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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암살 미수사건(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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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1944년 7월 20일에 일어난, 가장 유명한 아돌프 히틀러 제3제국 총통 암살 미수사건으로, 히틀러 암살 계획은 이외에도 여러 건 더 있었다.

검은 오케스트라[편집]

검은 오케스트라는 1930년대부터 반히틀러 성향의 우파들이 모여서 조직한 단체이다. 히틀러가 집권 당시 국방군을 장악하기 위해 많은 노장들을 죽이거나 쫒아내자, 이에 분노한 국방군, 특히 육군 내 장교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들은 히틀러의 과격한 막가파식 외교가 독일을 파멸로 이끌 거라고 생각했으며,멤버였던 프란츠 할더 육군참모총장은 히틀러를 권총으로 쏴 죽이려고 했다고 한다.

멤버[편집]

  • 루트비히 베크
  • 에르빈 폰 비츨레벤
  •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 헤닝 폰 트레슈코프
  • 한스 오스터
  • 칼 프리드리히 괴르델러
  • 한스 슈파이델
  • 빌헬름 카나리스
  • 에리히 펠기벨

가담했었거나 가담이 유력시되는 이들[편집]

  • 에르빈 롬멜
  • 귄터 폰 클루게
  • 프란츠 할더
  • 발터 폰 브라우히치

계획[편집]

히틀러는 동프로이센에 위치한 늑대굴이라는 곳에서 작전회의와 같은 일을 처리했으므로 슈타우펜베르크가 가서 총통을 폭사시키면, 에리히 펠기벨이 통신을 차단하고 베를린에서 보충군과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을 소집하여 괴벨스,힘러,괴링과 같은 이들을 싹 체포해서 제거하고 신정부를 세워 연합국과 강화협상을 하고 소련과는 계속 싸운다는 계획이었다.

발퀴레 작전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으나 발퀴레 작전은 사실 베를린에 있는 외국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과 같은 정예부대들과 예비군을 동원하여 진압한다는 계획이었다.

슈타우펜베르크 일당은 히틀러를 죽이고 이게 SS가 한 짓이라고 선언하여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과 보충군으로 SS를 제압하고 신정부를 세우려 했다.

실행[편집]

실패[편집]

어쨌든 폭탄은 터졌으나 슈타우펜베르크는 알 카에다처럼 자폭을 하는 대신 자기는 폭탄만 설치해 놓고 빠져나가서 가족을 돌보고 싶어했다.

근데 슈타우펜베르크가 빤스런한 사이 어떤 장교가 사람들 지나다니는 데 방해된다고 가방을 테이블 다리 건너로 치웠고 그바람에 히틀러는 찰과상만 입고 살아남는다.

사실 날씨덥다고 회의장이 벙커에서 지상건물로 바뀌는 바람에 폭압이 밖으로 빠져나가서 그리 됐다는 소리도 있다.

이와중에 히틀러를 구한 건 낙지의 똥별 빌헬름 카이텔이었다.

결말[편집]

검은 오케스트라 멤버들 대부분이 롤란트 프라이슬러에 의해 처형당하고 연좌제를 적용받는다.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히틀러가 군부를 확실히 틀어잡았고 벌지 전투를 개시했다. 결국 벙커엔딩.

이와중에 머리 존나좋은 천재 경제인 얄마르 샤흐트는 롤란트 프라이슬러 새끼를 아닥하게 만들 정도의 뛰어난 언변으로 자기변호를 했고 결국 살아남는다.

평가[편집]

독일 연방군이 옛날에 슈타우펜베르크와 슈바르체 카펠레 정신을 계승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이때는 안네 프랑크가 살아 있었는데 안네는 독일의 융커출신 장교가 나섰다는 점에 놀라워했으면서도 독일이 강화를 한 후 힘을 비축했다가 다시 전쟁에 나서려는 게 아니냐는 부정적인 평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