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바 덴노
조무위키
일본 역대 덴노 | |||||
---|---|---|---|---|---|
81대 안토쿠 덴노 | ← | 82대 고토바 덴노 | → | 83대 쓰치미카도 덴노 |
일본 82대 덴노 시호 고토바 천황/후조우천황
後鳥羽天皇재위기간 1183년 9월 8일 ~ 1198년 2월 18일 궁호 없음 휘 다카히라(尊成) 성별 남성 출생일 1180년 8월 6일 사망일 1239년 3월 31일 중궁 구조 닌시(九条任子) 능호 오하라능(大原陵) 연호 겐랴쿠(元暦/원력)
분지(文治/문치)
겐큐(建久/건구)황거 평안궁(平安宮)
개요[편집]
일본 82대 천황. 그의 치세에 가마쿠라 막부가 시작된다.
즉위 및 치세[편집]
고시라카와 천황이 안토쿠 천황을 쫒아내면서 즉위하였다. 이후 1184년에 겐랴쿠(元暦/원력) 연호를 개원한다. 그러나 안토쿠 천황이 삼종신기를 들고 튀었기 때문에 삼종신기 없이 즉위하였다.
이후 1185년에 지진이 일어나 분지(文治/문치) 연호로 개원한다. 그리고 동년, 각 국에 수호(守護)와 지두(地頭)의 설치를 허가한다(문치의 칙허/文治の勅許)
1189년에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오슈 후지와라씨(奥州藤原氏)를 몰살시키고 해당 지역을 자신의 세력권에 편입시킨다.
1190년에는 삼성합(三星合)이 발생하여 겐큐(建久/건구) 연호로 개원한다.
이후 1192년까지 고시라카와 천황의 원정을 받다가 그가 붕어하자 당시 관백이었던 구조 가네자네(九条兼実)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에게 정이대장군직을 부여하면서 가마쿠라 막부가 시작된다. 이후 1198년에 1황자 다메히토(為仁)에게 양위하고, 원정을 실행한다.
상황기[편집]
상황에 오른 그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반대에도 원정을 하였다. 이후 고위 관직자들인 전상인(殿上人)들을 정리하고 원청(院庁)개혁을 한다.
1200년에는 화가인 백수가(百首歌)를 기획하였고, 1201년에는 화가소(和歌所)를 설치하였으며 1202년에는 신고금화가집(新古今和歌集)을 편찬하였다.
이후 정적들이 하나하나 사망하자 고토바 상황은 더욱 더 정치에 강하게 임하였고, 가마쿠라 막부 3대 쇼군에게 사네토모(実朝)라는 이름을 하사하기도 하였으며, 자식이 없는 그에게 상황의 자식을 양자로 보내는 궁장군(宮將軍)계획도 하면서 가마쿠라 막부와의 관계도 원만하게 유지되었다. 그러나 미나모토노 사네토모가 조카에게 암살당하면서 가마쿠라 막부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한다.
1219년, 미나모토노 요리시게(源賴茂)가 인수전(仁寿殿)에서 잡혀 죽었는데, 이 때의 화재로 인수전뿐 아니라 의양전(宜陽殿)과 교서전(校書殿) 등 궐내 많은 전각이 소실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고토바 상황은 미나모토노 미치토모(源通具)에게 소실된 궁의 재건을 맏기지만, 동국의 지두(地頭)들이 이를 거절하는 바람에 결국에는 서쪽 지방에서의 비용만으로 황궁을 재건한다.
이후 1221년, 고토바 상황은 호조 요시토키(北条義時)를 추토하는 인선을 내리고 군을 일으키지만, 막부군에게 패배한다(승구의 난/承久の乱).
이후 고토바 상황은 오키국에, 준토쿠 상황은 사도국에, 쓰치미카도 상황은 도사국에 유배를 가며, 당시 천황이었던 주쿄 천황 역시 폐위된다.
이후 원정정치는 모리사다(守貞)가 맏게 된다.
1239년에 붕어한다.
능[편집]
그의 능인 오하라능(大原陵)은 준토쿠 천황과의 합장릉이다.
연호[편집]
연호 이름 | 사용 시기 | 년수 | 개원 이유 | |
---|---|---|---|---|
겐랴쿠(元暦/원력) | 1184년 5월 27일 | 1185년 9월 8일 | 2년 | 고토바 천황 즉위로 개원 |
분지(文治/문치) | 1185년 9월 9일 | 1190년 5월 15일 | 6년 | 지진으로 인해 개원 |
겐큐(建久/건구) | 1190년 5월 16일 | 1199년 5월 22일 | 10년 | 삼성합으로 인해 개원 |