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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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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자식이름을 전부 새 이름에서 따왔다. 여연구(제비), 여봉구(봉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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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마누라 말고 여대생과 잉야잉야하다가 애 만들었던 적이 있다.

여운형
呂運亨
생년월일 1886년 5월 25일
사망일 1947년 7월 19일 (61세)
국적 조선일본 제국중화민국
미군정 조선
출생지 조선 경기도 양근군
직업 언론인, 정치인
종교 개신교
소속 조선인민공화국 국가부주석, 좌우합작위원회 대표
정당 근로인민당
표방이념 중도주의 ~ 중도좌파
사회민주주의, 민족통일주의

개요[편집]

광복 이후 친소좌빨과 친미수꼴들의 싸움을 어떻게든 말려서 한반도를 통일 중립국으로 만드려고 했던 사람.

독립운동에서 엄청난 수완을 발휘했다.

정치적 성향은 무당파적이지만, 굳이 따진다면 중도 좌파라고 할 수 있고 영어, 일본어 등 3개 국어를 자유롭게 썼으며 유머 감각, 패션 센스, 정치적 수완, 거기에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해방 후 수많은 단체들의 테러에도 그를 지탱해주었다.

상세[편집]

한반도에 남북을 아우르는 통일공화국을 수립하려 했지만 김구와 저승만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우익계 정적들에게 다굴 당한다.

근육 방탄으로도 총알은 못 막아서 결국 목숨을 잃는다. 한지근이라는 새끼가 살해했다. 배후에 김구가 있다는 설이 있는데 당시 미군정 측에선 박헌영 계열의 극좌 공산주의 세력의 암살 가능성을 높게 쳤다고 한다. 애초에 건준위가 분열된 것도 박헌영과 같은 급진 좌파 세력 때문이었고, 여운형이 이에 불만을 표했으니 말이다.

남한의 미군정 병신대가리 존 하지는 많은 한반도 지도자들을 만나 보고선 '살아 숨쉬는 한국인 중에서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인간'이라고 그를 평한 적이 있다.

ㄴ 참고로 하지 이 새끼는 "주일미군이 두려워 하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설사, 하나는 임질, 그리고 하나는 한국이다." 한국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위험이 높으니 조선총독부를 그대로 둬야 된다고 주장했다.

총독부를 그대로 흡수한 여운형과 한국이 싫었던 좆지 그들이 서로 통했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2008년에 건국훈장이 수여되었다.

다 집어치우고 제대로 활동할 기반과 시간만 주어졌다면 통일 한국의 기반을 닦으며 명실상부한 국부가 될 수도 있었던 인물이다.

여운형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였고 중도도 아니었다. 단지 융화주의자였을 뿐이다.

실제로 좌우합작위원회를 만들어 친소-좌파와 친미-우파들의 의견을 조정하여 미소에 따까리 노릇하지 않는 명실상부한 독립 국가를 만들려고 했지만...

애초에 양키 새끼들아나, 소련 빨갱이들이나 한반도를 나눠 먹거나 중립화하거나 둘 중 하나 하려고 했다.

프레지던트 리, 일성이돼지, 빨갱이 박헌영 이런 개씹새끼들이 미국 소련 따까리 노릇이나 해대면 극우 극좌 개지랄 안 떨고 여운형 슨상님에게 고분고분 기었어야 했다.

ㄴ 애초에 그 두 새끼는 자기랑 엮이는 조직이면 그 조직은 어떤 꼴이 되든지 말든지 지 발밑에 둬야 속이 풀리는 새끼들이다. 가만히 있을 리가 없음

근데 남쪽에 개승만과 윗쪽에 돼지 새끼 한 마리가 뜨-억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여운형을 비롯한 중도파들을 조지기 시작하니 시작부터 헬조선이었다.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었지만 박헌영과 그 빨갱이 패거리들이 이 건준위를 빨갛게 물들인 이래로 오지게 이용 당하면서 이미지도 안 좋아져버리고 결국 극우 한지근에게 총 맞고 사망한다. 박헌영 개새끼! 한지근 개새끼!

광복 전후 권력을 잡기 위해 일제 인물들을 모두 무사히 일본에 보내드렸다는 말이 있지만 엄연히 협상해서 진행한 건데, 만약 협상 안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군이 한반도에서 난징 대학살 일으키게 내버려둘까?

ㄴ 1945년 일본이 무슨 힘이 있어서 난징대학살 수준의 학살을 일으킴? 항복 언제 할지 고민 중이던 나라가 식민지를 학살한다? 이후 국제사회의 비판은 어찌 감수하려고

ㄴ 그때 헬본이 국제 사회를 신경 썼겠냐? 난징대학살은 오바지만 확실히 발악했을 가능성은 있다. 좆본이 해방 직전에 가짜 돈 뭉탱이로 풀어서 헬조선 경제 개작살 내놓고 토낀 것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지들 생각만 머가리에 가득한 씹새들이기 때문에.

암살의 배후는 확실치 않지만 한지근이 김구의 테러 조직인 백의사의 단원이었기에 김구가 배후에 있었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당시 미군정 측에선 박헌영 계열의 공산주의 계열이 암살을 사주했을 가능성을 높게 봤다고 한다. 애초에 설령 우익 계열의 사주로 암살 당했다고 해도 백의사는 김구보다는 신익희와 더 가까웠다. 1947년이면 김구랑 신익희가 사실상 결별했을 시점이니 우익 계열에서 암살 사주를 했다면 임정 시절부터 정치 공작대를 만들어 좌익에 대한 백색테러를 이끈 신익희가 주도했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여전히 그 배후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장미가 한반도에서 지고 다시는 이 땅에 장미가 피는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다.

협상왕[편집]

참고로 여운형이라고 말하면 좌우 합작 운동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사람이 진짜 쩌는 게 뭐냐면 일왕 히로히토가 항복 선언하기 반나절 전에 좆본 망하는 거 빼박이라고 감 잡고 직접 총독부로 찾아가서(참고로 독립운동가라고 전부 수배 대상은 아니었다. 신간회 같은 경우에는 일본도 함부로 할 수 없었고 이 사람도 엄연히 공인이었다.) 교섭을 벌이고, '니네 좆본 망하면 쪽바리들 조선에서 어케 뒤질 지 모르니까 니네 쪽바리들 살려주는 대신 정치범 석방하고 정치 간섭 ㄴㄴ해. 아니 걍 다 손 떼 병신들아.' 이런 조건으로 협상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니까 좆본이 직접 망하기도 전에 총독부 머가리를 한대 후려치고 대놓고 한국 건국하겠다고 약속을 받아낸 셈이다. 그리고 1900년대에 일본이 대한제국을 무너뜨렸을 때 썼던 권리 갉아먹기 수법을 똑같이, 빠르게 따라해 총독부 힘을 완전히 뺐다. 이 사람 아니었으면 미군이 들어오고 몇 달 후에도 독일의 플렌스부르크 정부처럼 미군과 일본군이 같이 활보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무리 패망 직전이었다지만 일본 입장에서 독립운동가는 맘에 안 들면 언제든지 잡아들일 수 있었고 특히 저런 조건을 내세우면 노발대발하다 못해서 즉시 감빵행 시킬 수 있었음에도 고분고분 말을 들은 이유가 무엇일까? 간단하다. 조선 안에 있는 일본인들 때문이다. 얼마 안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조선을 35년이나 지배하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본토의 일자리가 없어 조선으로 넘어오고 거기서 쎆쓰해서 애 낳고 하다 보니 일본인 비율도 꽤 높았다. 그런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일본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란 걸 조선 내 최고 기관인 총독부가 모를 리가 없었고 일본이 망하면 한반도에서 살고 있던 일본인들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얻어맞아 죽으면 총독부 인사들도 본토로 불려가서 여생을 불명예스럽게 살고 욕이나 처먹을 운명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운형의 5개조 조건(경제/정치범 석방, 서울 3개월분 식량 확보, 건국 운동 방해 금지, 청년조직 방해 금지, 건국 사업 인력 동원 방해 금지→대신 일본인 무사 귀국 지원)을 보고도 대신 느그 일본인 살려줌이라는 조건을 달고 있으니 지들이 탄압하던 독립운동가들에게 굽신거릴 수밖에 없었다.

명언[편집]

일본에 건너가서 내무성 장관, 고관들 앞에서 조선 자치, 조선 민중의 역량, 조선의 자립이 양국에 가져다주는 이점 등을 논리정연하게 설파하여, 연설이 끝나자 관리들이 '여운형 만세'를 외치며 그를 배웅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밑은 연설문 중 일부이다.

새벽에 어느 집에서 닭이 울면 이웃집 닭이 따라 우는 것은, 다른 닭이 운다고 우는 것이 아니고 때가 와서 우는 것이다. 때가 와서 생존권이 양심적으로 발작된 것이 조선의 독립운동이다. 결코 민족자결주의에 도취한 것이 아니다.

 
— 도쿄제국호텔 연설 중

우리의 건설 국가는 인민이 주인이 되어 인민을 다스리는 국가일 것이다. 이 민주공화국은 대한민족의 절대적 요구요, 세계 대세의 요구다.

 
— 도쿄제국호텔 연설 중

ㄴ 이게 적진 한가운데서 하고 온 얘기다.

우리 같은 지도자들이 없었던들 통일은 벌써 되었을 것이다. 조선 지도자들은 1차 시험에서 모두 낙제다.

 
— 송진우 암살 이후로 비타협적인 정치인들의 태도에 실망하여

노동자 농민 일반 대중을 위하는 것이 공산주의냐. 만일 그렇다면 나는 공산주의자로 되겠다. 노동 대중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 만일 우익이 반동적 탄압을 한다면 오히려 공산주의 혁명을 촉진시킬 뿐이다. 나는 공산주의자를 겁내지 않는다. 그러나 급진적 좌익 이론을 나는 정당하다고 보지 않는다.

 
— 이분의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명언 중 하나다.

조국... 조선...

 
— 돌아가시기 직전 최후의 유언.

일화[편집]

운동광으로서, 당시 서구권의 시류였던 스포츠 숭상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조선인들도 스포츠를 통해 심신 단련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0에 근접한 키와 탄탄한 근육질의 체격으로 건강식품 CF도 찍었으며, 운동 중 특히 야구를 즐겼다.

야구 경기장에서 순사들이 난입해 여러차례 붙들려가서 경기가 자주 지연되었다.

유학 시절 때 거구에 그의 카이젤 수염까지 단번에 멋있게 길러와서 그런지 주로 이분의 별명이 "터키 청년"이라는 소리를 듣고 왔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보았을 때도 묘하게 이국적이지만 그때 당시 사진만 봐도 확실히 지금의 모습과 많이 차이가 안 난다.

그리고 수염도 줫나게 독일스러워서 중국 유학 당시에 별명이 콧수염씨였고 다른 학교까지 존재감이 알려지자 여운형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편지를 보냈는데 콧수염씨라고 이름을 적었고 동료들은 다 여운형에게 가는 편지라는 걸 알고 전해줬다고 한다.

그리고 옷에 플렉스를 많이 해서 평소에도 고가의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우가키 가즈시게 조선 총독의 사위도 '내가 여자였으면 여운형과 결혼했다'라는 멘트를 쳤고 미군정 사령관 존 리드 하지도 잘생겼다고 인정했다.

연설 능력도 좋아서 젊었을 적 한일 합방 직전에 연설하다가 친일파들마저 눈물을 흘렸다고 하고 잘 때도 잠꼬대로 책상을 치는 시늉을 하며 '여러분!' 하며 졸았다고 한다.

운동광 때문인지, 독립 운동하면서 생긴 스트레스를 거기에 풀었는지는 몰라도 운동만큼 여자와 섹스를 좋아하셨는 듯하다.

본처에게서 3남 3녀를 둔걸로 모자라서 일본 여자[1]와 하고서 여순구를 낳고 여대생 진옥출과의 사이에서도 애를 만들기도 했다.

1886년생 치고는 매우 개방적이고 청년들과도 소통이 잘 됐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시대의 인싸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렇게 외향적이고 긍정적/낙관적인 성향 탓에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며 엄격 근엄 진지한 당대 정치인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고 한다. 그나마 친하게 지냈던 건 김규식 정도.

같이 보기[편집]

각주

  1. 이름이 불명인 걸로 봐서는 원나잇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