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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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al War
개요[편집]
원기옥 현실판. 근대 이후 국가가 쓸 수 있는 초필살기. 그냥 국가삭빵전이다.
상세[편집]
국가의 모든 자원을 쥐어짜서 전쟁을 수행하는 체계 및 그러한 전쟁 자체를 이르는 단어다.
모든 자원이란, 단어 뜻대로 ㄹㅇ '모든'이다. 경제, 문화, 사회기반, 국민 모두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자원으로 동원된다. 총력전 체제 하에서 국가의 모든 생산수단은 군수시설이 되고, 국가의 모든 교통시설(도로, 철도, 항구, 공항)은 군의 전략시설로 전환되며, 국가 구성원은 모두 예비전투병으로 분류된다. 처음엔 건장한 남성 청년, 다음엔 장년, 그것도 모자르면 아동청소년과 노인들. 여성들은 처음엔 군수물자 생산에, 나중엔 군인으로 징병된다. 언론과 문화는 국가 구성원들의 전의를 고취시키고 적국에게 프로파간다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환된다.
기원[편집]
동양의 경우[편집]
현대 총력전 체계와는 다르긴해도, 원시적인 총력전 체제를 기원 전부터 갖추었다. 이는 정치체계의 발달과 지리기후적 요소가 겹친 결과로, 쌀을 위시한 곡물로 인구 부양력이 높으며, 유교적 문화로 일찍부터 중앙집권체제를 갖출수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즉,
- 중앙집권제는 곧 관료제의 정비며 이는 국가 구성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소리다. 당연히 효율적인 징병을 할 수 있는 제도적 바탕이 된다.
- 풍부한 강수량을 바탕으로 대량 생산에 적합한 쌀, 보리 등 곡물의 존재는 인구수 증가와 더불어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기에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 지역은 일찍부터 전시 동원병력수가 서양에 비해 높았다.
(예를들어 당장 한국사만봐도 11세기초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을할때 작은반도국에서 20만이라는 그당시로서는 대규모의 징병을통해 전쟁을치뤘는데 사실 이숫자는 말그대로 고려의 인적자원을 모두짜낸것으로 사실상 이때 고려는 원시적인 총력전에 돌입했다할수있겠다.)
서양의 경우[편집]
근대 이전까지 전쟁에서 동원된 총 병력 수가 15만을 넘지 않았다. 로마제국 멸망 이후 중세 서양의 정치제는 봉건제를 기초로 두었으며, 이 시기엔 왕이라 해도 봉신들의 병력을 마음대로 동원하지 못했다. 계약관계라는 독특한 관계와 더불어 그 근간이 장원제도라는 체계에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중세가 지나 근세에 이르러도 여전히 병력규모가 크질 못했는데, 용병들이 각국 군대의 근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지배자는 용병을 '고용'해 전쟁을 수행했으니,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이런 군 체계로는 대규모 상비군을 유지할 수 없었다.
ㄴ단 발칸은 사정이 달랐다.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이 따먹히고 오스만이 등장하면서부터 발칸은 땅따먹기가 아니라 정말로 생존을 위한 전쟁으로 돌입했고 이때부터 발칸 내에서는 서유럽식이 아닌 대규모 전투가 자주 벌어졌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부터 서양 군사사상에 일대전환이 일어난다. 왕 모가지를 날려버리고 세워진 공화국의 전쟁이란, 왕들의 전쟁이 아닌 국민들의 전쟁이 되버린다. 국민 개병제 개념이 등장했고, 시민의 의무의 하나로서 국가의 수호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이전에 비해 훨씬 저렴하게 대규모 병력을 항시 보유할 수 있는 기반이 등장한 것이다. 프랑스에 맞서는 국가들도 이에 맞서기 위해선 대규모 병력을 유지해야 했고, 영국과같은 입헌군주제국가는 왕권신수설이라는 개념을 버린지오래라 국민개병제로 빠르게 갈아탈수있었고 프로이센도 늦지만 어느정도 신분평등과같은 국민의권리를 인정해주면서 자연스레 국민개병제가 정착하게되었다. 결국 서구의 전쟁규모는 이전시기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이 급증했다는 점을 들수있다. 생산력의 증가는 군대의 무기와 보급을 더 저렴하게 할 수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현대 총력전의 시작: 천조국의 남북전쟁[편집]
미 남북전쟁은 정치사회적 영향이 크지만, 군사사史적으로는 현대 총력전의 개념을 제시했다는 중요성을 지닌다. 특히 북군의 장군인 윌리엄 테쿰세 셔먼[1]이 이끄는 군단의 기동은 지나치는 남부 지역의 산업기반을 초토화 시키는 방법을 시행했다.[2] 남군과 북군의 지휘관들이 모두 전투를 승리하기 위해 싸웠다면, 셔먼은 남부의 전쟁수행을 가능케하는 기반을 파괴하기 위한 전투를 했다는 것이 그 특징으로, 셔먼의 전략기동으로 입은 남부의 피해는 1억달러에 육박했다. 현대기준으로 환산하면 100억 달러 이상. 전쟁 종결 이후 남부가 이때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데만 십년이 넘게 걸린다.
아무튼 상대방 전력의 파괴뿐만 아니라 전쟁수행기반을 파괴한다는 개념, 그리고 그 개념을 적극적으로 작전에 반영했다는 점에서 현대 총력전의 효시로 볼 수 있다.
현대 총력전의 완성: 양차대전[편집]
“ |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 그것은 그쪽 정부와 함께 우리와 싸우는 민중들이고 우리는 무장한 적군하고만 싸우는것이 아니다. 그래서 소위 죄 없는 방관자를 죽이는 것을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 ” |
“ | 일본의 도시란 이런 모양이다. 공장이 있다. 그 옆에 민간인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자기네 집에서 조그만 부품들을 만든다. 그걸 가내수공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 스즈키네는 64호 볼트를 만들고, 옆집 하루노보네는 64호, 65호나 63호 너트나 다른 잡동사니를 만드는 식이다. 그러면 키타가와 씨가 그걸 정리해다가 공장으로 가져가는 거다. | ” |
위 인용문은 둘다 인류사 최고의 통구이 셰프 르메이 성님의 발언이다. 이 문장에 현대 총력전의 본질이 다 들어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산업화 체계는 더 정밀해졌다. 제국주의 시대를 주무르던 열강들이란,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고도의 공업화를 이룩한 국가들이다. 넘치는 생산성이 자국 경제에 악영향을 주지않기 위해 시장을 개척하고 자원확보를 위해 아프리카와 동양 곳곳을 식민지로 삼았던 국가들이다.
또한 관료제도 고도로 발달한다. 이제 각국은 언제든지 국내의 인적자원을 효과적으로 징병해 병력을 확충할 수 있다. 한편 철도의 발달은 대규모 수송을 가능케 했는데, 이제 규격만 맞는다면 계획된 시간에 인적 물적 수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될 것이라고 믿어졌다.
따라서 전쟁의 규모가 미친듯이 커지게 된다. 총력전 체계가 본격적으로 작동한 것은 1차대전이다. 전쟁에 참가한 모든 국가들은 '효율적'으로 자국의 자원을 쥐어짜서 전쟁을 수행했다. 답도 없이 철조망+기관총+참호에다가 병력을 꼴아박아서 문제지. 1차대전의 종결은 독일제국의 전투병력이 모두 손실되서 항복한 것이 아닌 끌어다 쓸 자원이 바닥난 독일 내부의 반발 때문라는 사정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아무튼 이걸로 학을 뗀 유럽국가들은 한동안 전쟁을 할 엄두를 못낸다. 그러나 다시금 독일에서 낙지가 등장하고, 이번엔 아시아 섬원숭이까지 날뛰면서 두번째로 세계규모의 전쟁을 치루게 된다. 바로 2차대전의 시작이다.
2차대전은 항공기의 전력화와, 그로인한 전략폭격이 본격화 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1차대전에도 독일이 비행선을 이용한 영국 폭격을 시도했지만 그리 효율적이진 못했다. 그러나 발달된 항공기는 어마어마한 양의 폭탄을 투하할 수 있었고, 항속거리도 비행선에 비하면 훨씬 길어졌다. 이것은 전선에 상관없이 상대방 공업지대를 공격하여 전쟁수행기반을 파괴 혹은 일시적 마비시킬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군수공장의 경우, 비록 그곳에서 일하는 인원이 민간인이라 할지라도 전쟁수행을 돕는 직접적으로 돕는 '인적자원'이기 때문에 폭격에 휘말려도 죄를 묻지 않았다. 한마디로 SCV나 드론은 공격해도 민간인 학살이 아니라는 점이다.
적어도 1차대전까지만 해도 후방의 민간인들은 전쟁의 직접적인 위협에서 벗어나 있었다. 1차대전은 총력전이라는 체계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전쟁이긴 하지만, 여전히 전쟁은 전선과 민간사회로 이분화가 가능했다. 각국은 국가의 모든 자원이 전쟁을 위해 사용할수 있음은 확인했지만, 상대방의 전쟁수행기반 그 자체를 공격할 순 없었다. 전선을 넘을 수 있는 기술도 아직 없었고, 십몇키로를 두고 일진일퇴를 반복하던 참호전 상황에선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항공폭격의 등장, 그리고 이를 전략적으로 적극 활용한 2차대전은 이제 상대의 전쟁수행기반 파괴와 더불어 국가 구성원의 전쟁수행의지 그 자체를 공격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총력전이 갖는 명암이 모두 드러난 것이다.
- 이래서 1차대전에서 진 독일이 왜 졌는지 잘 못 느끼고 다시 전쟁한거. 복수심도 그렇고
이후[편집]
냉전 이후 총력전은 더이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핵무기의 등장으로 총력전=전면 핵전쟁이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냉전기 양극인 미국과 소련은 이런 전면 핵전쟁의 피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 국지적인 분쟁은 있을 지언정 양국 모두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전쟁은 벌이지 않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탈냉전시기에도 이런 경향은 마찬가지인데, 일단 강대국들 대부분이 갯수에 상관없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며, 핵 사용에 강한 거부감을 갖는다.[3]더불어 소련붕괴 이후 대부분의 세계 국가들은 공통된 경제권을 갖게 되었고, 몇몇 국가의 전면전은 곧 전체 세계경제의 위기상황이 되는 시기에 이르렀다. 현재 국가간의 전면전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 공통된 경제권. 그러니까 니가 중국산 미국산 물건 사고 팔고 하는걸 생각하면된다
또 다른 이유로는, 현대무기의 고비용화로 인한 부담이다. 군사기술의 진보는 무기의 가격상승을 의미하고, 결국 군비의 급격한 증가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고효율, 고정밀 무기체계의 도입은 군 조직 및 상비군의 축소로 나아갔다.
다만 몇몇 국가는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총력전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분단상황이라는 군사적 긴장상태가 60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으며, 대한민국과 북한 양측 모두 총력전 체제를 항시 유지중이다. 뭐, 경제력 폭망한 북한이야 비대칭 무기인 핵에 매달리면서 정작 전쟁나면 총력전이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지만, 대한민국은 총력전 체계를 굴릴 수 있는 경제력과 기술력 모두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