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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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重陽 1872.05.03. - 1959.04.23.
소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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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완용은 시대가 낳은 피해자요 희생자였다. | ” |
조선 말의 관료이자 사상가. 친일파이다. 아호는 해악(海惡), 일소(一笑).
조선에서 살았지만 조선사회의 가치관을 모조리 쌩까고 잘먹고 잘살다 죽었다. 이완용이나 박제순 같이 돈에 나라를 팔아먹었거나, 최남선, 이광수처럼 일본 패망 후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한 부류와는 달리 소신에 찬 신념형 친일파.
윤치호, 서재필, 유길준은 조선을 까면서도 조선인에 대한 애정을 못버렸지만 그는 철저하게 조선인에 대한 애정과 미련을 버렸다. 갑신정변 이후 죄 없는 가족들까지 연좌하여 처벌하는 것을 목격한 것이 그 계기였다.(이전 문서에 얘 가족들이 갑신정변 때 죽었다고 서술되어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다. 남의 집 사정을 보고 분노했던 거임)
한마디로 요약해서 헬조센의 현실을 일찍이 깨달은 선각자라고 하겠다.
그렇다고 이 분이 성인이나. 그건 또 아니다. 왜냐하면, 과거 여승이랑 좋은거 잉야잉야하다가 여승이 자살한 막장스러운 일도 벌였고 헬조센이라 평하면서 선택했던 게 헬본이었으니. 그 당시 헬본은 인권무시하는 준전체주의 국가였다. 그리고, 일본에 완전히 동화되어야 했다고 주장하는데, 만일 그의 주장대로 됐다면, 지금쯤 이보다 훨씬 더한 상황이 예기되었을 듯. 그 당시 헬본에 의해 열화된 게 지금 머한민국이니.
근데 이는 당시 시대 상황을 모르고 한 소리다. 지금이야 헬본의 미개한 짓을 보면서 저렇게 되선 안되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박중양 입장에서는 전근대적이고 연좌제같은 미개한 걸 남발하는 헬조선보다 헬본이 더 정상적인 국가로 보였을것이다. 그리고 한창 박중양이 일본을 보며 환상을 품던 시기는 군국주의에 미처돌아가는 시기가 아닌 나름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어보이는 듯한 시기였으니 말이다.
아 물론 여승 죽게 만든건 빼도박도 못하게 실드 못친다 ㄳ
1900년대 초 일본에 처음 유학갈 때부터 1949년 반민특위에 검거될 때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다.[1]
생애[편집]
민족주의자 입장에서 본 박중양[편집]
국뽕 가득 들이킨 민족주의자 입장에서 박중양은 상당히 껄끄러운 인물인데. 이 사람은 이완용, 박제순처럼 자기영달을 위해서 친일을 한게 아닌 나름대로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친일을 한 신념형 친일파였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서 친일파란 자기 영달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인데 이 사람한테는 그런 프레임을 씌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민특위에 끌려갔을때도 양망문이나 쓰며 살 궁리를 하거나 변명하기 급급했던 다른 친일파완 다르게 당당한 태도로 일관해서 당시 머한민국민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별명[편집]
별명은 박작대기 또는 박짝대기. 30대 후반일 때부터 지팡이를 짚고 다녔지만 팔다리는 멀쩡했다.
저서[편집]
- 술회. 박중양 자서전
- 박중양 일기. 1896년 일본 유학때부터 1949년 반민특위에 끌려가기 전날까지 쓴 일기.
어록[편집]
- 국가가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국가에는 충성할 이유가 없다.
- 좁은 조선이 남북으로 갈려 있고 특히 이런 과도기에, 숨은 인재를 찾기도 어려운데, 왜 있는 인재를 없애려 하느냐? 그러니 친일파를 처단한다고 떠들기보다 그 사람들을 잘 이용해 주시오. 그 사람들을 두고 누구를 데리고 일을 하겠소. ... 나같은 것은 친일파의 대표자이니 연령으로 봐도 그렇고 행적으로 봐도 그러니 어떠한 처단을 당하더라도 나는 달게 감수하겠다
- 독립운동가들이 잘나서 독립이 된것이 아니라 미군이 일본을 쳐서 우연히 독립된 것이며, 미국과 일본이 전쟁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독립 할 수 없었을 것.
- 표리부동한 위선자들이 우글거리는 이런 세상에서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러니 시원하게 죽여라.
그밖에[편집]
엄청난 술고래였다. 맥주를 60병 정도 마시고도 취하지 않았다고
그의 조카의 본명은 박정웅인데 이름이 꼭 박정희의 창씨개명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