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영조

조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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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의 역대 임금
20대 경종 이윤 21대 영조 이금 22대 정조 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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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인간으로서의 영조는 아동학대까지 저지른 개씨발놈인데 왕으로서의 영조는 능력자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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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조선 왕 목록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태조
(1392년~1398년)
정종
(1398년~1400년)
태종
(1400년~1418년)
세종대왕
(1418년~1450년)
문종
(1450년~1452년)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단종
(1452년~1455년)
수양대군
(1455년~1468년)
예종
(1468년~1469년)
성종
(1469년~1494년)
연산군
(1494년~1506년)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중종
(1506년~1544년)
인종
(1544년~1545년)
명종
(1545년~1567년)
선좆
(1567년~1608년)
광해군
(1608년~1623년)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능양군
(1623년~1649년)
효종
(1649년~1659년)
현종
(1659년~1674년)
숙종
(1674년~1720년)
경종
(1720년~1724년)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영조
(1724년~1776년)
정조
(1776년~1800년)
순조
(1800년~1834년)
헌종
(1834년~18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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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제국 황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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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1대 국왕
영조 | 英祖
묘호 영조(英祖)
시호

지행순덕영모의열장의홍륜광인돈희체천건극성공신화대성광운개 태기영요명순철건건곤녕배명수통경력홍휴중화융도숙장창훈정문선무희경현효대왕
(至行純德英謨毅烈章義弘倫光仁敦禧體天建極聖功神化大成廣運開泰基永堯明舜哲乾健坤寧配命垂統景曆洪休中和隆道肅莊彰勳正文宣武熙敬顯孝大王)

이금(李昑)
부왕 아버지: 숙종
왕후 원비: 정성왕후 계비: 정순왕후 김씨
왕가 전주 이씨
왕조 조선

개요[편집]

조선 대왕 중에 가장 오래 살고(82살) 가장 오래 왕을 해쳐먹은(재위기간 52년, 당시 기준이라면 재위기간만 어지간한 사람의 수명보다 10년 더 산 수준이었다.) 왕이다. 당시 40살이 평균 수명이었으니 그냥 평균보다 2배 더 산것이므로 지금으로 따지면 110살정도 살았다고 보면 된다.

사이코패스 기질[편집]

이복형 경종을 게장 먹여 쳐 죽이고 왕이 되었다. 그래서 조선사람들이 게장대왕이라고 불렀다.

물론 그런 이야기가 있지만 과연 단순히 게장과 감을 먹고 붕어한건지는 의심스럽기는 하나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 본인이 직접 안시켰어도 추종자가 했을 가능성도 많다

당시에는 천것이든 평민이든 중인•양반님들이든 왕족이든 소화불량으로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설사병은 물론 급체로도 사망하는 경우가 있었다.

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는 비빔밥을 먹다가 급체하여 사망하였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소화불량으로 사망하는 일이 꽤 자주 있었다.

독살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독살로 봐야할지 애매하기는 하다.

그렇다고 영조가 잘한게 아니다. 비 전문가이면서 인삼과 부자가 기를 되살려준다며 어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학서적 몇번 뒤적거린걸 부심을 부리며 어의에게 처방하도록 한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론이 득세하는 가운데에 자신을 보호해준 형 경종을 독살했다? 이건 대놓고 소론에게 모가지 내놓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

게다가 당시 경종은 간당간당하였다. 즉위 2년 당시에는 신하들과 국사를 논하다가 소변을 그자리에서 봐버린 것이다.

그정도로 몸이 간당간당했는데 영조가 고의로 곧 죽어가는 혈육을 죽이면서 까지 왕위를 이어간다는 것은 유교사회 조선에서 큰 짐이 될 것이다.

원래 선왕 경종시절에 이미 몇차례나 역모관련해서 이름이 걸려든적이 있었는데 다른 왕 시대였으면 애저녁에 박살이 났을 터였으나 경종이 ㅆㅅㅌㅊ 대인배라 형제의 의로써 살려주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경종에게 돌아온건 게장과 생감이었다. 이건 영조가 삼국지를 많이 읽었는데 거기에서 조비조창을 죽인 방법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집권직후, 불쌍하기 짝이없는 선왕 경종을 위해 노론 4대신 이하 역적들을 모조리 다 축출해낸 만고충신 김일경 이하 소론들을 씨발 다 개박살내는 피의 숙청을 단행하였다. 이러고도 강상의 도리가 뭐요?

이복형제 쳐죽이고 권좌에 오른 다음 피의 숙청끝에 왕노릇 한 시점까지만 보면 왕권에 집착하던 칼방원 빙의한거다.

나중에 가면 그걸로도 피가 모잘랐는듯 싸이코성을 십분더 살려 지가 싸지른 새끼 하나를 그렇게 못살게 굴고 쪼인트를 까대다가 미쳐돌아버리게 만든 다음 쳐 죽이는데, 죽일때도 사약 그런거 없이 뒤주에 가둬놓고 팽개친 바람에 사도세자는 그안에서 자기 똥오줌 받아먹으며 단백질을 보충하는 베어그릴스질을 하며 죽어가야했다. 이쯤되면 자기 왕권 위해 자기 자식 개갈궈대던 선조나 인조와 마찬가지로 소현세자 뒈짓시킨 막장임금 인조 짓거리가 된다. 친족살해자에(중세 부터 동서양 안가리고 욕 먹는 짓거리였다. 그것도 자식 상대면 더더욱) 스카톨로지나 즐기는 이런 싸이코패스새끼가 동복형도 아니고 이복형인 경종이라고 해서 못 죽일거라고 생각하는 새끼는 없겠지

자식새끼 쳐 죽이고 개선가를 울렸고 기다렸다는듯이 사도라고 시호를 내렸다. 즉 자기가 왕노릇 오래 해먹으려고 노린 계획적인 살인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 클라스 ㄱㅆㅅㅌㅊ 인정합니다 퍄퍄

서인 김춘택과 숙빈 최씨의 사이에서 난 아들이라 카더라. 이 말이 사실이면 경종 때에 이씨 왕조는 끝났다고 보면된다. 사실상 김씨조선. (부칸이냐?)

영조 초상과 비교해보자.

알 수 있는 방법이 있긴 있다. 무덤까서 유전자 확인 하면 끝이긴 한데 당연히 전주 이씨 씹새끼들이 게거품 물거라서 실현 불가능. 참고로 이 방법으로 나폴레옹 3세가 나폴레옹 집안과는 전혀 상관없고 엄마인 오르탕스가 간통으로 낳은 자식이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드러났다. 서구권에선 보통 역사적 증거 확보를 위해 왕릉들 유골 다 진작부터 검사해오는 판인데 전주 이씨 종친 일부 꼰대 씹쌔끼들 개미개함.

모 막장드라마에 의하면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딸만 이뻐하고 아들 사도세자는 존나 갈궈서 정신병 걸리게 하고 사고치고 다니니 뒤주가둬서 죽임.

조오오오오온나게 오래 살았다. 당시 남성이 환갑까지살면 오래산거였다 카더라. 근데 영조는 왕을 52년 했고 83살까지 살았다.

금주령안지켰다고 말단 공무원 하나 모가지를 직접 땄던 미친 새끼시다. 정작 지가 금주령 어긴다는 의혹을 신하들이 제기하자 오미자차를 마신다고 드립처서 넘겼다. 캬 내로남불 양심에 털난 짓거리도 역시 인조급. 다만 통치력은 역대급 밑바닥 찍은 인조보다는 윗급.

탕평론을 내세워 붕당을 자신의 주도하에 틀어막으려 한것만큼은 인정해줄만한 일이긴 하다만, 목적이 자신의 정당성 주장과 왕권 강화를 위함이지 사실은 정치적인 안정을 도모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사실 이걸 내세우고 한거라고는 출생지나 문파 구분없는 인재등용, 노론과 소론 대빵들 소집해놓고 훈계하기 정도가 다였다.

이는 정조때 까지도 계승되었지만 사실상 첫코가 잘못꿰어져 있었기 때문에 정조때의 벽파시파의 본질(사도세자 사사)을 살펴보면 문제점과 모순이 여실히 드러난다. 지는 왕권에 집착하고 후대에 똥싸지른것 보면 딱 인조짓거리. 그래서 딱히 공이라고 볼게 없다. 있다면 농사기술 기반닦기?

선견지명 있던 탈조선 관원 하나가 지돈들여 힘겹게 청나라 궁중에 있던 외국 선교사한테 직접 서양 천문 서적들, 망원경, 측후기, 지도 등을 구해 바쳤는데 역시 윗대가리가 헬조센 마인드 였으니 망원경은 깨부심ㅋ

여기서 우리는 이인간의 싸이코패스성을 엿볼 수 있다....라곤 하는데, 승정원일기에선 좀 다르게 나온다고 한다. 일단 승정원일기 영조대가 번역될때까지 함 기다려보고 나중에 편집해보자.

단지 성격이 불 같았을 뿐 이라고 쉴드치는 병신들이 있는데 싸이코 새끼는 싸이코 새끼다.

출신의 정통성 논란이 즉위기간 내내 있었는데 이거 때문에 영조는 컴플렉스가 심했다.

노오오오오력으로 인정받기위해 그때부터 자기관리가 매우 철저했는데 워낙철저하다보니 신경과민에 예민함이 하늘을 찔러 싸이코패스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영화 '사도'에서 송강호가 맡은 배역이다. 지 아들을 갈구고 갈궈 미친 새끼로 만들고 직접 조진 역사적 반인격장애자 쓰레기새끼다.

영화에선 어떻게든 둘다 쉴드치며 띄우려고 애를 썼지만 실상은 영조가 장헌세자에게 국무를 맡겼다가 본인의 꼰대마인드와 너무 어긋나자 모질게 대하다 결국 사사한 것이 정론이다. 잊어서는 안되는게, 영조는 어릴적부터 암살의 위협을 늘 떠안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의 권위를 위해선 그, 누구도 죽일 수 있는 사이코패스였다. 본인의 왕위와 왕권에 대한 집착도 평생 엄청났고.

이런 사이코패스 씹새가 또 살긴 존나 오래 살았다. 재위기간 봐라. 궁궐 벽에 똥칠하도록 살았으니 그 동안 궁이 개판되는 건 당연하지 쯧쯧

'으앙ㅠ 그래도 주위에서 사도세자 죽일려고 존나 모함하니까 속아서 죽인 거 아니에요? 그래서 나중에 후회해서 생각할 사, 슬퍼할 도 해서 사도세자라 한 거잖아요 ㅠㅠ우리 영조 싸이코패쓰로 몰지 말아요 ㅠㅠ'하는 빡대가리가 아직도 종종 보이는데, 실제로는 그딴 거 없고 사도세자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사도세자라 불러'란 명을 내렸다. 걍 아들을 계획적으로 제거한 희대의 싸이코패쓰 인간쓰레기가 맞다. 너무 옛날 인물이라 그러려니 해서 그렇지, 요즘 같았으면 아들 죽인 막장부모라고 뉴스에 나오고 난리도 아니였을 것이다. 엽기성으로 따지면 2016년에 발생한 부천 여중생 백골시신 사건과도 견줄 수 있다.

그리고 가족이나 신하들에게 개깩끼였지, 백성 입장에서는 성군이었음. 균역법, 악형폐지, 청계천 준설, 법전 개찬(속대전), 디시위키에서 그리 빠는 노비종모법 법제화, 동국문헌비고 편찬, 서원 정리 등등.. 경제적으로도 많이 안정되었고 생산력도 높아짐. 조선 역대 임금 중에서도 업적으로는 탑급인건 ㅇㅈ? 어 ㅇㅈ?

디시위키 자체가 까는 게 중심이라 그렇지 당시 행정이나 법을 다듬고 정권 바뀌면 오락가락하던 정책은 이 할배가 장수한 덕분에 잘 정착하면서 다음 세대인 정조까지 포텐이 이어질 수 있었다

또라이성은 선조 인조 준하는 급의 또라이긴 하지만 인조보다는 능력은 좋은 할배다

우리 할부지때리지말어욧ㅠㅠ

특이사항으로 늙어서 이빨이 새로났다고 한다 환골탈태해서 신선될거라고 믿었다던가

암행어사 야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이 시대 인물.

이래봐도 손자에게 우대해줬다.

정작 손자 정조가 이 개씨발새끼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지, 파묘 자리에 이 새낄 파묻었다. 이 새끼 무덤인 원릉이 효종의 영릉이 지금의 자리로 이장하기 이전에 있던 파묘자리다. 참고로 파묘 자리는 일개 백성들조차도 자기 부모님이나 조상님을 모실 때 기피하는 흉지 중의 흉지다. 정조가 얼마나 이 씨발새끼를 증오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업자득이다 씹새야. 지옥 가서 자기 아들한테 백번 천번 사과해도 모자랄거다. 씨발새끼.

업적이 있다고 정신병걸리도록 자식을 학대하고 막장부모인 인간이 그래도 조선 중흥기를 이끈 임금이라고 치부받는 점에서 헬조선의 결과중시주의를 볼 수 있다. 카악 퉤.

한 마디로 병신같은 틀딱+막장 부모를 합쳐놓은 표본 그 자체다. 앞으로는 이 씨발새끼를 영좆 아니면 연잉군으로만 부르도록 하자.

일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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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사이코라 불리우는 연산군도 영조 앞에서는 선뜻 명함을 못내밀거다.

일단 애미 부터가 대가리 좋은 아버지가 장희빈 조지고 새로운 좆집을 찾았는데 그 좆집은 바로 궁중 계집종 나인들 세숫물 셔틀 무수리 숙빈 최씨다. (이거 존나 큰 컴플렉스로 작용함)

이 천한 핏줄 가지고 왕이 되고 싶어서 빼애액 거렸는데 형이 자식이 없는거 가지고 트집 잡아 세제가 되더니 여러 역모에 가담하고(이거 경종이 대인배라 이씨집안 너와나 뿐이다 하고 봐줌) 어렸을때 암살위협으로부터 지켜주던 형에게 게장과 감으로 빅 엿을 처먹인다.

형 통수 치고 왕이 되더니 형이 항상 말하던 나 죽어도 내 신하들 하고 척지지 말고 친하게 지내라는걸 개씹고 바로 팽해버린다. 이후 좆같다고 팽당한 신하들이 들고 올라오니 죄다 직접 모가지를 따 주셨다.

이런 저런 반란 다 진압하고 어느정도 안정기가 되자 귀한 아들을 싸질렀는데 이 애새끼가 바로 사도세자다. 원래 100일때 글자 처읽을 정도로 총명했던 사도세자가 대가리 커지면서 무골 성향이 나타나자 이게 마음에 안든다고 뻑하면 갈구고 선위 파동 일으켜 스트레스를 존나게 줘서 미친놈으로 만들어 주셨다. 지가 갈궈 놓고선 세자가 미쳐버리니 감당 안되니 뒤주에 가둬 넣는다. 처음에 신하들도 진짜 죽이겠어? 하면서 물도주고 화장실도 보내주고 했는데 이 소식 듣자마자 불같이 화내며 금지 시켜 놓고 결국 세자가 죽자 질질 짜더니 사도세자라 해 이 말만 한다.

늙어 뒤지면서도 고추도 안서는 새끼가 로리보지(가례를 올릴 때 영조는 66세 정순왕후 김씨는 15세였다.) 따먹고 싶다고 새 부인(정순왕후 김씨. 여담으로 조선조에 정순왕후 송씨도 있는데 이 분은 단종의 중전이셨다.) 들여와 세손 앞길에 푸짐한 똥을 싸주셨다.

정순왕후 김씨랑 혼인할 생각은 있으면서 죽은 전 부인인 정성왕후 서씨에게는 부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싸이코 기질을 보여줬다.

영조 본인은 경희궁에 있으면서 자기가 왕자 시절부터 부부였던 정성왕후 서씨는 창덕궁으로 보내면서 서로 평생 별거하였다.

정성왕후 서씨의 회갑잔치를 열어드리는게 어떠냐고 영의정이 아뢰자 그걸 왜 열어? 라며 회갑잔치도 안해줬다.

정작 경종의 정실이였던 선의왕후 어씨의 장례기간에는 당시에는 품계가 귀인이였던 사도세자의 생모 선희궁 영빈 이씨의 품계를 빈으로 올리고 잔치까지 해줬다.

정성왕후는 승하하기 몇년 전부터 몸에 이상이 생겨 통증을 호소했는데 이를 의관이 정성왕후의 용태를 진찰하고 마누라 이야기면 쌩깔게 뻔한지라 영조의 내시에게 알렸다. 내시는 이를 듣고 심각하게 여겨 영조에게 아뢰었는데 정작 남편인 영조는 담증가지고 엄살부린다며 씹었다.

사망 당시에는 각혈을 하고 팔다리가 심하게 붓었는데 정작 영조는 자기 마누라 그것도 한나라의 국모인 중전의 장례에 참여를 안하고 같은 날에 죽은 사위의 장례식에 갔다.

대소신료들이 경악을 하며 서둘러 정성왕후의 장례식에 먼저 참석할 것을 요구하자 요구한 관리들을 다른사람으로 바꾸면서까지 정성왕후의 장례식보다 사위의 장례식에 먼저 참석하는 것을 강행했다.

생전에 사도세자를 친자식처럼 아낀지라 사도세자가 오열하면서 정성왕후의 장례식에 참여했는데 영조는 그것 가지고 니 옷 꼬라지 뭐냐라며 타박하고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영조의 싸이코 기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성왕후의 위패가 모셔진 휘령전에 신하들을 이끌고 사도세자와 같이 가서 절을 한 후 신하들에게 "니들도 들었지? 정성왕후의 혼이 나에게 세자가 역모한다고 알려줌" 이러면서 궁을 봉쇄한 후 사도세자에게 자결할 것을 요구하나 직접 뒤주에 못박아 버리는 임오화변이 벌어졌다.

생전엔 폐비만 안했지 평생을 암묵적으로 구박한 마누라가 알려줬다는 희대의 개드립을 친다.

실제로 정성왕후의 혼이 있었다 하더라도 자기가 한게 있는데 알려줬을지 의문이다.

덤으로 정조가 처음 태어났을땐 존나 미워하던 자식새끼인 사도 세자의 아이라는 이유로 고까워했었다. 그러다가 정조가 어린 나이에 총명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자 이뻐해주는 등 우디르급 태세변환을 보여줬다.

업적[편집]

아무리 싸이코 같아도 업적은 꽤 많다. 그냥 존나 오래살았으니 이에 따라 업적도 많아진 것.

붕당정치의 폐해를 줄이고 왕권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탕평책을 실시했으나 영조 자신의 정치적 입장으로 인해 자신의 정치적 지지자들을 많이 깔아야 했고, 이는 당파간 세력 불균형으로 직결되어 실질적으로 완벽한 탕평 정치가 이루어지기는 어려웠다.

또한 이 시기에 정치를 주도하던 세력은 여전히 노론이었으므로 이 시기의 탕평책을 완전한 탕평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초반 영조 즉위 후 노론이 (노론 4대신을 죽이고 삼수의 옥을 계기로 노론을 압박한) 소론을 박살내려 했으나 영조의 반대 등으로 처리하지 못하자 강경드라이브를 걸었고 영조는 이에 정미환국을 단행해 노론을 몰아내고 소론을 등용시켜버렸다. 물론 등용된 것은 온건파인 완론 소론이었지, 준론 소론은 아니었다. 이후 벌어진 준론 소론과 남인이 합세한 이인좌의 난에서 이 완론 소론은 난을 집압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하지만 이후 남은 준론 소론 잔당들의 난리법석에 서서히 소론의 세는 위축되었고 결국 노론이 집권하게 된다.

일부 드라마 등에서는 영조가 실권없이 노론에게 떠밀려다닌 군주로 묘사되긴 하지만 이는 실상과 정반대다. 민진원, 정호를 비롯한 강경파 대신들이 죽은 영조 10년 이후로 노론은 사실상 영조에게 아부하고 아첨하는 것으로 정권을 유지했어야 할 만큼 영조는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다. 유척기를 비롯한 외골수들은 끝까지 토적을 외치면서 탕평을 무시했지만 그런 이들의 주장에 혹해서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바로 조정에서 대숙청의 바람이 불곤 했다. 

영조의 즉위 초반에는 노론이 탕평하자는 영조의 말도 듣지 않고 열받은 영조에게 정미환국 한방으로 날아가고 소론 정권이 들어서기도 했으며 영조 즉위 중후반부에 《천의소감》이란 책을 지으면서 집권 노론이 소론을 폄하하고 설치다가 분노한 영조에게 "이 미친놈들이 숙종 시절의 남구만, 유상운까지 들먹이면서 헛소리를 해? 당론을 위해 이 책을 지었느냐? 태아검(왕권을 상징)이 누구에게 있는지 니들이 까먹었나 보지?"란 일갈에 한방에 날아갈 뻔하자 싹싹빌고 다시는 안 까불겠다고 맹세한 일도 있다. 

결국 영조는 경주 김씨를 비롯한 노론 명문가들에게 지친 나머지 명문가들을 쩌리로 만들고 풍산 홍씨같은 한미한 가문을 순식간에 조정 영수로 만들어 놓았고 영조 말은 당파가 붕괴되고 척신 정치로 귀결된다.

가혹한 형벌을 없애는 데 신경을 써서 압슬형,낙형,자자형과 같은 고문을 없앴으며, 균역법을 실시해 조세제도의 모순을 어느정도 개혁하는 데 성공했고 서원의 중복 설립 금지,청계천 준설공사,서얼들에 대한 차별 완화 등 긴 재위기간 동안 많은 치적을 남겼다. 

통치기간 동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한 전화가 그의 재위기에 완전히 수습되어 나라가 상당히 안정적이었으며, 일반 백성들에게는 상당히 너그러웠지만 관리들이 죄를 지으면 엄하게 죄를 물었다. 또한 상당히 검소한 삶을 살았는데, 왕의 침실에 누덕거리는 이불과 베개만이 있고 식사는 밥과 김치, 장류 정도 뿐이었다고 할 정도였다고. 사치스런 가체를 금지하고 족두리로 대신하게 한 것도 영조대 부터다.하지만 잘 지켜지지는 않아서, 순조대쯤에야 사대부나 민가에까지 정착하게 된다. 

ㄴ 사실 이게 영조의 업적의 대부분이라고 봐야 된다. 예로부터 성군은 백성들을 어여삐 여기고 그들의 삶을 돌봐주는 것. 관리들이나 재상들 집권가들한테 뭐를 한들 폭군의 기준이 안된다. 연산군이 진짜 폭군이었던 이유는 바로 백성들의 삶을 힘들었게 했기 때문이다. 50년 넘는 세월동안 백성이 평화로웠으면 영조가 아무리 양반들한테 어떤 개지랄을 떨든 백성들한테는 영조가 성군이었던 것이다.

또한 연과 여(왕과 왕비가 타는 가마)에 원래는 금으로 칠을 하던 것을 주석으로 대체하게 하기도 했다. "곡물을 낭비하게 된다."는 이유로 수십년 간 금주령을 내린 것도 이런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비슷한 이유로 양반님들이나 살법한 기와집 한채를 능가하는 노애미 가격과 목한번 잘못 굽혔다가 사람 목뼈 작살내서 요단강 태우는 노애미 무게를 자랑하던 당시 여성들의 사치품인 가체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영조가 가체를 금지시킨 이후 여성의 헤어스타일은 뒤꽂이, 비녀, 족두리가 결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조 본인도 술에 대한 욕망을 끊지 못해, 조선왕조실록 곳곳에는 몰래 먹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기록이 나온다. 본인은 "오미자차였다"고 변명했다. 또한 말년에 다리병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송다(松茶)를 마셨다는 기록이 많은데 말이 좋아서 차였지. 이것도 솔잎과 누룩을 넣어 만들었으니 사실상 술이나 마찬가지였다.

싫어하는 음식[편집]

감과 간장게장을 싫어한다.

참고로 감이랑 게랑 같이 먹으면 물설사를 존나 하면서 몸 여기저기 근육통이 느껴진다고 한다 경종은 설사에 한의사들이 침놓고 부앙뜨니까 뒤진거다


내 소개를 하도록 하지!! 나의 이름은 참견쟁이, 스피드왜건!!
이 문서는 지독할 정도로 설명충 냄새가 나! 짜증난다고! 토사물보다 못한 냄새가 풀풀 풍긴단 말야!
객관성을 위해 재미를 없앴다고? 아니지!! 이 문서의 작성자 또는 대상은 태어날 때부터 노잼이라고!

경종이 죽은 이유에 영조가 관련되어 있다는 설이 있는데, 그 설의 중심에 이 감과 간장게장이 있다.

경종은 몸이 좋지 않아 서로 상극인 음식을 먹으면 되지 아니했는데,

이 감과 간장게장은 서로 상극이다. 이 음식들을 올리게 한 것이 영조라는 설이 있어서 독살설이 퍼진다.

후에 이인좌는 이걸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좋아하는 음식[편집]

송이(松茸)·생복(生鰒)·아치(兒雉)·고초장(苦椒醬) 이 네 가지 맛이 있으면 밥을 잘 먹으니, 이로써 보면 입맛이 영구히 늙은 것은 아니다.

 
— 1768년 7월 28일


고추장, 송이버섯, 전복, 고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중 고추장을 특히나 좋아해서 늙어서 고추장 안내오면 밥안먹겠다고 빼애액거리기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