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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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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메리 1세[편집]


15세기 16세기 관련 문서 17세기
16th Century / 16世紀 / 1501년~16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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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I (18 February 1516 – 17 November 1558)

메리 1세
Mary I "Bloody Mary"
생년월일 1516년 2월 18일 ~ 1558년 11월 17일(42세)
출생지 잉글랜드 런던 그린위치
별명 피의 메리
종교 가톨릭
소속 잉글랜드와 프랑스(명목상)의 왕
←이전 국왕다음 국왕→
(1553년 7월 19일 ~ 1558년 11월 17일)
국왕 잉글랜드,프랑스,아일랜드


소개[편집]

아버지 : 헨리 8세,어머니: 아라곤의 캐서린

가문: 튜터 왕가 House of Tudor'

독실한 가톨릭교도였던 메리는 개신교도들을 1년동안 하루 300명씩 꾸준히 화형시켜서 블러디메리라는 별명을 얻게되었다.

근데 이것도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게 당시 애비새끼가 바람나서 자기 애미를 쫒아내기위해 만든게 영국 국교회였다. 당연히 좋아할리가 없었고 헬조선의 모 임금호소인자기 엄마를 죽인 세력들을 모조리 사약배달한 것 마냥 죽여버린 것이다.

결혼[편집]

남편과 찍은 사진

자기결혼에 관심만있던 아버지 헨리 8세 때문에 37세까지 '처녀'였으며 결혼은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2세와 했다. 나이차는 11살차이나며 메리가 더 많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잉글랜드를 방문해도 합방을 매일 미뤘으며 아이도 당연히 없었다.

그러나 메리는 젊고 잘생긴 펠리페 2세를 좋아했고 어느날 독실한 가톨릭 교도인 남편이 신교도를 없에면 좋겠다고 하자 궁정에있던 개신교도를 모조리 처형하는 등 남편에 맹신했다.

작위[편집]

"By the Grace of God, Queen of England, Spain, France, Jerusalem, both the Sicilies and Ireland, Defenders of the Faith, Archduchess of Austria, Duchess of Burgundy, Milan and Brabant,Countess of Habsburg, Flanders and Tyrol"

 
— 결혼후 공식작위

하느님의 은총으로 잉글랜드, 스페인, 프랑스, 예루살렘, 양시칠리아 그리고 아일랜드의 여왕이자, 신앙의 수호자, 오스트리아의 대공비, 부르고뉴 공작부인, 밀라노와 브라반트, 합스부르크, 플랑데르와 티롤의 백작부인.

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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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시다. ......만약 너가 부담하실 수 있다면.
강한 여성...지배...왜곡된 성욕......

ㄴ 키 183cm로 엄청난 거인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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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시오 의사양반 제 멘탈은.. 끄어어얽!!

Mary I

메리 1세
Mary I
생년월일 1542년 12월 8일 ~ 1587년 2월 8일 (44세)
출생지 스코틀랜드 린리스고
종교 가톨릭
국왕 스코틀랜드, 프랑스의 왕비

소개[편집]

아버지 : 제임스 5세,어머니: 기즈의 마리

가문: 스튜어트 왕가 House of Stuart'

엄청난 여자 거인으로 엘리자베스 1세도 떡대가 장난이 아니었는데 그런 엘리자베스 1세보다도 훨씬 컸다. WWE로 따지자면 엘리자베스 1세가 언더테이커라면 얘는 자이언트 곤잘레스에 비견할 만한 덩치이다.

첫번째 결혼[편집]

첫번째 결혼은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16살의 나이로 나중에 프랑스의 왕이되는 커여운 14살짜리 프랑수아 2세 왕세자랑 결혼한다. 둘은 메리가 6살이던 시절부터 왕궁에서 같이지낸 소꿉친구였고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서로 부부사이는 좋았다고 한다. 그녀는 스코틀랜드 여왕이였지만 프랑스가 노는물이 다르다며 프랑스에서 지냈으며 스코틀랜드는 어머니가 대신 통치했다. 시어머니이자 앙리 2세의 왕비 카테리나 데 메디치를 보함하여 시댁 식구들은 그녀를 아꼈다. 당시 귀중한 진주를 며느리에게 선물로 주며 진심으로 아꼈으나 눈치가 없는건지 콧대가 높은건지 시어머니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발언을 한다. 바로 시어머니에게 "피렌체의 장사꾼"이라고 발언한 것 당연히 벼락출신 귀족인 시어머니 카테리나 데 메디치의 눈밖에 나게되고 대판 나중에 이것이 큰 화근이 된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키가 180센치일정도로 건강했지만 항상 골골되던 남편이 왕 즉위후 1년 3개월뒤에 죽어버린다. 어린시절부터 혼방은 했으나 서로 나이가 어린지 아이를 가지지 못했고 그녀는 18살에 과부가 되어 프랑스를 떠나 스코틀랜드로 돌아간다.

스코틀랜드 지배[편집]

그녀가 스코틀랜드로 돌아오자 개신교의 분파인 장로교가 퍼졌는데 하이랜드 지방의 대규모 클랜(카톨릭 교도)들과 로우랜드 지방의 귀족들(칼뱅파 신교도)간에 대립이 격화되고 있었다. 여기에 잉글랜드의 헨리 8세가 스코틀랜드 왕위를 주장했고,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전면전에서 여러 번 깨지는 통에 왕의 권위는 크게 떨어진 상태여서 매우 노련한 통치가 필요했다.

두번째 결혼으로 그녀는 사촌사이인 단리 경(스튜어트 가문의 분가로 단리가 본거지였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과 결혼했는데, 순전히 정략결혼이었고 두 사람 사이엔 애정은 전혀 없었다. 연하인 남편 단리 경은 인격에 문제가 있었고(술만 들이키면 폭력을 휘둘렸고 평상시에도 오만한 성격이었다), 메리는 이런 남편을 극혐하여 시종이자 이탈리아 인 음악가인 다비드 라치오와 가깝게 지냈는데 불륜 관계가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해졌고, '하인에게 아내를 빼앗긴 호구'라는 인식이 찍힌 단리 경은 이에 빡쳐서 귀족들과 짜고 라치오를 메리의 앞에서 죽였다.

음모와 관련없는 것처럼 시치미를 뚝 뗀 단리 경은 불안해하는 메리를 데리고 도망쳤다가 보스웰 백작과 만나 그에게 도움을 받아 왕궁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진실을 알아챈 메리는 남편을 죽이기로 마음먹고 이미 불륜상대였던 보스웰 백작의 조언에 따라 라치오 암살자들을 사면시켜주는 등 연막을 펼쳤고 아들인 제임스 1세가 태어난 후 얼마 안 되어서 화해하는 척 그를 유인했는데 며칠 후 단리 경이 머무르던 저택에서 폭발 사고가 나서 측근들은 전부 폭사했고 본인은 목이 졸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는 메리와 보스웰 백작의 음모라는 소문이 외국까지 퍼지면서 메리는 대내외적으로 신망을 크게 잃게 된다.

여기에 기름을 부어버린 행동이 아무리 성격이 막장이고 반역급의 죄를 저질렀다고는 해도 엄연히 여왕의 정식 배우자란 사람이 죽었는데 형식적으로라도 진상조사 없이 암살범으로 의심되는 자와 재혼을 덜컥 해버린 것이다. 이 때까지는 하이랜드 지방의 가톨릭 클랜들이 메리를 지지했지만 이건 도저히 옹호를 해줄 수 없는 행위라서 종교를 떠나 스코틀랜드 귀족들 전체가 들고 일어나 반란을 일으켰다. 메리는 진압을 시도했으나 스코틀랜드 전체를 적으로 돌린 꼴이라 게임이 안 되었고, 갓난아이인 친아들 제임스 6세에게 강제로 양위한 후에 로클레벤 섬에 유폐되었다. 이후 두 번의 시도 끝에 탈출에 성공하여(첫 번째는 세탁부로 위장했는데 일하는 사람치고는 피부가 너무 하얘서 경비병에게 발각되었고 두 번째는 성 문지기의 아들을 꼬셔서 성공)재기를 꾀했으나 메리가 모은 병력은 경험 없는 오합지졸이라는 걸 간파한 모레이 백작(제임스 6세의 외삼촌으로 갓난아이에 불과한 제임스 6세를 대신하는 공동 섭정이었다)이 기습공격으로 병력을 한큐에 와해시켜 실패하고 만다.

원래 있었던 프랑스로 갈 수도 없고(위 단락에서 옛 시어머니 카테리나 드 메디치의 분노를 산 행동 때문에 망명을 안 받아줬다) 스코틀랜드에도 머무를 수 없었던 메리는 이복 동생이 있는 잉글랜드로 가게 된다. 엘리자베스 1세는 땡전 한 푼 없이 망명 온 메리가 유일하게 가까운 친척이었고, 군주의 입장에서 신하들이 왕을 내쫓은 걸 곱게 보지 않아서 거처를 마련해주고 연금까지 주며 생활하게 했다.

통수와 죽음[편집]

하지만 메리는 잉글랜드의 왕위를 줄기차게 주장한 전적이 있었고, 가톨릭 빠순이인 메리의 존재 자체가 프랑스나 에스파냐 같은 국가들에게 잉글랜드로 쳐들어올 좋은 빌미거리였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1세의 입장에선 시한폭탄과 다를 게 없었다.

여기에 메리는 망명 후 1년이 지난 시점부터 수 차례 모반을 꾀했다가 적발되어 은혜를 원수로 갚은 셈이 되었고 잉글랜드의 왕위를 노린다는 게 분명해지자 엘리자베스 1세의 측근들 사이에서 메리를 처형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해졌다. 하지만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걸 미루는 우유부단함이 있던 엘리자베스는 점차 대우를 낮추긴 했어도 18년 동안 셰필드 성으로 메리를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사형을 미루었다. 그러나 또 왕위를 찬탈하려는 음모가 발각되자 더는 버틸 수가 없던 엘리자베스 1세는 재판에 회부한 후 사형판결을 언도받아 집행시켰다.

어린 시절을 화려한 프랑스 궁정에서 보낸 메리는 죽는 그 날에도 패션에 신경을 썼는데 순교를 상징하는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그 위에 검은 망토를 걸친 차림으로 사형장에 당도했고 사형대에 머리를 올린 후 목이 떨어질 때까지 주여, 당신께 내 영혼을 맡기나이다고 기도문을 되내였다고 한다.

친아들인 제임스 6세가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요청을 하긴 했지만 시늉만 하고 실제로는 방관했는데, 메리가 없어야 엘리자베스 1세의 추정상속자가 자신이 되어 잉글랜드 왕위를 받을 수 있다는 정치적인 판단도 있었고 제임스 6세가 메리를 만난 건 기억도 안 나는 갓난 아기 시절이 전부였고 어머니란 작자는 한 달 밖에 안 된 자기를 내팽게치고 놀러나가는 등 어머니 노릇을 전혀 안 했고, 어머니에 적대적인 귀족들 사이에서 자라면서 '니 어미가 아비를 죽였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기에 모자 간의 정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형 집행이 완료되자 즉시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피가 튄 자국을 전부 닦아 성지순례를 예방한 뒤에 알코올로 방부처리하여 납관에 안치한 후 피터버러 성장에 매장했다. 훗날 통합 왕국의 첫 군주가 된 제임스 1세가 메리 1세의 묘를 개장하여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재매장했는데 엘리자베스 1세의 바로 옆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