일으켜야 된다는 쑨원의 사상이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철도 문제 때문에 1911년 청나라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12월 25일에 쑨원이 상하이에 도착해서 혁명군을 지원했다.
1912년 1월 1일 중국 난징에서 중화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중국을 지배하는 새로운 세력이 되나 했으나 청나라의 반격이 거세지면서 결국 청나라를 내부에서 무너뜨릴 필요를 느꼈다. 결국 쑨원은 청나라 조정에 있는 한 배신 전문 인물을 찾아서 타협에 성공하니 그 배신자가 바로 위안스카이였다.
여하튼 위안스카이가 청나라를 없애는 대가로 총통 자리는 위안스카이에게 넘겼고, 얼떨결에 위안스카이가 새로운 공화국의 독재자가 되면서 동맹회 세력은 다시 지하로 숨어들었다. 이후 중화혁명당이라는 지하결사를 만들었다.
위안스카이가 본색을 드러내자 쑨원은 위안스카이에 맞서 계축전쟁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위안스카이의 뇌절로 중화제국이 세워지는 해프닝이 벌어지면서 호국전쟁이 터졌고 위안스카이는 중화제국을 취소한 다음 뒤졌다.
위안스카이가 뒤진 다음 들어선 중화민국 북양정부도 답이 없는 것은 매한가지라서 21개조 요구를 수용하다가 5.4 운동이 일어나면서 중화혁명당은 우리가 아는 중국국민당으로 거듭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