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
조무위키
이 문서는 고인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의 대상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
위 3가지 틀만 가장 중요해서 남기고, 다 숨긴다. 왜냐면 존내 마나서
이 글의 작성자는 김선자을(를) 싫어합니다. 만약 당신이 김선자(이)거나 김선자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문서에서 탈출하십시오. 이 틀을 보고도 계속 남아있다가 이 글의 작성자에게 살해당해도 조무위키에서는 일절 책임지지 않습니다.
|
대한민국의 연쇄살인범 모음 | |
---|---|
김대두 (17명) 1975
|
정두영 (9명) 1999~2000
|
김선자 金宣子 | |
생년월일 | 1939년 |
---|---|
사망일 | 1997년 12월 30일 |
출생지 | 전라남도 순천군 |
헬조선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마
즉, 우리가 싫어하는 최악의 할망구
이 새끼는 잦은 카바레 출입으로 채무가 많았고, 도박으로 인해 돈을 빌린 뒤 그것마저도 도박으로 잃어 빚에 쪼들리게 되었다.
결국 못 참아서 살해하기로 결심하는데...
사건 경위[편집]
1986년 10월 31일, 그녀는 이웃집에 살던 친구에게 함께 목욕탕에 가자고 제안했고, 그 친구는 목욕탕에서 갑자기 심한 경련과 호흡곤란으로 즉사. 이후 사인은 독극물 중독으로 밝혀졌으며, 김선자는 그 사이 목걸이와 반지 등 패물을 절도.
당시 유족들은 이웃에 사는 김선자가 함께 목욕하러 가자고 했고 가지고 있던 귀중품이 사라진 게 이상하다고 진술했지만, 당시 김선자는 이를 부인했고 별다른 증거가 없었다고 함.
그 뒤 1987년 死월 死일, 대담하게도 시내버스 안에서 일을 벌였으며, 한 여성이 독극물 중독으로 버스에서 쓰러져 즉사. 그녀는 김선자와 함께 계를 하던 회원이었고, 이 때부터 김선자는 경찰의 의심을 받게 됨.
1988년 2월 10일, 김선자는 쌓여가는 빚 독촉에 지쳐 가깝게 사는 김여인에게 접근해서 오늘 채무자에게 돈을 받을 것이 있으니 나와 함께 채무자를 보러 가자고 함. 김여인은 김선자에게 받을 돈이 당시 금액으로 120만원이나 있었기 때문에 이를 준다는 김선자의 말을 믿고 따라 나섰지만, 나타난다는 채무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당시 김여인은 김선자가 건넨 율무차를 마셨다가 계속 구토함.
이후 김선자와 함께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탄 김여인은 구토 증세로 힘들어 했고, 김선자는 내려서 건강음료를 사서 마시자며 권유할 때 김선자가 의심스러웠던 김여인은 김선자가 택시에서 내린 사이 차를 그대로 출발시키면서 살인미수에 그쳤음. 그 뒤 김선자는 다시 김여인의 집에 방문해서 120만원을 김여인에게 갚은 뒤, 그녀의 안부를 챙겼다고 함.
1988년 3월 27일, 김선자의 애비 김종춘이 친척의 결혼식을 다녀오던 중 시외버스 안에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은 아버지가 고령자인 것을 고려해 당시 법의학 지식이 없던 의사들에 의해서 노인성 심장마비를 일으켜 숨진 것으로 마무리가 된 뒤 화장됨. 이 사건도 딸 김선자가 건넨 건강음료를 마시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나, 화장된 유골에서 독살의 증거를 찾을 수 없었고, 아버지에게 돈을 빌렸거나 유산 상속 등의 살해 동기가 미미했던 점을 들어 이 건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로 판결.
死번째 범행이 성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해 4월 29일에는 그녀의 동생 김문자(43, 1946년생) 역시 애비와 똑같은 변을 당했으며, 독극물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심장마비로 처리. 김선자는 동생 김문자에게 약 천만원의 빚을 지고 있던 상태였고, 여동생이 사망했음에도 동요하거나 슬퍼하는 내색 없이 사망 확인 후 여동생의 집을 뒤져 금품 및 귀금속 등을 절도.
당시 재판 과정에서 김선자와 함께 여동생을 병원에 데려간 청년들의 증언에 따르면, 옆자리에 있던 김선자의 여동생이 버스 안에서 쓰러지자 김선자와 함께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병원에서 여동생이 위독하다며 큰병원으로 옮겨야한다고 하자 갑자기 김선자는 모르는 사람이라며 여동생의 생명을 구하는 일엔 아랑곳도 없이 여동생의 핸드백을 가지고 황급히 나가버리는 비정한 모습을 보여 청년들은 황당했다고 함. 이후 약 3개월 뒤인 7월 8일에 사촌조카인 손미림(46, 1943년생)도 같은 변을 당했으며, 김선자의 사촌조카인 손미림은 김선자의 소개로 집을 사기 위해 현금 480만원을 들고 그녀를 만났다고 함.
체포, 그리고...[편집]
나중에는 5명을 독살한 혐의로 경찰에 검거되었는데, "증거를 대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고하면서 엄청 시끄러울 정도로 화를 내고, 적반하장을 일으키는 등 난동을 피웠다.
경찰은 신당동 목욕탕 희생자 등 이미 묻혀 있는 시신 4구에 대해 부검하는데, 이미 장례가 끝난 시신을 유족들에게 어렵게 동의를 구하여 다시 부검하여 4구에서 청산염 성분을 검출했다. 이 때 무덤 속 시신에 대한 부검은 유족이나 수사당국으로서는 극도로 피하고 싶은 일이었고, 관을 쪼개고 무덤을 헤집는 부관참시(剖棺斬屍)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데다 소득이 없을 경우에 쏟아질 세간의 비난이 만만치 않을 터였을 정도. 불행 중 다행으로 이 중 4구의 시신 중 3구가 청산염 성분이 검출되었지만, 가장 먼저 사망한 40대 여성의 시신은 너무 부패한 탓인지 청산염 성분을 찾을 수가 없었고, 이미 사망한 아버지 김종춘의 경우 화장되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유골에선 청산염 성분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영장을 받은 그녀의 집을 압수수색한 경찰은 깜짝 놀라운 일을 보는데, 그 동안 그녀가 아버지, 동생, 친구 등을 살해한 후 훔쳐낸 물건들인 다이아몬드 반지, 수표, 통장 등이 쏟아져 나온 것. 참고로 살인 용의자가 여성이라 여경들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이후 결정적인 증거는 다소 황당하게도 압수수색을 하던 경찰관이 김선자의 집에서 변을 보다가 발견했는데, 쪼그리고 앉자 일본식 가옥 나무기둥 뒤에 난 작은 구멍이 보여서 손을 넣어 보니 돌돌 만 신문 뭉치 속엔 화공약품 회사에 다니는 친정 조카로부터 "꿩을 잡는다."며 구한 밤알 크기의 청산염 덩어리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정의가 구현되었습니다! 이 문서에서는 사실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정의를 존나 드물게도 구현한 보람찬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
이 문서가 가리키는 대상은 해결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고역 같던 일이 해결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완전 상쾌합니다!!! |
김선자는 범행을 줄곧 부인했으며, 사형 직전까지도 자신의 결백을 고수했으나, 이 청산가리는 결정적 물증으로 작용하여 대법원은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을 선고받은 8년 후인 1997년 12월 30일에 다른 장기 미집행 사형수 22명과 같이 처형되었으며, 이것이 사실상 대한민국의 마지막 사형 집행이다.
지금도 이 할망구는 지옥에서 영원히 곶통의 저주를 받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