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메이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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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대 덴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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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4대 덴노 시호 조메이 덴노/서명천황
舒明天皇재위기간 629년 2월 2일 ~ 641년 11월 17일 궁호 없음 휘 다무라(田村) 성별 남성 출생일 593년 사망일 641년 11월 17일 황후 다카라(宝) 능호 오사카노우치능(押坂内陵) 연호 없음 황거 비조강본궁(飛鳥岡本宮/~636년)
전중궁(田中宮/636년~640년)
백제궁(百済宮/640년~)
개요[편집]
일본의 34대 천황.
생애[편집]
선황 스이코 천황이 후사가 없이 급사하자, 바로 조정은 후계자를 놓고 분쟁이 생긴다. 이에 당시 권신이었던 소가노 에미시(蘇我蝦夷)는 귀족회의를 소집하여 차기 천황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이 때 쇼토쿠 태자의 아들인 야마시로노오에(山背大兄)황자와 다무라 황자를 놓고 귀족들 간의 의견대립이 매우 심했는데, 소가노 에미시가 자신의 핏줄인 아먀시로노오에가 아닌 다무라를 천황으로 옹립하는 것으로 결정하면서 다무라가 천황에 즉위한다.
이에 야마시로노에를 지지했던 인물이었던 사카이베노 마리세(境部摩理勢)가 반기를 들었으나 문제는 그가 소가씨의 가족묘를 파분하는 일을 저지르면서 소가씨 전체의 반감을 사 버렸고, 결국 그의 난은 실패하고 사카이베의 아들들은 소가노 에미시에 의해 제거된다.
조메이 천황 대에 들어서 일본은 본격적으로 중국의 문물을 들여오기 위해 견당사를 조직, 파견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백제빠였던 그는 야마토를 흐르는 강의 이름을 백제천(오사카부를 흐르는 강인 구다라 강 하고는 다름)이라 명명하고 백제천 서쪽에 궁성인 백제궁을, 동쪽에 백제사(百済寺/현 대안사가 승계하였으며 원 사찰 터는 기비 호수 근처에 있음)를 짓게 하였다.
백제와의 관계[편집]
그의 마지막 황거만 봐도 백제와의 연관성이 매우 강해보이는 인물이다.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録)에서 비다쓰의 손자 백제왕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바로 조메이 천황이며, 동시에 백제대사라는 절 역시 엄청난 규모로 건설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가 붕어하였을 시기 장례를 백제대빈(百済大殯)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 백제대빈은 백제 군주들의 장례식을 뜻하기에 이러한 것을 볼 때, 당시부터 이미 일본은 백제계 도래인들이 상당히 강력한 세력이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오는 중이다.
황거[편집]
현재 조메이 천황의 비조강본궁(飛鳥岡本宮), 고교쿠 천황의 비조판개궁(飛鳥板蓋宮), 덴무 천황의 비조정어원궁(飛鳥浄御原宮)은 모두 한 곳으로 추정되며, 터에는 아스카미야 유적지가 위치 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