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우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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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22년 9월 ~ 기원전 486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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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아케메네스 왕조의 제7대 샤한샤이자 이집트 제27왕조의 제3대 파라오.
페르시아 제국의 왕중왕. 다리우스 대제로도 불린다.
페르시아어로는 '다라야와우쉬'(Dārayavauš)라고 부른다.
설명[편집]
인류 최초로 거대 제국을 만들었으며 롤충들이 알고있는 그 캐릭터랑은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근데 롤의 다리우스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에서 따왔을 가능성은 거의 100%에 수렴한다
성경에서는 다리오 대왕 뭐 이래 나옴. 참고로 키루스 2세는 고레스, 크세르크세스 1세는 좀 뜬금없이 아하수에로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다시말하면 머리찍기를 좋아한다.
만약 세계사 시험에 나오면 땡 잡은거라 생각하고 왕의 눈/왕의 길 써져있는 선지 잘찾아봐라.
치세[편집]
즉위하기 이전[편집]
기원전 550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 2세가 페르시아 제국을 선포한 해에 태어났다. 원래 다리우스는 캄비세스 2세와 6촌 관계에 있어서 왕위계승 후보가 아니었는데, 캄비세스 2세의 사위로 들어가서 인척 관계를 맺었다.
그러던 도중, 기원전 522년 7월경, 가우마타라는 제사장이 바르디야를 사칭하며 캄비세스 2세를 암살하고 즉위하자, 귀신같은 눈치로 이 새끼가 짭퉁임을 알아차리고 가우마타를 쳐죽였다. 이후 본인이 9월에 샤한샤로 즉위하면서 페르시아 제국과 이집트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스 쪽 기록인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는 민주정, 과두정, 독재정 중에서 논쟁이 벌어진 끝에 다리우스가 주장한 독재정이 결정되었고, 해가 뜰 때 처음으로 운 말의 주인이 샤한샤가 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때 다리우스는 하인에게 암컷의 냄새를 미리 갖고 왔고, 다리우스의 말에게 맡게 해서 오르가즘을 느끼게 해서 가버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운 말은 다리우스의 말이 되었다.
정통성이 딸리는 양반이었기에 계속 반란군들이 죽창을 들고 깝쳤다. 하지만 다리우스의 능력으로 전부 진압되었고 왕권도 강화되었다.
동방 원정[편집]
캄비세스 2세 때 이집트를 정복한 뒤, 다리우스 1세 시기에는 카스피해 남쪽을 장악하고, 동쪽으로 인도 서부까지 정벌했다. 스키타이족과의 싸움에서는 조금 골치를 앓았다. 동에번쩍 서에번쩍 베트콩마냥 쳤다 빠졌다 하는 스키타이의 전술을 견뎌낼 수가 없어서 결국 스키타이와의 싸움은 포기했다.
그리스와의 전쟁[편집]
페르시아는 서쪽으로도 전진해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비잔티움을 점령하고 고대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들을 먹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499년 쯤, 키루스 2세 시절부터 페르시아의 땅이었던 이오니아에서 밀레투스 등의 도시국가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밀레투스는 그리스 철학이 시작된 곳으로, 최초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탈레스를 배출한 곳이기도 했다.
여하튼 밀레투스를 필두로 일어난 이오니아의 반란은 기원전 493년까지 지속되다가 결국 페르시아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근데, 이 반란을 부추겼던 것이 아테네였음이 뽀록났다.
그래서 페르시아군은 기원전 492년에 아테네를 벌하러 군대를 보냈으나, 아토스 곶을 지나가던 도중 폭풍을 맞이해 많은 함대가 박살났다.
기원전 491년, 페르시아는 그리스에서 깝치는 폴리스들에게 복종한다는 의미로 흙과 물을 바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아테네는 사신들을 체포해 법정에 세워서 사형 판결을 내려서 죽였고, 스파르타에서는 빠꾸없이 사신들이 그렇게 원하던 흙과 물이 가득한 우물에 담궈서 즉사시켰다.
딥빡한 다리우스는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군을 이끌고 아테네를 털러 갔으나, 마라톤 전투에서 개쳐발리면서 다시 런했다.
한낱 그리스 오랑캐 쌔끼들한테 쳐발렸다는 게 좆같았던 다리우스는 화병이 났다가 기원전 486년에 뒤졌다. 이후 크세르크세스 1세가 뒤를 이어 즉위했다.
페르시아의 전성기를 가져온 황제[편집]
왕의 길[편집]
다리우스 하면 앞서 말한 왕의 길이 제일 유명할 것이다. 페르시아의 핵심 거점인 수사에서, 고대 그리스와 가까운 서쪽의 사르디스를 이은 대형 도로였다.
왕의 길은 페르시아의 4대 핵심 도시를 거쳐갔다. 페르시아는 세계적인 제국인만큼 여러 메소포타미아 문명국가들을 다스리고 있었다. 아시리아 문명의 니네베, 바빌로니아 문명의 바빌론, 엘람 문명의 수사, 그리고 페르시아의 기원이 된 지역 파르스에 세운 신도시 페르세폴리스 이렇게 4개 도시가 페르시아의 4대 도시였다.
사르디스에서 왕의 길을 따라 동쪽으로 출발하면, 아나톨리아 반도를 가로질러 아시리아의 니네베에 도착한다. 이후 남쪽으로 향해 바빌로니아의 바빌론을 지나고, 여기서 두 갈래 길이 나뉜다.
한 쪽 길은 핵심 도시를 연결한 길로, 엘람의 수사와 파르스의 페르세폴리스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다른 한 쪽은 북쪽의 엑바타나로 향하고, 쭉 가면 유목민족들이 다니는 영역에 들어서면서 짱깨들 있는 데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사트라프 제도[편집]
키루스 2세 때 그 틀을 잡아놓았던 지방 행정 제도로, 아케메네스 왕조는 전례없는 초거대 제국이었기 때문에 지방마다 특색이 너무 달라서 각자의 특색에 맞는 통치를 해야 했다. 그래서 사트라프라는 총독을 보내 그 지역의 왕처럼 행세할 수 있게 했다. 이들이 다스리는 지역은 사트라피라고 불렀는데 사트라피는 총 20개였다.
- 트라케
- 리디아
- 카파도키아
- 아르메니아
- 아시리아
- 바빌로니아
- 아라비아
- 이집트
- 리비아
- 에티오피아
- 메디아
- 수사
- 파르스
- 파르티아
- 그리고 기타 등등...(마사게타이, 인도, 박트리아, 소그디아 등...)
그리고 이 사트라프들에게 막대한 자치권을 보장해줬으니, 얘들이 깝치지 못하도록 하는 억제책도 필요했다. 그래서 이들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도록 감찰관을 보냈다. 이 사람들은 왕의 귀, 왕의 눈이라고 불렸다.
경제 및 종교[편집]
경제가 발전하면서 물물교환 그 이상의 경제 제도를 갖춰야 했고, 그래서 통일된 지불 수단을 만들었으니 그게 바로 동전이었다. 금화인 다릭과 은화인 시글로스를 사용했다.
종교적으로는 페르시아인의 전통 종교를 바탕으로 자라투스트라가 창시한 조로아스터교를 장려했다. 당시 세계 대부분은 자연의 초월적인 힘을 신에 빗대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다신교를 믿었으나, 특정 인간이 인위적으로 내용을 가공해서 만든 일신교가 제국을 장악했다는 것은 특이한 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로아스터교 ㅈ까를 시전한 다신교 신자들을 쳐죽이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종교도 제국에서 공존할 수 있게 관용을 배풀었고, 유대인들의 유대교라든지 이집트의 이집트 신화라든지 믿을 수 있게 계속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