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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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작품 | 폭풍을 부르는 대단해! 전국대합전 |
조선조의 역대 임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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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흥청망청이란 단어가 연산군이 여자를 넘 밝혀서 나온 단어임
묘호 | 없음 | ||
시호 | 없음 | ||
존호 | 헌천홍도경문위무대왕
(憲天弘道經文緯武大王) | ||
군호 | 연산군(燕山君) | ||
휘 | 이융(李㦕) | ||
부왕∙모비 | 아버지: 성종 어머니: 폐 제헌왕후(폐비 윤씨) | ||
왕후 | 원비: 거창군부인(폐비 신씨) | ||
왕가 | 전주 이씨 | ||
왕조 | 조선 |
조선국 10대 대왕 이융.
개요[편집]
ㄴ전대갈 입장 들어봐야 할 듯
세자 시절엔 조용했지만 왕 되면서 서서히 본모습을 드러내더니 선비들 목 좀 쳐주고 띵가띵가 놀다가
할일 다해놓고 노는 건 좋지만 선을 넘지 말아야지 선을 넘으니깐 폐위당하고 지애비보다 일찍 요절한거야 폭군아 이문서를 보고 있는 너도 마찬가지야!
휘는 '융'
병신년에 태어난 진짜 개병신새끼이다.
폐위된 군주이기 때문에 죽어서도 호칭이 왕호나 묘호가 아닌 왕자들한테 주는 군호로, 실록도 실록이 아닌 일기로, 무덤도 능이 아닌 묘로 격하됐다.
"흥청"이라는 개인용 빡촌을 만들어서 일은 안하고 매일 음주가무와 섹스파티를 즐겼다. 흥청망청이라는 단어가 바로 여기서 나왔다.
집권 초~무오사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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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에 막나가서 그렇지 세자 시절이나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었을 시절엔 의외로 잘했다. 솔까 초기에는 꽤 잘했네?싶게 통치력도 있었는데, 백성들이 기근으로 굶주리자 구휼미를 풀었다. 또한 여진족들과 왜구 막으려고 금산조치[1] 를 확대시키기도 했다. 씹선비와 대간들 목 친건 나쁜짓이 아니라 잘한 짓이다.[2] 그리고 통치력이 없는 놈이었다면 이때 진작 모가지 날라갔다.
유능한 점은 있었지만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서 하면 안될짓을 저질러 버린거라고 요약할수 있다.
연산 초기의 정치는 대간과 연산군과의 치열한 싸움으로 요약 가능함.
성종 때 경연정치를 활성화시키겠답시고 대간세력을 너무나 크게 키운 나머지, 성종 말년에는 진짜 말도 안되는 일을 시시콜콜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대간의 말이라면 다 들어주던 성종마저 화를 내는 장면이 종종 등장함. 한 예로, 연못과 수통을 연결하는 재료를 구리로 쓰려 했다가 그게 사치라고 대간이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바람에 성종도 처음에는 저항했다가 대간이 끝까지 지랄병을 해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돌로 바꾸고, 구리를 철거하고 돌로 바꾸는 과정에서 애먼 담장을 몇개 헐어내야 했으며, 이에 빡친 성종이 승지에게 "지금 안 없애면 나중에 또 이거가지고 사치한다고 지랄할꺼니까 가지고가서 부숴라" 라고 화를 내는 일도 있었음.
아무튼 이런 대간세력이 강성해서 대신마저 눈치를 보는 상황에 새로운 임금 연산군이 즉위 했으니, 대간은 당연히 현행대로 유지되기를 원했겠지만, 연산은 애초에 그런 유형의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종처럼 정통성이 매우 취약해서 신하들의 지지를 막 얻어야 할 이유도 그다지 없었음. 애초에 연산군은 성종의 적장자라 정통성 면에서는 전혀 꿀릴 거 없었음.
근데 대간은 그런 임금의 심리는 안중에도 없고 즉위하자마자 연산이 하는 일에 계속 태클을 걸고 나서고, 즉위 초의 연산은 우리가 생각하는 갑자사화 이후의 난폭한 연산은 아니라 어느정도는 받아 넘겨주고, 심한처벌도 별로 내리지 않음. 하지만 사실 기록을 살펴보면 대간의 태클중에서 좀 심하다 싶은걸 빼고는 전부 명분이 있는 말이고, 대간이 당연히 해야 할 일임. 애초에 유교, 성리학을 이념으로 삼은 국가에서는 신하는 반드시 국왕에게 충성해야 하지만, 반대로 신하는 국왕이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이끌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 이 상반되는 두 사실이 충돌하는게 곧 왕권과 신권이 충돌하는 거고, 조선 초기의 역사는 이 두개의 권력이 충돌하는 역사임. 왜냐하면 연산군이 반정으로 쫓겨난 이후로는 연산군이 반면교사가 되어 조선왕조가 문을 닫을 때 까지 이전처럼 왕권이 강한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 오히려 나중가면 신하들의 권력이 너무 세져서 이게 시발 왕이 바지사장아니냐 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연산은 즉위하자마자 대간이랑 충돌했는데 성종의 수륙재를 지내는 거로 싸움. 수륙재란 영혼을 위무하는 불교식 행사인데 조선이 숭유억불 국가임에도 불교식 전통은 남아 있어서 수륙재는 선왕이 훙하면 그 다음 왕이 관례적으로 수륙재를 지내왔음. 애초에 태조 이성계는 독실하다시피 할 정도의 불교 숭상을 했고, 세종도 말년에는 불교를 믿었으며, 세조는 아예 대놓고 자기가 호불의 군주다 라면서 대놓고 불경 간행하고 그랬으니까. 태종도 불교를 억누르긴 했지만 솔직히 현실적으로 백성들의 신앙을 하루아침에 싸그리 없애는 것도 말이 안되니만큼 사원 수도 싹 줄이고 교파도 정리하고 도첩제를 실시했어도 대놓고 불교 믿는걸 금지할 순 없었음.
하지만 연산군의 선왕인 성종은 그 이전의 어느 왕보다도 불교를 더 억제시킨 군주임. 말년에는 금승법을 통과시켜 중이 되는 걸 막기도 했고, 과거시험장에서 불교를 숭상해야 한다고 했던 유생의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한 처벌을 내린적도 있고, 신하들에게 내가 불교 싫어하는건 느그들이 더 잘 알지 않냐라는 말을 한 기록도 있음. 그래서 연산군이 성종의 수륙재를 지내려 했을 때 대간이 했던 가장 주요한 주장이 성종은 불교를 싫어했던 군주인데 부왕의 뜻을 거스르고 수륙재를 지내려 하느냐 였음.
하지만 연산군의 한결같은 입장은 선대 왕들도 다 했었고, 성종도 예종을 위해서 수륙재를 지냈으니까 나도 하겠다 였음. 사실 이것도 맞는말인게 왕조사회에서 선례라는 건 매우 중요한 교본임. 이전 왕들도 똑같기 해왔기 때문에 나도 하겠다 라는건 상당히 타당성 있는 거고 왜 그런걸 내 시대에 와서 갑작스럽게 제도를 바꾸려 하느냐 라고 했을 때 사실 이거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기는 대간으로서도 어려움. 실제로 성종도 예종이 훙하고 수륙재를 치룬 일이 있기 때문. 다만 이건 성종이 어려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했을 때라 사실상 대신들과 대비의 의견으로 이루어지긴 했으나, 선례에 따라 일을 수행했다는 좋은 예시임. 성종이 나중에 수륙재를 금하라 라는 명을 내린적이 있었는데, 이건 왕실의 행사를 금하라는게 아니라 당시 안행량에서 조운선이 자주 침몰해서 그 지역에서 그 혼들을 위무하는 수륙재를 지내왔었는데 성종은 이걸 금하라 한 거여서 이거에는 해당이 안됨.
반면 대간은 이와 달리, 부왕의 뜻을 강조했는데, 이게 존나 골치아픈게 연산군의 말과 대간의 말이 둘다 옳아서 어느 한쪽을 편들기가 애매함. 대간의 말대로 성리학적 유교이념이 지배하는 국가에서 왕실이 대놓고 불교행사를 하는게 타당하냐, 성종은 불교를 싫어했는데 감히 부왕의 뜻을 거슬러 성종의 혼을 불편하게 하느냐 라는 말도 맞고, 연산의 말대로 선례를 따르겠다라는 말도 맞음. 그래서 연산이 일관되게 수륙재를 지내겠다고 했음에도 대간은 몇개월에 걸쳐 반대상소를 올림. 나중에는 성균관 유생들마저 대궐 앞에 몰려와서 상소를 올리는데 나중에 가면 이 상소의 내용이 문제가 됨.
이 시기 유생들의 생각은 무조건 닥치고 직언, 직언하다 화를 당하면 곧 그게 참선비다 라는 이상한 마인드가 있어서 할 소리 안할 소리 분간을 못하고 씨부리는 걸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일례로 이 당시 유생들이 올린 글에는 대놓고 세조가 불교를 숭상한 것을 마구 까대는 대목이 있어서 연산이 처벌한 적도 있음.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세조가 불교를 믿은 탓에 역신이 횡행하고 불교를 숭상하는 무리들이 넘쳐난다 이런 뉘앙스의 말이었던 걸로 기억.
하지만 결국 이 사건의 승자는 연산. 결국 수륙재 지냄.
대신들은 대간과는 달리 어느정도 연산군의 편에 서서 대간의 지랄발광을 어느정도 상쇄시켜주는 역할을 했는데, 대간은 이게 또 불편해서 대신 중에서도 연산의 의중에 잘 따라주었던 노사신을 소인배라고 단체로 빼애액거리며 공격을 해대서 연산이 들어주지 않자 급기야 집단사직으로 맞서기까지 함. 이미 이 수법은 성종 때 임사홍을 소인배라고 단체로 빼애액 거리며 지랄했다가 성종이 마침내 수용을 해서 임사홍을 내치자 이걸 생각하고 연산군에게도 비슷한 행동을 한 것같은데, 애초에 연산은 대간 과의 대치선을 분명히 한 임금이라 들어줄 생각 1도 없고 오히려 대신의 보호자임을 자처하기까지 함.
근데 대간은 그런거 없고 닥치고 들어줄 때까지 빼애액에 집단사직이라 연산군이 복직을 명해도 사직이라 복직 사직이 무한반복됨. 연산 입장에서는 ㅈ같은데 그렇다고 대간을 탄압하면 언로를 막으면 안된다 명분이 있는지라 대놓고 그러지도 못하고 참기만 함.
실제로 연산초기 대신들 중에서 누구보다 연산의 의중에 잘 따랐던 사람이 노사신인데, 역시나 대간은 노사신은 소인배다하면서 줄기차게 물어뜯음. 근데 아이러니한건 정작 무오사화가 발생해서 많은 사림들, 특히 대간의 직책에 있던 사림들이 대거 벌을 받게 되자 처벌이 너무 과하다라고 하면서 사건을 어떻게든 축소시켜서 최대한 연루자를 줄이려고 고군분투한게 노사신임 ㅋㅋㅋ
다만 무조건 안 들어준 건 아니고, 어느정도 들어줄 수 있는 건 버티다가 대간의 요구를 수용해주기도 함. 확실한건, 이 시기까지 대간은 연산에게 절대 밀리지 않는 존재였음. 위에서도 말했듯 성리학적 유교이념이 지배하는 국가에서 대간의 활동은 필수적이고, 게다가 전 왕인 성종은 자의든 타의든 이걸 실천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했기 때문에 대간이 성종때의 질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건 당연한 거고, 당연히 그 질서가 유지되기를 바랐으니까.
무오사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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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이 지향했던 군주는 성종과 정 반대되는 유형, 세조임.
경연정치를 통해 신하들의 모든 의견을 들어보고 거기서 합리적인 의견을 뽑아내는 성종과 달리, 세조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군주의 의견이 매우 큰 영향력이 있음.
다만 연산군이 재위할 당시, 세조와 가장 큰 차이점은 연산군의 전 임금이 성종이라는 것.
즉 대간이 매우 자주 썼던 구절이 "성종대왕은 이러지 않았다. 성종께서는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성종을 들먹이기를 매우 좋아했는데
연산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러기 싫고, 본인의 의견대로 해 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대간이 하는 말이 틀린말이 아니고 성리학적으로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음.
부왕이자 전 임금이라, 전 임금 시절에는 이랬는데 왜 전하는 이러지 않으십니까라고 말하면 연산이 반박불가라 속으로는 씨발씨발 거려도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ㅈ같아서 하루하루를 참고 있던 연산의 심중을 파고 든 이가 있엇으니 그가바로 무령군 유자광.
서자 출신이라 어울리기도 힘들었기에 유자광의 인생은 항상 왕에게 튀어서, 잘 보여야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음.
실제로 일개 갑사에 불과했던 그가 세조에게 띄어서 이시애의 난 당시 활약한 것도 통쾌한 내용이 담긴 상소를 올려서 세조가 이걸 보고 마음에 들어해서이고,
세조가 얼마나 유자광을 아꼈던지 서자라 과거를 볼 수 없었던 그에게 과거 시험을 보게 해주고, 유자광의 글을 직접 가져오게 해서 읽어보고 냅다 장원을 주더니
순식간에 정 3품 병조참지로 승진시켜줌.
자신을 아껴주던 세조가 죽자 이번엔 남이의 역모 계획을 예종에게 고발해서 공신에 책봉되었고,
성종 때에는 선비들의 미움을 잔뜩 받다가 정희왕후 윤씨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성종이 친정을 시작한 직후 당시 최고의 권신 한명회를 직접적으로 까는 글을 올려서
성종의 이목을 끌어보려 했으나 이건 오히려 실패해서 어그로만 존나 끌림.
그래서 연산군 즉위 당시에는 이미 온 조정, 특히 김종직을 위시한 사림세력으로부터 낙인이 찍혀버린 터라 살아남기 위해서는 연산군 눈에 띄여야 했기에 그가 주역이
되어 무오사화를 일으킴.
유자광과 연산군이 주역이 되어 대신들로 부터 어느정도 지지를 받고 일으킨 무오사화의 구실은 김일손의 사초.
김일손은 김종직의 제자이고, 김종직은 이미 세상을 떴으나 성종시기 사림세력의 우두머리라 사실상 연산시기에는 조정 상당수의 대간들이 김종직 일파임.
유자광은 이미 개인적으로도 김종직과 원한이 있던 일이 있었는데
마침 실록청 당상 이극돈이 김일손이 사초에 이극돈을 까는 말을 적어놓자 이극돈이 지워달라고 요청했다가 김일손이 거절하자 앙심을 품고 유자광을 찾아가서 사초를
흘려주는데 유자광은 알다시피 머리가 기가막히게 좋은 놈임.
유자광은 사초를 딱 보고 김일손을 이용해 자신의 위치도 올리고, 눈에 성가신 사림도 날려버리고, 김종직에게 개인적으로도 복수 할 계획을 딱 짜놓음.
그 구실이 김일손의 사초인데, 사실 김일손의 사초는 애초에 사초라고 보기 힘들정도의 잡스러운 글이 너무 많았음.
스승인 김종직 이새끼는 세조때 벼슬 살았으면서 뒷구녕으론 세조 디스를 해댔으니 미친새끼고
김일손 이새끼는 사초에다가 그 디스를 써갈긴것도 모자라 며느리랑 간통했다는 근거없는 헛소문으로 세조를 까댐.
ㄴ 정확히는 간통이 아니라 추존왕 덕종,즉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의 후궁 권 귀인을 가까이 하려고 불렀으나 권 귀인이 듣지 않았다 라는 정보.
현대로 예를 들자면 음.... 기레기 한놈이 뜬금없이 "대통령 박근혜가 자기 애인들에게 비아그라를 강제로 처먹이며 매일 밤 쓰리썸(3p)으로 파워쎆쓰를 즐겼다...." 뭐 이딴 소리를 예를 들면 대통령 기록물 같은데다 '몰래' 써갈겨 놓았다가 딱 걸린 상황인거다. 지금도 쌍욕먹을 미친짓인데 왕정시대에는? 당연히 일가 모가지 따이고 죽어도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애초에 실록에는 이딴 잡글을 적는게 아니다.
마땅히 직필이라, 팩트만을 적는게 당연한데 ~~카더라 라는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를 쳐넣고, 조의제문 같은 글을 실어놓음.
아니 애초에 역사를 기록하는 실록에 스승이 쓴 글인 조의제문은 왜 쳐넣은건지 모르겠다. 김일손 이새끼도 어지간히 빡대가리 병신인가?
솔직히 조의제문도 유자광이 이걸 연산군의 입맛에 맞게 마음대로 끼워맞춰서 해석했다는 평이 있는데, 아무리봐도 이건 세조까려고 만든게 분명하다.
단종이 죽은 정축년 10월을 그대로 갖다 쓴 건 물론이요, 세조가 즉위하고 바로 이걸 썼는데 김종직은 애초에 세조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었고,
세조에게 정책을 비판하다가 즉시 관직을 삭탈당하고 쫓겨난 걸 보면 이건 분명히 세조 저격한 거 맞다.
ㄴ 조의제문은 글 자체가 워낙 어려워서(김종직이 지은 글인데 어련할까. 나중엔 김종직을 두고 사림들마저도 글이나 잘쓰는 놈이라는 평을 했다. 그정도로 미려하고 고도의 은유를 사용한 글이라 언듯보면 뭔 소린지 알수도 없어서 개인문집에나 들어갈 글이었다.) 해석하기 나름이라지만 이 글을 해석해 낸 유자광도 보통 두뇌는 아니다. 실제 김일손이가 이 글을 사초에 올린 것부터가 세조를 까려는데 있었으니 유자광조작설은 앞뒤가 맞지않는다.
당연히 연산군은 빡친 나머지 사초를 보겠다고 명령했고, 신하들이 간신히 말린 끝에 관련부분만 일부 절취해서 보는 걸로 겨우 쇼부를 봤지만
이 때가 조선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왕이 사초를 본 기록임.
사초를 보고 빡쳐서 김일손을 시작으로 줄줄이 국문에 들어가는데, 당연히 빡칠만도 한게 연산은 세조의 장자 의경세자의 아들 성종의 아들이라 세조에서 내려오는
정통성에 본인도 세조를 지향한 군주라 이건 왕실을 능멸했다고 충분히 볼 수가 있음. 나중에 갑자사화가 되면 연산군이 신하들을 잡아들인 죄목은 위, 즉 왕을 능멸했
다라는 뜻의 '능상'인데, 이거야말로 능상이라고 할 수 있음.
사실 연산군 이름값 때문에 이때도 병신짓했나 할 수도 있지만 정말 빡칠만 한 상황이다. 실록의 기초가 되는 사초에다가 되도않한 헛소문, 요새 말론 찌라시를 마구 갖다넣어서 실록을 엉망으로 만들려는 의도부터해서, 본인의 정통성을 위협하려는 의도까지 덧붙여져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빡칠수 밖에 없다.
결국 조사와 조사 끝에 김일손은 능지 처사, 김일손에게 정보를 준 허반과 이목은 참수, 기타 많은 대간들이 갈려서 유배를 떠나고, 결국 연산군이 원했던
대간세력의 약화가 이루어짐.
성종이 즉위한 이래로 한번의 탄압없이 쭉쭉 승천하던 대간이 처음으로 직격탄을 맞은 사건.
다만 이 과정에서 초기에 사태 수습하려다 같이 덤터기쓰고 나가리된 이극돈과 광주 이씨 가문은 중종반정 이후에는 아예 '간신배 가문' 누명까지 쓰는 등 애먼 고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이이첨이 뻘짓하는 바람에 그 이미지가 후대에까지 전해짐. 안습...
게다가 김일손의 김해 김씨 가문도 뭐... 가야 왕족/신라 귀족 집안으로 자부하는 가문이 조선조에선 그닥 활약이 없다. 안습...
무오사화~갑자사화[편집]
이때부터 대간의 힘이 점점 빠져서 나중에는 간언과 공박조차 점점 줄어들더니 갑자사화를 기점으로 아예 사라짐.
문제는 무오사화 이후로 협력관계를 이뤄왔던 대신과 연산과의 관계가 점점 틀어지기 시작하고, 갑자사화를 기점으로 대간과 똑같이 대립상태가 되어 대간이든 대신이든
사소한 잘못, 이전의 잘못을 전부 끄집어내어 모조리 죽여버리는 터라 결국 갑자사화가 일어난지 꼴랑 2년여만에 반정이 일어나고 강제퇴위된다. 엥? 이거 완전 라레나 시키는 umanle 아니냐?
문제는 그 다음부터 빡침에 나사가 제대로 풀려버리고, 완전 미쳐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 유명한 갑자사화로 대변되는 폭군의 개막. 왕이 사초내용을 가지고 모가지를 땄다는 사건 자체도 보통이라면 일러바친 놈들에게도 벌을 줘야 맞기는 한데, 나라 안에 기득세력들 모가지를 치는 판에 자기 편이 너무 없다고 생각해서 우쭈쭈 하고 봐준 것일 수도 있고.... 아무튼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은 분명하다. 그리고 딥빡에 나사풀려서 미쳐돌기 시작하면서 앞서 세자 시절이나 국왕 초기에 보인 포커페이스나 치밀함 같은 정치력도 같이 확 날아가 부렸다. 너무 빡돌아서 스트레스성으로 판단하는 뇌세포까지도 타버린듯.
뭐 어째튼 최후는 폭군의 최후가 다 그렇듯 반정이 일어나서 쫒겨나게된다
절대 왕권[편집]
성종의 조치로 연산군은 자기의 진짜 어머니가 누구인지 몰랐다.
근데 왕으로 즉위하고 얼마 안 있어서 성종의 가족관계와 관련된 글을 읽는 과정에서 승지에게 "성종 비 윤씨의 아비가 여기 판봉상시사 윤기견이라고 되어있는데 이게 누구임? 혹시 윤호를 잘못 쓴거 아니냐" 라고 물은 기록이 실록에 올라와 있는데 이미 여기서 눈치를 챘을 가능성도 있다. 판봉상시사 윤기견은 폐비 윤씨의 아버지이고, 윤호는 폐비윤씨가 서인으로 강등되고 맞이한 새로운 성종비(중종의 어머니) 정현왕후 윤씨의 아버지라 연산군에게는 새어머니가 되는 셈. 폐비 윤씨는 폐출되고 연산군 나이 7세때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떴으므로, 이미 그전부터 연산군을 키워온 사람은 새어머니 정현왕후 였던 것.
이때 출생의 비밀을 알게되고 자기 어머니가 어떻게 죽게되었는지 알게되자 이때 1차로 멘탈이 나간듯 하다. 참고로 이날 이새끼 밥을 먹지 않았다. 이때 당시에 왕이 수라를 들지 않는다는건 꽤 큰일이다. 충격을 받은게 맞긴 한듯.
결국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관련된 인물들을 다 죽여버린다. 복수가 끝나자 공허함에 2차로 멘탈이 나간 듯 하다.
ㄴㅈ병신이 그때 사약 배달부까지 죽였다. 이건 어명으로 한건데 죽인거 보면 대가리가 빠가여서 일의 명암도 구분 못하는가 보다.
이거 열지마라. 이 과정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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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인수대비는 며느리 사약내리라고 한적 없다. 윤씨를 폐출함에 있어 거의 정신나가서 펄펄 뛴 사람은 다름아닌 성종이다.
이후로는 폭군이 할수 있는 대부분의 것을 하였다.
ㄴ평가가 엇갈리는 무오사화와는 달리 갑자사화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단지 엄니의 복수극으로 단순화 시킬 일은 아니다. 무오년에 손을 들어준 훈구파가 사림 못지않게 브레이크를 거는데 빡치기도 했고, 왕 자신이 폭주기관차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유흥비가 모자라 신하들 재산을 약탈할 필요가 있엇던 거다. 사실 모친 사건은 즉위 일년만에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연산군이 진짜로 모친이 누구인지 오래전부터 알았을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후대의 사람들의 추측.
어머니의 복수를 끝낸 후에는 유흥에 몰두했는데 흥청이란 기생을 천명을 선발해 궁궐에 데려와 하루가 멀다하고 술과 음악 섹스를 즐긴다. 이것이 바로 흥청망청의 어원이다.
ㄴ 처음에는 300명이었으나, 점점 늘어나더니, 연산 말년에는 천 명으로 늘어남.
이때 흥청들 중에서 그 유명한 장녹수가 있었다. 연산군은 특히 장녹수를 엄청 이뻐했는데 정작 장녹수란 년은 이미 결혼한 적도 있는 30대 초반 여성이었다. 근데 기록에는 존나 동안이었다고 함. 이 년은 나중에 후궁까지 올라간다.
ㄴ기록에 장녹수 얼굴이 중간이 안된다고 나와있다 아마 밀당의 천재인가 싶다.
ㄴ 실제로 실록에선 사람 외모 묘사 별로 안하는데( 있는 거라곤 장희빈이 존나 이쁘단 거랑 흑인 용병이 특이하단 것 정도) 그렇게 못박은 거 보면.....
이후의 야사에서는 장녹수가 연산군 부를 때 아가야 아가야 했다고 하기도 한다. (다만 이 부분은 당대의 정사 기록은 아니다. 덧붙여진 가능성이 크다. 정사로는 외모는 궁에 들어오는 선에서 평범한 수준이지만 애교와 교태가 대단했다는 정도. 즉 말을 존나 살살거리는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 여우년 타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집현전과 사대부 본부를 개조시켜 룸빵으로 만들었고 궁궐안에 인공동산을 만들어 술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한글사용을 금지시켰다. 세종대왕님이 이 문서위에서 울고 계시는 이유이다.
ㄴ한글 금지 시킨 이유가 누가 궁궐 기둥에 한글로 연산군 욕하는 벽서 붙였기 때문이다. 이거 범인 잡겠다고 보름동안 성문닫고 한글 배우는 에꿏은 모녀 목자르고 그냥 시발 편지에 쓰든 뭘하든 다 벌줬다. 걍 빠가+정신병이라 보면 된다.
ㄴ 이 기간의 한글의 암흑기다 이러면서 존나 과장하는 새끼들 있는데 그건 좀 지랄이다. 연산이 실제로 이 조치를 취한건 갑자사화가 일어난 뒤인데 갑자사화 일어나고 연산은 2년뒤에 폐위된다. 꼴랑 2년동안의 조치가 한글의 암흑기?? 게다가 실제로 이떄에 한글서적 존나 많이 인쇄됐다. 흥청이나 운평들에게 인쇄되는 노래나 춤 교본 이런건 전부 언문으로 만들어서 대량인쇄했었다. 그냥 지 눈에 보이는게 좇같아서 못쓰게 한거지 실제로 언문은 지 자신이 썼기에 암흑기까진 좀 아니다.
ㄴ시백위키 꺼라
기록에 따르면 인공산 앞에 큰 연못까지 만들었는데 아 이게 경회루인가? 헷갈리네 암튼 밤에 큰 배를 몰고 나가 그 배에서는 화려한 조명과 음악, 춤추는 흥청들까지 어우러져 존나게 화려했다고 한다. 좀 부럽다.
그리고 나중엔 지 애비 애미 제삿날에도 후궁이랑 떡을 치는 등 인생에 오로지 유흥밖에 없었다.
지 애미 죽음과 관련된 신하들은 모두 죽여버리고 무덤까지 파헤쳐 뼈를 가루로 만들어 바람에 날려버렸다. 이런 형벌을 한자로 쇄골표풍이라고 부름.
이미친 싸이코패스새끼는 가면갈수록 인성이 개씹창나는데 특히 다른 어머니 둘은 역적으로 몰아 반죽음 상태로 만든 뒤 천으로 얼굴을 덮어 씌운다. 그리고 그녀들의 아들들인 이행과 이봉을 불러 역적을 잡았으니 니네가 직접 떄려죽이라고 함.
이행은 지 애미인지도 모르고 몽둥이로 퍽퍽 줘패면서 죽였고 이봉은 이게 지 애미라는걸 눈치까고 광광 울었다고 한다.
ㄴ존나 웃긴건 한명은 안때려서 왕명어겼다고 유배보내고 때린놈은 패륜이라고 유배보냈다. 그리고 결국 둘다 죽였다... 사고방식이ㅋㅋㅋ
사대부 유생들에겐 자신의 가마를 들게 하였으며 맘에 안드는 소리를 하는 신하들은 전부 죽여버렸는데 덕분에 신하들은 찍소리 못하게 되었고 덕분에 왕권이 강화됨. 이러다보니 정상적인 업무체계가 개판이 되었는데 동양역사에 나라가 개판일때 항상 등장하는 정치하는 내시가 여기서도 나온다.
이름은 까먹었는데 한 내시는 연산군 앞에서 죽는 시늉까지 하면서 이쁨을 받아 이후로는 떡치는 연산군 대신 지 멋대로 왕명을 앞세워 완장질을 했다.
또 한 명의 내시는 연산군10년에 이제 적당히 좀 하라고 첨언을 했는데 빡친 연산군이 이 내시의 팔다리를 잘라버림. 그래도 계속 주둥아리를 놀리니까 직접 대갈빡에 활을 쏴서 죽여버린다. 이 내시 이름 두 한자는 아예 궁궐에서 못 쓰도록 지시함. 아 물론 지 술파티 벌일때는 쓰게 함.
ㄴ이게 김처선인데 왕의 남자에 나오던 그 늙은 내시. 죽어가면서 전하는 부러진 다리로도 걸으실 수 있습니까?라며 연산군의 폭정을 비판했다.
ㄴ정확히 말하면 궁중에서 김처선이라는 말에 쓰인 처 자를 쓰지 마라는건데 실제로 연산은 지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처용무마저 풍두무라고 이름을 바꿔버렸다.
내시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것이 기본인데 나라꼴이 얼마나 개판이었는지 가늠이 된다.
그리고 일설에 의하면 사람으로 젓갈을 담갔다고 한다. 고려 의종은 주둥이로만 저렇게 말했는데 이걸 연산군은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미친새끼...
사실 성종초기부터 관직에 올라 연산군이 즉위하게 될 때 고참 대신이 된 표연말이 있었는데 연산군은 꼰대랍시고 아무 잘못도 없는 표연말에게 주먹을 날렸다. 왕과 신하의 관계를 떠나서 자기보다 30살 가까이 나이많은 사람을 정당한 사유 없이 주먹으로 때린 것이다. 이지경까지 가니 내시조차 나서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구 정도 크기의 땅을 사냥터로 만들어서 사냥을 즐겼는데 잡은 동물을 풀어주고 다시 죽이거나 호랑이 같은 건 잡아서 우리에 가두고 거기다 활을 쏴대면서 죽이는 걸 보면 제 정신은 아니었던거 같다.
그러던 중 나라에 선전물이 돌아다녔는데 내용은 대충 왕의 폭정에 맞서 의병을 일으키자 였다. 이걸보고 빡친 연산군은 범인을 잡으려고 한양 도성을 통제하고 검문을 하였으며 이미 유배간 신하들이나 그의 가족들까지 다시 잡아와 고문시켰다.
그러다 결국 세조찬위의 공신이자 자신의 왕위의 근간을 도와준 홍일동이 있는데 그 홍일동의 이복서얼동생인 홍길동이 난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물론 1500년에 홍길동을 체포하는 데에 성공했으나 홍길동이 워낙 거물가문 출신인데다[3] 가 홍길동의 측근이 연산군에게 눈깔이 돌아갈 정도의 엄청난 금품을 뇌물로 바쳐서 홍길동은 석방되었다.
지 말을 잘듣는 놈은 천민이라도 벼슬을 주었다고 함.
한국 역사상 사이코 패스를 꼽으라면 대부분 주저없이 1등으로 꼽는다.
ㄴ 사실 이새끼가 인지도가 커서 사실 막장도로는 고려 충혜왕이 암군계의 본좌급이다
그리고 이게 군약신강인 조선이라 그렇지 동시대 짱개놈이나 물건너 케밥애들 카레국 새끼들이 온갖 섹스파티와 블러드 페스티벌을 벌이던 거에 비하면 가히 우스운 수준이다
그러나 가장 쓰레기새끼는 선조에게 1위를 빼앗겼다.
ㄴ능양군은?
ㄴ걔는 사람이 아니니까 제외한다.
ㄴ 역잘알 ㅇㅈ한다
사실 먼 (방계) 후손인 영조와 옆동네 명나라 F4에 비하면 그리 막 나간것도 아니다.
이들과 연산군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영조와 홍무제는 절대왕권을 국가와 백성을 안정 시키기 위해 썼지만 연산군은 지 이익만 위해 썼다.
결과적으로 영조와 홍무제는 오래살고 명군 소리듣지만 연산군은 일찍 폐위당해 30세로 요절하게 된것도 모잘라 지금도 최악의 폭군 이라고 평가 받는다.
강희제가 조선 보고 군약신강이라고 깐 근거가 있다.
주제에 또 똑똑한새끼라 광기를 정치에 이용하는 치밀함까지 보여줬으나 미친새끼 주체를 못해서 망함.
섹스쪽에는 소라넷의 조상님뻘 되시는 놈이다.
연산군 치세에 궁녀가 제일 많았다. 보통 4~600명 정도 되는 궁녀가 연산군 정권에서만 1100명에 달했다.
연산군이 궁녀를 너무 많이 뽑아버리는 바람에 중종이 즉위한 후 여자들 치맛바람 때문에 아주 골치를 썩었다.
선대 임금님, 어찌하여 이렇게 만들어놨나이까?
ㄴ 정확히 말하면 궁녀가 아니라 일종의 행사용 걸그룹이라고 보는게 맞다.
연산이 전국팔도에서 신하들을 보내 미녀들을 낚아오게 했는데 이런 서울로 올라온 미녀들을 운평이라고 했는데
이 운평들 중에서 얼굴이 이뻐서 왕의 사랑을 받아 궁에 들어오면 흥청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다시 왕의 사랑을 받은 천과흥청이랑 그렇지 못한 지과흥청으로 갈리는데,
보통 운평과 흥청이 각각 천명, 악공들을 광희라고 불렀는데 이 역시 얼추 1천명에 이른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거의 3천명의 집단. 애초에 연산이 가장 좋아했던 건 매일같이 부왘을 울리면서 잔치를 여는거였으니까.
운평도 애초에 그러라고 만든거고. 근데 나중에는 얼굴 존나 이쁘고 노래 존나 잘하는 년들이 드물어서
그냥 노래만 잘하거나 혹은 얼굴만 이뻐도 선발됐다 카더라.
이 새끼의 제일 큰 문제는 그 절대권력을 가지고 노는데 썼다는거다. 이 미친놈이 12년간 왕하면서 우리가 아는 연산군의 이미지, 술먹고 여자밝히고 미친짓하고 기타 등등은 갑자사화후 2년에 집중되어있다. 즉 멀쩡하게 정치한 기간이 더 길다는 것. 물론 명나라 홍무제처럼 이새끼 못지않게 신하들 쳐죽인 놈은 많다. 스케일로보면 조선에서 신하들 쳐죽인건 대륙에 비하면 그냥 프롤로그 수준이고. 문제는 홍무제는 신하는 쳐죽였어도 백성은 안건드리고 최대한 잘살게했는데, 연산군 이 미친놈은 그 권력으로 노는데 올인하고 돈떨어지니까 백성을 쥐어짜냈다는거다. 이제는 육수에 사골까지 쪽쪽 빨아먹은 광해군 재평가도 일단 좋게볼 근거가 있으니 그런 주장이 나오는건데, 이놈은 당대기준이나 현대기준이나 어떻게 봐도 미친 사이코에 색마다. 그러니 끝까지 폭군으로 남을수밖에 없는것
기타[편집]
윤씨는 원래 사람이 검소하고 착해서 성종 엄마도 좋아했는데 이 년이 연산군을 낳고 나서 완전히 사람이 바뀌어버린다 .
그 착하던 사람이 화를 잘 내고 시어머니한테 대든적도 있었고 성종을 존나게 바가지 긁는다. 심지어 지 생일날 딴 후궁이랑 놀다 왔다고 티격태격하다가 성종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버림. 이 당시엔 이게 존나 큰 중죄다. 옥체에 상처를 냈으면 자기랑 그 가문 몰살당해도 할말 없고 그년하고 가족만 죽어도 임금이 관대하다며 성군소리 들을 정도인 시대다.
그런데 나름 인내심 갑에 섹스 좋아하던 성종은 걍 좆까고 딴 후궁들이랑 떡치고 다녔고 아들 둘이나 더 본다. 그리자 윤씨는 질투심과 자기 아들이 혹여나 세자 자리를 뺏길까봐 별의별 미친짓을 다 하고 다닌다.
결국엔 후궁들 죽이려고 쓰려던 독약까지 발견함. 이때 성종 엄마는 윤씨를 도저히 답이 없는 미친년으로 판단해 사약 주고 죽여버린다. 이미 성종도 마음이 떠나서 걍 죽임.
ㄴ어머니 죽었다고 발작하는 거면 경종은 뭐냐? 경종이 장희빈 아들내미였는데 숙종 손에 사약받고 뒤졌는데 그럼 경종도 즉위하고 나서 막장테크를 탔어야 되는거 아니냐? 정작 즉위시절에는 치세가 꽤 괜찮았었고 몇년 못해먹고 죽어서 그렇지 행실만 보자면 조선 왕중에서도 상타는 치는 애였다
- 경종도 삼수의 변때 한 짓거리 보면 은근 만만치않은 씹새였다.
- 삼수의 변은 연잉군하고 노론 새기들이 찬탈 카운트다운 셀 정도로 나대던 걸 카운터친 건데 그게 왜 씹새끼 소릴 들어야 함?
요즘 학자들은 이런 윤씨를 전형적인 산후우울증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연산군은 성종과 이 애미 윤씨의 나쁜 유전자만 다 가지고 태어난 새끼다.
이러니 연산군 빡칠까 안빡칠까?
연산군이 정귀인과 엄귀인에게 얼마나 빡침이 극에 달했으면 각자가 낳은 아들들로 하여금 정귀인과 엄귀인을 장살시키도록 조치할 정도였다.
성종이 정귀인과 엄귀인을 멀리했더라면 연산군이 이따위 시궁창 인성을 갖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ㄴ 왜 멀리했어야 하는지? 조선시대에 현대적 윤리관을 대입시키니 후궁 들이는게 뭔 죄악처럼 여기는데 당시로서는 오히려 후궁을 안들이는게 이상한 거였다 뭐 물론 윤씨가 질투를 느낀 건 이해는 가지만 그건 그거고 일국의 왕비면 최소한 왕실예법은 지키고 살아야 되는거 아니냐? 당시의 윤리관으로 보자면 윤씨가 잘못한게 맞다
그래도 하고 싶은거 즐기고 싶은거 다 즐기고 산 인간이라 왕답다고 빠는 놈들이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것땜에 중종 이후 왕들의 권력이 ㅈㄴ 약해졌다. 몇백년이 지나 영조에 와서야지 겨우 왕권이 회복되었다. 근데 그 회복된 왕권은 얼마안가 정조 사후 또 존나 낮아져 안동 김씨, 풍양 조씨 이딴 새끼들이 세도 정치해서 나라 나락이되고 일제에게 지배당했다. 특히 중종은 지형처럼 막나가면 신하들에게 목잘릴거라고 암묵적인 경고가 있다.
사실 제일 불쌍한건 연산군 마누라다. 역대 조선 왕비들 중에서도 인성이 탑클래스로 착한 인물이었는데 남편 잘못 만나 개고생. 참고로 이 아주머니는 후궁이나 궁녀들 상대로도 존댓말을 썼다. 그 인성 개판이던 연산군도 자기 아내가 하는 간언은 최소한 들어주는 척은 하면서 존나 치켜세워줬으며, 나중에 귀양가서 뒤지기 직전에 아내 보고싶다는 유언까지 남길 정도였고 유언대로 부인 옆에 묻히게 되었다. 지금도 연산군묘에는 2개의 봉분이 있다.
덤으로 연산군의 아들인 이황도 의외로 좋은 놈이였는데 아버지를 잘못 만나 동생들과 사이좋게 뒤진다.
말년에 사람 열라 죽여대고 숙청하던 새끼인데, 신기하게 가장 큰 정적인 지 이복동생(중종)은 오히려 우쭈쭈 해줬다.
하도 죽여대고 나니 왕권 탄탄해졌다고 생각해 긴장 풀어진 건지, 아니면 중종이 후빨 스킬이 숙련자급 이상은 됐던지. 아님 둘다
윤씨와 연산군 스토리 공부할 것까진 아니고 그냥 흥미만 가지고 알고 싶다면 '금삼의 피'라는 박종화의 1936년작 역사소설을 봐라. 나름 재미있다. 읽으면서 당시 금삼의 피나 현진건의 무영탑 같은 역사소설이 나온 이유 중 하나가 쪽바리 씹새들이 문인 탄압하고 현실비판적인 소설 못 쓰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충분히 유익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누구를 매질했다 죽였다는 말만 맨날 나온다.
이 인간이 하도 낭비를 한 덕에 조선은 재정이 개판이 되어버렸다. 연산군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살던 신하들도 그래도 이건 너무 심각하다고 생각했는지 적자가 난 장부들을 들고 가자 그냥 적자가 난 장부들을 다 없애버리는 것으로 적자를 해결하려 했다.
하도 좆같은 짓을 많이 해서 그런지 연산군의 자식들도 중종반정이후 다 뒤졌다. 물론 중종은 조카 만큼은 봐줄라 했는데 반정공신 신하들이 가만두지 않아서 어쩔수 없이 사형을 내렸다. 장례도 왕자의 예로 치루려 했는데 신하가 또 반대 했다.
연산군은 자식의 사망 소식 듣고 얼마 못가 자기 생일날 뒤졌다고 한다. 향년 30세
궁궐에서 곰 표범등을 풀어놓고 사냥했다고 한다. 상남자ㄷㄷ
디시인사이드와 철구의 대선배 격이다. 처음에는 의외로 건전하거나 잘했는데 가면 갈수록 맛탱이가 나가고 병신같은 짓을 해서 욕먹은것까지 동일하다.
외모[편집]
이 문서는 잘생기고 매력적이며,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남자에 대해 다룹니다. 순간 설레서 동인녀가 될 지도 모르니 열람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존나 잘생겼다고 함
이덕형에 죽창한화에서서
연산군의 외모는 "키가 크고 백옥같은 피부에 여자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라며 묘사했으며
소년시절 알현한 연산군의 외모를 본 노인의 말을 기록했음
또한 실록기록에서는 연산군을 험담한 죄로 처벌받은 김수명 이라는 사람이 잡혔는데
옆집에 놀러가서 지금 임금은 허리와 몸이 가늘어 위엄이 없다고 수다를 떨다가 그만 고발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고
어떤 사람은 :임금님은 얼굴도 뽀얗고 수염도 별로 없어서 기집애같음" 이라 말해 잡혔다고함
아마 대가리만 멀쩡했어도 모에뽕 받았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