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행주 대첩

조무위키

(행주 전투에서 넘어옴)

15세기 16세기 관련 문서 17세기
16th Century / 16世紀 / 1501년~1600년
국가 아스텍 제국 · 잉카 제국 · 포르투갈 왕국 · 압스부르고 왕조 · 와타스 왕조 · 사드 왕조 · 말리 제국 · 송가이 제국 · 잉글랜드 왕국 · 프랑스 왕국(발루아 왕조 · 부르봉 왕조) · 네덜란드 공화국 · 신성 로마 제국 · 합스부르크 제국 · 교황령 · 피렌체 공화국 · 베네치아 공화국 · 나폴리 왕국 · 프로이센 공국 · 킵차크 칸국 · 모스크바 대공국 · 루스 차르국 · 오스만 제국 · 에티오피아 제국 · 맘루크 왕조 · 티무르 제국 · 사파비 왕조 · 델리 술탄 왕조(로디 왕조) · 무굴 제국 · 마자파힛 제국 · 후 레 왕조 · 막 왕조 · 북원 · 명청시대(명나라) · 조선 · 일본(무로마치 막부 · 센고쿠 시대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 류큐
사건 세계사
포르투갈령 고아 설치 (1510년) · 유토피아 출간, 스페인 압스부르고 왕조 수립 (1516년) · 맘루크 왕조 멸망, 95개조 반박문 반포 (1517년) · 마젤란의 세계 일주, 에르난 코르테스의 아스텍 침략 (1519년) · 아스텍 제국 멸망 (1521년) · 무굴 제국 건국 (1526년) · 사코 디 로마 (1527년) · 1차 빈 포위 (1529년) · 잉카 제국 멸망 (1533년) · 캐나다 발견 (1534년) · 장 칼뱅의 종교개혁 (1541년) · 지동설 주장 (1543년) · 트리엔트 공의회 (1545년) · 경술의 변 (1550년) ·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1555년) · 포르투갈령 마카오 등장 (1557년) · 잉글랜드 엘리자베스 1세 즉위 (1558년) · 스페인 마드리드 천도 (1561년) · 위그노 전쟁 발발 (1562년) · 네덜란드 독립전쟁 (1568년) · 레판토 해전 (1571년) · 무로마치 막부 폐지, 다케다 신겐 사망,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개막 (1573년) ·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세계 일주 (1577년) · 포르투갈의 나가사키 진출, 이베리아 연합 수립 (1580년) · 그레고리력 도입, 혼노지의 변 (1582년) · 잉글랜드-에스파냐 전쟁 (1585년) · 칼레 해전, 쇼군 직책 폐지 (1588년) · 부르봉 왕조 수립 (1589년) · 일본 전국 통일 (1590년) · 송가이 제국 멸망 (1591년) · 한 여름 밤의 꿈 집필 (1595년) · 낭트 칙령 (1598년) · 세키가하라 전투, 영국 동인도 회사 설립 (1600년)
한국사
갑자사화 (1504년) · 중종반정 (1506년) · 삼포왜란 (1510년) · 임신약조 (1512년) · 조광조의 개혁 (1515년) · 비변사 설치 (1517년) · 기묘사화 (1519년) · 백운동 서원 설립 (1543년) · 인종 즉위 (1544년) · 명종 즉위, 을사사화 발생 (1545년) · 양재역 벽서 사건 (1547년) · 을묘왜변 (1555년) · 임꺽정의 난 (1559년) · 정여립 모반 사건, 기축옥사 (1589년) · 임진왜란, 부산진 전투, 평양성 전투, 한산도 대첩, 진주 대첩 (1592년) · 벽제관 전투, 행주 대첩, 임진왜란의 휴전 협상 (1593년) · 칠천량 해전, 정유재란, 명량 해전 (1597년) · 노량 해전 (1598년)
대표 인물 카를 5세 · 펠리페 2세 · 마젤란 · 에르난 코르테스 · 곤살로 피사로 · 미겔 데 세르반테스 · 헨리 8세 · 앤 불린 · 메리 1세 · 엘리자베스 1세 · 윌리엄 셰익스피어 · 앙리 4세 · 마르틴 루터 · 장 칼뱅 · 니콜로 마키아벨리 · 레오나르도 다빈치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라파엘로 산치오 · 그레고리오 13세 · 이반 4세 · 보리스 고두노프 · 셀림 1세 · 쉴레이만 대제 · 이스마일 1세 · 아바스 1세 · 바부르 · 후마윤 · 악바르 · 만력제 · 마테오 리치 · 이여송 · 진린 · 아시카가 요시테루 · 아시카가 요시아키 · 오다 노부나가 · 다케다 신겐 · 다케다 가츠요리 · 우에스기 겐신 · 아케치 미츠히데 · 도요토미 히데요시 · 고니시 유키나가 · 가토 기요마사 · 강항 · 후지와라 세이카 · 도요토미 히데요리 · 도쿠가와 이에야스 · 연산군 · 중종 · 조광조 · 인종 · 명종 · 선조 · 이순신 · 이순신(무의) · 원균
관련 작품 폭풍을 부르는 대단해! 전국대합전
대한민국의 승리!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펄럭-
이 문서는 성전(聖戰)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성스럽고 정의로운 전쟁을 다룹니다.
참전용사들을 욕보이는 짓은 하지 맙시다.
신께서 원하신다 Deus Vult!
이 문서는 참교육에 관련된 것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참교육의 은혜를 다룹니다.
만일 참교육을 거부할 시 성적은 개좆망행이니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헤이, 영쑤!! 돈 두 댓!"
정의가 구현되었습니다!
이 문서에서는 사실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정의를 존나 드물게도 구현한 보람찬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임진왜란 당시 전투 전개
벽제관 전투 행주 대첩 휴전 협상
임진왜란 3대 대첩
진주 대첩 한산도 대첩 행주 대첩

행주 대첩
날짜 1593년 음력 2월 12일
장소 경기도 행주산성
결과 조선의 승리
교전국
조선군
왜군
지휘관
슈퍼 권율
전라도 병사
창의사
승병장
~ 외 다수
구사일생
ㄹㅇ 전알못
부상 입음
고바야카와
~ 외 다수
병력
관군 약 3천
+ 의병 6천
약 3만
피해 규모
불명 존나 많음


전투 전야[편집]

조선은 위에서 내려오는 짱개들과 연합하여 한성을 탈환하려는 준비중이었으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활약으로 이여송이 떡되서 히키모코리처럼 쳐박혀버리자 최전선인 행주에 갇혀버린 상태였다. 이 때의 싸움을 현대 사람들은 벽제관 전투라고 부른다.

일본은 한성 탈환을 저지시키기 위해 조선을 한번 참교육 시켜줄 필요가 있었고, 이에 따라 이시다 미츠나리우키다 히데이에를 중심으로 한 왜군은 조선군이 위치한 행주산성의 공략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행주산성은 평범한 토성이었는데 진주성처럼 견고하고 뛰어난 조건을 갖춘 성이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몰려오는 왜적을 막기엔 좀 어려운 환경이었다는 얘기다. 결국 조선군은 토성 위에 목책을 존나 쌓고 다가올 왜적들과의 싸움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전투[편집]

웬만한 급식 역사책에선, 화살을 쏘다가 화살이 떨어지자 돌을 던졌다고 했는데. 여기서 실제로는 화차/신기전 등등 조선의 최신화약무기로 좆본을 좆발라버린 전투다.

당시 행주산성 전투에 쓰인 무기들은 보통의 화기가 아니었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 화차와 신기전을 사용했었고 많은 수의 승자총통을 한 데 모아 연속 발사한 변이중 화차, 개인 화기인 승자총통, 비격진천뢰, 천자총통 등 개졷되는 화력을 싸그리 쏟아부어 왜군을 초토화시켜버리는 판이었다.

왜군 수뇌부는 전쟁은! 닥돌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마구잡이로 병력을 보냈는데 1군(고니시 유키나가)과 2군(이시다 미츠나리)이 조선의 미친 화력에 차례대로 털려 곤죽이 되어버렸고 3군(구로다 나가마사)은 간이 공격탑을 만들어 조총수들을 태워 싸웠으나 멀리서 날아오는 대포알에 맞아 탑이 작살나는 광경을 지켜봐야만 했다.

왜의 4군과 총사령관인 우키다 히데이에가 같이 돌격하자 조선군은 좀비마냥 몰려오는 왜군을 막지 못하고 1차 성책의 돌파를 허용한다. 하지만 조선군은 아직 남아있던 화력을 우키타한테 집중시키는 최후의 수를 뒀고 우키타는 예상치 못한 중상을 입으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대장(우키타)이 주위의 부축을 받으면서 도망가자 4군도 싸움을 그만두고 뒤로 후퇴했다. 그리고 여기서, 2군의 미츠나리는 아직 후퇴하지도 않고 있다가 부상을 입으면서 실려나갔다.

5군(깃카와 히로이에)은 목책 뒤에 숨은 조선군을 죽이려면 당연히 불을 붙여야 하는거 아님? 이라는 접근 방식으로 목책에 불을 붙였으나 그 정돈 미리 예상해두었던 조선군이 물을 뿌려버려서 화공에 실패했다. 그리고 이 지랄을 하는 사이 5군은 각종 짱돌에 얻어맞아 마빡이 터져나갔고 지휘관인 깃카와 히로이에도 크게 다치면서 질질질 끌려갔다.

모리 히데모토의 6군은 2성책까지 달려갔으나 방어를 담당하던 승병들의 저항에 부딪쳤다. 승병들은 갖고 있던 주머니에서 재를 꺼내 뿌려댔다고 한다. 으아아 아 캔트 씨 애니띵

7군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지휘하는 부대라서 그런지 잘 싸우면서 조선군을 몰아붙였다. 이내 거의 다 몰아붙이면서 7군은 본격적인 백병전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백병전이라면 거의 무쌍을 찍는 왜군을 상대로 조선인들은 극한의 존버를 시전했다.

그렇게 버티고 있으니까 경기수사였던 이빈이 근처에서 배를 몰고 나타났고, 특히 전라도에서 온 많은 숫자의 조운선이 등장하자 왜군들은 화들짝 놀라 전장에서의 이탈을 시도했다. 많은 배! 조선 수군이 틀림없다데스 도망치는데스; 하기야 많은 배를 보고 지원 부대를 연상하는건 당연한 수순이다.

결과[편집]

이시다 미츠나리는 전알못인걸 또 증명했으며

권율은 도원수가 되었고, 이여송은 이 전투 이후 계속 찌질거리기 뭐해서 병력을 이끌고 내려왔다.

이 덕분에 조선은 한성 탈환 성공.

2800여 명으로 3만 명 막은 전투. 클래s 최신무기로 무장하면 숫적 열세도 바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싸ㅡ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