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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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27 (기원전 465년~기원전 42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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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2세 (기원전 423년~기원전 404년) |
아케메네스 왕조의 샤한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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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제27왕조의 파라오 | ||||
크세르크세스 1세 | →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 → | 크세르크세스 2세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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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65년 8월 ~ 기원전 424년 |
이 문서는 성군(聖君)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세금 헌터 머똥령들이 본받아야 할 개념 군주에 대해 다룹니다. 우리 똥수저 백성들의 편이니 모두 폐하에게 경배합시다. |
개요[편집]
아케메네스 왕조의 제9대 샤한샤이자 이집트 제27왕조의 제5대 파라오.
페르시아어로는 '아르타흐샤싸'(𐎠𐎼𐎫𐎧𐏁𐏂; Artaxšaça)라고 부른다. 성경에서는 '아닥사스다'로 나온다.
치세[편집]
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로, 크세르크세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쳐발린 이후 술이나 쳐마시며 흥청망청 놀아대자 신하의 반란으로 살해당했고, 그 다음 샤한샤로 추대된 것이 아르타크세르크세스였다.
처음에는 아르타바누스가 실권을 잡아서 허수아비 짓을 했는데, 아르타바누스가 허점을 보인 틈을 타 그를 체포하고 잡아죽였다.
여하튼 패전 이후의 혼란 때문에 왕권이 상당히 추락한 상태였고 사트라프들도 반란 통수 각?만 존내 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훌륭한 능력 덕분에 왕권이 상당 부분 회복되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아테네에서 쫓겨나자 그를 받아들였으며, 지중해 세계에서 최강이 됐다고 우쭐하던 아테네를 견제하기 위해 스파르타를 부추겨서 두 폴리스 간 갈등을 조장했다.
기원전 460년에 리비아에서 이나로스 2세라는 인물이 이집트를 부활시키겠다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배후에는 아테네가 있었다. 6년 간 전쟁을 이어나간 끝에 이나로스 2세를 체포하고 수사에서 처형했다.
이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터진 시기에 아테네가 키프로스를 쳐들어갔지만 페르시아군이 막아냈고, 기원전 448년 휴전했다.
다시 평화가 찾아오자 건설 사업을 재개했다. 수사와 페르세폴리스를 복구했으며, 이스라엘의 유대인 공동체가 회복되는 일도 도왔다.
기원전 424년 사망한 이후 아들 크세르크세스 2세가 샤한샤로 즉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