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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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왼쪽 틀의 주인공이다.
ㄴ 바로 밑에 두 틀은 부정적인 틀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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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
Albert Einstein | |
기본 정보 | |
생년월일 | 1879년 3월 14일 |
임종일 | 1955년 4월 18일 (76세) |
출생지 | 독일 울름 |
국적 | 독일→스위스→미국 |
학력 | 취리히 연방 공머, 취리히 머학교 박사 |
경력 | 스위스 특허청 직원, 노벨 물리학상 수상 등 |
주요 이론 | 상대성 이론, 광전효과(광양자설), 브라운 운동 설명. |
개요[편집]
E = mc 2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물리학자
진정한 카사노바
실은 스위스 특허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지 혼자 생각해 낸 이론이 히트쳐서 미국으로 건너온 뒤 물리학자가 된다.
ㄴ완전 지 혼자 생각해낸거는 아닌데 로렌츠 민코프스키 힐베르트 등등
ㄴ힐베르트는 계산정도만 한거 아닌가? 난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ㄴ특수 상머성이론은 지혼자서 만든게 맞지만 일반 상머성이론은 아인슈타인 개인의 수학으로는 도저히 커버가 안되서 저명한 수학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리만기하학이 동원되기 때문
특수 상대성 이론 일반 상대성 이론을 모두 고안해 낸 말 그대로 천재이다. 그는 간접적으로 양자역학의 아버지 중 하나인데 본인은 죽을때 까지 양자역학을 사생아 취급했다.
양자역학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생각은 이 명언하나에 분명히 나타나있다.
“ |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
” |
뭔뜻인가 하면 양자역학은 확률 그러니까 관측하기 전에는 어떤 운동상태에 있었는지(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그걸 비꼰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1915년)을 발표한 다음해 6월, 시공간이 뒤틀리면서 물결과 같은 파장이 발생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것이 바로 '중력파'를 주장한 최초의 논문이고 논문 발표, 100년이 지난 2016년에야 중력파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이쯤되면 아인슈타인은 정말로 시대를 초월한 역대 최고의 천재가 맞는듯하다. 어떻게 2016년에야 실체가 확인된것을 100년전에 예측할수있단 말인가?
광기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것이다.(The definition of insanity is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but expecting different results.) 라는 말을 남겼다. 뭐 지는 아닌 줄 알고 이 소리를 했겠지만.
결정의 저온 상태에서의 열현상에 관한 이론에서도 드바이한테 쳐발렸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어긴 새끼이기도 하다. 주변에 여자가 많았거든.
“ |
불변하는 과학적 지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 |
요즘 무상급식충들의 수학 문제집 표지에 써있는 문구
존나 멋있어 보이지만 실은 지가 르메르트한테 줄기차게 주장해오던 우주 불변 이론이 허블의 관찰을 통해 깨지고나서 한 소리다.
시발 그 이론 하나 지키겠다고 우주상수 만든게 나중에 허블이 우주상수로 우주팽창을 설명하면서 써먹었다. 허블새끼 ㄹㅇ 외통수
결론적으로 말하자만 자기가 밝혀놓은거나 마찬가진데 자기가 스스로 그걸 인정을 안한게 많음.
그래서 그 공로를 보어나 슈뢰딩거가 대신 받음
이는 그가 범신론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평생 우주는 규칙적이라고 믿음. 그러다 르메르트한테 존나 깨졌지만
1921년에 노벨상을 받았지만 상머성이론이 아닌 광전효과 규명으로 받았다. 사실 상머성으로 줄만 했지만 당시에 독일에서의 반유대 정서로 인해 상머성이 좆구라라는 말이 독일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이를 의식해서 결국 광전효과로 준것
상대성 이론은 아무리 생각해도 개쩌는거같다. 중력을 어떻게 공간의 휘어짐으로 봤을까? 그리고 관측도 불가능한 빛의 속도로 어떻게 이런 이론을 생각해냈을까? 사실 사람이 아닌거 아닐까?
생애[편집]
초기생애[편집]
1879년 독일에서 유대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기회사 사장이었는데 태어날때만 보면 아인슈타인은 니미씨발 금수저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이 하락세 테크를 타면서 수저등급이 떨어지게 되고 그들 집안의 가족들은 사업적인 문제때문에 이탈리아의 어느 도시로 이사를 가게된다. 한편 아인슈타인은 홀로 남아 독일의 김나지움에 입학한다.
근데 아인슈타인은 당시 김나지움의 군대식 교육방식에 적응하지 못했고 신경쇠약에 걸릴정도로 정신적인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학교를 나갈때 니미씨발 다시는 독일로 안온다 이러고 떠난다.
김나지움 탈주 이후 독학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데 스위스의 명문대인 취리히 연방공대에 지원했으나 낙방한다. 그러나 그의 능력을 눈여겨본 대학학장이 아인슈타인을 배려해 스위스에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고등학교에서 1년간 공부할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주고 1년동안 빡공한 아인슈타인은 재수에 성공해 대학에 합격한다.
그러니까 아인슈타인이 실제로 공부로 못했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사실을 보면 그렇진 않다. 실제 점수 체계가 바뀌었다는 것을 볼때 생각보다 공부는 일반 학생의 중간보다는 조금 더 잘하는 수준으로 완수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철수저 생활[편집]
1900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당시 그가 갖고있던 시민권 문제와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로 인해 취직을 못하게 된다. 전전 긍긍하다 20살 후반 까지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하며, 부모님들의 속을 썩히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일화로 아인슈타인 아버지가 `너 어디가서 우리 가족이라고 이야기 하지 말라` 는 이야기를 아인슈타인에게 했다는 것을 볼때 생각보다 힘든 가정 생활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가정교사등의 생활을 전전하다 간신히 친구의 추천을 통해 쉽게 말해 낙하산을 통하여 1905년에 스위스 특허청에 말단의 심사관으로써 직장생활을 진행하게 됩니다.
1905년 한해동안 아인슈타인은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남는 시간동안 한 연구로 브라운 운동, 광전효과, 특수 상대성 이론 이라는 과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3개의 논문을 발표했고 191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즉 아인슈타인이 공무원이 아닌 과학자로서 지원을 받으며 많은 시간을 연구에 몰두했으면 현재 세상의 과학력은 더 앞서나갔을수도 있겠지만 당시 재직 당시 특수 상대성 이론의 실마리를 제공한 기차 시간의 동기화 특허와 관련된 특허청에서 일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아인슈타인은 없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ㄴ 세상사 새옹지마 라고 직접적으로 특허청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아인슈타인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미국 망명[편집]
미국방문중 나치 새끼들이 독일을 먹게되서 유대인에 대한 생명의 위협을 시작햇다는걸 알게 된다. 이미 아인슈타인의 재산은 나치정부에게 몰수당한 상태였으며 유럽으로 돌아가면 좆될게 뻔했기 때문에 1940년 그는 미국정부에 망명신청을 하였고 같은 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여 프린스턴 과학 연구소 < las >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맘때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핵무기를 먼저 개발해야 한다는 편지를 썻다. 실은 자기가 직접쓴것은 아니고 친구인 레오 실라르드가 이름을 빌린 것이라 한다.
후에 이 실라르드란 새끼는 아인슈타인 이름을 한번 더 빌려서 핵무기는 쓰면 안된다고 편지를 보냈지만 이미 루스벨트가 죽고 부통령 요리사님께서 부임하신지 얼마 안되서 결국 씹혔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무기의 소식을 듣고 그 살상력에 경악해서 핵무기 반대 운동을 펼쳤다고 한다.
“ |
내가 만든 상대성 이론이 이런 용도에 사용될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
” |
말년[편집]
통일장 이론 관련으로 보냈다고 한다. 이 때 당시는 전자기력과 중력만이 알려져서 이 둘을 통합한 전자기중력을 연구할려고 그런 것 같다.
이것 때문에 아인슈타인이 고립되었다.
사망[편집]
1955년 미국에서 죽었다.
아인슈타인의 공식적인 사인은 복부 대동맥류 파열로 인한 내출혈이라고 한다.
종교견해[편집]
확률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인격신, 유대교와 기독교 세계관에 나오는 야훼를 부정하였다. 자유의지의 존재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믿지 않았고, 생명체의 사고는 주로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불교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래의 종교는 우주적인 종교가 될 것이다. 그것은 인간적인 하느님을 초월하고, 교리나 신학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자연의 세계와 정신적인 세계를 모두 포함하면서, 자연과 정신 모두의 경험에서 나오는 종교적인 감각에 기초를 둔 것이어야 한다. 불교가 이런 요구를 만족시키는 대답이다. 만일 현대 과학의 요구에 부합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곧 불교가 될 것이다.
The religion of the future will be a cosmic religion. It should transcend personal God and avoid dogma and theology. Covering both the natural and the spiritual, it should be based on a religious sense arising from the experience of all things natural and spiritual as a meaningful unity. Buddhism answers this description. If there is any religion that could cope with modern scientific needs it would be Buddhism.
사생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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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이 존나게 더럽다. 원래 이새끼는 대학때 만난 밀레바 마리치라는 조강지처가 있었는데 조강지처도 존나 똑똑해서 퀴리부인급은 아니더라도 아인슈타인 업적에 큰 기여를 했다.[2]
ㄴ 사실 밀레바 마리치와 결혼하기 전에 스위스 연방공과대학에 입학하기 전 스위스에서 가르침을 받던 빈텔러 교수의 집에서 하숙하는 도중 마리 빈텔러라는 여자에게 사랑에 빠졌는데 막상 대학에 입학하자 밀레바에게 사랑에 빠져 마리에게 편지보내기를 소홀히 하다가 결국 바쁘다고 그만 만나자고한다.
근데 아인슈타인 이새끼는 밀레바 사촌인 엘자(심지어 이년은 딸도 있던 년이였다)라는 여자한테 빠져서 결국 엘자랑 동거를 하고 밀레바는 나몰라라 한다. 물론 이새끼는 엘자 이외에도 많은 여자랑 하고 다녔다. 근데 밀레바는 이혼할 수 없다고 해서 아인슈타인은 혼인을 유지하는 대신에 좆같은 조건(내 서재엔 들어오지 마라, 내가 닥치라면 닥쳐라 등)들을 달아놓는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지 와이프는 몰라도 자식새끼들은 존나 아껴서 밀레바는 좆도 신경 안쓰고 원래 집에서는 일만 하거나 지 애들만 봤다. 결국 빡친 밀레바가 스위스로 아들들을 데리고 떠나자 아인슈타인은 존나 후회를 한다.
그런데도 이새끼는 정신을 못차렸다. 그 예로 밀레바가 스위스에서 존나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새끼가 스위스로 간 이유가 내 자식새끼 돌봐줄 년이 없어서라고 했다. 그마저도 독일이 국경 봉쇄시켜서 못갔다.
후에 아인슈타인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니까 현재 동거녀인 엘자가 동거인 신분이란게 밝혀질까 두려워 결국 이혼 요구를 하고 생활비가 없어 쪼들리던 밀레바는 결국 이혼을 받아들인다.
엘자와의 생활에서 이새끼는 그래도 바람을 피고 다녔다. 그마저도 엘자 생각해서 전보다 줄였단다 ㅁㅊ
후에 엘자 뒤지고 나서는 좆을 존나게 놀리다가 러시아 스파이 잘못 만나서 원자 관련 기밀 다 흘려먹었다. 심지어 이 러시아 스파이가 CIA에서 주시중인 인물인걸 알고서도 저지랄을 했으니 후버가 얼마나 빡쳤겠냐 참고로 저 러시아 스파이도 유부녀였다.
아들들은 아인슈타인 존나게 싫어한다. 바람때문도 그렇고 예전에 어렸을때 일하는데 정신팔려서 집이랑 아들을 태울 뻔했던 것도 있어서 그렇다. 근데 그래도 두 아들들 머리는 존나게 좋아서 과학자 하고 그랬다 카더라는 죽기 전에 화해 해서 다시 좋아짐
ㄴ위 내용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Genius Another Einstein라는 제목으로 방영한 드라마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위에서 "바람때문도 그렇고 예전에 어렸을때 일하는데 정신팔려서 집이랑 아들을 태울 뻔했던 것도 있어서 그렇다." 이러는데 사실 집을 태운건 밀레바 마리치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둘째아들인 에두아르트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동안 칼 구스타프 융(심리학 3대 거장인 그 융 맞다.)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친구가 잠깐 에두아르트의 상태좀 볼겸 병원에 들렀는데 그때 에두아르트와 이야기하면서 어렸을 때의 기억을 상기시켜줬는데 아버지가 불을 붙인게 아닌걸 알게되자 밀레바를 불러 아버지를 보고싶다고 한 내용이 있다.
결국엔 일기까지 까발려졌는데 아시아 대부분 국가들을 더럽고 미개한 나라로 취급해서 이미지가 깎였다. 다만 한편으로 아시아 일부 국가들은 근대화가 잘 이루어졌고 사람들도 예의바르다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쉴드 좀 쳐주자면 당시 백인들은 거의 다 저런 생각 가지고 있었다. 청나라는 이미 망하고 새로 세워진 중국은 국력이 강력하고 시민의식도 매우 좋긴 했지만 예전 청나라 전성기 시절을 따라가지는 못했으니까. 그나마 아인슈타인은 인종주의자까지 안나간게 다행이다. ㄴ 그 논리면 독일 나치즘도 이해 해줘야한다... 아인슈타인이 코미디인건 지는 민족주의 광기에 휩쓸려서 졸라 피해봐놓고, 지새끼가 똑같은 짓을 하고 댕겼다는게 문제. 그리고 인종주의도 히틀러급으로 뇌절하지 않으면 황인, 백인, 흑인 이렇게 딱딱 나눠서 지랄하지 않는다. 당장 이 분야 뇌절 끝판왕 히틀러만 봐도, 백인 안에서도 라틴족은 유사흑인이라고 경멸했으면서 이베리아반도 라틴족은 상무정신 있다고 예외로 쳤고, 슬라브인은 뭘로 봐도 백인이지만 유사흑인으로 쳤다. 정작 어딜봐도 황인인 일본인은 명예백인-단순한 정치적 립서비스를 제외하고서도 일본인 특유의 무조건적 상명하복을 아주 좋아했다-으로 취급한 예시 등을 보면 아인슈타인이 인종주의자가 아니라고 하기도 좀 묘하다. 애초에 이게 뭔 체계적인 분류법이 있는 물건이 아니라서
진짜 인종주의자였으면 일본도 "미개한 황인들이 우리 우월한 백인님들을 따라하려고 하는 국가"라면서 무시하지 않았을까?
여자 관계가 쩔어서 한 때 마릴린 먼로와 연애하기도 했었다.
중력파[편집]
100년전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현상인 중력파를 2016년 2월 LIGO연구진이 탐지해냈다. 100년후에나 발견해내는걸 추측해냄. 정말로 미치도록 위대한 천재 물리학자다움.
통찰력[편집]
아인슈타인이 진짜 천재인 이유다.
그냥 단순히 공부하고 문제푸는 것만 잘하는 병신이 절대 아니라 두뇌 굴리는 것도 엄청났다. 판단력이 거의 신의 경지였고 그만큼 통찰력이 뛰어났다.
일찌기 아돌프 히틀러가 85%의 득표율로 당선될 당시, 그 히틀러를 반대한 15% 중의 한 명이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의 통찰력이 개쩔었던 게 히틀러의 얼굴 하나만 보고 그를 간파해 냈던 것이다. 그것도 히틀러가 한창 인기 개쩔었을 시절에.
ㄴ 대놓고 반유대주의 표명한 당인데 뭔 선구안이여.
ㄴㄴ 공부하고 문제푸는것도 세계구급으로 잘하면 통찰력은 저절로 생긴다. 이 병신은 뭐 이게 별개의 능력인거마냥 써놨냐.
ㄴ 이 병신은 송유근을 아인슈타인과 동급으로 보고 있네. 김두한은 공부를 못하는데 통찰력은 쩌는 인간! 송유근은 문제만 잘풀고 다른 걸 못하는 인간! 별개의 능력 맞아. 이게 동일한 능력이면 김두한의 두뇌가 설명이 안 되는데?
과학 외에서의 업적[편집]
- 후버가 국적 발급 조건으로 아인슈타인에게 '본인은 공산당원이 아니다'라고 하는 문서에 사인을 하도록 강요를 하자, 아인슈타인은 미국 국적을 포기하려 한다. 그러나 당시 주독 미대사가 파면을 각오하고 아인슈타인에게 국적을 발급하자 아인슈타인은 그 대사를 생각해서 사인을 하고 대신 다른 유대인들에게 미국 국적 발급을 쉽게 해주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이 미국 대사는 약 5만명의 유대인들을 이 방식으로 구한다.
- 미국에서 당시 좋은 시선을 못 받던 흑인 대학에 방문하고 강연하였다. 참고로 이때 하버드나 시카고 대학등 여러 대학 오퍼 좆까라 하고 흑인대학만 고집했다 한다.
- 프리츠 하버가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자 아인슈타인은 그에게 생화학 무기의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 FBI에게 빨갱이로 찍힌 자신의 동료 데이비드 봄의 사면을 위해 오펜하이머와 함께 FBI의 행동에 대해 부당함을 토로했다. 또, 데이비드 봄이 미국에서의 밥줄이 다 끊기자 브라질에서 교수를 할 수 있도록 아인슈타인이 도왔다.
- 누구나 보면 감탄할 수 밖에 없는 명언을 수도 없이 제조했다고 알려져 있다. 구글에 아인슈타인 명언, einstein quotes 검색해보자
- 사회주의자다. ‘먼슬리 리뷰’ 창간호(1949년 5월) '왜 사회주의인가?' 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쓴 적이 있다.
궁금하면 찾아보자. 참고로 이 당시엔 미국의 매카시즘의 광풍으로 '사회주의자' 라고 찍히면 매장당하던 시절이다. 아마 공산당원이 아니라고 종용하는 문서를 강요한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입각했을 것.
같이보기[편집]
- 스티븐 호킹 - 아인슈타인 생일날에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