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아돌프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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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대독일국 초대 퓌러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
파일:히틀딱 춤추는 짤.gif
기본 정보
생년월일 1889년 4월 20일
사망일 1945년 4월 30일(1945-04-30) (56세)
국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독일국나치 독일지옥
출생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브라우나우암인
직업 독재자, 상병, 고자, 시체, 병신
경력 제1차 세계 대전 철십자 훈장 ✠
소속 나치 독일퓌러
(1934년 8월 2일 ~ 1945년 4월 30일)
독일의 3대 대통령
(1934년 8월 2일 ~ 1945년 4월 30일)
←전임 대통령후임 대통령→
독일의 24대 국무총리
(1933년 1월 30일 ~ 1945년 4월 30일)
←전임 총리후임 총리→
신기한 TV 서프라이즈
(2002년 4월 7일~현재)
정당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종교 천주교범신론
표방이념 나치즘, 범게르만주의
정치 스펙트럼 극우

한줄요약:독뽕 짝불알인 오스트리아 촌놈이 미술을 공부하여 미대입시 신청을 넣었다가 떨어진 뒤 독일뽕에 취해 1차대전에 참전하고 빨갱이,유대인팔이로 집권후 세계를 불태우다 권총자살한 병신.

대중들은 작은 거짓말보다 더 큰 거짓말에 쉽게 속는다.
국가의 권위는 절대 스스로 안 끝난다. 어떤 종류의 폭정이라도 불가침화하고 신성화한다.
만약 국가의 권력수단이 민중을 폐허로 이끈다면, 저항은 모든 개개인 시민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의무다.
 
—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우수한 독일 민족이 다 죽고 열등한 독일 민족만 남았으니 다 멸망해라
 
— 지 입으로 내린 네로 명령, 이 새끼는 지가 네로인 줄 알아
네 친구가 침공 계획이 쓰레기라고 말할 때
이거 보고 히틀러 뽑기로 했다.

나치 독일의 제 1대 총통이자, 콧수염 VS 콧수염 매치의 패자

자신의 콧수염 스타일이 유행할 것이라며 자뻑했는데 주변인들 몇몇은 그의 콧수염을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1차대전 알보병때는 스탈린과 똑같은 '카이저 수염'을 하고 다녔다.

권력 잡기나 연설, 사회력, 미적 감각은 높았지만 미술 실력은 범인보다는 조금 나은 실력에 가깝고 국정, 사상, 군사 지식 등에선 아마추어거나 도박성이 있는 등 실속이 없고 모순된 빛 좋은 개살구다. (말하자면 겉멋만 엄청 든 빈약한 포퓰리즘, 그런데 요즘은 견고한 포퓰리즘이 유행하는 듯 하다.) 히틀러의 연설력, 카리스마나 나치의 파격적인 정책과 초반 땅따먹기, 오스트리아 병합, 프랑스 점령 등 초반에는 히틀러의 도박질이 기가막히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독일 국민이 다 유혹돼 넘어갔다.

ㄴ 베르사유 조약 이후로 모순된 체제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히틀러가 아니였어도 히틀러 급으로 권력 감각을 키운 누군가가 지도자가 됐을 것. 그리고 전략은 같은 전략을 사용했을 것이다. 당시 조약 내용을 살펴보면 말도 안되는 배상을 하라 적혀있는데 이것 때문에 평화가 흔들렸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선 로또성 전략이 필요했던 것.

그냥 전형적인 상속형 귀족, 부르주아 같은 인간이다. 개인적 은혜가 있는 유대인들을 살려주거나 자신의 가문 사람들이 출세하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로스차일드 같은 인간들이 자신들은 반드시 은혜를 갚는다며 그 명성과 역사로 망해도 조금 지나면 맨날 다시 부자가 되는 것을 생각해보자. 히틀러 행동이 이해가 갈 것이다. 물론 히틀러는 결과적으로 가문을 말아먹었다.

측근들이 보았을 때 겉으로는 감성적이고 온정한 사람처럼 보였다지만 결과적으로 윤리적인 면으로나 이타적인 면으로나 무감각했다. 생명은 나약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라는등 다윈의 진화론 비슷한 논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놈은 프랑스에 굴욕을 안겨주는 순간 이후론 딱히 잘한 게 없는 것 같다.

소련을 칠때 지가 맘대로 지휘관이나 작전 같은거 안바꾸고 대비를 조금만 더 철저하게 했다면 이길수도 있었는데 이 새끼가 트롤 꼰대짓해서 졌다. 물론 침공 타이밍 자체는 소련군 지휘체계가 대숙청 때문에 지랄나서 최고였지만.

ㄴ 여담이지만 대숙청 전에도 소련 장교진은 존나 병신이였음

ㄴㄴ 미하일 투하체프스키시절에 종심작전이론이라는 소련판 블리츠크리그를 만들었지만 트로츠키파라는 이유로(트로츠키가 국방부장관 비스무리한거를 하고있었음. 적백내전때 장갑열차타고 병사들 응원하러다녔음.) 엄청난능력치의 장교단이 시베리아에서 썪어가거나 벌집핏자되서 똥별들만 남게됐음. 그래서 독소전말아먹게 생긴 스탈린이 시베리아간 애들 복직시키면서 역전의 발판마련함.

ㄴ 장교가 잘했다기엔 물량이 너무 많았다.

지가 이루어 낸 유럽정복을 지 스스로 무너트림.

ㄴ ㄹㅇ 히틀러에서 배울점은 딱 수권법 때 까지만

ㄴ 유럽 정복은 사실 프랑스와 영국이 삽질해서 자초한 면이 더 크다.

생애[편집]

아비는 알로이스 히틀러. 이 알로이스 병신새끼도 존나 골때리는게 지 누나가 낳은 딸과 성교를 했고 그래서 태어난 게 히틀러다. 그러니까 아예 근친상간으로 태어났다. 인생 시발점부터 병신이었다. 근데 사실 판사급 재산을 줄 수 있는 집안에 찐따 보지년 같았다는 찐따들 주장과 달리 씹근육남이었다. 거기에 군대에서 격투기 + 받은 놈들이 대부분 뒤졌을 정도로 넘사벽인 전공까지 얻음. 평범이 목표면 날 때부터 실패할 수 없게 태어난 인간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어리둥절.

아버지가 웃기게도 아버지 겸 작은할아버지, 어머니가 웃기게도 어머니 겸 사촌누나인 개족보로 태어난 것이다.

독일이 아닌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독일은 유학으로 가게됨. 그리고 존나 의외로 그림 그리던 예체능충이었다. <성모 마리아와 유년 시절의 예수>, <바다의 야상곡> 등 인류 최악의 학살자가 그렸다곤 믿겨지지 않는 작품들이 있다.

그냥 알아줬더라면 그래도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냥 유망한 그림이나 그리던 사람으로 남지 않았을까 싶음

길거리 그림쟁이 시절에도 종종 노숙자와 부랑자들에게 빵을 사주고 연설 놀이를 했다고 한다. 노숙자들은 일단 빵 사준 놈이라서 그런지 히틀러가 연설을 할때마다 환호를 하고 경청했고 거기서 히틀러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 그림쟁이 노릇하면서 가난하게 살았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히려 공무원이던 지 애비가 물려준 재산에 친척들 재산까지 먹었으며 덤으로 나오는 각종 연금에다가 가끔 그림 그리는 알바노릇으로 버는 부수입으로 갓수생활을 영위했다. 이때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에 감명을 받아 바그너의 오페라를 자주보러 다녔고 이 때문에 바그너는 졸지에 억울하게 부관참시를 당하고 애꿎은 바그너 음악 애호가들까지 곱지않은 시선을 받게된다.

ㄴ사실 바그너는 19세기 초중반부터 자기에게 비평을 한 유대계를 상대로 반유대주의를 펼쳤으니 딱히 부관참시라고 할 필요는 없다. 그의 저서 '음악속의 유대주의'는 그 증거이다.

대학은 가고 싶어해서 비엔나 콩쿨에 지원했으나 왜인지 광탈크리. 그래서 열이 뻗쳐 린츠직업전문학교에 들어가서 흑화된다. 사실 심사관들이 히틀러 실기그림을 보더니 잘 그리긴 했는데 그림에서 아무것도 호소하는 게 없어. 영혼이 죽은 그림이지. 그림을 이 따위로 잘그리기만 할 거면 사진을 복사기로 밀어버린 거랑 뭐가 달라? 낙방!이라고 한 것이었다. 오죽하니 히틀러 그림을 본 미술업계 종사자들은 되려 히틀러에게 화가가 아니라 건축설계사 자리를 알선할 정도였다.

ㄴ 당시 꼰대들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니냐. 중졸이던데 딱 보고 이 새끼 병신이네 했을 듯. 애초에 지원이 불가능했음 중졸이라 대신 알선해준 게 건축업자.

ㄴ 그걸 넘어서 당시 미술 사조가 이미 현실 표현이 아닌 인상적이고 추상적인걸 강조하는 시대였는데 그때까지도 구닥다리 방식의 그림을 그린 히틀러가 떨어질 것은 당연한 거였다.

비엔나 콩쿨에 탈락하자 린츠에 있는 실업학교(린츠레알슐레)에 입학해서 졸업했다. 동기생이 철학계의 이단아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다.

이리저리 이주하며 살다가 독일 뮌헨에 살게 되었는데, 오스트리아군에 징집당하자 병역기피하고 배째라를 시전했으나 1차대전이 발발하자 전쟁나면 주워먹을 게 많다고 생각한 히틀러는 뭘 주워먹든 꼭 주워먹겠다는 생각으로 독일군에 입대하여 복무하다가 히틀러가 상병때 전쟁이 끝나자 군대 제대를 했는데, 군대에 계속 붙어있고 싶다고 중대장을 조르자 중대장이 베르사유 조약 때문에 사병을 축소해야 되서 안 되니 군대 스파이 노릇을 하라고 한다.

그래서 히틀러가 어디로 가면 되냐고 했는데 그게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 당', 즉 나치였다. 이름 때문에 진짜 사회주의 정당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수구꼴통 단체들이 거꾸로 좌파 이름을 쓴 거다. 독일 내 외노자 척결을 주장하던 수구보수 단체다. 당시 전쟁이 끝난 직후라 독일이 깽판이었고 보수집단 공산집단 별 집단들이 정당을 칭하며 다 난립하던 시대라 군대 입장에서는 그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킬까 두려워 스파이 혹은 프락치 역할을 할 인간들을 그곳에 평당원처럼 보내 심어놓고 정보를 염탐하곤 했다.

ㄴ 그런데 나치당의 사상 중에는 좌익 개념도 있지않았냐?

ㄴ 히틀러가 이용해먹다가 정권 잡고 다 학살함. 참고로 히틀러는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는 물론 유대인들도 앞에서는 후빨한 적이 있다. 물론 '민주적'으로 정권 잡고나서는...

그 후 히틀러는 나치당으로 가기로 하고 별 생각없이 그곳에 갔다가 수구꼴통 아재들이 많은 걸 보고 호기심이 들었는데, 그가 철십자 훈장 수여자임을 밝히자 군대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들이 엄청나게 환영을 했고 거기다가 히틀러의 몽상적인 연설까지 나오자 더 큰 환대를 받게 되고 거기서 쾌감을 얻은 히틀러는 군대 스파이 일을 때려치우고 거기 정식 가입하여 활동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기가 1차 대전 참전용사라는 걸 아주 사골까지 우려쳐먹는다. 들어간지 한달만에 꽤 중요한 당직을 맡을 정도로 인정받는다. 그때부터 연설과 선동질을 본격적으로 실천하며 연구하기 시작한다.

ㄴ ㄹㅇ 히틀러는 연설가 + 몽상가로 타고났다. 이거 빼면 시체인 거 같다. 거기에 시대적인 버프까지.

그러다가 얼마 안가 대외협력부장 비스무레한 높은 직책을 얻게 되고 당시 사민주의 성향 바이에른 의회에 불만이 있던 다른 집단들과 연계하여 쿠데타까지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검은 셔츠 군단행진을 벌여서 정권을 잡는 걸 보고, 역시 나도 쿠데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히틀러는 뮌헨 시장까지 꼬셔 인생 첫번째 쿠데타인 뮌헨 맥주홀 폭동을 일으켰으나 원래 계획대로 진행도 하지 않고 히틀러 측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적은 수의 병력으로 덤비는 빠가짓을 하다가 좆망하게 된다. 그리고 굴러온 돌이었던 히틀러를 좆같이 보던 박힌 돌들이 배신하는 통수도 쳤다.

그러나 쿠데타로 재판을 받는 중 독일에 대한 자신의 제국주의 사상을 줄기차게 연설하며 독일 국민들의 국뽕을 제대로 울려버렸다. 하여간 망상을 존나게 잘 해서 간지나는 제국을 만들자는 그 야심이 1차 대전으로 피폐한 독일 국민들을 현혹했다. 이로 인해 당시 독일 극우 신문들이 히틀러의 똥꼬를 빨아대며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히틀러를 '애국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 영웅'으로 기사를 써대버렸다. 히틀러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사건으로 독일 극우보수 세력 내 최고 스타가 된 히틀러는 심지어 재수좋게 판사들까지 보수 성향 판사들을 만나서 쿠데타를 일으켰음에도 사형이나 종신형 같은 게 아닌 징역 5년을 선고받게 된다. 그나마도 삼분의 일도 안 살고 나옴.

독일 전역의 스타가 되어버린 히틀러는 지금 헬조선 높으신 분들이 감옥 갈때처럼 먹고 싶은거 맘대로 먹고 감옥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리우고 거의 매일 전국에서 찾아온 극우 아줌마 아저씨 팬들의 면회를 받는 등 감옥의 왕급으로 특별한 대우 속에 살며, 그 속에서 더욱더 망상에 빠져 나의 투쟁이라는 자서전을 쓰다가 (30살밖에 안된 어린 새끼가 뭔 자서전을 써) 징역 1년이 조금 넘자 가석방으로 출소한 뒤 요제프 괴벨스와 함께 혓바닥과 손가락 그리고 폭력을 통해 나치당 1인자가 되었다. 당시 나치는 히틀러와 함께 일진들이 뮌헨 맥주홀 폭동에 동원되었다가 감옥에 가고 붕괴되는 바람에 찐따들만 남아서 사실상 힘도 야심도 없던 조직이었고 쩌리들만 있었는데 강력한 전국적 지지를 받던 히틀러는 출소한 자신의 편들을 데리고 가 남아있던 찐따 잔당을 쓸어버리고 주도자가 된 것이다.

그 후 맥주홀 폭동에서 생긴 인지도를 이용하여 선동질을 계속 하였고 그렇게 인기가 올라가 국회의원에도 당선되고 중앙정치로 진출한다. 후에 괴벨스나 기타 그의 부하들도 진출한다.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은 공산당원부터 극우 왕당파까지 별의별 병신들이 대권 잡겠다고 설쳐대던 막장이었는데, 히틀러와 나치당은 적절한 줄타기와 꼬리끊기, 야합을 통해 연정을 벌여 주류 정당으로 등극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히틀러를 많은 정치인들의 말을 통해 '선동만을 이용하여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미지로만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국회의원된 이후 히틀러는 선동의 달인일 뿐만 아니라 정치공작의 실력도 매우 훌륭했고 이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고 보는게 자연스럽다. 대부분 모르는 사실인데, 히틀러는 그 선동만으로 승부했던 대통령 선거를 두번이나 떨어진 사람이다. (그가 대통령이 된건 정치공작과 친위쿠데타로 반대파의 씨를 10% 이하로 말려버린 이후의 선거다.) 당시 두 번의 대선 후보 상대가 히틀러의 이빨까기 선동으로도 넘을 수 없는 절대적 지지를 가졌던 파울 폰 힌덴부르크 장군이었고, 힌덴부르크랑 정치성향도 안 맞는 사민당이 히틀러 꼴을 보기 싫어 대선후보를 안 내고 은근히 힌덴부르크를 밀기까지 하자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던 것. (심지어 힌덴부르크는 선거유세에서 '아니 씨발 내가 애국보수 대표 장군인데 무슨 보수랑 맞지도 않는 사회민주주의자들하고 연합했다라고 그래 씨발놈들아' 하면서 사민당 연계를 부정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사민당 지지자들도 '히틀러 병신보다는 장군 할배가 낫다'며 힌덴부르크를 대통령으로 찍어댔다.)

히틀러는 여기서 포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시 대선으로 도전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힌덴부르크가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은 80대 노인임을 (당시 독일의 평균수명은 60세였다.) 이용해, 확실하게 힌덴부르크의 줄을 타서 후계자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본인을 물 먹이려는 사민당의 씨를 말려 다음 대통령 당선 확률 100%를 찍는다는 수립 계획을 세운다. 결과적으로 이는 히틀러 입장에서 완벽한 정치적 묘수가 되어버리는데, 힌덴부르크에게 총리 자리를 달라고 하면서 '각하, 제가 총리만 되면 꼴보기 싫은 공산당 좆밥새끼들도 조져드리고, 사민당 놈들은 의원 수가 많아 완전히 조지지 못하지만 깝치지는 못할 정도로 꽉꽉 눌러드리겠습니다'라고 유혹하여 성공한 것이다. 처음에 거부하던 힌덴부르크는 고민 끝에 허락하고 이때부터 히틀러 전성시대가 시작된다. 이는 힌덴부르크 본인도 대통령 처음할때는 좋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늙어서 지친 탓에 정치 활동이 귀찮아졌던 것이 컸다.

그렇게 대통령 힌덴부르크를 이용해 쳐먹어서 총리 겸 장관이 되고 자기 부하들도 장관을 시킨 뒤에는 단기간 힌덴부르크의 후계자 자리를 먹기 위해 거의 막장으로 행동하는데, 80대 노인네였던 힌덴부르크가 건강이 안 좋아져 어차피 곧 죽으면 자기가 후계자니까 일단 방해가 되는 공산당 의원들을 싸그리 감옥에 쳐넣고 몇몇 쩌리 당들과 연대를 하여 자신에게 반대하던 사민당까지 누르며 대통령 맘대로 할 수 있는 수권법을 만든다. 물론 그 중간중간에 힌덴부르크에게 왜곡된 보고를 (자기가 한 일에 반대하는 놈들은 빨갱이 말고 없다는 식) 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아버지를 구워삶았다. 당시 힌덴부르크가 치매라는 말이 있는데 일단 상태는 정상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수권법은 전통적 독일 귀족 붕괴 후 자리를 차지한 빡대가리들이 똑똑한 우리가 히틀러 정도는 좆바를 수 있겠지? 이렇게 망상하다 통과시켜준다. 그리고 명분까지 손에 넣은 히틀러가 무력 시위하면서 원래 힘으로도 할 수 있었는데 명분 얻을라고 봐줬다 ㅅㅂ들아라고 호통치자 아무것도 못하고 아닥했다.

그런 다음 나치나 나치랑 연대하던 깡패집단 돌격대의 대장 에른스트 룀(권력이 생기자 히틀러에게 조금씩 개기기 시작했음)과 그외 내부에 생긴 반대파 간부들, 그리고 히틀러가 총리 하기 이전에 총리 했던 인간 등 주요 히틀러 반대파 인물 수십명과 그 부하 수백명을 총살하는, 사실상의 친위쿠데타인 '장검의 밤'을 일으켜서 자기 권력을 만천하에 내 보인다. 근데 총으로 쐈는데 왜 장검의 밤이야?

ㄴ 대다수는 총으로 쏴 죽였지만 칼로 찔러 죽인 사람들도 있었다. 죽인게 수백명인데 어떻게 100% 총으로만 죽였겠냐? 친위대들이 찾아가서 탕탕거리다가 그 중에 총도 좀 피하고 덤비는 놈 있으면 칼로 찌르고 어떤 놈은 뭐 몽둥이 같은 걸로 두들겨 패 죽이기도 하고 그랬던 거다. 사실 기습 형태로 집에 쳐들어가서 죽인 경우가 많아서, 학살 대상자들의 집사나 하인 등 정치적으로 상관없고 진짜 무고한 사람들도 놀라서 "우리 어르신한테 뭔 짓이여?" 하고 덤비다가 죽거나 병신이 되었다.

독일 언론들도 이에 대해 찍소리도 못했다. 늙어서 판단력이 떨어진 힌덴부르크는 히틀러가 '나라를 위협하는 자들을 청산했습니다'라고 보고하자 잘했다라고 칭찬까지 한다. 이를 본 군중들은 '아 이제 히틀러가 진짜 왕이구나'라고 생각하고 히틀러에게 복종을 시작한다. 사실 이 친위 쿠데타 '장검의 밤'이야말로 히틀러가 대통령 안 될 가능성을 제로로 만들어버린 사건으로 일부 사학계는 이를 이유로 히틀러를 세계적 쿠데타 기반 집권 권력자 계열에 포함시키려 하기도 한다. 쿠데타는 꼭 정권이 없는 쪽만 해야 하는게 아니며 대통령 선거로 당선된 놈이 했다고 쿠데타가 아닌 것도 아니라는 걸 명심하자. 쿠데타는 불법적 폭력으로 국가권력의 일부 혹은 대부분을 챙기는 행위다. 권력 70% 가진 놈이 90% 되려고 폭력 쓰는 것도 쿠데타다. 20%를 폭력으로 뒤엎어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뒤 몇 달 못 가 할배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결국 노환으로 죽고 히틀러는 '가카께서 나에게 무거운 임무 (대통령)를 지워주시며 타계하셨다'라고 또 선동 연설을 하여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히틀러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된다.

그리하여 대통령 겸 총리, 즉 총통이라는 말로 불리우는 절대 권력자 아돌프 히틀러가 탄생했다. 말은 법치주의 민주주의 공화국이지만 사실 히틀러 한명이 모든 권력을 지닌 황제와 다를바 없어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제국'으로 부르기도 한다. 독일에서는 원래 그렇게 부르지만 독일의 '제국'을 의미하는 단어는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제국과 기원이 다르고 복합적 뜻이라서 오히려 독일식 직역으로 '제국이라 부르기에 제국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애매하다. 다른 국가 사학계에서도 제국이라 부르는 경우가 있다는게 중요하다.

히틀러 때문에 생긴 '총통'이라는 단어가, 이후 실제 세계 근현대사에서 다시는 총통이 (대통령 겸 총리) 나온 적이 없음에도 (물론 대통령이 있으나마나한 정치 체계하의 총리 혹은 총리가 있으나마나한 대통령 등은 많이 있었다.) 소설, 만화, 영화 등 여러 허구예술 영역에서 사용되게 된다. 그 이미지가 고대적인 일인 절대 권력이면서도 현대적인 민주주의로 선출된 지도자란 명목적인 개념은 유지하는, 정말 모호하면서도 강력한 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악명높은 수권법을 기반하여 헌법 위에 군림하는 깡패로 등극하면서 나치 독일이 성립됐다.

히틀러는 본래 지병이 있었고, 전쟁 중에는 정서 불안이 있었는데 주치의인 테어도어 모렐이 처방해 준 약을 복용하니 증상들이 싹 날아갔다. 하지만 그 약은 사실 마약이었다. 당대에는 마약이라는 개념이 미비했던것도 있지만 히틀러 본인도 지가 쳐먹는 약이 뭔지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금진흑챙을 주장하며 2차세계대전을 일으켜 한때 유럽 대부분을 정복하였으나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을 포함한 연합국들의 다굴빵에 의해 영혼까지 털린 후

지하 벙커에서 배우자 에바 브라운과 함께 007빵하다가 죽었다. 뒤지기 전에 최후의 만찬으로 빵을 처 드셨다고 한다.

그의 명령에 의해 유럽 전역에서 죄없는 유대인, 슬라브인, 장애인, 집시, 똥꼬충이나 찐따 같은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게르만인들이 인종청소를 빌미로 목숨을 잃었으며 생체실험에 희생되었다.

최후[편집]

어떻게 최후를 맞이한거야?

마지막으로 독약을 먹고 아돌프는 권총으로 히틀러라는 악마를 죽이는데 성공한다.하지만 히틀러는 아돌프이기도 하여서 결국 악마 히틀러와 함께 죽었다.. 일각에서는 자신과 키가 똑같은 26살짜리 러시아 여자의 코에 총을 갈겨 얼굴을 알 수 없게 만들어 죽이고 그 시체에 자기 옷을 입힌 뒤 버리고 측근들에게 그 시체를 자기 시체라고 떠벌리게 시킨 뒤 비행기로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까지 간 후 거기서 자기들이 탄 비행기를 고의로 폭파시킨 뒤 잠수함으로 아르헨티나의 마르델플라타로 도망쳐서 평생 거기서 살았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근데 이건 확실하게 개소리인게 그 당시 독일과 베를린은 완전히 포위된 상태였는데다 골격만봐도 꼬추인지 봊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어설픈 카게무샤 드립이다.

히틀러가 남미로 도망쳐서 천수를 누렸다는 음모론도 많다. 사실 히틀러가 평소에 빨던 약들을 한번 보면 1945년까지 살아있었다는게 정말 용한 수준인데 히틀러 탈출설들이 사실이라하더라도 히틀러는 오래 못 살고 죽었을거다.

유독 찐따들을 학살(누가 유대인인가는 우덜이 정한다라는 씹간지 명언도 남겼다.)해서인지 다른 전범들과 다르게 유일하게 반인륜적이라는 칭호를 획득했다.

열등하다고 여겨졌던 슬라브 좌빨 새끼들도 생각보다 비군사적으로는 많이 안 뒤졌는데, 유대인들만 특히 많이 뒤진 이유가 찐따처럼 좆같다 이 이유다.

ㄴ실제로 당시 유대인들은 유독 씹좌빨들이 많았다고 한다. 유대인들의 금수저에 대한 증오와 대가리 깨기 능력이 얼마나 탁월한 지 로스차일드마저 따르는 유대인들이 거의 없이 유대인 새끼들과 엮이지 않으려고 했다. 유대인 마을에 있었을 때는 튀어 보이지 않게 조심하고 타민족 귀족들 후빨하다 탈출 가능해지자마자 바로 탈출했을 정도.

성격[편집]

히틀러 집안의 주치의이었던 에드워드 블로흐에 따르면 어린 시절부터 성격은 평범했다고 한다. 1차대전 때 그와 같은 부대에서 복무했던 병사들조차 히틀러의 성격은 평범하고 조용했다고 증언한다. 동지였던 베니토 무솔리니가 개인적인 성격도 호탕하고 마초같았던 것에 비하면 대조적. 무솔리니가 체육덕후라 1934년 월드컵을 이탈리아가 개최하자 아르헨티나에서 루이스 몬티, 엔리케 과이타, 라이문도 올시 등 선수 3명을 훔치고 매 경기마다 상대 선수에게 자기 군대 총칼 구경시켜주는 방법으로 우승하고야 말았던 것에 비해 미술 덕후인 히틀러는 주구장창 얌전하게 그림만 그려댔다. 또한 화도 잘 내지 않는데다 자신의 부하들이나 여자들에게도 상냥했고, 아이와 노인들에게도 따뜻하게 대했다고 한다. 심지어 자기 주방장인 콘스탄체 만치아를리는 정황상 유대인임이 확실해 보였는데도, 히틀러는 눈감아주기까지 했다. 히틀러가 저질렀던 수많은 악행들을 보면 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 성격. 오죽하면 한 때, 히틀러를 추종했던 지지자들이나 히틀러의 가족 및 친척, 그리고 그의 친구들조차 히틀러가 홀로코스트를 명령하여 주도한 사실을 전혀 몰랐고, 명백한 증거가 나오지 전까지 그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변호할 정도였다. 그의 깡패 기질은 자신이 세운 좆도 안되는 작전을 장군들에게 강요할 때나 있었지 평상시에는 너그럽고 호방한 성격이라 사람들이 좋아했다. 근데 그럼 뭐하냐, 사람을 2천만명 넘게 죽였는데.

ㄴ원래 유대인 정하는 것도 우덜식이라 지들끼리는 걸리는 새끼 있어도 걍 넘어갔다.

평가와 능력[편집]

천조국판 디시위키이자 원조인 Encyclopedia Dramatica 에서는 서양 사회답게 동양 사회의 디시위키와는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 어느정도 유머로 소화한 것이지만.

유럽 세계에서 레전드(?)가 되신 분이시며 그들은 지금도 씹창나고 있는 유럽을 보며 그를 그리워한다. 라는 식으로 우스갯소리처럼 히틀러 재평가 라는 밈들이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지만 진지빨고 말하면 워낙에 한 사람으로 인해 괴로웠던 사람들이 많았고 2차 세계대전이 시사하는 바가 많기 때문에 재평가가 제대로 일어나는 경우가 없다. 그저 콧대높던 프랑스를 비웃거나 난민 현실, 이스라엘, 중국, 그 외에 수많은 좆간들을 깔 때나 장난식으로 등장한다. 독일 내부로 치면 일부 정당이나 네오나치, 동독 지역의 Jamel이란 마을에서나 그를 추앙할 뿐이다. 이스라엘인들의 팔레스타인 유린, 난민에 의한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 등이 일어난다 할 지라도 히틀러는 아마 뉴페이스 빌런이 나타나기 전까진 지구의 멸망까지 가장 역사적인 개새끼로 남을 것이다.

초딩 때 잘나가다가 중딩 때 부터 비뚤어진다. 주로 부자관계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학창시절 국어 (독일어)는 잘했으나 수리나 프랑스어는 꽝이었다.

일각에서는 히틀러가 비엔나 예술대학교 회화미술학과를 입학해야 하는데 거기 낙방하고 린츠직업전문학교 (현재의 폴리텍대학 린츠캠퍼스)를 진학하는 바람에 인간성이 븅신이 되었다고 한다.

ㄴ 폴리텍 대학급 아니었다. 지금 폴리텍 나온 애들 연봉이나 사회적 지위랑 히틀러 잘린 학교 나온 애들 연봉과 사회적 지위는 달랐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지금의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그 잘 나가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었다. 현 오스트리아 땅 이외의 동유럽도 오스트리아 제국 영토였고 그곳에 독일과 경쟁하는 공업회사들도 많았다. 공돌이들 일자리는 유럽에서 이미 상위권에 공돌이들 무시 안 당했으며 당시 린츠 위치가 헬조선의 폴리텍급도 아니다. 그리고 미술학교 나온 애들이 평균적으로 더 못 벌었다. 그냥 히틀러가 게으르고 무능해서 공부도 미술도 못해서 그런거지 사회환경은 상관도 없었다.

대신 아빠가 세무서장이라 돈이 꽤 있었다. 게다가 형제들이 대부분 어릴때 죽었다. 친형 친누나는 히틀러 얼굴도 못 보고 죽고, 남동생도 아기때 죽었다. 친여동생 하나 살아남았고, 이복형과 누나는 나이차가 있는데 일찍 출가해서 가족과 연을 끊었다. 그래서 히틀러는 나이 먹고도 여동생에게 집착하고 살았다.

거기다가 아빠는 나이가 많아 히틀러 중학교 들어갈 때쯤 죽었다. 그래서 유산과 공무원 연금을 독식해서 개꿀...이 문제가 아니고 아빠 죽고 엄마도 몇년 후 죽어서 20살도 되기 전에 부모를 모두 잃어 경제관념 없이 사치하며 돈을 펑펑 써댔다. 그러지 않고 평범하게 살았어도 사실 평생 놀고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경제적인 개념도 딸린다.

ㄴ 물론 20대초에 낭비하다가 한번 빚쟁이 비스무레하게 되고 돈의 중요성을 깨닫고 약간 정신차리긴 한다. 그래서 먼 훗날 히틀러가 독재할때 나중에 털리는 일 생겨도 튀어서 먹고 살려고 히틀러 개인계좌에도 부정축재를 많이 한다.

만약 유럽 내외의 국제 유대인 자본이 또 다시 민족들을 세계대전으로 몰아 넣는것에 성공한다면 그 결과는 유대인의 승리가 아니라 유럽의 유대민족의 섬멸이 될 것이다!

(wenn es dem internationalen Finanzjudentum in und außerhalb Europas gelingen sollte, die Volker noch einmal in einen Weltkrieg zu sturzen, dann wird das Ergebnis nicht der Sieg des Judentums sein, sondern die Vernichtung der judischen Rasse in Europa!)

-1939년 1월 30일 독일의회 연설

보통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가지는 희망 중 하나가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성적이 안 나온다인데 이 새끼는 본인이 정말 그럴거라고 믿었다...는 뻥이다.


걔네 아빠는 중학교 들어갈 때 죽고, 엄마는 그 때부터 건강이 안 좋아서 히틀러한테 큰 신경을 못 썼는데 히틀러 역시 이미 중학교 때 성적 엉망으로 나와서 같이 시험 망친 친구들이랑 양조장에서 맥주 쳐먹고 기숙사에서 경고를 받는 등 공부를 포기했었다. 그래서 딱히 가족들이 빠가 히틀러에게 뭘 기대한 적이 없다. 이런 소문이 난건 이미 앞에서 나온 '나의 투쟁'이라는 히틀러 자서전을 쓸때 히틀러가 자신을 미화하려고 '부모가 나에게 모범생이 되어 공무원이 되길 기대했지만 나는 나의 꿈을 위해 거부하였다'는 조작된 사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ㄴ 히틀러 아빠도 히틀러만큼 에미뒤진 인간이라 출세하려고 (나중에 세무서장이 된다) 자기보다 20살 많고 늙고 병들어 골골한 귀족 집안 여성인 첫째 부인과 결혼했다가 애도 없이 부인이 죽어 그 집의 하녀와 재혼을 했는데 (부인 죽기 전에 이미 이 하녀랑 바람을 피웠다고 한다) 하필 그 둘째부인인 하녀도 애 둘 낳고 몇 년 못 가 죽었다. 그리고 결혼한 셋째 부인이 히틀러의 엄마다. 그런데 이거 존나 잘못된 결혼이다. 왜일거 같냐? 결혼한 셋째 부인이 씨발 히틀러 아빠의 누나가 낳은 딸이었단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 개족보다. 이건 뭐 자기 친구에게 여동생 내주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과 결혼한 김유신도 아니고 왜 이 지랄이냐? 외삼촌과 조카딸이 결혼해서 그 사이에서 태어난 게 히틀러다. 이런 씨부랄. 첫째 부인이 죽고 둘째부인에게 첫 자식을 낳았는데 그때 이미 히틀러 애비 나이가 40대 중반이었고 세번째 부인에게 히틀러가 태어났을때 50살이 넘었었다. 이게 가능한건 알지? 외삼촌과 조카딸이니 만큼 나이차는 20살이 넘었고 남자는 팔순이 돼도 정자를 생산하지만 여자는 환갑이면 난자 생산이 끝난다. 히틀러가 학교 이제 다니기 시작할때 걔네 아빠는 60 노인이었다. 당시 평균 수명 생각하면 그 시점에 기대수명도 별로 없었고 원래 건강도 나빴다. 그리고 히틀러 아빠는 빽 잘써서 세무서장은 됐지만 아들인 히틀러보다 학력이 더 안 좋다. 중학교도 못 나왔다. 사실 21세기 한국이나 개나소나 대졸이라 고졸 이하가 좆밥으로 보이겠지만 이 당시에는 중학교 졸업 정도가 평균학력이고 고등학교 진학했으면 엘리트 대우받던 시대였다. 빠가 아빠가 환갑 쳐먹고 늙어 죽어가는데 빠가 아들한테 바라긴 뭘 바라냐.

어린 히틀러는 그냥 부모 잘 만나서 그림이나 그리고 쳐놀 생각 뿐이던 몸이 좀 좋은 평범한 아싸 양아치였다. 학교에서도 (무려 애비가 세무서장일만큼 집이 잘 사니까) 왕따 같은 것만 아닐뿐 친구들과 별로 대화가 없는 애였다는 증언이 남아있다. 오스트리아 군대도 집안빽으로 안 가려고 해서 정신병 면제받았다. 헬조선 학교도 보면 공부도 못하는데 친구도 별로 없고 활발하지도 않고 딱히 아무것도 잘하는거 없고 이도저도 아니고 만화나 그리고 그런 아싸 새끼들 있잖아. 그런새끼들 중에 부모가 갑부는 아니어도 중산층 이상은 되면서 좀 괜찮게 사는 집도 있고 하잖아. 그게 어린 히틀러였다. 20살 전에 부모 다 잃자 그제서야 위기감을 느끼면서 살길을 찾아 그림장사도 하면서 변하고, 그 과정에서 망상도 하고 연설질도 해보고 전쟁때 독일 군대도 가고 나치 가입도 하고 하면서 미쳐가면서 좀 야망 생기고 이렇게 변한 거다. 평범한 양아치가 미친 양아치가 된 거지 부모가 계속 살아있었거나 1차대전이 안 났다면 처음부터 미친 양아치가 될 포텐까지는 아니었다.

후세 사람들이 대충 보고 히틀러를 사이코패스라고 하는데, 싸이코나 또라이는 맞지만 반사회성 인격장애 싸이코패스는 아니다. 히틀러는 사이코패스를 정신병자로 봐서 걍 죽였다. 대단한 선의는 없었어도 혼자살때 길거리 그지나 부랑자한테 먹을 거 나눠 주는 경우도 있었고, 한창 국회의원 초년의 뉴스타 시절에 길거리 관종이나 사생팬들이 "힛쨩 사랑해요" "악수해줘요" "사인해줘요" 이러면서 귀찮게 들러붙고 옷 잡아당기고 몸 만지고 짜증나게 굴때도 인사도 악수도 다 해주고 웃음으로 응대했다. 관종짓을 부하들이 막는데 오히려 부하들을 물리고 사람들에게 다가가 "미안합니다"하고 인사하고 가서 사람들이 쫄았던 적도 있다고 한다. 그 시대에도 관종짓하는 놈들이 있었음에도 히틀러는 팬들에게 싸가지 없이 행동하지 않았던 것. 좆도 아닌 주제에 똥폼을 잡으며 히틀러한테 도움을 주겠다고 히틀러네 사무실에 찾아온 사람들이 대화를 청하거나 명함을 주고 가기도 했는데 잡상인인지 확인도 않고 쫓아내거나 하지 않고 바쁘지 않을때 대화도 했으며, 명함남긴 애한테 전화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중에 극소수는 히틀러를 정말 도와주기도 했다. 히틀러는 유권자들을 무시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면, 나름 건지는 것도 있다는 걸 이미 알았던 것. 간단히 말하면 이기적이기도 하고 자기 부하들에게는 또라이였어도, 유권자와 팬들을 대하는 태도는 항상 정중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또 이는 실제로 히틀러 자신에게 효과적이었다. 그 과정에 중간중간 고압적이거나 선민적인 태도는 섞여있었을 수 있지만, 대중을 대할때 감정 컨트롤이나 스킬을 스스로 익히고 있었다는 관점에서 반사회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공부가 안 되니 미술가의 길을 가기로 해서 중등과정이 끝나고 미술학교가 있는 빈으로 이사 가서 삼수까지 했지만 미술학교 (한국으로 치면 예고 같은 곳)에 계속 떨어지고 꼭지가 돌아 교장에게 찾아가서 따지기까지 했는데 교장이 '너는 미술적 감각이 떨어져서 안된다. 그냥 건축 전공으로 가보는 게 어떠냐'라고 해서, 건축과가 있는 빈의 실업계 학교 (중등 + 고등 과정을 같이 배우는 취업 학교라서 보면 된다. 당시 오스트리아나 독일 등 유럽은 중고등과정을 한학교에서 배우는 경우도 있고 고등학교 과정만 배우는 학교도 있었다. 대신 중등과정을 마치면 다른 고등학교로 시험봐서 전학 아닌 전학, 즉 진학을 할 수 있었다. 당시 유럽 실업계에서 기술 배우고 나우면 굶어죽지는 않음) 고등과정에 가고자 했는데 대가리도 빠가고 공부도 안 하는 히틀러가 합격하기도 힘들뿐더러, 히틀러 입장에서도 어떻게 합격해서 가봤자 적응을 할 리가 없다는 걸 알았다. 특히 그 실업계 학교는 헬조선 실업계 고등학교와 다르게 수학 성적이 매우 중시되었는데 수학 실력이 엉망인 히틀러는 유급을 맞을 수 밖에 없어서 결국 포기한 거다.

결국 학교 포기하고 병든 어머니를 꼬셔 어릴때 안 죽고 살아남은 한명의 여동생까지 프랑스로 이주했는데, 이주 직후 어머니가 죽었다. 그리고 그림엽서나 찌라시 그림 장사를 하고 살았는데 사실 그거 말고도 연금 수입과 남은 유산이 있었지만 낭비벽이 심해서 비싼 거 쳐먹고 고급 공연을 보러 다니고 하다가 연금을 많이 날려서 정부제공 독신자 숙소에 사는 등 반년 정도 잠깐 고생을 하기도 한다. 근데 집안에서 친인척들이 돈을 자꾸 주기도 해서 정말 잠깐이었다. 물론 히틀러도 자꾸 집안 돈만 받아먹는 것에 대해 약간 좀 그런 감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 뮌헨이 찌라시 그림 장사가 더 잘된다길래 또 독일로 이주해서 가고 1년만에 1차 세계대전이 났고 입대한다. 이사를 3번이나 다녔다. 10대 중반부터 20대 중반까지 10년 동안 오스트리아-프랑스-독일 이렇게 나라를 2번이나 바꿔가며 3번이나 이주를 했다. 그러나 뮌헨으로 가고 나서는 뮌헨에서 자리잡고 산다.

사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삼수하고 있을때 징집 거부로 걸려서 재판을 받았는데 뇌물을 썼는지 심신미약으로 면제판정이 나와 풀려났었다. 근데 부모도 다 잃고 남매 둘이 사는게 갈수록 엠창이라 스트레스 받은 히틀러는 극단적이고 이상한 형태의 애국보수를 꿈꿨는데, 독일에서 전쟁이 나자 원래 징병 거부하고 튀었던 것과 다르게 양아치 기질이 발동하여 나라를 위한다는 핑계로 화끈하게 싸워서 명성을 얻어 죽을 수 있을 것 같자 입대한다.

군재[편집]

[디시위키 성격상 좆도 없는 놈일 지라도 누구든 깔 수 있기때문에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하진 말기를 바람.]

독일 국방군 출신자들의 책임전가 때문에 혼자 무능한 놈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인으로는 평타는 치는 수준이었음. 진짜 군재가 병신인건 좆칠임.

긍정적 면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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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낫질작전 승인

할더새끼 계획대로 황색작전했으면 독일은 1머전식 참호전 수렁에 빠지고 그사이에 간보던 소련이 몰로토프 리벤트로프 깨고 쳐들어와서 아주 좃되는 거였는데 그나마 뚝심은 있는 이새끼가 만슈타인의 낫질 작전을 가져와서 살려냄. 이 결정은 결국 한때나마 유럽 본토 대부분을 정복하는 기반이 되었음.

2. 키예프 전투

히틀러는 장군들의 말을 무시하고 하인츠 구데리안의 기갑부대를 키예프로 남하시켰다. 구머리는 이 결정이 패전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는데 현재 와서는 부정되는 추세임. 만약 구데리안의 주장대로 했다면 구데리안의 중부 집단군은 모스크바를 공격하기는 커녕 키예프에 배치된 70만의 소련군에게 측면을 강타당했을 것임. 원래라면 남부집단군이 얘들을 상대해야 했지만 그게 되면 중부집단군의 기갑부대를 남부로 돌리지도 않았지.

3. 바르바로사 작전

소련과 양면전선 했다고 삽질이라고 평가하는 놈들도 많지만 일단은 소련의 스탈린을 방심시키는 효과를 가져옴. 결국 바르바로사 크리로 소련 주력군은 모조리 윾머인과 손잡고 지옥감. 게다가 스탈린은 독일의 침공을 대비해서 42년쯤부터 스탈린선이라는 방어선을 만들 계획이었고 영국은 일단 정복하는 게 어려워졌으니 내렸던 결정이었는데 효과는 대단했음. 그리고 굳이 나치가 선빵을 안쳤어도 스탈린이 선빵을 갈겼을 가능성이 존나 높음. 빨갱이가 반공주의자를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다.

4. 1942년 하계공세

장군들은 모스크바를 재공격하길 원했으나 히틀러는 캅카스 방면으로 진군하기를 원했다. 사실 소련군은 낙지놈들이 모스크바로 올 줄 알고 준비를 존나 해놨고, 병법에서 적의 예상대로 움직이는 거는 하책 of 하책이므로 아마 이거는 이새끼가 맞았다.

부정적 면모[편집]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정치를 존나게 못하거나 정알못입니다.
당장 정치계에서 하야해야 합니다. 잘못을 했으면 하야를 하고, 하야가 싫으면 탄핵을 당하든가!
이 문서는 똥별에 대해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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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킬을 밥 먹듯이 하는 이들에게 무타구치 장군님께서 감탄을 하십니다. 이들에게 지휘봉 대신 마우스를 쥐여주고 스타나 하라고 하십시오.
???: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니 풀을 뜯어먹으며 전진하면 된다!

한가지 염두에 둬야 하는건 이중 히틀러 독단으로 말아먹은건 별로 없다고 봐도 됨. 대부분 장성들의 여러 제안 중 하나를 골랐다가 망한거거나 다 같이 병신짓 한것들임.

1. 덩케르크 철수

덩케르크에서 다잡은 영국군 30만을 그냥 방생해줬다. 전선 지휘관인 룬트슈테드가 기갑부대의 진격이 너무 빨라 역포위를 당할 위험이 있다고 했고 실제로 직전에 연합군이 역습을 가해서 한방 먹은 상태라 이를 받아들인것.

2. 영국 본토 항공전

애초에 기체성능은 좋지만 항속거리도 짧고 공중포병 컨셉으로 키워서 랭카스터같이 폭격만 전문으로 하는 4발중폭격기가 극히 부족했으나 힛총은 이를 무시하고 영국 공습함. 그나마 처음에는 비행장 레이더 전투기공장 때리면서 이겨가나 싶었지만 런던대공습을 하면서 좆망했고 공군의 정예파일럿 상당수를 영국에 꼬라박음. 실제로는 런던 공습을 반대한게 소수였음. 런던 공습을 반대했던게 헤르만 괴링이랑 슈페를레 두명이었는데 작전이 계속 꼬이는데다가 베를린에 공습까지 받으면서 그동안 런던 공습을 막던 괴링도 결국 런던 공습을 받아들이고 공군참모총장 에쇼넥이 강력하게 지지했고 이전부터 런던 공습 하자던 케셀링은 기뻐서 날뛰었음. 결국 독일 공군 지휘부 자체의 문제.

3. 동계장비 보급안함

러시아의 겨울 앞에서 지보다 군재가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나폴레옹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를 모를 리가 없는 새끼가 소련을 단기전으로 끝내지 못한다는 게 확실한 시점에서도 의지드립 치면서 동복 배급 거부함. 실제로는 독일 국방군 장성들이 소련따위는 10주면 정복한다고 주장해서 준비를 제대로 안했던 것. 애초에 바르바로사 작전은 작전 자체가 총체적 난국이었고 소련의 상태가 개병신이 된 상태라 그정도라도 가능했던것.


4. 점령지 슬라브인 탄압+소련 포로 학살

스탈린의 대숙청과 베리야로 대표되는 NKVD의 통제와 농업 집단화 속에서 소련인들은 고통받았고 특히 발트3국,우크라이나인들은 반발심이 존나 심했으므로 이를 반영해서 사회 분위기도 좀 풀어주고 점령지 협력자를 얼굴마담으로 세우고 집단농장을 해체해서 농민에게 나눠주고 독일에 세금을 바치게 하는 식으로 했다면 후방도 안정시키고 보조인력도 모으고 후방에 투입될 비전투병력도 아끼고 겸사겸사 좋았겠지만 어림도 없지. 게다가 포로들을 잔혹하게 죽이면 소련 군인들이 '이대로 잡히면 어차피 죽을거 낙지탕탕이 하나라도 더 만들고 죽자!'를 시전하고 결사항전한다는 유대인도 알 법한 사실을 간과한 채로 슬라브인 말살빔을 때리고 결국 베를린 엔딩. 참고로 이 새끼랑 독재자 친구인 마오쩌둥국공내전 당시 정반대로 점령지 주민들을 존나 우대했고 결국 국민군을 저기 듣도 보도 못한 쬐끄만 섬으로 내몰아 버리는 데 성공했다.

5. 후퇴불허+군에 계속 간섭 군에 간섭 안하는 통수권자는 없음. 당장 처칠, 스탈린, 루스벨트 전부 작전에 간섭했었고 좆칠은 히틀러가 나폴레옹으로 보일 수준의 군재를 자랑하던 놈이었음. 후퇴불허는 대부분 포기할 수 없는 거점에 한정된 경우였고 장성들이 설득하면 받아들였음. 제일 많이 거론하는게 스탈린그라드의 6군인데 만약 거기서 6군 바로 뺐으면 더 깊숙히 들어가있던 A 집단군이 포위되서 좆되는 결말밖에 없음. 야전군 하나를 잃고 집단군 하나 살린거라 병신짓이 아님.

6. 대미 개전

콧수염새낀 WW1때 미군의 참전으로 인해 2백만이 몰려와서 백일 전투를 치른 후 카이저 좆된 걸 실시간으로 봤음에도 대미 선전포고를 함. 근데 어차피 이전부터 미국과 비공식적인 교전이 벌어지고 있어서 해군에서는 그냥 정식으로 선전포고 하자고 하고 있었음. 특히 되니츠. 그리고 다른 장성들도 대미 선전포고에 의미를 몰랐음.


7. 청색 작전

원래는 돈 강까지만 공세하려 했는데 힛총새끼가 캅카스에 눈독들이며 결국 캅카스까지 내려가야 했다. 물론 독일군의 보급능력은 절대로 바쿠까지 보급을 해줄 능력이 안 됐고 캅카스를 반도 못 밀고 천왕성크리. 애초에 캅카스로 쭉 안내려가고 그 병력으로 스탈린그라드 밀었으면 스탈린그라드 진작에 점령했고 천왕성도 안당했음. 스탈린그라드가 이름 때문에 존나 집착한 줄 아는 니가급 지능들이 있는데, 스탈린그라드는 볼가강 수운이 지나는 곳이자 철도 교차점+핵심 공업도시였다. 차라리 캅카스 가지말고 여기만 확실히 점령했어도 소련놈들 석유수급이 정체됐었을 것임.

게다가 스탈린그라드에서 북쪽으로 쭉 가면 페름(니들이 흔히 아는 페름기가 여기 이름을 따서 지었다.)이라는 비밀도시가 있는데 거긴 탱크공장이 있다. 스탈린그라드를 확실하게 점령하면 페름에서 만든 탱크를 가동하기 힘들어지고 그 때를 노려서 페름을 치면 소련군의 전차는 씨가 말라버린다. 즉, 소련 육군은 이시다 미츠나리급 무력을 보유하게 된다. 이정도의 거대한 땡을 안잡으려는 히선생은 참...


8. 당내 역학관계 조절 못함

힘러의 SS기갑사단, 괴링의 공군 야전사단처럼 육군도 아닌 새끼들이 자꾸 장비를 가져다가 사단을 만들어댔고 그중 SS기갑사단은 전투력이라도 높았지 공군야전사단은 성소수자처럼 좃도 쓸모없었다. 게다가 이런 놈들 관리를 위한 별도의 행정,보급 체계가 필요했고 이는 독일의 생산성을 수직하락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나치당 내에는 각종 부정부패가 판을 쳤는데 이걸 잡아내지 않는 바람에 독일의 생산성은 계속 바닥을 찍었다. 애초에 독일-소련 GDP는 비슷했다. 다만 소련 GDP는 군수산업에 몰빵돼 있었고 독일은 앞서 말한 문제점 땨문에 제대로 생산을 할 수 없었다.

9. 쿠르스크 전투 늦춤

이새끼가 쿠르스크를 바로 까자는 만본좌의 말도, 쿠르스크를 자르지 말고 소련군의 선공을 막아내고 이후에 다시 생각해 보자던 클루게의 말도 듣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한데 지랄맞는 라스푸티차로 인하여 공세를 펼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임. 그리고 기동방어도 소련이 똑같튼 수법에 똑같이 당해줄 것이라는 전제가 아니면 못쓸 방법이었고 쿠르스크 돌출부 제거+소련 예비대 정리는 필수적인 상황이었음. 그거 말고 이렇다 할 대안도 없었고.

ㄴ 쿠르스크 작전 늦춘 히틀러 판단이 더 맞지 만슈타인이 작전안에 개전했으면 전투는 커녕 소오련군한테 개같이 쳐맞았음 저 때 독일 기갑장비랑 공중장비 +보급도 제때 준비도 안됬고 거기다 라스푸티차 시즌이라서 공세도 안된는데 10. 신무기 도입 방해

이새끼는 신무기를 그렇게 좋아해서 존나 비효율적인 구스타프 열차포나 칼 자주박격포나 아예 만들지도 못한 마우스,라테,질버포겔 같은 건 존나 좋아했으면서 실제로 만들 수 있었던 신무기,게다가 존나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던 Me262Stg44같은 건 또 왜 도입방해하고 지랄이였을까. 그야 앞의건 제트엔진 자체가 미완성 기술이었고 뒤에놈은 탄약부터 싹 갈아야 하는데 전쟁통에 당장 전선에서 아무거나 주워써야하는 판에 탄약까지 싹 가는게 가능할 리가 없거든. 그 천조국도 가능한 기존 탄 호환되게 하려고 했었음.

12. 서부전선 삽질 사실 이쯤 오면 더이상 버틸 수도 없다는 게 맞는 말이다. 아니 애초에 영국과 소련 조기점령에 실패한 시점에서 사방에서 두들겨맞고 좆망하는 결말만 남기는 했음. 어쨌든 노르망디가 뚫렸으면 이제 후퇴하고 기갑전력이든 보병이든 아껴서 루마니아로 보내 석유 수급만큼은 지켰어야 했는데 이새끼는 또 삽질을 단행, 연합군을 모조리 바다로 처넣어버리겠답시고 기갑부대를 끌고 와 모르탱 반격이라 불리는 작전을 개시한다.

물론 결과는 연합군의 공군에게 싸그리 박살난 기갑부대와 팔레즈에서 포위당한 독일군 주력, 그리고 귄터 폰 클루게에르빈 롬멜을 잃고 만다.

13. 아르덴 공세

그러나 이새끼는 마켓가든 작전에서 씹고메리새끼가 킹갓모델장군니뮤께 참교육을 당한 모습을 보고 또 행복회로 굴려서 아르덴 삼림을 기갑부대로 돌파, 그대로 안트베르펜까지 달려서 연합군을 포위해 박살내고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망상을 돌린다.

물론 현실은 루마니아까지 잃는 바람에 기름수급이 안돼서 광복군 스파이식으로 적의 보급을 취한다는 작전을 세웠으니 당연히 좆망.

게다가 작전개시 당시에는 날씨가 흐려서 공군이 못 떴으나 날씨가 개면서 연합군 비행기들이 하늘을 장악,대규모로 CAS를 실시하는 바람에 망했다.

물론 독일군도 이것을 알고 기습공격으로 연합군 공군을 털어버린다는 보텐플라테 공세를 실시했으나 연합군이 그동안 제공권을 노무 빡시게 잡아서 독일 육군은 하늘에 뜬 비행기는 우리 비행기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대규모의 아군오사를 했고 루프트바페는 확실히 몰락한다.

14. 봄의 새싹 작전

어차피 이쯤 가면 언제 망하냐 문제긴 했지만 이새끼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않고 헝가리의 유전지대를 되찾자!는 내용으로 무려 소련군에 공세를 했고 그 결과 베를린 공방전에 투입할 수 있었던 상당수 병력들이 좆된다.

발라톤 호수 공세로 불리는 이 삽질은 결국 베를린 공방전으로 이어지며 낙지는 멸망한다.

참고로 봄의 새싹 작전때 투입되었던 전차부대는 모든 전력을 긁어모았는지 제법 정예였는데 티거1,2와 야크트판터, 판터만 무려 500대가 넘게 투입되었다. 물론 폭싹 망해버려 엄청난 손실을 입고 그나마 남아있던 정예 전차부대마저 싸그리 날려먹은데다 봄의 새싹작전때 투입되었던 이 남아있던 제대로된 정예부대들 중에는 후퇴 타이밍을 놓쳐 베를린으로 못가고 서쪽으로 패주를 거듭해서 베를린 공방전에 투입되지도 못한다. 결국 베를린 공방전 당시때 고급 전차는 거의 없었고 장갑차나 돌격포 같은거로 처량하게 싸웠다. 그나마 이 병력들을 온전히 베를린 방어전에 투입했다면 그래도 마지막까지 독일군답게 소련에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안길 수 있었을 것이다.

15.그 외 기타 등등

세계최강 좆문가 총통각하께서 사소한것 하나하나 다 지시했다.아마 그냥 연설이나 하며 짜져있었으면 낙지가 이겼을지도 모른다.히틀러가 병신이라서 독일이 졌을 확률이 높다.하일 히틀러! 라는건 독일 국방군 출신자들의 망상이고 실제로는 독일군 자체의 문제가 제일 큼.

나치 시대의 군부와 정부에는 현실적인 전략적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목적과 수단 사이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인물이 부족했다. 독일군 최고사령부에 대한 신화는 히틀러에게 전략적 통찰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지만, 그 부분에서 히틀러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전후 장성들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모든 책임을 전적으로 히틀러에게 돌리려고 했던 것은 확실한 오류를 드러낸다. 잘 봐주면 그들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냉소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제프리 메가기.히틀러 최고 사령부 中

경제 운용 능력[편집]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기획한 걸 지가 한 것 마냥 선동질해서 총리 시절에 경제가 잠깐 회복된 걸 자기 업적으로 사기치고 다녔다.

그 유명한 초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킨 것도 얄마르 샤흐트가 다 한 거지 절대 히틀러의 업적이 아니다.

남의 업적 도둑질 했으면 공부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안해서 나중에 물가 폭등하는 것도 못막고 기껏 번 돈으로 살릴 생각해야하는데 전쟁 준비한다고 완전히 망해버렸다.

실제로 2차 대전 직전 독일 경제는 군수산업으로 도로 깔고 무기 만들겠다고 사람들 고용해서 일시적으로 살린 것이었고 그것은 결국 대공황과 초인플레이션 시절에 좆된 독일 정부 재정을 바닥냄.

결국 파산을 막기위한 독일 정부의 경제정책은 약탈이었다 프랑스 북유럽 점령지 덴마크 폴란드 발칸 체코슬로바키아 등 괴뢰국 ,점령지에서 금괴및 물자를 약탈했다

즉 전쟁 안 하면 망하는게 예정되어있던 것이었다.

또, 독빠 혹은 나치 빠돌이들은 히틀러가 국민차 비틀을 생산해서 전 국민이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개소리고 히틀러 재임 기간 동안 비틀의 생산량은 630대에 불과했다. 이것도 모조리 특권층에게 돌아갔다.

대신 라디오의 경우에는 표준 모델을 개발하여 28개 전자 회사들이 대량생산하게끔 해서 보급률을 70%까지 올렸다.

좆문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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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쓴 것처럼 히틀러는 만렙 좆문가다.

학력은 중졸이고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한 주제에 나무위키 새끼들 마냥 이것저것 잡지식 쌓는걸 좋아해서 이 책 저 책을 읽었는데 그마저도 심화적으로 논문을 파고든 것이 아닌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를 읽어서 쌓은 지식이다.

게다가 그 책도 학문을 쌓기 위해서가 아닌 (애초에 히틀러는 공부랑은 거리가 멀었다) 자신의 궤변이나 사상, 논리를 뒷받침 할 근거를 찾기 위해서만 읽었다.

히틀러의 무식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 자서전 나의 투쟁은 내용도 개판이고 논리도 맞질 않고 근거도 없는데 그마저도 다른 히틀러의 측근들이 교정을 해주고 나온 것이다.

ㄴ참고로 나의 투쟁은 헨리 포드 껄 모방해서 쓴 책이다... 열화판. 그래서 히틀러는 쩌리 시절 그를 존경한다고 말하고 다니기도 했으며 헨리 포드 초상화를 걸어놓기도 했다. (성공한 후에는 지 초상화로 바꿈.)

교정해도 쓰레긴데 원본은 과연 어떨지는 상상에 맡긴다.

그는 100년도 더 시대를 앞서나간 좆문가였다...

과시욕이 강해서 자기 측근들이랑 노가리 까다가 1차 대전 이야기나 미술, 건축 이야기가 나오면 좋다고 신나게 떠들어댔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재미도 없으면서 자기만 아는 전문분야 좋다고 떠들어대는 새끼들 있지? 딱 그런 새기들 생각하면 된다.

근데 그놈이 총통이야 그래서 계속 들어줘야한다.

근데 이딴 병신이 어떻게 정권을 잡았냐고?[편집]

히틀러가 다른 분야는 몰라도 통수에서는 쓰레기닌자 좆카시를 능가하는 킹갓제너럴슈퍼맨이었다.

자신을 믿지 않고 이용하려는 자들에게조차 자비없는 통수를 먹인다.

진짜로 라이벌들이 히틀러에게 죄다 통수 맞았다 ㅋ 히틀러에게 통수를 제대로 먹인 유일한 상대는 미국을 공격한 좆본 제국뿐이다.

예를 들어, 열등하게 생각해서 박멸하려고 했던 소련과도 침략하기 전까지는 온갖 덕담이 오가며 경제협력도 크게 늘리는 등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여러가지 요인이 한낱 일베충 니트였던 히틀러를 도와준 셈이다.

일단 독일 민족주의가 뿌리에 있음.

1차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지들 힘이 딸리고 어그로를 너무 끌어서 졌다는 걸 인정 못하고 한창 정신승리 중이었고,

이걸 부채질한 게 프랑스를 필두로 한 승전국 새퀴들과 패전을 자초한 독일 똥별들이었다.

가혹한 베르사유 조약이 겹쳐진데다 (사실 가혹할 것도 없다 몇십년전 보불전쟁에서 지들이 한짓 똑같이 당한거니까. 진짜 가혹했으면 끽소리도 못하고 이행했지. 괜히 어중간하게 가혹한 듯하면서도 자비로운척을 한 베르사유 조약이기에 망한거다)

독일 똥별들이 책임 회피하려고 "이게 다 정치가 놈들, 유태인들 때문, 공산당 놈들 때문이다 빼애액"을 시전했다.

거기에다 에미뒈진 공산당 놈들도 지들도 레닌처럼 돼보겠다고 서로 총질을 하며 기록적인 인플레이션 같은 사회 문제를 덮어버리고 다녀서 결과적으로 똥별들한테 금칠해줬다.

그나마 시간 지나면서 빚도 좀 탕감되고 나아지는가 했는데 미국발 경제대공황이 터졌고, 독일은 다시 혼파망에 빠진다.

사람들의 불만과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어딘가 이걸 책임전가할 거리가 필요하던 딱 그런 시기에 히틀러가 기막힌 말빨로 사람들을 선동했는데 평온한 시기라면 그냥 중2병 취급하고 치울 말이 그 당시엔 졸라 달콤하게 들렸다.

거기에다 한편으로는 나치가 정치적으로 왕당파나 극우들, 자본가들 상대로 싸바싸바를 걸 때 얘들은 또 얘들대로 히틀러 꼬꼬마 색휘가 이끄는 나치당을 그냥 어버이연합 할배들 수준으로만 보고 이용이나 해먹자는 생각에 밀어줬다.

물론 나중에 전부 통수 쳐맞고 데꿀멍.

당시 독일 상황은 나무충들마냥 한줄요약 같은 게 불가능하던 상황이니까 쉽게 이해하려고 하면 안된다.


그래도 요약이 필요할테니 될수있는 만큼 요약한다.

종전 직후 빨갱이가 판을쳤다. 정권잡을려고 우익정당이랑 군대에게 총질하면서 쌈박질함.

그래도 중도정당연합이 이래저래 잘 해먹으면서 나라 운영하는데 대공황이 팡 터진다.

나라 개판되니까 1919년의 부들거림이 재발한다. 이때 히틀러가 부들거림을 자극시키는 동시에 그가 속한 나치당이 여러쪽 우익측과 결탁한다.

특히 군대가 이놈들을 크게 밀어줬다. 카를 되니츠의 회고록을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너무 기므로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우리 군대는 현재 우익정당의 군대다. 우리가 좌익인 빨갱이를 지지할수는 없으니 극우인 히틀러를 지지했다."라고 한다.

이래놓고 또 한다는 소리가 "아마 시기가 시기인만큼 다들 그당시에는 히틀러를 지지했을 것이다." 라고 써놨다.

와- 제독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래서 바이마르 공화국은 어따 팔아드셨는데요.

어쩃든 군대가 밀고 여러 우익측에서 미니까 히틀러가 (그당시)독일에서 갓틀러가 된다.

그리고 힌덴부르크에게서 수상 자리 쿰척하고 좆문가짓 한다.

써놓고보니 이래도 존나기네

ㄴ 그럴거면 왜 써놨냐, 하여튼 이거 쓴 놈도 요약한답시고 오히려 더 판벌여놓는 나뮈병 DNA인 듯

ㄴ 그니까, 제대로 요약하면

종전뒤에 빨갱이들 날뛰는 혼돈스럽던 독일을 중도정당연합이 살리다가 대공황 와서 개판되니까 히틀러의 나치당이 우파 군대세력과 결탁해서 수상자리 차지했다 이거아냐

ㄴ 빨갱이들만 설친 거 야냐. 당장 빨갱이들 무장봉기 진압하던 게 태극기할배들한테 총쥐어준 버전인 '자유군단'이란 단체였음. 걍 좌우가 둘 다 미쳤더랬음.

그리고 저런 시대적 상황을 이용해 뭔가를 하고 싶은데, 지가 앞장서기는 싫었던 인간들도 있다. 왜냐구? 머갈통 깨질 확률이 높았거든.

만슈타인만 해도 독일 패전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미리 대비해서 살아남았다.(진짜 이새끼 말처럼 패함) 앞장서서 선동하면 모가지 잘릴 확률이 크니 히틀러 같은 인물을 밀어준 셈.

업적 목록[편집]

캬~ 좆문가 령도자 만세~!

군사적 부분에서는 좀 유의해야하는게 국방군 장군들이 지 잘못된걸 전부 이새끼한테 떠넘겼었고 독빠들이 그걸 무작정 수용해서 딸딸이치는데 사용했는데 대부분은 독일군 지휘부 전반의 역량 문제임.

  • 히틀러 사살

마지막 순간에 지하실에서 히틀러에게 독약을 먹이고 히틀러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고 극적으로 히틀러를 사살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역시 같은 종류의 독약을 섭취한 상태였고, 히틀러의 총알을 피해갈수는 없었다.

현재 개빠들이 그렇게 빨아대고 있는 법을 이분께서 지구 역사상 최초로 만들어내셨다.

다시 말해서 동물을 (엄밀히 말하자면 )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예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정한 거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동물은 보호할 줄 몰라서 2000만명을 넘게 죽였다.

독일군은 전 윾럽에서 학살과 강간을 저질렀다. 슬라브 계열이 주류인 러시아에도 독일 혈통이 많이 퍼짐.

하지만 후에 붉은 군대가 베를린을 점령했을때의 보복으로 인해 베를린에서 태어난 아이의 1/10이 러시아 혈통이 되었다.

하여간 얘 때문에 동구권 혈통이 많이 스까졌다고 함.

애미뒤진 좆빨갱이 공산주의자들을 조지려 든 건 잘한 일이다. 문제는 히틀딱 파쑈 새끼도 참교육을 좀 받아야 될 놈이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제대로 조지지도 못해서 38선 위쪽에 북괴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씨발 제대로 하는게 뭐냐

제국주의를 단죄한 자?[편집]

이 문서는 참교육에 관련된 것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참교육의 은혜를 다룹니다.
만일 참교육을 거부할 시 성적은 개좆망행이니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헤이, 영쑤!! 돈 두 댓!"

솔까 역사적인 대학살자고 노답 인간 쓰레기지만 긍정적인걸 이룬게 있다면 애미뒤진 유럽의 제국주의를 완벽하게 끝장냈다는 것이다.

당시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인들을 쥐어짜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는데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켜 유럽을 전쟁통으로 만든 덕분에 식민제국들은 본토가 전쟁터가 되고 쑥대밭이 된 끝에 더 이상 식민지를 유지할 여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 거의 모든 식민지를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거의 다 독립시키게 된다.

그리고 식민제국들의 원죄를 그들의 국민들의 피로 갚게 해줘 식민지 똥수저들에게 후련함을 줬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돈 두댓!...은 지랄.

정작 히틀러가 원했던건 제국주의 독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니라 볼 수 있다. 아프리카 같은데선 신으로 숭배받을 듯하다.

위의 히틀러가 식민지 해방에 기여했다는 게 개지랄이라는 건 똘추 새끼가 아니면 다 알 수 있다. 히틀러가 원했던 것도 결국 식민지와 영토 확장이었고, 다른 식민지 경영 국가를 침범한 것뿐이다. 즉 제국주의 국가끼리 맞짱 뜨다가 지쳐 나가리 된 것이지 히틀딱을 뭐라도 되는 양 질소 넣어 포장하려고 하지 말자. 지나가던 개가 한쪽 남은 부라리를 탁치고 갈 수준의 개잡소리다. 일단 독일도 제국 시절에 식민지에서 학살 좀 해준 놈들이고 이 새끼 평소 언행을 보면 식민지 처먹고 더 크게 학살 벌였을 새끼임. 그리고 식민지가 있으면 태평성대라는건 틀린 말인게 식민지는 국력을 소진시키는 건데 병신같이 힘딸치려고 쳐먹었던거거든. 비스마르크가 이점을 존나 잘 파악해서 식민지 안만들려고 했던게 괜히 그런게 아님. 만들 여건도 별로 없긴 했지만 빌헬름 2세가 힘딸치려고 기어이 만든걸 보면 의지가 있었으면 얼마든지 만들었을걸.

결국 고의적 미필이고 뭐고 씨발 그냥 지네들끼리 존나 전쟁하고 자폭하고 하니깐 해방된거라 볼수 있다. 히틀러는 그저 지들끼리 지랄하던것의 일부고.

이와 비슷한 논리로는 김일성 덕분에 국토가 쑥대밭이 되어서 갑오개혁 이후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신분제가 사라졌다!가 있다.

그럼 씨발 7000만 명을 죽인 마오쩌둥 100명이 있으면 환경보호네? ㅋㅋㅋ 짱크예거 오졌노

성기능[편집]

고자라니! 이 문서는 줘도 못 먹는 고자성님들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상적인 성기능을 하지 못하는 남자들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고자가 될 수 있는 원인으로는 물리적인 파괴, 바이러스 등의 질환 등이 있습니다.
여성을 줘도 '안' 먹는 남자 내지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으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고자가 됐다, 그런 말인가? 고자라니! 아니, 내가 고자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에잇 고자라니! 내가, 내가 고자라니!!!! 내가... 아핡아핡...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놈이라 그런지 부우랄이 한쪽밖에 없다.

히틀러가 제1차세계대전에서 부상을 당해 2달간 입원했을때, 혹은 맥주홀 폭동 당시에 고환 한 쪽을 잃어 반고자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근데 알고보니 원래 선천적으로 짝불알이었다.

영국에서 부우랄이 한쪽밖에 없다고 노래 가사까지 만들어서 영국 신사들이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부우랄을 탁! 친다고 한다.

유튜브 링크 올리기 귀찮으니 듣고 싶으면 Hitler has only got one ball 이라고 처봐라.

아 그리고 역사학자들 말로는 꼬추도 좆미니하고 기형일 거라고 하더라...

ㄴ술,담배,여자에 관심 없다고 들음

ㄴ 여자에 관심없다고? 조카는 여자가 아니긴하지


아무튼 한 쪽 불알이 없다는 이게 열등감이 되어 군사적 과대망상증을 가지게 된 원인일 거란 소리가 있다.

히틀러 사후 두개골을 조사한 결과 40대 여성의 것과 비슷하고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매일 맞았으며 좁은 어깨와 크고 탐스러운 응딩이 때문에 그가 사실은 여자일수도 있다는 밑도 끝도 없는 설이 나돌고 있다.

그나마 할 줄 아는 거[편집]

그림[편집]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그림을 존나게 못 그립니다.
이들이 그린 그림에는 뒤틀린 황천포탈이 열려 있습니다.
따라하시다간 빨려들어갈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본디 미술학도여서 그림은 어느정도 그린다. 실제로도 제1차 세계대전 터지기 직전에 길거리에서 그림 그려서 팔아 먹고 살았으며 비엔나 콩쿨 미술학부에 지원했을 정도이긴 했다.

그냥 그림이나 그리지 병신새끼...

실제로 히틀딱 그림들 보면 꽤나 잘그렸다. 단지 그 시대의 그림과는 맞지 않았을 뿐.

당대 수준으로 따져보면 그냥 오늘날 길거리에서 파는 삼각지에서 찍어낸 공장식 그림이나 다름없었다. 관광지에서 이젤깔고 초상화 그려주는 레벨?

물론 측근들에게선 피카소나 샤갈급이라고 살랑살랑 아부떠는 평가였지만.

그림 그려서 팔아먹는건 오늘날 머한민국에서도 미술학부 나왔으면 개나소나 다함. 수십수백만원짜리 그림그려서 전시회에서 팔아먹느냐 길거리에서 수천원에서 만원남짓한 가격으로 팔아먹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그리고 이 인간은 자기 그림 팔아먹는걸로 그럭저럭 괜찮게 벌어먹고 살았었음. 그냥 상업적으로는 어느정도 먹히지만 예술로는 안먹힐 그림이라고 보면 되겠다.

요즘 이녀석의 그림이 고가에 팔리고 있다고 하는데 예술성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콧털놈이 그린 그림이라는 이름값 때문이다.

연설[편집]

이 문서는 사람 마음을 홀리는 요오오망한 것들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대상이 얼마나 위험한 불여시인지는 간이 뽑혀지면서 마지막 순간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당신은 여기에 단단히 홀려 고통같은 건 느끼지 않을 테니까요.
훠미 시팔 저거저거 요망한 거 보소!

뭐 미술 안목은 병신이지만 연설능력 하나는 확실하게 개쩔어줬다고 한다 그것도 조건 따져 발휘되는게 웃기지만. 그래도 측근새끼들이 이리저리 보조해줘서 조건따라 발휘되는 스킬을 패시브 수준으로 올려놨다. 연설로 수많은 독일 사람들을 세뇌시켜놨으니 웅변가 하면 잘했을듯. 웅변이나 하지 빙시새끼

히틀러의 연설실력은 참으로 요오오오망해서 사람들을 잘 홀렸고 이게 제1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독일 국민들의 심금을 제대로 울렸다. 그래서 히틀러는 보기와는 다르게 대통령 선거에 나와서 85%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이 또 드러나는데 아인슈타인은 저런 히틀러를 보고 야부리 까는 기계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히틀러를 반대했다. 그러면서 이때부터 아인슈타인은 슬슬 독일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제대로 꿰뚫었던 건 나치의 홀로코스트라든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나치 독일의 엄청난 삽질 등으로 증명되었다.

결론을 내리자면 이 무능한 병신새끼는 지가 예술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지랄이고 걍 동시대 각국의 지도자들 중 제일 예술적 소양이 떨어지는 놈이었다. 동시대의 처칠은 그림 좀 그린다고 평가받고 있고 책도 여러 권 출간하기도 했고 거기다가 문과충들의 워너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까지 하다. 강철의 대원수는 한국 급식충들이 양판소같은 쓰레기를 뽑아내던 나이때에 닉넴으로 시인으로 등단하여 그루지아 교과서에 자기 작품을 실을 정도로 문과충 소질이 상당했던 자였다. 게다가 한때 이 콧수염 병신의 워너비였던 피자가게 주인 무솔리니는 이빨까는 선동만 잘하는 히틀러와는 달리 진짜로 아가리터는 능력과 글쓰는 능력이 쩔어주는 사람이었다. 그 무솔리니도 이런 점에서 히틀러를 깠을 정도다.

그래도 지 그림 좀 그릴 줄 안다면서 설치는 네덕 병신 그림쟁이들보다는 그림을 잘 그리긴 한다. 그래봐야 좆문가보다는 약간 나은 수준일 뿐이지만.

애초에 히틀러 그림 보면 인물이 한 명도 안나오는데 그거만 봐도 그림실력 대강 나오지 않냐?

히틀러는 학살을 하기위해 정치를 한것인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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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학살은 몇가지 특이점이 있다, 사실 이건 히틀러만의 작품은 아니다. 사실상 아젠다는 비슷했는데 인종주의가 껴서 생긴 문제라고 볼수 있을 듯.

1. 제3제국의 인종정책의 의미는 사실 "땅을 점령해서 독일인에게 배분하겠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결국 "그 영토에 사는 사람들은 독일인이어야 했다"는 논리적 문제가 생기는 거다. 즉, 슬라브인이나 폴란드인들을 그땅에서 추방하거나 잡아 죽이고 그 땅을 독일인에게 준다는 개념을 생각해 낸 것이 특징아닌 특징이다.

2. 뭐 게다가 어찌보면 이 "학살의 과정"은 그냥 자기가 국민으로 삼은데는 후하고 아닌놈들에겐 더없이 가혹했을 배타주의적 상징으로 시작된 거라고 보시면 된다만, 유대인 학살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면 그 유대인들이 소유한 경제권과 상권, 자금을 독일인들에게 돌려준다는 개념으로 시작된 것으로 실제로 살던 집 빼앗아서 독일인에게 줘 버리는 등의 행동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헌데 문제가 이런 행동을 하게 되면 생기는게.. 이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날라 버리거나 재산 챙겨서 3국으로 도주하는 등의 사태가 생기면 골치아파지므로 아예 그냥 "강도질"을 해 버린 거라고 보면 된다. 그것도 스케일이 아주 크게.ㅋ

즉, 그의 문제는 "아리아계 독일인"만 국민으로 생각하고 나머지는 폐품 취급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애초에 나치당 성격상 극좌와 극우가 섞여 있어서 생긴 상승작용도 한몫한것도 있고....

또한... 히틀러 자체는 어찌 보면 "뭉뚱그린 개념"을 구상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실행자 측에서 과다 경쟁이 붙어서 "효과적인 학살방식"과 "학살정책"을 내 놓은 셈이다. 즉, 실제로 대부분의 문제는 하인리히 힘러괴벨스, 아돌프 아이히만 등의 작품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는 "총통의 망상"을 구체화 시킨 셈이 되고. 게다가 이건 전쟁에 의한 과열 양상도 한몫한다. 요인즉슨 폴란드 등을 침공한 다음에 그 국가에 살고 있는 독일계 주민을 선동해서 폴란드인들을 학대하게 하고 그로 인해서 물자징발을 통해 전쟁 수행 능력을 보충하는 식으로 조성된 일종의 "체계화된 약탈체제"를 구상한 것이기도 하다. 이 경우 이민족은 가혹하게 수탈해도 되지만 상대적으로 독일인을 삥뜯지 않아도 된다는 개념이 대두되는 셈이니.. 일단 인종주의는 "명분" 이고 그 안에서 실리를 취득하려고 한 거다. 뭐 간단히 말해 명분있는 약탈 강도 살인... 쯤 된다.

그리고 장애인, 집시, 동성애자를 학살한 부분은 대략 이런 구도다.

1. 장애인: 나치당의 경우는 과도한 복지책 등에 대해서 상당히 회의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었다. 즉 장애인들에 대한 복지 등으로 낭비되는 재원등을 고려하면 이것은 사회적 병폐와 나약함을 키운다고 생각했던 거다. 즉, 히틀러 병신새끼는 장애인을 도태하면 그네들의 공동체가 "건강" 해 진다는 병신같은 발상을 가졌던 거다.

2. 집시: 유대인과 비슷하지만, 집시에 대한 관점은 좀 더 "전통적인" 개념에서 기인한다. 즉, 유대인들의 경우는 극좌화된 성격을 가졌던 이들의 일종의 "부르주아" 계층에 대한 증오의 성격이 있었다면, 집시에 대한 개념은 거의 "극우적" 발상에서 학살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3. 동성애자: 대략적으로 "전통윤리적" 개념을 가지고 이뤄진 학살이라고 보면 된다. 사실 이건 "기독교윤리적" 개념과 상통한다. 위의 "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나치당의 개념은 "우생학적으로 우월한 아리안 인종"을 번식하는 개념으로 정리되는데, 동성애자들은 당연히도 "번식"자체의 행위를 기피하는 "부도덕" 으로 본 거다.

게다가 이 당시는 동성애를 "정서질환"으로 봤었고, 의학적 발전이 수반되지 않아서 "치료할수 없는 장애" 정도로 봤다고 볼수 있다.

즉, 사실은 유대인들에 대한 나치의 학살이 개념구분되는 이유는 "자본가"에 대한 증오를 매개로 한 반면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심각한 아이러니는 외려 나치당원이라는 사람들중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즉, 극좌적 발상으로 유대 자본가에 대한 증오를 표출하는 개념을 수반하긴 했지만, 반대로 실상을 보면 이건 부르주아 계층이 같은 부르주아 계층을 좌파 논리로 디스했던 개념과 연관성이 생긴다.

즉, 유대인과 집시/장애인/동성애자들과의 개념적인 구분은 약간 다르다.

이에 대해 라울 힐베르그의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라는 책을 증거로 "홀로코스트가 본격화 되기 이전인 30년대 말 괴벨스의 선동으로 벌어진 유대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 행위 조차도 독일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고 했으며. 즉 홀로코스트는 물론이고 그보다 훨씬 더 덜 조직적이고 심지어는 온건해 보이기까지 하는 유대인에 대한 폭력조차도 독일 경제에는 이로울 것이 전혀 없었다"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한 "토지를 차지하기 위한 학살과도 그 궤를 달리하며, 경제 활동의 기반이 되는 "토지"를 가장 적은 비용으로 차지하기 위해 그 토지의 기존 거주자들을 학살하는 것인데 이는 결국 학살이 하나의 수단임을 의미하는데, 하지만 홀로코스트는 확실히 학살 그 자체가 목적인 행위였다"고 반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해선 햇갈리지 말아야할 부분이 있다.

1. 나치의 경제계획은 국유화를 통하여 통제경제적인 방향을 조장하여 전시대비에는 어느정도 성과는 있었다고 해야겠지만, 결론적으로 실패한 경제정책인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반론하는 사람이 말하는 것은 "결과" 지만 당시 나치정권 자체는 그 "결과"에 대해서 몰랐다. 뒤집어 말하면, 과거 박정희가 군정 시절에 화폐개혁을 단행할때도 숨은 돈을 끄집어 내서 경기가 살아날줄 알알다가 진퇴양난에 빠진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시면 된다. 즉, 유대인들이 경제권을 가지고 있다 (뭐 로스차일드 같은 경우를 보면 어느정도는 맞는 소리긴 하지만)는 일종의 "환상" 때문에 그걸 다시 "독일인에게 빼앗아 주면" 된다고 생각한 문제인 거다.

2. 토지에 대한 "명분"을 가진 "인종주의"적 학살이라고 보시면 된다. 즉, 홀로코스트가 학살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고 보이는 이유는 그 수단을 종합적으로 써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뒤집어 말하면 그 안에도 "영토 획득을 하면서 벌어진 인종주의적 관점의 학살행위"와(이것이 정책적으로 벌어진 것), "인종 그 자체를 학살하던 행위" 라는 점으로 나눠 볼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겠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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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한국에 비유하자면 허경영 옆에 그를 보좌하는 측근들이 있다는 걸 보면 된다. 허경영이 히틀러만큼의 웅변 실력을 갖추지 못 해서 그런지 주변에 측근 한 사람도 없다는 게 헬조선이 인페르노, 림보가 되지 않았던 원인일지도 모른다.

영향[편집]

이 새끼 때문에 독일엔 불교도 진출 못했다. 불교에 쓰이던 만자를 하켄크로이츠로 오해하는 일도 있고 스님 머리인 스킨 헤드가 네오나치로 오해받기 때문. (결국 법륜 모양의 새로운 표식을 써서야 진입할 수 있었다.)

또 로마식 경례도 사용 빈도가 극도로 줄어들었다. 나치 새끼들이 쓰는 경례법이 로마식 경례에서 상당부분을 따왔다.

그러니 나치빠는 독뽕 씹새끼들은 웜퇘지들과 함께 부엉이바위에서 운지해서 니들이 좋아하는 히틀러 짝부랄이나 빨아주자

영화 다운폴에서 나온 장면이 패러디에 사용된다.

히틀러와 나치가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을 침공하면서 공산주의를 절멸시키려 했으나, 오히려 나치가 패배하고나서 이념적으로 공산주의를 더 활개치게 했다.

어찌됐든 나치즘하의 독일은 자본주의였고 제국주의적 국가였기때문에 공산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와 서방진영과 대립각을 세울때 바로 이 나치사례를 들며 비난했다. 소련 입장에서는 미국이나 영국이 독일보단 덜 할뿐이지 똑같은 자본주의, 제국주의로 동일선상에서 비난한다. 나치를 억지로라도 업적을 치켜세울때 반공 (이것도 말이 안되는게 공산주의보다 더 악의 이념인게 나치즘이다.)을 내세우지만 백번 양보해서 반공을 했다해도 결과적으로는 반공을 내세워 독소전을 벌인 독일 때문에 유럽 절반이 소련지배 하에 넘어가게 됐고 유럽은 반 세기 동안의 냉전덕분에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같은 국가를 제외하고는 과거 소련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하나같이 맛탱이가 가버려서 2, 3류 국가로 남게됐다.

한마디로 애완토끼 마냥 똥만 오지게 싸지르고 갔다. 토끼는 귀엽기라도 하지.

얘가 똥을 싸지른 덕분에 유럽은 오히려 쓰까인데 더 쓰까가 되고 독일은 이젠 민족드립 치기 힘들게 되었다. 애초에 1차 세계대전때 아프리카와 개슬람놈들이 사는 중동을 헬로 만들고 씹창낸 유럽은 혈통이 쓰까되는 신세를 못피했는데 이새끼가 말론 인종분리주의 외치고는 사고를 치고 똥을 싸지른 다음에 뒷처리도 안하고 자살을 하는 바람에 독일이 바로 항복한뒤부터 이젠 이게 흑역사로 남아서 독일 정치계에서 조금이라도 민족주의 외치는 순간에 나치로 오해받아 부관참시당하기 쉽게 된듯해져서 그런지 중동에서 독일로 이민 간 개슬람 놈들에게 아주 좋은 본보기 약점이 보유하게 되었다.

의외로 전 세계에다가 네오나치즘 바람을 많이 불게 해줬다.

또 이 씹새끼때문에 그가 소속된 정당인 나치당의 나치라는 발음이 독일의 욕설(비하,저속어)로 불리고 있다.

종교관[편집]

히틀러의 고향은 오스트리아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당연히 세례를 받고 어린시절에는 천주교인으로 자랐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 천주교의 미사에는 더 이상 참여하지 않고 냉담하게 된다.

물론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자신이 신에 대해서 언급하거나 존 톨랜드의 서적에서는 자신을 천주교인이라고 밝히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면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는 시기였음을 고려해야한다. 히틀러의 친구였던 무솔리니도 철저한 무신론자였지만 이탈리아의 독재자가 된 이후 형식적으로 천주교 신자 코스프레를 하였다.

히틀러는 일단 겉으로는 기독교인으로서의 발언을 많이 남겼지만, 기독교라는 종교에 여전히 불만스러운 부분이 많았는지 "긍정적 기독교"라는 나치식으로 기독교 교리를 입맛대로 뜯어고쳐 이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히틀러는 스스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발언 또한 많이 남겼다. 1941년에 중위들에게 "게르만의 정신과 기독교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히틀러의 예수에 대한 이해는 굉장히 괴상했는데, 히틀러는 예수가 유대인들과 맞서 싸운 아리아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1921년 4월 연설에서 히틀러는 예수가 금발벽안이라고 주장을 했고, 1922년 11월 인터뷰에서는 예수가 게르만인이라고 발언하였다. 히틀러의 측근 오토 바게너는 예수의 시신은 그의 추종자들이 시신이 숭배의 대상이 되는 걸 막기위해 고의적으로 숨겨졌다고 발언함으로서 기독교의 교리 중 하나인 예수의 부활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였다.

히틀러가 무신론자였다는 증언도 있다 오토 슈트라서와 히틀러의 친구 한프슈팅글은 히틀러가 무신론자였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당시 정치세계에서 무신론자임을 드러내는 건 정치적으로 큰 리스크였고, 이 둘은 히틀러와 후에 척을 진 인물들이기에 그의 이미지를 깍아먹기 위해서 과장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히틀러의 종교관을 가장 잘 함축시키는 발언은 나치 신문 편집자 한스 지글러에게 히틀러는 "당신은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비종교적이다. 나는 그것을 비기독교인이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물론 나는 우주의 전능자, 신격과 내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라고 발언 함으로써 스스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면서도 그렇다고 유물론적 무신론을 받아들이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유럽사의 전공자인 richard weikart 교수는 히틀러의 연설과 주변인들과의 대화를 토대로 오랜 연구 끝에 자신의 저서 "Hitler's Religion: The Twisted Beliefs that Drove the Third Reich"에서 히틀러가 범신론적 성향을 지녔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히틀러는 1941년 연설에서 "자연의 영원한 법칙 앞에서 인류는 무력합니다. 인류 전체의 구원은 신의 섭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인간이 그 법을 거역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라는 걸 인지하게 된다면 결코 해로운 것이 없을 것입니다."라며 그가 사회진화론적으로 이해한 약육강식의 자연의 질서를 신과 동일시 했다는 점에서 범신론자임을 드러낸다는 이야기다.

https://warfarehistorynetwork.com/hitlers-religion-was-hitler-an-atheist-christian-or-something-else/

일화[편집]

실제 주변 인물들이나 만나본 사람들에의하면 사상 최악의 독재자이자 전쟁광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여리고, 감정적이며, 주변 인물들에게 살갑게 대하는 인물이였다고 한다.

자기하고 가까운 사람하고는 막 수다떨고 산책도하고 그랬지만 자기랑 다른 분류에 사람이라면 말 없이 묵묵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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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양이는 싫어했다고 하는데 고양이는 충성심이 없지만 개는 존나 충성스럽기 때문이라나?

ㄴ맞말했네 시발 고양이는 반대로 인간이 충성하잖아

동물 보호 관련 법안을 처음 만든 것도 이 새기이다. 유럽과 세계의 적지 않은 국가들의 법률 형태는 알다시피 나폴레옹 법전을 기본틀로해서 발전했지만, 동물 보호법만큼은 나폴레옹도 상상한적 없는만큼, 전세계 모두 히틀러가 만든 틀을 그대로 가지고 거기서 발전시켜 이용하고 있다. 말하자면 인류최초의 제도적 동물보호 관념의 창시자. 어찌보면 히틀러가 진짜 인류역사에 장기간 남긴건 정치적 업적이 아니라 동물보호 개념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오지게 학살해놓고 동물은 닳도록 후장을 빨아준 것은 히틀딱 자신이 동물 금수 수준의 지능 보유자이기 때문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자신의 부하들을 꼭 본명을 사용하여 부른다고 하더라. 그럼 뭐해 수천만명을 죽인 쌍놈새끼인데

실제로 모친출타이다. 아버지 알로이스가 자기 누나의 딸을 범해서 낳은게 히틀러다. 히틀러는 개족보이다.

  • 아버지 = 작은외할아버지
  • 어머니 = 사촌누나

이런 쓰레기 족보였다.

또한 히틀러의 애비는 술주정뱅이에다 가정폭력을 일삼았고 자기 아들의 사상과 장래에 간섭했는데 이 때문에 히틀러가 어릴적부터 삐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술주정뱅이까지는 모르겠고 애비한테 맞고 살았던건 사실임. 히틀러 본인 입에서 나옴. 알베르트 슈페어의 증언이다.

인도에서는 거의 신으로 취급받는다고 한다. 당시 인도가 영국의 처칠에게 인종차별, 학살, 착취를 당했다는 걸 보면 이해가 된다. 인도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상품들에 히틀러 얼굴이 붙어있다. 심지어는 시리얼에도 붙어있다.

팔레스타인에서도 인기가 많다. 다 알겠지만 저것들은 이스라엘유대인을 존나게 혐오하는 것들이니까.

사실 히틀러가 전쟁 터뜨린게 역으로 다행일지도 모른다[편집]

뭔 병신같은 소리이냐고 할수있지만 히틀러같은 병신도 소련 반병신 직전까지 만들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소련만 안쳤어도 나치는 몇십년은 목숨 유지했었다.

좀 더 냉철하게 오스트리아까지만 딱 먹고 떨어졌어도 괴벨스 말처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남을수있었다.

ㄴ 정확히는 폴란드 분할, 독소불가침 조약, 더 나가서 프랑스 침공까지. 주제 파악을 못해 병신이 된거지.

소련을 제외한 유럽을 좆집으로 삼을 수 있었으나 쌖끈빢끈한 슬라브년들이 꼴렸는지 엉덩이 좀 주물거리려다가 하이힐로 뒤질때까지 처맞았다 ㅇㅇ 물론 히틀러 특유의 도박성이 초반에 이득을 본거지만 도박은 언젠간 손해 보는법이다.

그 당시 독일인들이 1차대전 패전후 우덜은 유대인에게 통수 당해서 전쟁 진거랑게룽ㅠㅠ 이런식으로 정신승리하고있어서 결국 전쟁은 터질운명이었다.

히틀러가 일찍 죽고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같은 냉혹한 천재가 전쟁 일으켰으면 유럽 전부를 소련하고 반띵하는 역사적 대참사가 벌어졌을것이다.

어처피 터질거 히틀러가 후반에 과하게 싸질러서 빠르게 끝난편이라고 볼수있다.

재평가[편집]

4chan유저들의 평가.

유럽 난민 사태로 유럽인들 죽고 프랑스테러, 독일여성 집단성폭행 당하자 네오나치들이 사방팔방 만들어졌다.

히틀러가 없었다면 아직도 여기는 대일본제국이다,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분리 독립이 된 이유가

일본이 미국에게 전쟁 좆털리고

항복했기 때문이지?

애초에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일본이 참전하는 일도 없었고

미국에 패전할 일도 없었다

따라서 히틀러 덕분에 현대 한국이라는 나라가 생겨난 것이다..

하일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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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오렌지 계획이 작성될 정도로 미국과 일본이 언제 한번 크게 붙으리라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하든 말든 언젠가 미국과 일본은 크게 붙었을거고 일본이 뒈졌을 것이다.

네오나치 거르고 철저한 반공주의자라는 점 하나는 높게 평가해줘야함. 심지어 반공주의자라는 좆칠놈도 소련 빨갱이들이랑 손잡은 전적이 있는데 히틀러는 빨갱이 새끼들 하나는 진짜 잘 죽였음. 솔직히 낙지가 소련 완전히 밀어서 공산주의자 몇천만명만 더 죽였어도 공산주의를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었음. 그랬다면 모택동이나 김일성도 없었을건데 안타까운건 사실임.

다만 독소전때 히틀러가 유럽의 온갖 반공우파청년들을 죄다 전쟁터로 갈아넣어서 2차세계대전 이후로 유럽 전역에 반공주의자 우파들이 씨가 말라서 유럽이 PC충들의 천국이 되는데 존나게 기여를 하기도 했다.

히틀러의 남은 추종자들[편집]

  • 네오나치
  • kkk
  • 아소 다로 - 일본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을 무너트린 히틀러의 수법을 배우자는 발언을 했다.
  • 막심 마르친케비치 - 러시아 스킨헤드의 수장이다. 히틀러의 목표대로 똥꼬충과 유색인종을 탄압하다가 철장 신세가 되었다가 결국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 마린 르펜 - 프랑스의 극우 정치인. 네오나치같은 발언한적이 있음
  • 베냐민 네타냐후 - 이스라엘에서 히틀러 옹호 발언 + 네오나치 극우 친목과 지원활동
  • 총박이
  • 무슬림
  • 키쿠치 마코토
  • 클리앙
  • 씹덕
  • 밀덕
  • 일베저장소 - 이새끼도 은근 슬쩍 나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근데 반공주의적 성향이짙기때문에 소련을쳐서 그런거같다. 인종차별이나 아우슈비츠 사례 들이대면 애써 모른척, 못본척한다. 아니 오히려 유대인들 인종청소 했다고 옹호한다.
  • 국내야구 갤러리 - 히틀러 관련 얘기 나오면 "역시 야틀러는 인정이지" 이 지랄을 한다.
  • 페미나치 - 이새끼들도 나치와 같은 우생학적 내용을 바탕으로 미개한 한남충 다 학살해야 한다 이기! 라고 꿀꿀거린다.
  • 에코나치
  • 여성시대

타 지도자들과 비교[편집]

나폴레옹과의 공통점[편집]

  • 둘다 군대를 자신의 권위를 위해서 썼다. (애초에 나폴레옹은 쿠데타로 집권하였다)
  • 둘다 제국주의 사상이 강했다.
  • 둘다 자국의 범보수 세력에게 지지를 받는다.
  • 둘다 러시아를 이기려는 야욕이 강했다.
  • 둘다 프랑스, 독일 본토 출신이 아니다.
  • 둘다 면제가 불가능한 징병제를 했다. (애초에 히틀러식 징병제는 입대 아니면 사형 둘 중 하나만 가능했다.)

그렇다고 나폴레옹이 얘랑 비빌만한 수준은 아니다. 막말로 나폴레옹이 홀로코스트를 시전했냐
ㄴ 스페인에서 스페인인 학살하고 신대륙에서 흑인 인종청소 하기는 했다. 히틀러가 나폴레옹정권의 기계적 흑인학살에서 배운거임. 이런 질문자가 나올 정도로 한국에서는 잘 안알려졌는데 서양에선 괜히 나폴레옹과 히틀러를 인터넷 밈 에서 같이 다루는게 아니다.

윈스턴 처칠과의 공통점[편집]

  • 둘다 트롤러 경력이 있다.
  • 둘다 자국의 범보수 세력에게 지지를 받는다.
  • 둘다 세계대전 당시에 최고 윗대가리였다.
  • 둘다 애비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히틀러 애비는 가정폭력 , 처칠 애비는 성병환자)

누가 영국이 전쟁에서 이겼으므로 처칠이 히틀러보다는 더 낫다는 소리를 적어놨는데 처칠의 군사통치능력은 히틀러랑 거의 동급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영국은 민주국가라서 좆칠이 트롤링을 하면 말릴 사람이 있었지만 나치는 독재국가라 히틀딱을 말려줄 놈이 없었다. 그래서 영국이 이긴거다.

마가렛 대처와의 공통점[편집]

  • 둘다 트롤러 경력이 있다.
  • 둘다 사람을 존나게 잘 홀린다.
  • 둘다 자국의 범보수 세력에게 지지를 받는다.
  • 둘다 투표에서 극단적으로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대처 92% 히틀러 85%)
  • 둘다 러시아를 이기려는 야욕이 강했다.
  • 둘다 자신이 관여한 전쟁을 이용해서 유명세를 탔다. (히틀러는 1차대전, 대처는 포클랜드 전쟁)
  • 둘다 남자 가족이 개막장이다. (히틀러 애비는 가정폭력 , 대처 아들은 무기밀매와 쿠테다 모의 등의 혐의가 있는 국제범죄자)
  • 둘다 사망하자 사람들이 크게 기뻐했다.

대처의 군사통치능력은 히틀러랑 거의 동급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영국은 칠레가 도와줘서 이겼지만 나치는 이탈리아의 트롤링과 일본이 미국을 건드리는 바람에 졌다.

노무현과 공통점[편집]

  • 대학을 못 나왔다.
  • 연설을 잘했다.
  • 자살했다.
  • 자살한 이후 생존설이 돌고있거나 돌았었다.
  • 자살한 이후 빠들에게 존나게 신성시된다.

근황[편집]

이 문단은 다음 대상의 근황을 서술합니다.
이 문단은 다음 대상의 근황을 설명합니다.
물론 그 근황은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지금 보고 있는 내용보다 더 최신의 소식을 알고 계신다면 문서에 서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디시위키가 섭종하는 바람에 이 틀은 영원히 승리 출소 짤로 고정될 예정입니다.
드립은 단-지 드립일 뿐입니다!
진실, 거짓 여부... 따지거나 선비질 좀 하지 맙시다.
드립은 어디까지나 드립일 뿐이므로 진지하게 보는 순간 지는 겁니다.

사실 부활해서 삐끼 하고 있다 카더라

그리고 몰락때문에 서양 밈에선 심영급의 위치에 올랐다.

여담[편집]

운좋은 새끼[편집]

1차세계대전 중 죽을고비를 꽤나 많이 넘겼다. 지가 사랑스럽게 돌봐주던 똥강아지 덕분에 포탄을 몇초차이로 피하기도 하고 독가스를 처 마시고도 살아남았다. 어느날은 병사였던 히틀러가 어디 다쳤는지 땅바닥에 드러누워서 죽을락 말락 하악하악♡ 이지랄 하고 있었는데 헨리 텐디라는 영국군이 히틀딱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는지 살려 보내줬다.이 영국군 할배는 2차세계대전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이 사실을 안다면 분명 뒷목 잡고 공중제비를 돌것이 분명하다.

같이 보기[편집]

둘러보기[편집]


19세기 20세기 관련 문서 21세기
20th Century / 20世紀 / 1901년~2000년
국가
사건 세계사
한국사
대표 인물 히틀러
관련 작품

틀:1930년대 틀:1940년대


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
4단원 근대 V. 제국주의와 두 차례 세계 대전 6단원
제국주의 식민지 · 민족주의 · 사회진화론 · 인종주의
대영제국 이집트 왕국(수에즈 운하) · 남아프리카 연방 · 종단 정책(파쇼다 사건) · 영국 동인도 회사 · 플라시 전투 · 영국령 버마 · 영국령 인도 제국 · 오스트레일리아 · 뉴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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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1939년: 폴란드 침공 · 영국 프랑스의 선전포고)
1940년: 노르웨이 침공 · 프랑스 침공(샤를 드 골 · 자유 프랑스 · 비시 프랑스 · 프랑스 군정청 · 레지스탕스) · 그리스 침공
1941년: 소련 침공->독소전쟁 · 진주만 공습->태평양 전쟁
1942년: 미드웨이 해전 · 스탈린그라드 전투
1943년: 카이로 회담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
1945년: 얄타 회담 · 독일 항복 · 포츠담 회담 · 일본의 무조건 항복
전후 처리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 극동국제군사재판 · 독일 분할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 유엔(대서양 헌장 · 샌프란시스코 회의 · 안전 보장 이사회 · 상임이사국 · 유엔군)

각주

  1. 참고로...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나치는 애초에 "우월한 아리아인종"의 씨를 받겠다고 일종의 짝짓기를 시켜먹은 전례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또한 프로파간다의 성격상 나치당의 정책 자체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을수도 없었을 뿐더러 당내의 좌파적 성격을 지닌 SA출신 집단 등의 계보를 생각해 보면 당연하지만 뭔가 "증오의 타겟" 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유대인이 특별했던 거다. 물론 후대의 학자들은 이에 대해서 "독일이 유대인들을 탄압한 것 자체가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므로 경제적 이유로 유대인 학살의 이유는 없었다"는 결과론적 관점을 제시할수는 있지만, 애초에 실패한 경제정책의 경우 그것이 실패할줄 알고 저지르는 예는 얼마 없다. 당장 이 나라만 봐도 5.16. 당시의 화폐개혁이라는 버젓한 예시가 있는 판이니 별로 재론의 여지는 없겠다. 또한 나치당의 "사회주의" 적인 영향에서 기인한 성격을 보면 "부유한 유대인들을 털어서 그것을 독일 노동자, 자영업자에 재분배한다"는 일종의 프로파간다가 필요했던 것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