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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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뤼 문서뤠서 설명하른 대상른 북괴롬덜과 밀접한 관계가 맀습레다! |
주의! 이 글은 헬北카니스탄의 현실을 다룹네다.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헬북괴의 수많은 자랑거리들!! 이러한 헬부카니스탄의 암울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북괴들에게 전세계와 우주가 경이로움을 느낍네다. 이런 것들과 살아가는 당신에게 탈북을 권합네..... 당신들 누구야! 읍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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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분단 이후로 남한에서 평안, 함경 같은 북부 지방이 자주 거론되지만 황해도는 경기도 바로 북쪽임에도 잘 거론되지 않고 존재감도 없다.
황해도의 행정구역 | ||
자치시 | 해주시 · 사리원시 · 송림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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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군 | 벽성군 · 연백군 · 금천군 · 평산군 · 신계군 · 장연군 · 송화군 · 은율군 · 안악군 · 신천군 재령군 · 황주군 · 봉산군 · 서흥군 · 수안군 · 곡산군 · 옹진군 | |
참고 |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밑줄: 도청소재지 |
황해도 黃海道 / hwanghae-do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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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대한민국[1] |
면적 | 16,743.66㎢ |
인구 | 400만 명(추정) |
지역 청사 | |
지역대표 | 김기찬[2] |
홈페이지 | www.hwanghaedo.or.kr |
중부 지방에서 서북쪽에 있는 도(道)이다.
2020년 기준 인구가 400만 명이 넘었다.
전라도에 호남평야, 나주평야가 있다면 황해도엔 연백평야, 재령평야가 있으며 북한의 밥줄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황해도 평야로는 부족하니 나무랑 나무를 다 베어서 민둥산으로 만든 다음 다락밭이라고 산 중턱에 밭을 갈아서 쓰고 있다.
북한에서 가장 나무가 없으며 환경 파괴가 심하다. 구글 지도만 봐도 황해도 지역은 민둥산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원래 이 동네도 중부지방에 속한 지방인데 분단의 영향으로 인하여 다들 북부 지방으로 오해 받는다. 황해도 방언 또한 평안도 방언이나 함경도 방언과 달리 경기도 방언, 강원도 방언, 충청도 방언과 함께 중부 방언권으로 분류된다.
함경도는 중국이랑 접해서 외부 문물을 받아들이기 좋고 평양은 금수저가 많이 살아 자기들 식의 남조선 문물을 뇌물로 빨아들이지만 황해도는 밑으로는 38선이 있고 농촌이 많아 개발이 안되다 보니 어리버리하고 순박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멍해도/띵해도. 북멍청도라고 불러주자.
그러니 여기도 짱깨먼지를 경기도 다음 직격으로 맞는다. 하여간에 짱깨새끼들은 도움이 안된다.
어느 탈북자가 황해도 사람들은 말이 느리다고 놀림을 많이 받는데 남한에 오니 충청도 사람들이 말 느리다고 놀림 받는 거 보고 놀랬다고 그러더라. 멍청도 vs 멍해도 누가 더 댕청할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댕청할 것이라고 절대 오해하지 말자. 오히려 북한에서 인민들이 대규모로 죽창을 들었던 유일한 곳이다.
굳이 남북도로 나눌 필요도 없었는데 혹부리 씨발롬이 주민통제강화를 위해 남북도로 나눠버렸다. 개씨발새끼.
여담으로 이 지역하고 강원도가 바깥 세상의 정보를 전달 받는 것이 가장 느리다고 한다.
애초에 북괴 자체가 주민들의 이동의 자유를 막고 있는데 누가 굳이 황해도로 장사하려고 찾아가겠나. 국경과 접경지인 평안도나 함경도로 많이 가지.
그나마 깨어있다는 황해도민...이래봐야 장마당에서 장사하면서 여러 도를 넘나드는 사람들과[3] 휴전선 근처에서 대북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 뿐이다.
그래서 여긴 대부분이 아직도 남한이 못 사는 줄로 알고 그나마 김씨 돼지들에 대한 충성도가 아직 어느 정도 남아있다고 한다.
분단 이전의 역사[편집]
고려 이전[편집]
고조선이 멸망한 뒤 한나라 짱꼴라들이 '진번군'을 세웠다고 하지만 진실은 당시 짱깨들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후한시기 낙랑군의 일부였다가 대방군이 되었다.
고구려 미천왕이 낙랑군을 쩝쩝하면서 명목상으로는 고구려 땅이 됐지만 백제가 북진하면서 대방군 일부를 꿀꺽했기에 고구려와 백제의 주요 전장이 되었다. 근초고왕이 황해도 전역을 꿀꺽해서 평양까지 갔지만 광개토대왕에게 광삭당하면서 완전히 고구려의 땅이 되었다.
고구려 멸망 이후 신라가 북진하면서 황해도 전역을 수복했지만 석문전투에서 당군에게 패했기 때문에 신라의 최전방이 되었다. 신라가 계속 성을 쌓으면서 신라의 나와바리가 되었지만.
고려 이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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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국부 왕건이 세력을 다지는데 황해도의 호족인 신숭겸, 유금필, 유천궁, 박지윤, 황보제공 등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이들이 고려 초기 정계 인싸가 됐기 때문에 고려 때는 최고의 리즈 시절이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남북 분단 이전까지 경기도와 많이 놀았기 때문에 중부 지방으로 인식되었다.
조선 시대 때는 허구한 날 초적들이 깽판을 치는 등 이전에 비하면 병신이 됐지만 임꺽정의 난 이외에는 이렇다 할만한 반역 사건도 없었고 김자점이 재령평야를 개척한 결과 반역향 크리도 안 먹어서 조선 중후기 되면 또 잘나갔고 세도가들도 꽤 많이 있었다. 물론 이 세도가들은 북괴가 등판하고 1.4 후퇴하면서 죄다 월남했다.
황해도 실향민[편집]
연백, 옹진 등 일부 지역이 대한민국 관할이었고 경기 지방과 거리도 가까웠으며, 황해도 서해 연안 일대 제해권을 유엔군과 국군이 장악하여 인근 도서들을 대거 차지하였기에 함경도 같은 지역보다도 밀항 등으로 월남해 온 케이스가 잦았다. 특히 양식을 구하러 강화도, 교동도와 연백 사이를 썰물을 타서 넘나드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고 하며, 황해도 실향민 다수가 강화도, 교동도 등 인천 근해의 섬에 대거 정착하였다. 그 밖에도 연평도, 백령도 등 황해도에 소속된 바 있는 도서나 인천 본토, 서울 등지에 대거 집결하였다. 선박으로 피난한 인파 중에는 군산항에 내린 인원이 많았는데, 그래서 군산에는 황해도 실향민 출신 집안이 많다.[4] 군산과 가까운 호남평야 일대에서도 황해도 실향민들이 집단촌을 이루고 농업에 종사하기도 했다. 김제시 용지농원에 소속된 집단촌과 완주군 이서면 정농마을 등이 그 예이다.[5] 이러니 전북 중심도시인 전주에서도 황해도 실향민 출신 집안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드물게는 어선 등을 타고 충청도 서해안 일대에 정착해 어업에 종사하기도 하였으며, 멀리는 진도까지도 내려와 집단촌(군내면 안농마을)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실향민들의 최종 집결지였던 부산에서도 가끔씩 볼 수 있다.
황해도 실향민 중 무당 또한 상당히 많았으며, '황해도 만신'이라고 불린다. 이들이 가지고 내려온 황해도 지역의 무가(巫家) 전통은 오늘날 한국 무속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당장 인터넷으로 점집이나 굿할 곳을 알아보면 '황해도만신', '황해도 도령' 등이 많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흔히 우리가 알던 봉산탈춤도 모두 황해도 실향민들이 전파되었다.
죽창의 고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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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 높은 북한 정권 아래에서 놀랍게도 대규모 인민 봉기들이 여러 차례 일어난 유일한 곳이 바로 황해도이다.
1976년에 해주 시민들이 북한 정권에게 반기를 들다가 군대와 땅크에 의해 진압되어서 3만명 가랑이 학살당한 적이 있었다.
1998년에는 송림시의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봉기를 일으켰었다.
2012년에 해주의 한 꽃제비 아이가 보안원들에게 집단폭행 당하자 보다 못한 시민들이 투쟁한 적이 있다.
물론 북한 정권에 대한 반란은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겠지만 인민들에 의한 봉기는 유독 황해도에서 돋보이게 여러 차례 일어났다.
통일 이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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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스퍼거가 또! 학생? 지하철이 달리는 중에 왜 개폐 장치를 조작해서 문을 열었던 거죠? 뚕, 뚕호... 뚕호댸교 미티 어뜨케... 섕겼뉸지... 뽀, 뽀고... 띠뻐서... 동호대교 밑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니요. 학생 도대체 왜 그런 거예요? 뎨... 뎨갸 텰됴 뚕호인인뗴여... 뭐라고요? S챠댜! S챠! 냐이뜌 냐이뜌! 삐얘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이번 여근 꼬속떠미널, 꼬속떠미널 여깁뉘댜! 내리실 무는 오른쪼깁뉘땨! 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이봐요 김순경, 이 학생 왜 이래요? 어떻게 좀 해봐요! 뜨끄린됴어갸 렬립니다! 삐얘애애액! 궁미녜 텰도 꼬례일! 삐얘애애애애애액!!!!! 그리고 학생은 창문으로 달려가서 경찰서 앞을 지나가던 4호선 S차를 DSLR로 찍기 시작했다. 그의 입은 지하철 안내 방송을 중얼거리고 있었고 그의 손은 반사적으로 지적확인을 했다. |
평양과 서울 간의 샌드위치라서 잘만 쓰면 머한민국의 원주, 옥천 정도로 클 도시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 통일 초기 상당한 꿀을 빨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 그 대가로 남쪽에서 토롤 같이 올라오는 철스퍼거들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ㄴ 애초부터 황해도는 평지가 대부분이라서 개발하기도 ㅈㄴ 쉽기 때문에 신도시 정책으로 땅값 존나 올라갈 듯
ㄴ 근데 여기 은근 산세가 험해서 철도 뚫으려면 예성강 상류로 경유해서 뚫어야 할 수도 있고, 경작지가 다 곡창지대라 개발이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도 있음. 항구로 클 법하지도 않고 멀리 갈 것 없이 전라도 봐라.
여긴 귀농하는 사람들도 찾을 확률이 높다. 황해도 북부 평지는 헬조선에선 수요는 좆나 많은데, 국내 공급이 사실상 종범인 밀이 생산될 수 있고, 지구온난화 때문에 과일 생산선이 점점 더 올라가는데 아무리 올라도 황해도는 돌파 불가능인지라, 사과나 배 같은 냉대성 과일이나 채소를 기르기 좋기 때문이다.
풍습[편집]
황해도인들은 호박으로 김치를 만들었다고 한다. 으웩.
ㄴ 외가가 황해도 출신이라 우리 집도 호박김치 만들어 먹는데, 맛있기만 하다, 맛알못 새끼야
호박으로 김치를 안 만든다고 해도 고수를 김장 때 듬뿍듬뿍 넣어먹었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고수를 못 먹기 때문에 '고수찾는다 = 황해도사람이다'라는 공식이 성립했다고 한다. 파주시도 황해도 실향민들이 많이 사니 김치에 고수를 넣어 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고수를 제외하면 다른 젓갈 넣는 거나 메인 야채는 경기도, 강원도 영서 지방, 충청도 내륙과 별 차이 없다고 한다.
감자녹말로 반죽한 농마국수를 즐겨먹었으나 감자 농마국수는 좆본이 개마고원에 감자생산기지를 만들면서 함흥에게 뺏겼고 지금은 녹두녹말로 반죽한 농마국수를 먹는다고 한다.
황해도는 본래 녹두 생산지로도 날리던 곳으로, 해주, 사리원 등지에서는 녹두로 묵을 쑤어 장에 내다 파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주의식 식량배급제 실시, 북괴의 형편없는 주체농법과 쌀, 옥수수 등 주곡(主穀) 위주 경작으로 녹두조차도 많이 먹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녹두전은 평양 등지의 몇 안 되는 음식점에서만 취급하는 음식으로 전락했으며, 그마저도 한 사람당 몇 장 이상은 시켜 먹을 수 없도록 주문량을 제한해야 하는 지경이라고 한다.[6]
그 밖에도 오곡이 풍족한 곡창지대 특성상 쌀,콩, 팥, 수수 등을 쓰는 떡도 발달했는데, 인절미, 백설기, 수수살미떡, 닭알떡 등 그 종류도 다양하였고 손님을 대접할 때도 황해도 사람들은 떡을 내놓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과 산림 황폐화에 따른 자연재해 등으로 당장 먹고 살기 바빠졌기 때문에 황해도 식문화에 큰 타격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