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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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로마제국의 후손들이 미개하다고 생각한 흑인들에게 참교육당한 전투
요약[편집]
1896년 3월 1일경, 에티오피아 아도와 평원에서 위대한 로마제국의 후손인 이탈리아 왕국을 참교육시킨 전쟁
당시 이탈리아인들은 아프리카가 미개한 토인들만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에티오피아란 진한 사골의 정수를 가진 (약 3000년쯤 장수한 국가)국가가 애써 압도적인 군대로 심히 참교육을 시전하였다.
발단[편집]
대략 에티오피아 제국이 생기기 전 4개의 왕국으로 분열되서 치고 박고 싸웠다. 이때 메넬리크 2세가 에티오피아를 친히 통일하여 에티오피아 제국을 세웠다.
근데 당연히 이탈리아가 메넬리크 2세를 도왔다. 감이 오지?
상황을 세세하게 보자면 당시 피자국은 영길리, 바게트국에 밀려 아프리카에 식민지 세울꺼야 징징대고 있었다. 징징징대며 갑자기 온 웬 깜둥이를 봤는데 이게 에티오피아의 근대화의 아버지 '메넬리크 2세' (무스타파 케말과 동급으로 근대화 해놓기 장인임)였다.
당연히 이 피자국은 메넬리크 2세에게 호의 넘치게 잘해줬으나 막상 통수칠 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때 메넬리크 2세야 우리하면 재미있게 잘 놀아보자며 우찰레 조약을 맺었는데 이탈리아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게 만들고 에티오피아를 지네 땅으로 만들 준비를 했다.
조약의 내용은 이러하다. 이탈리아에 따르면 이탈리아에게 자문을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메넬리크 2세와 에티오피아는 자문을 받을 수도 있다로 해석했다.
에티오피아 제국의 요한네스 4세가 죽자 메넬리크 2세가 왕이 되게 도왔다. 이때 당연히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의 땅이다. 기록에 따르면 보호국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시다시피 지네 땅으로 쳐 먹을려고 하는 속셈인거 잘 알 것이다.
근데 이 메넬리크 2세는 당연히 근대화 아버지답게 "조까 이 여우원숭이 흰둥이 새꺄."하고 병먹금을 시전, 조약을 파기한다. 이에 피자국도 오냐 "씨발 원숭이 깜둥이에게 선진 문물의 맛을 보여주지."하며 내란선동을 시전, 그러나 실패하자 에리트레아 총독 '오레스테 바리티에리'에게 "깜둥이에게 문명인의 맛을 보여주라"고 명령 내리고 에티오피아를 본격적으로 침략한다.
전개[편집]
메넬리크 2세도 뒤질 각을 알아채려서 공무원들을 포함해서 냉병기 밖에 없는 우가우가한 얘들을 소집한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고 하던가? 바게트국과 러시아가 에티오피아를 지원하기로 한다. 이유는 이탈리아가 아니꼬와서 ㅎㅎ
이때 이탈리아는 '바라티에리' 에리트레아 총독으로 에티오피아를 침공하라고 한다. 이때 당시 정권은 '크리스티' 내각이였다. 크리스티는 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무리하게 바라티에리를 몰아세웠고 그게 이탈리아 패전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래서 전알못 새끼가 전쟁에 개입하면 안돼는거야. ㅉㅉ
바라티에리도 이 병신같은 크리스티 내각에게 계속 방어선 구축해 주세여 징징 됬지만 "크리스티는 안돼, 바꿔줄 생각없어." 를 시전. 그렇게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에리트레아 용병과 이탈리아 군을 중심으로 차곡차곡하게 메넬리크 2세가 보조병력으로 남겨둔 원시인 얘들로 적의 진군을 늦추고 있었다. 이 시각 메넬리크 2세는 8만명의 공무원과 그 공무원들도 이탈리아와 비슷한 수준의 화기로 무장시켜 놓았다.
전쟁 과정[편집]
드디어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바라티에리는 무려 가리발디의 이탈리아 국토 회복 운동에 참여한 전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백전노장이였지만 흑인이 흑인 노예를 판 대가로 바라티에리는 오직 '니꺼'만 안 상황이였다. 바리티에리는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바로 에티오피아의 고산 지대에 익숙하지 않았던 거 였다.... 바리티에리는 3개의 여단[1]이 있었다. 이 여단들 중 우파루파 였던 다보르미다 여단과 아리몬디 여단은 지형 리신 효과 인해 잠시 뇌절상태를 일으키게 되고 오직 알베르토네 여단만이 씩씩하게 앞으로 가는 바람에 아리몬디, 다보르미다 여단이 뒤쳐지게 된다. 이는 이탈리아에게는 패배를 에티오피아에는 승리를 안게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알베르토네 여단은 아리몬디가 자신을 지켜주는 형야로 알고 있었지만 아리몬디는 이미 지형 리신이 된 지 오래고 이때 첩보와 지형에 이점을 살린 메넬리크는 본대의 일부인 3만명을 통해 그링고와 훙키들을 강간하기 시작한다. 알베르토네 예비대까지 동원해 방어를 했지만 이미 붕가되고 알베르토네는 포로로 잡혔고 장교들은 대부분 전사하기 이른다.
한편 아리몬디는 리신 효과로 인해 삥가리 치고 피자헛을 차렸지만 치킨을 원하던 소울에 의해서 역시 피자 바게-트를 대접하지만 역시 '난 치킨보다 이디오피아 난이 좋당께' 하면서 아리몬디와 그의 여단을 괴멸시킨다.
한편 바라티에리는 아! 흑인들이 똑똑하다!를 뒤늦게 알아챘지만 이미 2개의 분대가 괴멸된 상태이며 우파루파 우-익 여단인 다보르미다 여단을 '철수'시킨다. 그러나 '철수'의 '재앙'과도 같은 다보르미다도 메넬리크 2세가 미리 퇴각로에 있던 협곡에 병사들을 매복시켰다. 그것도 기동성이 높은 기병으로! 결국 다보르미다와 휘하 여단도 괴멸했다!
포위섬멸전 위주라서 이탈리아의 수많은 인원들이 전사했고 피자국의 신식 무기도 강탈당했다. 결국 이탈리아는 17700여명 중 7000 이상이 전사하고 2000명이 부상자와 포로 3000명의 인명피해가 입혔고'에티오피아는 80000명 중 무려 10%에 달하는 5000~7000명이 전사했다.' 이는 이산들와나 영국과도 같았는데 기술이 짱짱이지만 전략이 병신인 상황이였다. 반자이 돌격을 강행하여 피해가 커졌기 때문이다.
결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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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흐긴 국가인 에티오피아가 자기네 배긴 국가의 유일한 식민지인 에리트레아를 강간하길 두려워 하였다. 그러나 에티오피아는 10만명이나 되는 부대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메넬리크 2세는 그 많은 인원의 보급과 유지를 실행하기 어려웠고 결국 식민지 공세는 뒷전으로 물러난다.
이탈리아는 미개한 흑인에게 털려서 모랄빵이 나고 바라티에리는 경질됬다. 바라티에리는 졸라 억울한 심정으로 아니 이 씨발 좆같은 내각 새끼가 지가 싸우라고 해서 이 모양으로 됬는데 나한테 책임을 씌워? 라는 생각을 가졌을거다. 실제로 전술하다시피 바라티에리는 전쟁에 정확한 판단으로 방어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무리하게 공세를 시작한 내각 잘못이지. 이탈리아의 정치인 불신은 아마도 이때부터 시작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크리스티 내각은 책임을 질 수 밖에 없었고 에티오피아와 4달라 협상을 통해 우찰레 조약을 폐기하고 포로 석방 몸값을 지불하기로 한다. 에티오피아는 주권을 확립하게 돼 근대국가가 된다.
하지만[편집]
에티오피아는 이후 식민지배를 당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워너비가 되...긴 개뿔. 1936년 두체 무솔리니에 의해 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이 발발한다.
이탈리아는 1차처럼 완전 얕보고 쳐들어가는 실수는 피했고 이탈리아의 명장 로돌포 그라치아니 장군님께서 친히 군대를 이끌고 오셔서 니거들을 참교육해주신다. 이후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되었다. 하지만 석유도 희귀금속도 없는 에티오피아를 집어삼키기 위해 너무 많은 전비가 지출되었고,이는 이탈리아에게 필수적이였던 전군 현대화와 정예화를 못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무솔리니는 스페인 내전에 군단급 병력을 파견하여 안그래도 좆도 없던 이태리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렸고 결국 이탈리아는 WW2를 1935년부터 시작한 셈이 되었다. 이탈리아군이 졸전 기록을 찍으며 패퇴하자 에티오피아는 독립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하일레 셀레시에가 자리잡은 뒤 내리막이 계속 되다가 멩기스투 씹빨갱이 새끼 때문에 에티오피아는 미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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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아리몬디 여단, 알베르토네 여단, 다보르미다 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