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대한민국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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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사니뮤ㅠㅠㅠ
대한민국 임시정부
大韓民國臨時政府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기본 정보
수도 서울 (명목)
국가 애국가[1]
대륙 한반도
인구 약 2천만 명(1919년 3월 1일 기준)
인종 한민족
군대 한국광복군
추가 정보
지도자 역대 수반 문단 참고
체제 대통령중심제(1919~1925)
내각책임제(1925~1927)
집체적지도제(1927~1940)
주석제(1940~1948)
건국 1919년 4월 11일
언어 한국어
한국사의 시대구분
청동기시대
단군조선 · 기자조선 · 위만조선
· 주호 · 우산
원삼국 시대
부여 · 옥저 · 동예 · 고구려 · 주호 · 우산· 낙랑군
마한 · 변한 · 진한
삼국시대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 · 탐라 · 우산
두막루
남북국시대
발해 · 신라 · 탐라 · 소고구려 · 소백제 · 보덕국

후삼국시대
신라 · 발해
태봉 · 후백제 (반란세력)
통일왕조 시대
고려 · 조선 ·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대한광복군 정부 ·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군정기
미군정 · 소련군정
분단시대
대한민국 · (자유조선)
북괴 (반란세력)

배경[편집]

태극기의 계보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
임시정부 당시 명목상 영토였던 한반도. 그러나 해방 후 미군정과 소련군정으로 나뉘고 결국 미군정 지역이었던 남쪽만 국가 승계를 받아서 정부가 수립되었고 남은 소련군정 지역은 북한이라는 나라가 새로 설립되고 현재까지 그렇게 분단 된 채로 이어져 왔다.

3.1 운동의 전국적 폭발적 호응에 더불어 국민들의 독립의 염원을 확인한 독립운동가들은 각각의 독립 운동을 조직적으로 하기 위한 통합된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임시정부를 창설한다.

대한국민의회와 신한청년단의 합작으로 이뤄졌다. 설립 당시 무장투쟁론자들은 만주/연해주에 창설할 것을 주장했고 외교독립론자는 상하이에 창설하기를 주장했다. 무장투쟁론자의 의견에 따르면 두만강은 강폭이 좁고 겨울이 되면 100% 꽝꽝 얼기 때문에 언제든지 기회를 봐서 국내로 진공하기에 유리하다는 점을 근거로 연해주에 정부를 세우자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외교독립론자의 의견을 수용하여 상하이에 세우는 걸로 결론이 난다. 사실 대한광복군 정부가 어떻게 됐는지 생각해보면 뻔했다.

왜 하필 상하이?[편집]

사실 이건 고교 역사 과정까지는 배우지 않는 심화된 내용이라서 알 필요는 없다. 국외에 세운 이유 정도만 알고 있어도 충분하다.

당시 상하이는 일부는 영국, 일부는 일본, 일부는 독일, 일부는 벨기에, 일부는 프랑스, 일부는 미국 등 세계 여러 열강들에게 조차된 상태였다. (조차된 땅을 조계지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상하이라는 지역은 갈가리 나눠진 상황이었는데 다르게 말한다면 상하이는 여러 국가들이 모여있는 곳이었으니까 외교 활동에 매우 유리했다. 그래서 외교독립론자들에게 있어서 상하이 선택은 당연한 것이겠다. 다만 영국이나 벨기에 같은 경우는 일본에 우호적이었고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 통치에 관하여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나라였다. 예를 들면, 일본이 조선에 세웠던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영국이 인도에 세웠던 동인도 회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임시정부는 일본과 대립, 적대 관계에 놓여있었던 프랑스의 조계지에 세워졌다. 영국, 미국 등 일본과 우호 관계에 놓여있던 국가의 조계지에 세울 리가 있겠나.

개요[편집]

임시정부 건국 강령에서 주가 되는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손문의 삼민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한편 1940년대 초 일본이 전선을 확대해나가자 독립 운동의 재조직을 위해 사회주의 세력을 포섭할 필요성을 느껴 국유화 등의 주장을 넣었다. 물론 이후에도 좌우 알력은 계속되었지만...

반면 공산주의 세력인 조선 독립 동맹 같은 경우에는 아예 토지 분배를 주장했고, 좌우를 떠나서 국내 독립 운동 세력을 모으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그래서 이념을 벗어나 단합을 추구할 필요가 있었던 조선 건국 동맹 같은 경우에는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으로 한 정체 건설 정도의 강령을 세웠다.

해방 후 임시정부 요인들은 조선 땅에 귀국하지만, 미군정은 미군정만이 한반도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선언하여 임시정부 또한 정부 승인을 받지 못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이것저것 노력은 많이 했지만, 각기 다른 사상을 가진 독립운동가들이 뭉쳐서 잘 굴러갈리가 없었다.

다만 임정에서 만든 건국강령과 임시헌법은 제헌헌법의 원형 헌법이 되었다. 헌법의 임정 법통 조항이 들어가게 된 게 이 때문.

아무 이유도 없이 이 글에 부들대는 역센징과 일뽕들이 반달하고 있는 문서입니다.

ㄹㅇ 헬조선이 아무리 싫어도 이 문서는 반달 하지 마라. 임정이 있었던 덕분에 임정을 이은 국가로서의 정통성에 따라 머한민국은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인 반면, 북괴ISIL 같은 극좌 분리주의 테러 조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거다. ㅇㅇ

역사[편집]

1910년대[편집]

3.1 운동의 뽕에 취해서 곳곳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4월 11에 세워졌고 (대한민국 임시 헌장이 이때 만들어졌다.) 한성 임시정부는 23일에 세워졌다. 다만 한성 정부는 사실 서류 상으로만 존재했다. 나중에 독립하고 나서 "우리는 국내에서도 독립운동 했으니까 독립하고 나면 우리가 나라 운영해나갈 자격이 있다."라고 떳떳하게 얘기하려고 서류로만 존재하는 정부를 '만든' 것이다. 교과서에서 이름만 나오고 행적이 따로 묘사되지 않는 게 그 때문이다. 한성 임시정부는 집정관 총재라는 폼 나는 자리에 이승만을, 국무총리에 이동휘를 추대했다.

이후 9월 11일, 국내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독립 운동 세력이 상해에 모여서 단일 임시정부를 세우고 대한민국 임시 헌법을 공포한다. 그리고 "대한으로 한 번 망했으니까 이번에는 대한으로 흥하자."라는 독립운동가 신석우의 의견에 따라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임시정부를 발족하...

...기 직전에 문제가 생겼다. 초대 국무총리 임기 마치고 미쿸으로 갔던 런승만 박사가 President of Korea라고 적힌 명함을 뿌리고 다녔는데, 통합된 임정에서 대통령 안 시켜주면 임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염병을 떨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임시 정부의 형태는 국무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임시의정원(입법부)의 결의에 의하여 통치가 이뤄지는 내각책임제로 하려고 했는데 국내외에서 이름값이 높아져서 임정에게 꼭 필요했던 리승만이 이에 거부한 것이다. 싱먼 리를 달래기 위해서 급하게 대통령 자리를 만들고 체제를 대통령중심제로 바꿨다. 교과서에서는 편의상 처음부터 대통령중심제였던 걸로 나온다. 어차피 이제 와서 크게 상관이야 있느냐만. (이 병신 같은 행태는 1948년 8월 15일에도 반복된다.)

임정이 상하이에서 통합됐다는 소식을 들은 고종 황제의 5째 아들(의친왕 이강)은 임시정부에 혹시 자기도 끼워줄 수 있겠냐는 내용의 밀서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만주까지 이동하는데 성공했지만 일본 순사에게 걸려서 송환 당하고 만다. 밀서의 내용은 "나는 차라리 자유 한국의 한 백성이 될지언정, 일본 정부의 친왕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우리 한인들에게 표시하고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 운동에 몸 바치기를 원한다."였다. (1919년 11월 20일자 독립신문에서 나오는 내용임.) 의친왕은 형제를 잘못 둔 덕분에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이 묻히고 '죽을 때까지 평생 잘 먹고 잘 산 친일파'라는 낙인이 찍혀있다. 물론 잘 살기는 개뿔 해방 후 런승만이 버리고 6.25때 도망다니다 말라 죽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당시 임시 헌장의 내용을 보면 현실성 없는 내용이 하나 있다.

대한민국은 신(神)의 의사에 의해 건국한 정신을 세계에 발휘하고 나아가 인류문화 및 평화에 공헌하기 위해 국제연맹에 가입한다.

 
— 제7조

어느 정도 예상은 되겠지만 대한민국은 결국 국제연맹에 가입하지 못했다. 그래도 임시 헌장의 한 가지 의의가 있다면 반포일을 '대한민국 원년'이라고 표기한 덕분에 건국절 논란을 종식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1920년대[편집]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수립되자마자 분열과 해체의 위기에 처한다.

조선을 일본에서 독립시켜주고 그 대신에 국제 연맹(UN의 전신)이 조선을 통치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위임 통치 청원서를 이승만이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사건이 있었다. 임정이 세워지자마자 이게 문제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국제 연맹? UN? 괜찮은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 당시 국제 사회는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지배하는 게 옳다고 여겼다. 그러니까 국제 연맹에 가입한 국가들은 식민지 국가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던 주인님 국가였기에 그곳의 회원국들은 일본 제국과 다를 바 없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본은 국제 연맹 상임이사국이었고. 말 그대로 주인님 바꿔달라는 소리를 한 것이다. 이 사실에 격분한 무장투쟁 (신채호, 박용만, 이동휘 등) 계열은 임시의정원에서 이승만을 거세게 비판했다. (이승만은 이때도 미국에 있었다.) 결국 이런 식으로 첫 단추부터 흔들렸던 임정은 1925년에 열린 국민대표회의에서 이승만을 탄핵하고 다음 대통령에 박은식을 추대한다. 그러나 노쇠했던 박은식은 대통령 중심제를 의원 내각제로 수정하는 일을 해냈지만 건강 상의 이유로 하야 하고 곧 운명을 달리했다.

근데 미국에서 일어났던 이 위임통치 청원 사건의 후폭풍이 상하이에서는 약해졌는지 임시의정원은 기껏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린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선출했고 이에 제대로 빡친 신채호는 임시의정원에서 뛰쳐나가버렸다. 나중에는 중국 + 만주 +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 세력 vs 미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 세력으로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결국 노선과 이념에 따른 갈등(사회주의 vs 민족주의)이 극에 달하자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고 여겨진 민족 대표들은 한 자리에 모여서 국민대표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이 당시 민족 대표들은 해체하고 연해주로 옮기자는 창조파(여운형 대표의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신채호), 구조 조정만 하는 선에서 끝내자는 개조파(이동휘 대표의 상하이파 고려공산당, 안창호), 분열만 더 심각하게 만드는 회의를 멈추고 그냥 그대로 가자는 현상유지파(조소앙, 김구)로 나뉘었다. 회의가 5개월 동안 70여 차례에 걸쳐서 이뤄진 결과 창조파가 나중에 주도권을 잡지만 자금난과 현상유지파의 반대에 부딪혀서 그냥 흐지부지 끝나면서 개조파와 창조파가 임정에서 나가게 되었고 결국에는 현상유지파의 일원인 김구가 임정을 끌어안게 되었다. 활동과 성과가 미약해지면서 안 그래도 없는 사람이 계속해서 빠지니 임정은 규모가 나날이 초라해지고 위기를 맞이한다.

초창기에 수천 명에 달했던 독립 운동가들이 대부분 빠져나가면서 100명도 채 안 남았으며 일제의 식민지 통치 방식이 바뀌고, 임정의 외교적 성과는 지지부진하고, 재정난까지 오면서 이에 견디지 못한 몇몇(대표적으로 춘원 이광수)은 크게 실망하여 친일파로 흑화하고 국내로 돌아가기까지 했다. 연통제와 교통국도 사실상 파괴되면서 임정의 암흑기가 왔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밀정을 보내서 임정 요인들에 대한 체포, 납치, 암살 등을 감행하거나 조선총독부에 잠입하여 자료를 빼돌리는 임무를 수행하던 임정 스파이들에게 코렁탕을 선사하는 등의 공작을 펼쳤고 덕분에 안 그래도 없는 사람들이 더 빠졌다.

1930년대[편집]

김구는 와해 직전까지 치달은 임정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민중들에게 어필하고 관심을 다시 받기 위하여 여러가지 노력을 펼쳤다.

3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일제는 중국을 당장 다 씹어먹을 아시아 킹왕짱이라서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들은 정신적으로 위축되었다.

이에 김구는 1931년 10월 한인애국단을 창단하여 무장투쟁 운동을 전개하여서 임시정부가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도록 물밑 작업을 하고 있었다.

창단 후 약 2달이 지났을 무렵에 이봉창 의사를 보내서 일본왕을 폭살하려고 이봉창 의사를 파견했으나 실패했다.

이에 상해의 한 기레기가 아쉽게 일본왕 폭살 불발이라고 쓰자 일제는 앗싸 좋쿠나를 외치며 상하이 사변을 일으켰다. (그리고 정부를 항저우 쪽으로 옮기게 된다.)

전쟁(상하이 사변)에서 승리하고 때마침 일왕의 생일도 기념할 겸 일제는 상하이의 훙커우 공원에서 기념식을 갖기로 했다. 이에 김구는 윤봉길에게 일제의 요인들을 폭살할 것을 명령했고 기어이 성공한다. 문제가 생길 경우 따로 챙겼던 자결용 도시락 폭탄은 불발로 터지는 바람에 결국 일제 경찰들에게 붙잡히고 사형 당하고 만다.

이것을 본 중화민국의 짱개석은 감격하여 임정을 밀어주기로 한다.

1940년대[편집]

이미 20년대부터 싹수가 보인 독립운동 세력은 좌우가 한국광복군과 팔로군으로 나뉘어서 따로따로 행동한다.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것이 이 시기였다.

중국의 국공합작에 삘받은 민족유일당 운동은 불발되었지만 이것은 임정 조직에 영향을 끼쳐서 김구를 주석으로 (나중에 추가적으로 한 번 더 개헌해서 김규식을 부주석으로) 하는 체제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민당 정부와 함께 내륙 지방까지 피난을 떠나는 안습한 세월을 보냈다.

1942년도부터 한반도 독립 문제에 대한 얘기가 국제 회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회의의 메인 주제는 아니었고 그냥 가볍게 지나가는 얘기 정도로. 미국이 일본에게 언제 항복하냐는 내용, 소련이 일본을 공격할지 등 2차 대전 관련한 얘기가 주류였다. 당시 미국 vs 일본의 상황은 태평양에 있는 조그만 섬 곳곳에 소대, 중대 규모로 흩어져서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을 미군이 쓸어버리고, 일본은 미군이 다른 섬을 공격하러 가는 사이에 다시 중대 하나를 그 섬에 보내는 식으로 전쟁을 질질 끄는 의미없는 소모전만 계속되고 있었다. 이에 미국이 지쳐서 그냥 항복하라는 말에 일본은 "우리에게 그런 건 없다! 끝까지 간다! 덴노 헤-카 반자이!"로 상큼하게 거절했고 미국은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일본에게 최첨단 기술을 동반한 극약 처방을 두 번 해준다. 이를 목격한 소련이 비로소 전투에 참가한다고 선포했고 그 결과는 뻔하지만 관동군(일본군)은 소련에게 일방적으로 털렸다. 결국 일본은 대륙 진출도 좌절, 해상 진출도 좌절되면서 항복을 선언했고 한반도 북부, 만주, 사할린에는 소련이 들어서게 되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본인들이 다 지어놓은 밥이었는데 약이 오르는 상황이 되었다.

임정이 미국을 빨면서 얻은 한 가지 성과가 있다면 미 의회에서 임정의 존재를 인정 하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에 대해서 김구는 한숨을 쉬었다. 원래 예정이라면 8월 20일에 국내 진공 작전을 시행할 예정이었는데 뜬금 없이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는 바람에 모든 게 물거품이 된 것이다. 밥 숟가락을 얹더라도 우리가 한 게 있어야 생색을 내는데 순전히 미국이나 소련 덕분에 독립하게 된 꼴이 되어버렸으니 우리가 무슨 목소릴 낼 수 있겠냐는 것이었고 이 예상은 정확했다.

광복 이후[편집]

원래 미국은 한반도를 소련과 나눠서 통치할 때 (삼남 지방만이라도 괜찮다는 심정으로) 37도선을 기준으로 나누려고 했다. 미국은 바다에서 좆본을 학살했지, 대륙에서는 한 게 거의 없어서 아시아 진출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다소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 대륙이 완전히 공산화된다면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은 엄청나게 축소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미국은 한반도를 완전히 소련에게 넘기는 상황만큼은 피하고자 했다. 조금이라도 좋다는 심정으로 37도선을 두려고 했는데 이때 미국은 김두한 스타일의 협상을 진행했다. 처음부터 38도선이라고 굉장히 세게 불렀는데 소련이 흔쾌히 이 제안을 받아들여서 38도선을 설치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38선 이북이 더 넓었기 때문에 소련 입장에서도 나쁘게 여기지는 않았던 듯. 그렇게 남북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할된다.

한반도 남부와 북부에 각각 들어선 미군정, 소련군정 모두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임정의 요인들은 개인 신분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100주년이 되는 2019년 4월 10일, 미국 의회에서는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시작이었고 이후 1948년에는 (고국에) 독립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결의안을 추진하였다.

역대 수반[편집]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반 참조.

의의[편집]

파일:관보1호.gif
요약 : 1948년 9월 1일 = 대한민국 30년 9월 1일, 3.1운동으로 대한민국 건립, 1948년 재건

헌법에서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전신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이 되는 망명 정부

단지 미군정이 인정하지 않아서 대한민국 자체가 되지 못했다 안습.

ㄴ결국 2019년 4월 10일, 미국 의회에서 임시정부가 건국의 시초라는 결의안을 내놓았다.

ㄴㄴ결의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되지는 못했음

뉴라이트들이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정하자고 하지만, 실제로 건국절이 정해지더라도 임정의 수립 날짜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ㄴ 그럼 4.11을 건국절로 하고 8.15를 공식 정부 출범일로 하면 되지 않음?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논리는 북괴, 종북들이 한국 정부도 미국의 괴뢰다! 라는 논리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 한국 헌법에서는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명시 중이다.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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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올드 랭 사인' 곡이 들어간 애국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