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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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연쇄살인범 모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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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두 (17명)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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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영 (9명) 199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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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영 鄭斗英 | |
생년월일 | 1968년 12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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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부산시 |
신장 | 164cm, 64kg, B형 |
개요[편집]
1999년 6월 2일부터 2000년 4월 11일까지 범행을 저질러 9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강도범.
과거[편집]
1968년 12월 31일에 부산직할시에서 4남매 중 막내로 출생.
그가 아직 애미 뱃속에 있을 때 애비는 암으로 투병하고 있었고, 정두영이 2세가 되던 해 끝내 돌아가셨다.
남편의 죽음으로 생계가 곤란해진 정두영 애미는 아기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거나 영양을 공급해주지 못한 채 그 애미는 아이들을 삼촌 집에 맡기고 재혼한다.
하지만 정두영이 다섯 살 되던 해, 삼촌마저 요란스런 조카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내버리는데...
하지만 나중에 일이 잘 풀릴려고 해서 그런지, 일곱 살 때 어머니가 고아원으로 찾아와 정두영을 새아버지 집으로 데려간다.
그대로 양친과 성장했으면 좋았겠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경제적 부담과 이부형제들과의 갈등이 커져서 정두영은 도로 고아원으로 보내졌는데, 차라리 처음부터 계속 고아원에 두었더라면 상처를 덜 입었을 것이라고.
사건 일지[편집]
18살이던 1986년 5월,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 들어가 털려고 했다가 교사와 딱 마주치자 대뜸 칼로 찌르고 도주, 그로부터 1달 뒤 칼을 들고 다니다가 자신을 검문하는 방범 대원을 골목길로 유인해
무참히 찔러 살해하고 소년원에서 12년을 썩다가 나온다. 그후 1998년 6월 출소했다가 또 일 저질러서 6개월 동안 재복역을 한다.
1999년 9월 15일 2번째 출소 후 이때 이미 1억 3천만원이 있었지만 도둑질로 인생을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부산을 들쑤시고 다닌다.
정두영이 부자집이나 상류층 집안을 털어서 장물이 나오면 그걸 형인 정부영이 처리해주고 돈을 주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하여튼 그렇게 잘 해쳐먹고 살다가 2000년 수사망이 딱 좁혀오자 심히 쫄렸는지 다른 지역으로 원정을 나가시는데
2000년 4월 12일 천안의 한 고급 주택에서 인질극을 벌이다가 결국 검거됐는데 이게 본인 머리에선 최고로 좋은 시나리오였다.
단순 잡범 처리 되서 몇년 썩다가 다시 나오고 그 동안 모은 돈으로 인생 쫙 펴고 헌데 현실은...
처벌[편집]
정의가 구현되었습니다! 이 문서에서는 사실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정의를 존나 드물게도 구현한 보람찬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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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에서 2000년 7월 21일 부산지방법원은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두영에게 유죄를 모두 인정하여 사형을 선고한다.
형인 정부영과 공동 정범인 김종준도 1년 6개월씩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이만하면 지들이 저지른 짓에 비해 후하게 쳐준건데 뭐가 아니꼬운지 항소장을
제출해서 2심까지 가게 되는데
2심에서 "응 안 받아줘 돌아가" 하고 이들의 항소장을 기각하여 그대로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편집]
잡혀서 빵에 들어간 이후로 조용히 지내는듯 했으나 16년에 모두를 발칵 뒤집는 사건이 터질뻔했다.
2016년 8월 6일 다시 범행을 저지른다고 대전교도소에서 탈옥을 시도하다 성공할 뻔 하였으나 다시 붙잡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